- 지금우리는
- 선정되지 못한 예술교육, 오늘도 폐.기.중
- 김태희 _바라컬처스랩 소장
- 2023.07.26
지지봄봄 37호
-조난의 계절에 필요한 힘
지금 우리는
선정되지 못한 예술교육, 오늘도 폐.기.중
김태희(바라컬처스랩 소장)
선정되지 못한 문화예술교육은 오늘도 폐.기.중
지원사업으로 치열한 봄이 지났다. 올해는 또 얼마나 많은 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이 휴지통으로 들어갔을까..매년 봄이 돌아오면 문체부에서부터 지방의 문화재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모가 이뤄진다. 세상사가 그렇듯 ‘될놈될’, 선정 개수는 한계가 있고 그 외의 공모지원서는 세상 모든 종류의 ‘휴지통’으로 폐기된다.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공모 시즌이 휩쓸고 지나가면 문화재단마다 얼마나 많은 파일을 ‘휴지통에 버리기’ 하는지, 심의위원들을 위해 뽑아 놓은 얼마나 많은 심의서류 용지가 폐기함으로 갈려 들어가는지, 그리고 전국에 얼마나 많은 예술교육단체가 그들의 노트북 바탕화면에서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서 자식 기르듯 작성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손가락 클릭 한 번으로 폐기하는지, 때로는 올라오는 쓴 물을 삼켜 내며 ‘이유가 있겠지’, ‘더 나은 단체가 뽑혔겠지’, ‘우리는 예술교육이 아닌가 보다’ 하며 예술교육의 길을 포기하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과연 예술교육 판에 한껏 달리다 무르팍이 까질 운동장이 있기는 한 것인가. 좁기만 한 지원사업의 교실 안에 단체들을 가둬 놓고 정형의 순위를 매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심의위원들은 이렇게 물어야만 했다. “이제 지원사업 3년차가 됐는데 자생할 계획은 무엇이지요? 앞으로 단체의 비전과 방향은 무엇이지요? 언제까지 지원사업에만 의존할 건가요?” ‘자생’에 대해 답변을 잘한 단체는 한 해 더 교실에 남아 있고, 그렇지 못한 단체는 교실 밖으로 나갔다. 참 이상하다.
판로개척은 문화예술교육이 놓친 국가의 정책이고 의무이다
단언하건대 판로개척 지원은 모든 분야의 문화예술에 있어 중앙정부가 추구하는 매우 중요한 진흥계획 중 하나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의 근간이 되는 「새 예술정책(2018~2022)」에서는 8대 핵심과제를 발표하였고, 그중 7번 과제로 제시된 것이 바로 “공정하고 활력 있는 예술시장 환경 조성”이다.“핵심과제 7. 공정하고 활력 있는 예술시장 환경 조성”
○ 예술시장 및 유통 활성화
- 예술시장 질서 확립 : 표준계약서 확산, 전문컨설턴트 및 원스톱 계약 지원
- 시장환경 조성 : 미술은행, 공연예술통합전산망, 공예유통망 기능과 활용 확대
- 예술 투자 확대 : 세액 공제, 아트펀드 및 연기금, 소액투자 활성화 등
- 예술 후원 확대 : 문화접대비 활성 등 메세나 전국망 구축, 기업 매칭펀드 확대
- 예술 시장 분석 강화 : 미술통합과 전통예술 아카이브 등, 실태조사 강화
올해 4월 발표된 「제2차 문화진흥 기본계획(2023~2027)」에서는 5대 전략을 발표하면서 ‘예술시장’을 넘어 K-콘텐츠의 ‘국제시장’ 진출까지 정책지원을 다루고 있다. 다만 정부가 발표하는 것은 정부의 방향이자 의지로 큰 틀만 다루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비록 각 장르와 영역을 명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세부 과제와 지원 방향은 문체부 산하기관 혹은 유관기관 : 영화(영화진흥위원회), 콘텐츠(한국콘텐츠진흥원), 미술(한국화랑협회 등), 공연(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에서 중앙정책에 근거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래서 영화진흥위원회는 각 영화제를 지원하고 주된 행사로 영화마켓과 피칭 행사를 적극적으로 개최한다. 콘텐츠진흥원은 호텔과 컨벤션 센터를 빌려 게임과 애니메이션과 같은 K-콘텐츠 시장을 형성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미술시장에서는 ‘화랑미술제’를 비롯해 ‘키아프 서울(Kiaf SEOUL)’, ‘부산국제아트페어(BIAF)’와 같은 각종 아트페어를 지원하여 그야말로 그림을 사고파는 미술시장을 매년 키우고 있다. 해비치아트마켓, 서울아트마켓은 이제 공연유통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 매년 크고 작은 공연들이 전국 문예회관으로 사고 팔리는 장으로 지원되고 있다. 중앙정책을 세부 정책으로 만들어 집행하고 매년 그 판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아! 문화예술교육만 빼고.
문화예술교육의 판로개척과 시장개척에 관한 지원은 ‘제1차 문화예술교육 5개년 종합계획(2018~2022)’에도, 올해 발표한 ‘제2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2023~2027)’에도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 치열한 고민 끝에 명확한 의도와 이유하에 빠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교육을 판다고?’, ‘예술교육에 시장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예술교육은 지원해야지!’
<노는예술> 사업을 하면서 지겹도록 들었던 (지원사업 옹호자들의) 익숙한 언어들처럼 문화예술교육에서의 판로지원과 시장형성은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문화예술교육 또한 다른 장르와 같이 문화진흥 종합계획을 영역에 맞게 정책적으로 준용하고 이행하여야 함에도 말이다.
예술교육은 시장형성이 될 수 없다고?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그래서 경기문화재단 <노는예술>은 파격적인 사업이 아니라 다른 유관기관들이 하듯 당연한 지원사업, 아니 다른 곳에 비하면 오히려 다소 늦은 지원사업이라 할 수 있다. <노는예술>은 매년 수없이 폐기되는 문화예술교육인 <노는 기획>과 예산은 있지만 예술교육을 찾고 있는 수요처 <노는 예산>을 매칭시키는 사업이다. 작년에는 10개 단체, 올해는 8개 단체를 선정하여 지독하다 할 만큼의 워크숍 일정과 과제를 준다. 단체는 지원사업이 정한 주 강사 5만 원, 보조 강사 3만 원의 틀을 벗어나 우리의 몸값은 얼마인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판로 대상별 판촉 PPT를 만들고 CF 영상 제작, 온라인 홍보툴(아카이빙과 SNS)을 개설하는 등 ‘프로그램 개발 지원’에만 익숙했던 지원사업을 벗어나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는 지난한 작업을 한다. 한마디로 누가 우리 좀 안 뽑아주나, 안 도와주나 하던 단체의 모습에서 적극적으로 검색되게 만들고 제안서를 전달할 수 있으며, “00 지역에 2시간씩 5회 수업하면 얼마예요?”라는 질문에 즉각적으로 답변하게 만들어 판로를 열어주는 것이다.미대 다니던 시절, 예술가는 돈을 입에 올리는 게 아니라고 했다. 천박하다 했다. 하지만 요즘 화가들은 “제 작품은 1호 기준 얼마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한없이 당당하고 자연스럽다. 판로개척을 지원한다는 것, 시장을 지원하는 것은 단순한 매칭이 아닌 한 예술영역에서의 인식과 언어와 문화도 함께 바꿔주는 것이다. 2022년 12월, 10개 단체가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뽐내는 피칭데이, <노는예술> 사업의 기획총괄을 담당했던 나는 내 인건비까지 끌어모아 수원 이비스 호텔의 컨벤션홀을 빌렸다. 학교, 보건소, 구청, 복지관, 어린이집 등 다양한 곳에서 예술교육을 사고자 찾아준 80여 명의 기관 담당자들에게 예술교육이, 예술교육 단체가 얼마나 가치 있고 빛나고 멋진 것인지, 그래서 ‘어머! 이건 꼭 사야 해!’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누군가는 ‘보여주기’ 중심이었다고 하지만 그랬다면 정말 성공한 것이다. 갈고 닦아온 예술교육단체와 예술교육프로그램은 그 무엇보다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니까. 자랑해야 하니까. 영화피칭, 벤처피칭, 미술피칭이 호텔과 컨벤션 센터에서 어떠한 규모로 이뤄지는지, 배급사와 구매자를 유치하기 위해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이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올해는 11월, 경기문화예술교육축제의 한 파트로 피칭데이가 열린다. 더 많은 수요처가 <노는예술>로 만나질 것이다.
피칭데이 유튜브 생중계
피칭데이 참가팀 발표
우리가 보고 들은 2022년 <노는예술> 참여자들의 인터뷰
피칭데이 너무 재밌었어요. 예산만 있으면 진짜 다 가져가고 싶어요.
저희는 중학교니까 자유학기제 연계해서 할 만한 것들도 생각해 봐야 하거든요.
원래 저희가 알아서 예술 강사를 섭외해서 하는 상황인데,
여기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매칭해 주니까 기대가 되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너무 좋다고 생각해서 공고 올라오자마자 바로 신청하였습니다.
- <노는예술> 피칭데이에 참여한 00 중학교 교사 인터뷰 중에서 -
<노는예술>은 앞으로 하나의 매뉴얼이 될 것 같아요.
단체들이 맨날 공모에 지원해서 하는 것보다 수요처들이 필요한 걸 충분히 듣고
협의해서 진행하는 방법을 찾는 게 단체와 행정 인력을 소모하지 않는 방법인 것 같아요.
이렇게 예술교육단체가 수요처와 직접 만나는 장을 열어주고 매칭이 되면
예술교육단체가 기관과 조율해서 알아서 진행할 수 있는 거잖아요.
느낌이 정말 좋습니다.
- 피칭데이 당일 <노는예술> 참여 단체 ‘뮤러방’ 인터뷰 중에서 -
피칭데이 너무 재밌었어요. 예산만 있으면 진짜 다 가져가고 싶어요.
저희는 중학교니까 자유학기제 연계해서 할 만한 것들도 생각해 봐야 하거든요.
원래 저희가 알아서 예술 강사를 섭외해서 하는 상황인데,
여기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매칭해 주니까 기대가 되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너무 좋다고 생각해서 공고 올라오자마자 바로 신청하였습니다.
- <노는예술> 피칭데이에 참여한 00 중학교 교사 인터뷰 중에서 -
<노는예술>은 앞으로 하나의 매뉴얼이 될 것 같아요.
단체들이 맨날 공모에 지원해서 하는 것보다 수요처들이 필요한 걸 충분히 듣고
협의해서 진행하는 방법을 찾는 게 단체와 행정 인력을 소모하지 않는 방법인 것 같아요.
이렇게 예술교육단체가 수요처와 직접 만나는 장을 열어주고 매칭이 되면
예술교육단체가 기관과 조율해서 알아서 진행할 수 있는 거잖아요.
느낌이 정말 좋습니다.
- 피칭데이 당일 <노는예술> 참여 단체 ‘뮤러방’ 인터뷰 중에서 -
피칭데이 수요처 상담부스 사전 운영
피칭데이 수요처 상담부스 운영 (네트워킹)
<노는예술>은 모든 지원사업을 없애고 판로개척만 하자는 것이 결코 아닌, 다양한 지원사업 형태 중 하나이다. 문학도 다큐멘터리 미술도 제작지원도 하지만 판로지원도 한다. 문화예술교육도 어느 정도 개발 과정과 성장 과정을 지원받았다면 본격적인 자생의 단계로, 판로와 유통의 단계로 들어서야 함이 마땅하다. 앞으로 “문화예술교육에 ‘판로’나 ‘시장’이라는 단어가 가능한 것이었어?”라고 어느 지지봄봄 구독자가 묻는다면, 부디 이번 글이 첫 글로서 기능하기를 바란다. 더하여 ‘한국 영화는 자생할 수 없으니 제작을 지원해야지’, ‘스크린쿼터를 두어 강력하게 보호해야지!’ 하던 인식이 숱한 고민을 거쳐 국제적인 영화제를 통한 판로개척 지원과 피칭 지원으로 확장하였던 것처럼, 그리고 최근 세계적으로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만들어 낸 것처럼 ‘문화예술교육 판로개척’에 대한 정-반-합-반-합의 이슈와 리포터가 90개 넘게 쌓여가기를 기대한다. 그때야 비로소 지원사업에 선정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은 ‘휴지통’이 아닌 ‘노는예술’, ‘단체 자생’ 폴더로 이동할 수 있으리라. 몇 번의 지원사업을 통해 증명된 예술교육프로그램이라면 더더욱 폐기하지 마라. 자, 이제 함께 달릴 운동장을 만들어 가자.
2023년을 향하여
참고 자료: 「2022 노는예술 아카이빙」
http://ggarte.ggcf.kr/?p=78&page=1&viewMode=view&reqIdx=202306201222228930#url
- 김태희 / 바라컬처스랩 소장
- 바라컬처스랩 소장이자 예술가, 예술교육자로서 생애주기와 사회변화를 반영한 ‘생으로부터의 예술교육’으로 자문, 저술, 연구, 강연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22년부터 경기문화재단에서 <노는예술> 총괄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주요 저서는 『행복한 인재로 키우는 예술의 힘』,『아이중심·놀이중심의 예술수업』, 『메타버스와 함께 가는 문화예술교육』등이 있다.
(사진 제공.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