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우리는
- 싸움의 이유, 혹은 사명에 대하여
- 백현주
- 2023.10.11
지지봄봄 38호
-싸움의 기술
지금 우리는
싸움의 이유, 혹은 사명에 대하여
백현주(프리랜서 기획자)
위기 상황과 사명 의식
#장면1. 2020년 4월, 풍문만 같았던 코로나19 감염병이 점점 실체를 드러내며 심각해지는 시절이었다. 한편으로는 빠르게 위기대응시스템이 마련되었고, 다수의 공공기관과 다중이용시설 들이 의심과 불안으로 휴관과 개관을 반복하다가 결국 장기 휴관을 결정한 것도 비슷한 시점이었다.
시민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물리적인 공간과 그곳에서 발생하는 서비스를 시민들이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업무의 중단, 일거리 없음을 의미했다. 공공 일자리의 특성상 당장의 수요 없음이 바로 일자리 불안으로 연결되진 않았고, 따라서 이 상황을 악용할 여지는 충분했다. 출근해서 대충 시간을 때우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과 그 구성원들은 발 빠르게 비대면 서비스를 개발하고 그것이 어떻게든 시민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애쓰면서, 다들 오히려 지나치게 일을 많이 했다.
#장면2. 같은 시기, 같은 공간. 감염병 기간 동안 이곳을 이용할 수 없는 이는 서비스의 수혜자만이 아니라 서비스의 매개자, 곧 강사 같은 특수형태 근로자들이었다. 이들이야말로 당장의 수입이 끊기는 날벼락 같은 상황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무기한 휴관이 정부의 방침으로 공지되고 얼마 안 있어 모 지자체가 주민자치센터 강사들에게 우선 휴업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지역 일간지에 실렸다.
이 기사를 보고 해당 지자체 평생교육시설에서 일하는 A 씨는 주무부서 B 팀장에게 소속 강사들에게도 휴업수당을 지급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같은 정부 이웃 부서의 사례인데다 강사비로 이미 확보된 예산이 있으니 문제없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논의는 없었다.”는 짧은 답만 되돌아왔다. 동일한 사례가 다르게 적용되는 이유를 문의했다. 이들에 대한 조직의 책임에 대해 피력하고 공문도 보냈지만, 더 이상의 답은 없었다. B 팀장은 이 부서로 발령을 받은 지 3개월이 채 안 된 일반 공무원이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2주가 넘어 이번에는 시의 전문직위제에 따라 임명된 평생교육사 C 씨에게 다시 문의했다. 그는 쉽지 않겠지만 다시 알아보겠다고 했다. 한참을 걸려 돌아온 답은 “안타깝지만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국가 차원의 지원이 있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10년 가까이 보직 변경 없이 관련 업무를 지속할 수 있는 5년 임기제 공무원이었다.
이기는 기술=공감÷절실함×집요함?
첫 번째 장면이 만들어진 건 미디어의 영향력 때문이었을까.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평판이 만들어지고 퍼지는 것에 대한 눈치 보기, 혹은 비대면 서비스 없이는 뒤처질 것 같다는 불안이 빚은 놀라운 학습력의 결과일까. 아니면 전 지구적 재난 상황에서 생명을 놓고 다투는 처절한 일상들에 대한 존경과 겸허함, 최소한의 인류애의 발로였을까.
저마다의 이유가 다 다르고 또 복합적이기도 할 테지만 그 장면들의 기저에는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공통된 질문들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이 깨진 지점, 그 시점에서야 매일매일 관성으로 행하던 일에 비로소 ‘왜’, ‘무엇을 위해서?’라고 질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재난의 상황에서 우리는 내가 하는 일의 의미, 이른바 사명(mission)에 대해 묻고 그 어느 때보다 열심을 내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장면은 좀 더 복잡하다. A와 달리 B와 C는 자신의 사명, 임무에 대해 방관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석하고 싶지만은 않다. 각각은 자신이 하는 일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하는 일인지 그 인식이 달랐던 것 같다. 소속이 모두 달랐으니 같은 공공부문이라고는 해도 하나의 사안에 보여준 태도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A나 C가 자신의 사명을 생각하는 순간 특정 공간이나 사업에 관계하는 자 또는 이용자를 떠올렸다면, 부서를 옮겨다니며 일을 해온 B는 더 많은 사람과 그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여러 부서를 돌아다니며 목격한 현실과 현장들 사이에서 경중을 가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균형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C의 경우는 자신의 전문분야가 있지만 궁극에는 시 공무원이라는 신분과 소속 안에서 결론적으로는 B와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문화예술 행정인들은 주로 A와 같은 위치에 있다. 정부 조직이 아닌 산하기관이나 위탁기관에서 일하면서 B와 C가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현장을 그릴 때, 특정 현장을 떠올리는 자이다. 정부에 속한 이들은 현장의 이름을 모르지만, 문화재단이나 문예진흥기구에서 일하는 예술 행정은 현장의 이름을 안다. 그것이 사명이 겨누는 사람들의 절실함에 대한 공감의 수위를 가른다.
이긴다는 건 사실 어떤 전략과 방법이라기보다는, 싸움을 집요하게 끌고 갈 수 있는 버티는 힘에 좌우된다. 그러려면 자신의 사명이, 즉 싸움의 목적이 뚜렷하고 납득 가능하며,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문제라는 것. 중요한 일이라는 것에 공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승리의 기술 이전에 왜,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아는 것이 핵심이란 얘기다. 알아야 절실함이 생긴다. 절실해야 집요해지고, 집요함이 그나마 이길 확률을 높인다. 문화예술 행정에 필요한 앎은 결국 ‘현장’에 대한 앎과 공감이자 그것을 통해 만들어지는 명분이다.
문화예술교육 행정은 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가
2022년 시범사업을 거쳐 올해 본격 시작된 <경기 지역중심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이하 지역중심사업)은 각 기초 단위의 문화예술교육이 결국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 싸움을 펼쳐야 하는가를 기초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일종의 ‘사명 찾기 사업’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기초 단위의 문화행정을 전담하는 문화재단이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가져야 할 책임 및 권한과 문화예술교육 주체를 위해 가져야 할 책임에 관해 비로소 처음 조직 차원에서 고민하고 정리하기를 요구하는 사업이다. 이러한 것을 설정한 다음에야 짜임새 있는 정책과 사업의 기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종종 ‘기반구축 사업’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역중심 사업은 문화 분권의 흐름 한가운데에서 등장했다. 전면 개정된 「지방자치법」을 지난해 막 시행하였고, 19대 정부의 지방이양 2단계도 마무리되면서 자치분권의 본격적인 막이 열렸다. 돌이켜보면 사실 문화 분권은 전국에 광역과 기초문화재단을 만든 10여 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창작지원이나 예술인 지원과는 달리 문화예술교육의 분권화는 명확히 새로운 국면이고, 문화재단에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그동안 기초 단위의 문화예술교육이 중앙 사업을 대리 수행하는 통로에 지나지 않았다면, 앞으로는 지역중심 사업과 함께 문화재단의 사명이 된 것이며, 이로써 기초가 스스로 그 정체와 목적을 찾아내고 사업을 기획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사업의 전개 과정에도 담겨 있다. 2022년 한 해 동안 기초문화재단의 담당자들이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누며, 분권화와 문화예술교육에 관해 공부할 기회가 제공되었다. 무엇보다 <2022 지역중심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을 통해 본 사업의 예행연습을 한 것은 참여재단과 담당자들에게 커다란 학습효과가 되었다.
“미술관에서 일했고 문화재단에 와서도 주로 콘텐츠 중심으로 접근했어요. 그러다 보니 큰 얼개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작년에 시범사업을 하면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제는 기존 방식을 벗어버리고 협력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어요. 공부가 되는 사업일 것 같아요.”
“‘지역 중심’이 뭐지? 어떻게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지, 지역 현장을 찾아내야 하는 건지,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나, 내용 제한도 없고 자유롭게 할 수 있다니 질문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한 축은 그냥 저희가 하고 싶은 것을 했고, 다른 축으로는 여러 선생님을 찾아 물어보러 다녔어요. 그때는 막연했는데 시범사업에서 고민한 부분을 올해 본사업에 담아서 다행이에요.”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지역중심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재단 담당자들은 ‘업무를 처리’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일을 경험하고 있다. 그 경험들이 조금씩 집적되면서 때론 생각의 전환으로, 때론 행동의 변화로 이어진다. 종종 후퇴도 있지만 그보다는 더 자주 나아가고 나아지는 것이 목격된다. 일할 맛을 느끼고, 약간의 신바람을 내는 식으로 ‘힘’을 얻고 ‘힘’을 낸다. 그리고 그로써 일의 맛을 알게 된다. 경험들이 제대로 교훈을 이끌어낼 때, 학습이 잘 이루어졌을 때,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 뒤에는 사업과 담당자와의 관계 속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경기문화예술교육센터의 어떤 태도와 역할이 있다. 간섭과 응원, 신뢰와 조력과 사이를 적절히 오가며 참여자들이 적당한 긴장감과 적당한 자유로움 안에서 일할 수 있게 한 결과이다. 이 역시 광역센터의 미션에 대한 오랜 고민과 시행착오들이 뒤섞인 시간이 이루어낸 것들이리라. 부침이 없지 않았지만 경기문화예술교육센터가 늘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예술인들, 문화예술교육인들과 동행하며 질문해온 시간의 궤적들이 지금과 같은 무대를 연출했으리라 이제야 공개적으로 ‘리스펙’한다.
하지만 아직 이 사업엔,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의 분권과 활성화에는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참여 재단 담당자들에 의하면 지역사회에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관심이나 인식은 여전히 너무 낮다.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예술에 대한 무지가 너무 커서 설득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지역 안에서 사건을 만들고 협업을 하고 싶어도 고인물과의 협력이 강요될 때, 그래서 나아가지 못하고 맴돌 때 너무 답답하다. 재단 내부에서조차 공감이 없을 땐 일할 맛이 사라진다. 하지만 거기에 쉽게 굴하게 되지 않는 건 “책임감과 재미있게 일을 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책임감과 재미, 이 정직하고 순수한 문구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사명은 고사하고 책임감이라는 실종된 단어가 부끄러움을 불러일으킨다. 2020년엔 중앙에서 문화예술교육 기초거점 지원사업이 시작됐었다. (경기도의 지역중심사업과 내용적으로 거의 같은 사업이다.) 3년 연속지원을 약속하고 2022년까지 지속되면서 문화예술교육 행정과 현장 단체들이 함께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다 별안간 사업이 중단되었다. 사업의 마무리 자리에서 필자는 더 이상 헌신하지 말자는 말을 에둘러 했었다. 담당자가 헌신이 아니라 최소한의 책임이나마 다 다하려면, 기초재단이 사명에 맞게 일을 수행하려면 정책의 지속성은 기본 설정값이어야 한다. 일의 맛을 알도록 일할 맛 나는 일터의 기본 여건은 갖추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경기도, 당신이 싸워야 할 명분이고 사명이다.
- 백현주 / 프리랜서 기획자
- 몸이 생각을 못 따라가는 게으르고 더디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 다행히 자신에 대한 주제 파악을 거쳐 평화와 건강을 누리며 살고 있다. 미술과 디자인계 언저리에서 잡지와 책을 만들며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주로 공공부문에서 문화예술 및 교육 기획 관련 프로젝트와 연구에 참여했다. 현재는 도시 전체가 어떻게 하나의 학교가 될 수 있는지 상상하는 ‘수원은학교’ 설계연구 책임을 맡고 있으며, 어떻게 사람들이 서로 긍정을 촉발하는 관계를 만드는지와 놀고 쉬는 데 늘 비교우위에 있을지가 최고의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