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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11

지지봄봄 38호

-싸움의 기술

기술너머

바다로

신수연(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호흡기를 물고 풍덩, 곧 바다에 뛰어듭니다.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집니다. 수면에서 호흡을 고릅니다. 몸이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곧, 다른 세계로 진입합니다.” 제주 산호 조사활동을 위해 스쿠버다이빙을 배웠다. 긴장되고 설렌 첫 스쿠버다이빙의 기억을 몇 개의 문장으로 담담하게 적었지만, 실제 물속의 규칙을 몸으로 익히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공기통은 무겁고 슈트는 몸을 조였으며, 코를 덮은 마스크도 답답했다. 부력 조절이 익숙지 않아 입수할 때 가라앉지 않거나, 출수할 때 혼자 먼저 떠오르는 일도 있었다. 조류가 센 날은 바닷속을 헤매다가 낙담하기도 했지만, 다이빙 경험이 쌓이고 물속 세계에 조금씩 적응하고부터 바닷속 생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이대로라면 30년 안에 전체의 90%가 사라질 수 있다고 언론에 종종 보도되는 해양생물, 그 바다에는 산호도 살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로 위협받는 산호를 기록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고, 그 조사 기록은 보고서와 보도자료로 발표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꼼지락대고 흐물거리며 나풀거리고 하늘거리고 빛나는 산호를 더 많은 이들이 알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함께 활동하는 동료들과 제주 산호에 대한 안내서인 《ㅈㅈㅅㅎ》를 만들었다.

 
형형색색 제주 연안 연산호 군락의 모습
형형색색 제주 연안 연산호 군락의 모습


산호는 알록달록한 색깔에 직벽이나 암반에 고착되어 있어 식물로 오인당하기도 하지만, 자포 세포를 이용해 먹이활동을 하는 ‘자포 동물’이다. 전 세계에는 7,500종의 산호가 확인되었고, 우리나라에는 170여 종이 서식한다. 그중 120여 종 이상이 제주 바다에 산다(2020년 10월 기준). 제주는 화산섬이라 평평하거나 굴곡진 암반 지형이 발달하였고, 연중 따듯한 수온을 유지하고 있어 산호가 살기 좋은 환경이다. 부드러운 표면에 줄기 구조로 꽃을 닮은 산호를 연산호(해계두목, Alcyonacea), 소나무처럼 생긴 모습의 산호를 해송류(각산호목, Antipatharia)라고 하는데 연산호와 해송류가 많은 것이 제주 바다의 독특한 특징이기도 하다. 아열대 바다에 많이 서식하는 돌산호(돌산호목, Scleractinia)는 크고 딱딱한 탄산칼슘 골격의 몸체로 인해 돌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몸체 표면의 폴립을 관찰할 수 있다.

최근 들어간 서귀포 바다의 표층 수온은 29℃였다. 곧 30℃에 육박할 것 같다. 지난 50년간 제주 바다의 표층 수온은 1.23℃ 올랐는데, 이는 전 세계 바다 평균 상승 온도 0.48℃의 2배 이상이다.(국립수산과학원) 산호 생태계에는 어떠한 영향이 있을까? 고수온에 적응하는 유전인자를 확보한 산호는 급격한 수온 상승에도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산호는 더 깊은 수심의 바다로 혹은 북쪽으로 서식지를 이동한다. 밤수지맨드라미처럼 수온 상승에 취약한 종은 개체군이 급감하기도 한다. 여러 패턴 중 특히 빛단풍돌산호 서식지가 급격하게 넓어지고 있다. 연산호와 서식지 경쟁을 벌이면서 면적을 늘리고, 해조류가 사라진 공간에도 자리 잡고 있다. 제주 바다는 온대의 연산호 서식지에서 아열대와 열대의 경산호 서식지로 빠르게 바뀌는 상황이다. 적응하는 종과 사라지는 종 사이, 급격한 바닷속 변화를 체감하며 요즘처럼 고수온 층이 계속되면 일시에 산호 군락이 죽어서 사라질까 걱정된다.
 
서식지 경쟁 모습 : 빛단풍돌산호(아래)가 연산호(위) 서식지를 덮고 있다
서식지 경쟁 모습 : 빛단풍돌산호(아래)가 연산호(위) 서식지를 덮고 있다


계절마다 산호 조사활동을 하던 어느 날인가, 제주 해녀 삼춘(제주에서 남녀 구분 없이 어른을 다정하게 부르는 호칭)에게 바다와 바위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바위는 무기물인데 바위가 하얗게 죽었다니, 화산섬 제주의 검은 암반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바다의 변화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아했다.
“이젠 물에 들어 영 보면 바당(바다) 밑으로부터 하얗게 변해 가는 거라, 하얗게. 호멩이(호미)로 돌을 이렇게 해보면 돌이 쿠석쿠석, 돌까지 썩어져 풀이 안 나.”
“옛날에는 감태가 막 돌마다 이서. 그중에 구쟁기(뿔소라)도 나고 전복도 나고, 나보다 긴 몸(모자반)이 꽉꽉해서(꽉 차 있어서)….”
미역, 감태, 모자반, 우뭇가사리, 듬북 등 해조류로 가득했던 바다숲이 지금은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고 했다. 갯녹음이었다. ‘갯(얕은 바닷가)+녹음(해조류의 잎 부분이 죽거나 유실되는 현상)’은 순우리말 표현으로 수온 상승과 연안 오염으로 암반에 사는 미역, 감태, 모자반 등 해조류가 사라지고 탄산칼슘 성분이 많은 석회조류가 암반을 덮어 분홍색이나 흰색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어느 정도 상황일까.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 제주 해안 마을의 조간대(밀물에 잠겨 있다가 썰물에 드러나는 경계 지역) 암반 전체를 살펴보았다. 조사결과는 놀라웠다. 97개 해안 마을, 200지점을 살펴본 결과 모든 암반지대에서 갯녹음 현상이 진행 중이었고, 해조류 서식이 확인된 지점은 전체 마을 중 18곳에 불과했다. 갯녹음은 조하대(조간대 아래, 항상 물에 잠겨 있는 지역)에서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조간대까지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는 해조류 전문가의 의견을 확인하고 상황의 심각성을 실감했다.
 
갯녹음이 심각하게 진행된 사계 해안가. 멀리 형제섬이 보인다
갯녹음이 심각하게 진행된 사계 해안가. 멀리 형제섬이 보인다
 
해조류 모자반이 해수면까지 수 미터 높이로 자라 숲처럼 보인다
해조류 모자반이 해수면까지 수 미터 높이로 자라 숲처럼 보인다


해조류는 광합성이 가능한 햇빛이 비치는 얕은 수심에 살고, 산호 군락은 보통 그보다 더 깊은 수심에 있지만 공통의 공간에서는 경쟁 관계에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조차도 가만히 바라보면 다양한 바다 생명의 아름다운 공생과 조화로운 삶이 보인다. 해조 숲은 전복과 오분자기, 뿔소라의 먹이이자 물고기의 산란장, 은신처 역할을 한다. 산호 군락도 마찬가지이다. 산호를 먹는 해양생물에게 먹이원이 되기도 하고 자리돔, 주걱치, 줄도화돔은 제집 삼아 머물기도 한다. 각종 나비고기와 호박돔, 벵에돔 무리도 주변에서 놀고 멸치와 전갱이 무리가 떼 지어 지나간다. 작은 물고기들을 노리는 대형 줄삼치, 가다랑어, 방어 떼들의 날렵함도 눈길을 끈다. 암벽에 산호 군락에 해조 숲에 슬쩍 숨어있거나 끼어있는 갯지렁이와 갯민숭달팽이, 새우, 게 등 각종 갑각류가 풍부한 해양생태계를 이룬다.

과거형으로 추억하는 건강한 바다의 모습을 현재로 되돌리고 싶어 산호탐사대, 해양포럼, 해양시민과학자대회 등 조사와 기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급격하게 바뀌는 바다에 대한 많은 이들의 기록은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중요한 신호가 될 것이다. 기후와 생태 위기라고 하면서도 신공항 건설, 항만 확대, 연안 매립은 반복된다. 기록과 감시 활동으로 생산한 데이터를 통해 정책 변화를 요구하려고 한다.

새만금 갯벌을 다룬 영화 ‘수라’에는 계절의 변화를 새들로 느낀다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기러기와 잿빛개구리매가 오면 겨울이 온 것이고, 그들이 가면 봄이 온 것이다. 도요새가 오면 봄이 온 것이고, 그들이 가면 여름이 시작되는 것이다.” 바다를 자주 바라보고 바닷속에 들락날락하며, 어느새 나에게도 밀물과 썰물의 시간을 확인하고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송악산 앞바다를 환히 비추던 커다란 보름달을 보며 산란과 유생 방출을 준비하는 산호를 상상하고, 풍랑주의보로 조사 일정이 취소되면 배 한 척 없는 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들이 신나서 솟구치며 장난치겠다고 헤아리는 것. 예전에는 몰랐던 비인간 친구들에 대한 자각이고 감각이다. ‘세면대와 화장실에서 바다를 떠올릴 수 있다면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이문재 시인의 말처럼, 우리 모두에게 바다를 떠올릴 수 있는 각자의 감각이 생기길, 그렇게 변화가 시작되길 바란다.
 
신수연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녹색연합 해양팀에서 활동하다가 최근 동료들과 함께 제주에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을 만들었다. 시민 과학 방식을 통한 해양생태계 조사와 기록, 정책 개선에 관심을 두고 있다.
홈페이지 : http://www.greenparan.org/
인스타그램 : @jeju_softcoral
사진 제공. 파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