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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
  • 2024.12.05

지지봄봄 42호

-만남의 문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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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함께 오는 것들

김민(초록놀이터 대표)

우리 초록놀이터에게,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이름대로 정원이나 숲, 텃밭이 활동 배경이자 주제이자 소재이다 보니 가장 먼저 고려하는 요소가 바로 ‘공간’이다. 또한 공간이 단순히 ‘활동 장소’가 아닌, 사람들과 계속 만나고 도모하게 하는 ‘구심점’으로 작용하길 바라기에 공을 들여 공간을 찾고, 아끼며 다듬고 있다.

더 나은 공간을 위하여

올해 진행했던 농부 예술학교의 활동 공간에는 좀 더 특별한 이야기가 스며있다. 학교를 기획할 당시, 이미 외곽지의 한 텃밭을 활동 장소로 얻어두었는데, 내·외부 공간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운영하기에 매우 편리한 곳이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참여자를 모으고 세부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아쉬운 지점들이 보였다. 먼저, 이곳의 위치가 아이들의 일상에서 동떨어진 곳이었고, 당연히 스스로 걸어 올 수 없는 곳이었다. 농부 예술학교의 핵심은, 아이들이 농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하는 과정 안에서 자신만의 시각과 취향을 기르고 일상 안에서 예술을 영위하는 힘을 가지게 하는 것인데, 참여자들이 보호자의 차를 타고 일상과 동떨어진 곳으로 와서 일주일에 단 한 번 자신의 농작물을 만난다는 것은, 기획 의도와 전혀 맞지 않았다. 또한 이곳은 활동이 끝나면 바로 비워주어야 하는 곳으로, 참여자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이 불가했다. 이러한 이유로 공간에 대한 회의를 시작했고, 공간엔 우리의 편리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담겨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후에, 우리 팀 막내는 이때 조금 짜증이 났다고 했다. 솔직히 나도 조금 심란했다고 답했다.

새로 찾을 공간에 대해 우선으로 생각한 조건은 참여자들의 일상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 활동의 근본 가치를 실현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일상과 닿아 있으려면 아이들이 스스로 걸어올 수 있어야 하고,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매일의 동선 안에 있어야 했다. 여기서 연결되는 다음 조건은, 출입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농작물을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고, 텃밭을 자유롭게 노닐 수 있길 바랐다.

우리 활동의 상징과도 같은, 생태적 환경도 중요했다. 몇 가지 조건과 우선순위를 정한 뒤, 아이들의 학교 주변과 인근 주거 지역에서 터를 찾아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온라인 지도였는데 로드 뷰와 항공 뷰를 이용해 텃밭으로 사용할 만한 빈 땅들을 찾았다. 그런데 지도가 몇 개월 전 정보이다 보니, 실제 가보면 이미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거나 땅 자체가 텃밭으로는 도저히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몇 곳에 범위를 지정한 뒤, 모두 흩어져 도보와 차량으로 동네 이곳저곳을 직접 살펴보았다. 그렇게 이틀째, 드디어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은 우리가 정해 놓은 조건들에 더해, 근처에 그늘이 크게 지는 넓은 공원과 유사시 사용할 수 있는 내부 공간까지 있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다.

이제 공간을 찾았으니 임차를 위해 소유주를 알아내야 했다. 그런데 그곳은 낯선 동네였다. 근처 부동산들을 모두 돌아보고 알음알음 연결된 부녀회장님과 동네 토박이 어르신들께도 여쭸지만, 도심 한가운데에 그저 비어 있을 뿐인 땅의 주인을 알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때 떠오른 것이 토지대장이었다. 특정 주소의 땅을 누가 소유했는지 합법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토지대장 열람’이라는 훌륭한 제도가 있었고, 무료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소유주의 주소를 찾을 수 있었고, 시간상 부재중일 확률이 높았지만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30분 뒤, 애타게 찾던 텃밭의 소유주를 만날 수 있었다. 후에 그분은 우리가 처음 보는 자신을 지나치게 반가워해서 놀랐다고 하셨다.

이후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흔쾌히 사용 허락을 받았을 뿐 아니라 비용도 우리가 제시한 것 그대로 정해졌다. 활동을 몇 번 지켜보시고는, 텃밭을 계속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까지 해주셨다. 그렇게 ‘참여자의 일상과 맞닿은 곳’에 더해 ‘지속 가능한 곳’이란 조건까지 완벽히 충족하는, 또 하나의 활동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누군가는 짜증이 났고 누군가는 심란했지만, 역시 해보길 잘했다.

하지만 새 공간엔 단점도 있었다. 이미 잘 다듬어진 공간을 떠나 다시 처음부터 기초를 다지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이전 공간은 평소에도 두루 관리되는 텃밭 일부를 임차하는 것이었지만, 새 공간은 우리가 온전히 책임져야 했기에 터를 잡은 후에도 품이 많이 들었다. 모두 알 것이다. 올해 여름이 어떠했는지. 무덥고 비 많은 여름이 길어지기까지 해서, 텃밭을 아무리 정리해도 며칠이면 금방 풀로 가득 차고 헝클어져 버렸다. 수시로 찾아 다듬는 수밖에 없었는데, 작업이 끝나면 소나기를 맞은 듯 땀에 젖어버리곤 했다. 또한 허허 텃밭으로 활동 재료를 들고 나를 트럭과 수레, 대형 보관함이 동원되었고, 멀리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 호스를 여러 개 연결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고생들이 아깝지 않은 것은, 하교 후에 직접 걸어와 농사를 짓고 등하굣길에 또 친구네 집을 오가며, 거의 매일 우리 텃밭을 들여다보고 충분히 누린 열일곱 명의 어린 농부들 때문이었다. 우린 그곳에서 그들과 스무 번을 만났고 또 그곳에서 계속 만날 것이다.
 
사진1. 농부예술학교 전경_올해, 어린 농부들과 누린 우리의 텃밭
사진1. 농부예술학교 전경_올해, 어린 농부들과 누린 우리의 텃밭


소유하는 공간, 향유하는 공간

농부 예술학교가 지나간 11월, 까까머리 텃밭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문득 올해 이곳은 누구의 공간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은퇴 이후를 바라보며 오랫동안 비워 둔 법적 소유자와 그곳에서 계절을 보내며 구르고 돌보고 배워낸 향유자. 그 둘 중 진짜 그곳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지금껏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을 향유해 왔다. ‘완성된 공간’을 찾아 활동을 실행하기보다는, ‘만들어 낼 공간’을 찾아 활동으로 채우는 방식이 그중 하나였는데, 한 예로 도심의 빈터에 메시지가 담긴 정원을 들여놓는 ‘게릴라 가드닝’ 작업을 들 수 있다. 이 경우에 ‘공간’은, 활동의 장소면서 활동의 목적이었다. 이렇게 공간과 활동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작업은 훨씬 풍부해졌다. 한 번은 해가 전혀 들지 않는 지하의 작은 도서관에 어린이를 위한 정원을 설치했는데, ‘빛’이라는 필수조건을 공급하기 위해 조명을 충분히 배치하는 것에 더해 작품 자체에 광원을 만드는 기법이 고안되었다. 광원을 매몰하거나 노출하는 방식, 식물들의 생장 확보를 위해 채비해 두는 모양새, 그 외 지하의 한계를 고려한 모든 장치가 뜻하지 않게 미적 다양성으로 작용했다. 새로운 공간에 대한 현실적인 과제를 해결하면서 우리에겐 활동 기법이 추가되었고, 보는 이들에겐 예술이 풍부해졌다.
 
사진2. 지하에 설치 중인 예술정원_ 먼저 충분한 광원이 배치되고 있다.
사진2. 지하에 설치 중인 예술정원_ 먼저 충분한 광원이 배치되고 있다.


하지만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도해 본 것은 만들어 주지 않고 만들게 하는 것이었다. 먼저 공간을 이미 사용하고 있는 주민들을 모아 동네 정원사 과정을 진행했다. 정원사 교육이 끝난 후 동네 정원사들이 직접 식물 놀이터를 디자인하게 했고, 그들과 함께 식물 놀이터를 설치했다. 그리고 그 안에 손수 만든 작품을 직접 들여놓게 했다. 자기 작품을 어찌나 소중하게 다루는지, 참여자들끼리의 소소한 신경전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동네 정원사들의 예쁨을 받는 식물 놀이터는 아직도 잘 지속되고 있다.

물론 그곳은 그들도, 그들의 아이들도 자주 오가는 곳이었고, 오랜 기간 동료 정원사로 활동하며 정이 깊어진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손수 디자인하고 만든 놀이터를 계속 살아있게 하기 위한 마음이 큰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강제력이 공간과 공동체를 지속시키는 원동력으로 오래오래 작용하길 바란다. 그러나 그 하나의 요소만으로는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다. 사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인 ‘지속’은 결국 실현되지 않을 이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러 활동을 시도하면서 지속의 원동력과 구심점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답을 찾진 못했다. 오래 알고 지낸, 어느 단체의 대표에게 이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아주 시원한 답변이 돌아왔다. ‘야, 초록놀이터나 지속시켜. 혼자 남지 말고.’ 너무 시원해서 등골이 오싹했다.

공간과 함께 오는 것들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적다 보니, 우리가 사랑하는 공간들이 떠오른다. 열 사람이 들이닥쳐도 늘 반겨주는 도자기 터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곳에 가면, 도자 작가님이 귀한 차를 내려 손수 만든 찻잔에 내주신다. 백 년이 넘었다는 솥에서는 물이 끓고 이야기는 깊어진다. 일품인 차에 취해 기획이 샘솟는다. 또 동네 나무에서 딴 열매들로 쿠키를 만들어 먹곤 하는, 빵 안 파는 제빵소도 있다. 궁둥이 붙이긴 애매하지만, 쓰고 싶을 때 언제든 오라고 하는 목공 작업실도 있다. 도자기 터나 제빵소는 참여자들에게도 사랑을 받는데, 동네의 여러 곳을 돌며 진행했던 ‘옆집 예술’ 프로그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으로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하는 공간도 영원할 순 없다. 향유자인 우리는 소유자의 상황에 따라 하루아침에 공간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동네가 사랑하던 예술 정원이 동네 싸움에 등이 터져 몰래 사라져 버린 적도 있다. 가끔 마주하게 되는 그리고 곧 마주할지 모르는 이 가슴 아픈 상황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나는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우리의 공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갇힐 필요는 없다. 사실 우리에게 공간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지역의 자생식물로 꽉 채운 수레 텃밭 위에도, 찾아가는 예술 테이블 위에도 공간이 있다. 배워서남주는학교에서는 퍼렇게 칠한 어느 옥상이, 청년 농부 콘서트에서는 젖소 농장이 공간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숲과 언덕과 골목에서, 그곳의 풀과 바람과 풍경을 차지하는 방식으로도 공간은 존재한다. 어두운 골목이나 사람이 모이지 않는 광장, 버려진 공원도 우리 것으로 벼르고 있다. 그곳을 공간으로 만들어 내면, 그곳은 단지 공간으로만 오지 않을 것이다. 공간은 늘 사람과 함께 온다.

사실, 좋은 사람들이 있어 함께 할 공간을 만들고 싶어졌던 것인지, 공간을 만들어 놓으니 좋은 사람들이 모였던 것인지 순서는 모르겠지만, 그 둘은 늘 짝을 이뤄 왔다. 공간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은 참여자들이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이기도 하고 그저 지나가다가 들른 호기심 많은 방문객이기도 했는데, 그들이 하나씩 모여 지금의 초록놀이터가 되었다. 노력에 비해 좋은 공간과 좋은 사람들을 넘치게 만났다는 것에 분명코 동의하며, 좋은 공간과 좋은 사람이 있어 자칫 나른해질 수 있는 7년 차 문화예술 단체가 쫀쫀하게 지속될 수 있음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사진3. 공공정원, 숲, 골목. 동네의 어느 곳이든 우리의 공간이 된다.
사진3. 공공정원, 숲, 골목. 동네의 어느 곳이든 우리의 공간이 된다.


겨울을 맞이하며, 또다시 공간을 향한 활동을 상상하고 있다. 눈여겨보고 있던, 더러운 골목이나 폐허가 된 공원을 식물로 손보아 고치는 골목 프로듀싱을 구상하고 있고 환경적 한계에 갇힌 장소에 숨을 불어 넣는, 예술 정원 프로젝트도 다시 시작하려 한다. 그곳들이 공간이 될 때 또 누가 함께 올까. 어쩌면 우리는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문화예술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민/ 초록놀이터 대표
숲과 동네를 발견하는 것이 좋아 단체를 만든 지 7년째다. 일상에 맞닿은 문화예술을 근거로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도모하며, 모든 사람이 정원과 숲, 마을 안에서 자신만의 초록 놀이터를 소유하게 되길 꿈꾼다.

링크 : instagram.com/choroc.no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