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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진 _문화용역
  • 2017.12.19
23호 가봄 | 현장스케치
꿈다락 다시보기(영상비평)
주성진 / 문화용역

 

#1. 영상비평의 시작 - 호크마댄스시어터

 
 아직도 호크마댄스시어터의 수업을 처음 보았던 날의 충격이 기억에 생생하다. 세 시간 동안 수업을 지켜보아도 누가 주강사인지, 보조강사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유기적으로 수업을 이끌어 나가는 선생님들, 수업 밖에 마치 연극의 연출가처럼 존재하며 수업을 조율하는 기획자, 힘들면 조금 쉬어도 된다고 해도 계속 뛰어노는 아이들. 수업이자 공연이고 또 축제와 같았다. 준비 과정을 물었을 때 매주 수업 전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하여 리뷰하고, 선생님들과 공유할 부분을 추려 주중에 모여 함께 본 뒤, 다음 수업을 거의 실시간으로 리허설 한다고 담담히 말하던 기획자 진윤희 선생님.
 
 여러 자리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중향(?)평준화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 될 때 마다, 호크마댄스시어터의 수업 장면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분명 지금의 문화예술교육 지원 체계(교육 프로그램의 연구개발보다 ‘교육 서비스 제공’에 집중된 지원)에서, 다른 단체들에게 호크마댄스시어터와 같은 방법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시간당 43,000원을 받는 선생님들께 그 두세 배에 달하는 보상을 받고 하루 수업을 지켜보고, 구조적인 문제를 함께 한탄하며 응원과 지지를 전하거나, 짧은 관찰에 의한 몇 마디 코멘트를 전하는 관행적인 모니터링 혹은 컨설팅 구조에 대한 회의도 해가 갈수록 깊어갔다.
 
 그런 마음을 담아 호크마댄스시어터의 리뷰 과정을 다른 문화예술교육 단체들이 한 번씩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서 제공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작년 말 한 지면을 통해 전했었다. 그런데, 올해 초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선생님들이 찾아와 말했다.
“영상비평 진행 예산을 마련했어요!”
 
 낯설었다. 매번 모니터링이나 컨설팅이란 이름으로 참여한 사업들이 끝날 때마다 각 기관들에 ‘제언’이라는 것을 남기지만, 그런 제언이 현실화된 적이 워낙 없었고 실제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상상도 머릿속에 사라진 지 오래였기에 낯설었다. 생각해 볼 만한 의견이지만 내년도 사업 계획이 10월에 이미 결정되어서(그러면 12월에 제언은 왜 받는 것일까?)라던가, 기존의 방식을 바꾸려면 타당한 근거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훨씬 일반적이고 익숙한 일이었다.
 
#2. 영상비평 형식의 준비 - ‘미운우리새끼’는 얼마나 위대한 프로그램인가!
 
 먼저 관찰카메라를 통해 촬영된 영상을 스튜디오에서 보면서 대화하는 형태를 생각했다. ‘우리 결혼했어요’ 나 ‘미운우리새끼’와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다각도로 촬영해서 편집하고, 함께 모여 보면서 이야기 나누는 방식이었다. 비평보다 수다에 가까운 자리를 상상했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와 같은 역동적인 수업 현장에서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한 명의 시선으로 수업을 관찰하고 분석한다는 것에는 당연히 많은 제약이 있다. 네다섯 명의 선생님들이 이십여 명의 아이들과 갖가지 상호작용을 하고, 때로는 아예 분리된 공간에서 모둠별로 수업이 진행되기도 한다. 모든 선생님의 발언과 학생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교실 한구석에서 보조강사 선생님과 수업을 거부하는 학생이 하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또 수업이 끝나고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선생님들과 모니터링 참여자 각각의 시선과 기억은 늘 다르다.
 
 처음에는 구석구석 카메라를 설치하고, 모든 선생님에게 무선 마이크를 착용시키고, 별도의 마이크로 학생들의 음성을 담는 원대한 기획으로 출발하였다. 수업에 대한 간섭 문제와 예산 문제 때문에 3개의 카메라로 수업을 촬영하여 편집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대신 문화예술교육을 직접 진행한 경험이 있는 촬영팀을 섭외하고, 주목할 부분에 대해 사전에 이야기 나누고 촬영을 진행해 주어진 여건의 제약을 극복해 보고자 했다. 
 
 대부분의 현장에서 아이들이 카메라를 의식해 평소보다 조금 과장된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 촬영은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편집은 다른 문제였다. 세 시간 동안 세 대의 카메라로, 각각 다수의 커트로 촬영된 영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결과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촬영팀이 일주일 밤을 지새운 덕에 영상비평에 참여한 일곱 개 수업에 대해 아래와 같은 화면으로 전체 수업의 흐름과 개별적인 상호 작용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영상이 탄생하였다.
 

 

 
 하지만 최종 편집본이 완성된 것은 영상비평이 이루어지기 사흘 전 이었고, 영상비평에 패널로 참여한 선생님들께 이틀 동안 12시간 분량의 영상을 보고 분석하여 참여해 달라는 말도 안 되는 요청을 드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널 선생님들은 영상을 면밀하게 분석하였을 뿐 아니라, 아래와 같은 양식으로 논의할 내용을 꼼꼼하게 정리해 주셨다.
 

 

#3. 영상비평 내용의 준비 - 누가, 어디까지 도울 수 있는가?
 
 문화예술교육 분야에 영상비평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대학에서 최근 일반화된 수업 컨설팅을 중심으로 초반 리서치가 시작되었다. 서울대학교 교수학습센터의 민혜리 교수님, HD행복연구소의 조벽 교수님과 자문회의를 진행하였다.
 
 이 단계에서 가장 고민이 되었던 부분은 문화예술교육은 일반적인 교육과정과 비교할 때 교수법과 수업 내용이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물리학을 강의하는 교수에게 교수법에 대해 비평을 했을 때, 그것은 대부분 마이크로 티칭, 즉 커뮤니케이션 스킬 중심의 문제로 전달된다. 하지만 문화예술교육의 경우 그것이 교수자의 교육 철학을 포함한 보다 포괄적인 비평으로 연결될 여지가 많고, 때에 따라서는 교수자의 삶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따라서 비평에 대한 거부감과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외부 전문가와 함께 교수법 컨설팅을 중심으로 진행할 것인가, 아니면 문화예술교육 전문가와 함께 더욱 광범위한 내용을 다룰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였지만 뚜렷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일종의 파일럿 프로그램이라는 성격에 맞추어 두 가지 모두를 실험해 보기로 하였고, 문화예술교육 전문가를 중심으로 1회, 수업컨설팅 전문가를 중심으로 1회의 영상비평을 진행하게 되었다.
 
#4. 영상비평의 가능성 -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던 것들
 
첫눈이 내리던 11월 20일,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의 첫 영상비평이 진행되었다.
 
 영상은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영상은 우리가 시간을 압축하여 관찰할 수 있게 해주었다. 3시간의 수업 동안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편집하여 관찰함으로써, 특정한 행위나 현상의 원인을 깊이 있게 고민할 수 있었다. 먼저 한 프로그램에서 보조강사로 참여한 선생님들이 공통으로 손을 앞에 모은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관찰되었다. 이러한 장면들을 모아보고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이것이 개인의 성격이나 습관이 아닌, 주강사-보조강사 간의 역할 설계의 문제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현장의 흐름 속에서는 전반적으로 짜임새 있게 잘 구성되었다고만 생각되었던 한 프로그램의 경우 전체 수업을 빠르게 압축해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한 차시 안에 들어있는 꼭지가 너무 많아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표현할지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표현을 요구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결론을 함께 내릴 수 있었다.
 
 영상은 공간을 보다 객관적으로 인식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래 사진은 맥케이펄스의 프로그램에서 수업을 마무리하는 장면이다. 수업 과정에서는 학생들이 전체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는데, 수업의 시작과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강사가 사진과 같이 분명하게 선생님의 공간을 분리하여 설정하고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더욱 넓은 시야와 다양한 각도로 공간을 관찰하면서, 공간의 활용에 대한 새로운 방법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영상은 우리가 작은 부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래의 사진처럼 수업의 주된 공간 밖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고 의미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짧은 순간 선생님들의 시야 밖에서 어린 학생이 찻길로 접근하거나, 교실 뒤편에서 성적인 내용의 노래를 부르는 학생과 주변 친구들의 동조과정, 선생님을 때리려는 시도 같은 작은 장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수업 전후 장면들이 충분히 기록되어, 수업 이외의 부분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을 배웅하는 장면이 많이 언급되었는데, 많은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이 다 떠나기 전에 뒷정리가 시작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이 외부자의 지적이 아니라 화면을 통해 스스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폭도 넓어졌다.
 

 

 
 영상은 우리가 물리적으로 함께 할 수 없는 공간을 함께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아래 사진들은 영상 비평에 참여한 세 단체의 수업 모습이다. 이렇게 다른 환경의 수업 공간을 함께 보는 것만으로도 각각의 단체들은 당연하게 생각했던 자신의 주어진 공간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고, 타 단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자연스럽게 서로의 공간에 대한 상상을 나누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었다.
  

 

 

 

 
 영상비평 참여 단체 중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사업에 4년째 참여하고 있는 단체가 두 단체 있었는데, 이 두 단체의 선생님들도 서로의 수업 장면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였다. 모든 단체가 토요일에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서로의 수업을 직접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영상비평은 ‘도대체 다른 단체는 어떻게 수업을 진행할까?’ 하는 오래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통해 조금은 공허하게 진행되어온 단체 간 네트워크 활동에도 깊이를 더해 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영상은 우리가 혼자서 당연하게 보아오던 장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관찰하고 함께 이야기 나눌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5. 영상비평 1.0을 위하여 - 영상비평의 나의 이불 킥
 
 자신의 과거를 마주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특히 자신의 부족함이 담겨있는 과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에게 꿈다락 다시보기(영상비평)의 기획 과정과 실행 결과를 돌아보고 글로 정리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 고통을 통해 영상비평에 참여해주신 단체 선생님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었고, 다시금 죄송스러웠다. ‘왜 단체들을 불러 모아 모욕을 주느냐?’라는 비난 비평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글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까지 찾지 못했다. 지원사업 구조 아래서 참여단체가 모니터링 위원 혹은 컨설턴트의 의견을 비난이 아닌 비평으로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돌아보면 반드시 거쳤어야 할 몇 가지 과정을 일정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 해 생략하게 되었다. 먼저 참여 단체가 자신의 프로그램이 촬영된 영상을 미리 보고 영상비평에 참석할 기회를 꼭 제공했어야 했다. 영상을 면밀하게 뜯어보고 정리해온 패널과 영상을 미리 확인하지 못하고 참여한 단체 선생님의 대면은, 애초에 수평적이지 못한 정치적 관계를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단체가 미리 영상을 확인하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장면들을 설명할 수 있는 사전 준비의 기회가 제공되었어야 했다. 전체 프로그램의 맥락을 전달하고 그 안에서 해당 수업을 비평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했다. 참여 패널들이 영상을 보고 내용을 미리 조율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형식보다 내용에 훨씬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문화예술교육에 영상비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경험 많은 단체들에게는 관성을 깰 수 있는 계기가, 새로 시작하는 단체들에게는 문화예술교육과 일반 교육이 갖는 최소공약수 같은 것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영상비평이 문화예술교육의 중향평준화의 흐름에 새로운 물꼬를 틀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물론 앞서 언급한 올해의 실수들을 반복하지 않아야 할 것이고, 영상의 기술적인 부분도 상당 부분 보완되어야 할 것이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영상비평 모두에 진행되었던 교수법 강의에 참여 단체 선생님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교수법에 대한 지식은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학습보다는 현장의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자주 목격한다. 또한, 많은 경우 이 경험은 문화예술교육의 경험뿐만 아니라, 자신의 예술 장르에서의 경험과 육아의 경험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이 이론 보다 결코 덜 중요하지는 않지만, 지원사업의 구조 안에 현장의 경험은 이미 전제된 만큼 교수법에 대한 이론적 교육 프로그램이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많은 분의 용기와 노력으로 이루어진 이 쉽지 않은 실험에서 확인된 가능성과 부족함이 영상비평 1.0의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