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더봄
- ‘문화분권’ 위한 거버넌스를 구축하자
- 박희주 _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장
- 2017.07.31
- 정연희(前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교육진흥본부장)
- 최지원(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지지봄봄》 담당자)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문제점은 오래전부터 동일하게 제기되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결의 터닝 포인트 없이 사업의 양적 성장에만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지지봄봄》 이번호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담아 정책에 전달하고자 합니다. 이번호 좌담은 정책에 대한 큰 이야기들을 나누는 대담과 더불어 현장에서의 실천적 움직임에 대한 의견을 듣는 좌담으로 두 차례 진행됩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문화 쪽에 신경을 쓰며 자율성을 존중해 주려는 느낌을 받습니다. 가시적으로 문화예술교육정책, 문화예술정책도 확대될 것 같은데요. 《지지봄봄》 이번호에서는 지금까지의 문화예술교육,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이 생긴 시점과 그 이전부터 어떤 문제점이 누적되어 왔는가를 살피고, 앞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지, 중앙정부의 역할과 진흥원, 각 재단, 광역 자치단체, 기초단체의 역할은 무엇인지 듣고자 두 분 선생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그간의 누적된 문제점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정책에 따라 위에서 떨어지듯, 혹은 밀어내는 사업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현재 문화예술교육정책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점들에 대한 진단은 사실 문화예술교육정책 10년을 맞이했을 때 좀 더 면밀히 진행되었어야 했는데, 그 논의 시기를 놓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정책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통해 성과에 대한 우호적 평가와 진정성 있는 진단이나 점검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한 설계가 진행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나 형식적으로 ‘자화자찬’에 가깝게 진행되어 논의 시기를 놓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학교 수업은 대학 진학에 필요한 입시 위주 교육 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공교육 영역에서 예술강사 사업이 굉장히 ‘형식’에 치우친다는 우려가 제기되어 왔지만 학교 수와 학생 수, 예술강사의 수가 점점 늘어가는 데 이에 대한 대책은 어떻게 강구해야 하는지 걱정스럽습니다.
문화예술교육정책 생태계 내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가야 한다는 논의는 오랫동안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단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을 낳은 것 같습니다. 학교문화예술교육 측면을 보면 정확한 목표 설정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활성화의 본질적 목적은 모든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인데, 이를 위해서는 학교 교육이 균형 있는 포괄적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예술이 인문 분야에 포함된 현재의 인문 대(對) 과학의 양자 구도가 아니라, ‘인문-과학-예술’이 트라이앵글처럼 균형을 이루어야 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교육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교육정책 활성화는 ‘전국 모든 학교에 예술강사 1명씩’처럼 정량적 목표에 방점을 두고 문화예술교육 활성화의 본질적 가치에 기반을 둔 목표 설정을 외면하며 도구적 가치를 추구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양적인 성장은 이루었으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질적인 결핍과 함께 참여한 많은 이들의 성장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치지향을 고민해야 하죠. 지금 중앙 단위 여러 사업 지원은 양적 팽창만을 부추긴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제는 해마다 반복된다는 느낌도 있고요. 어떻게 하면 새로운 요구들을 수용할 수 있을까요?
사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정책적 논의를 많이 했습니다. 논의를 할 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위원회를 통해 이를 점검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쳤었는데, 그 이후 보수 정권 하의 정책결정 과정에서는 절차적 정당성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보이지 않았고, 정책에 대한 밀도 있는 논의과정을 거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왜’에 대한 철학적 논의보다는 ‘무엇을’ ‘얼마만큼’에 대한 논의가 지난 10년간 계속됐습니다. 새 정부 들어서 문화예술교육정책을 논의할 때는 ‘무엇을’이 아니라 ‘왜,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해온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민주주의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하물며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더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과정상에서 오류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문화예술교육정책은 시민 개개인이 미학적 가치를 가진 창조적 예술 행위를 하자는 정책적 목표를 가진 사업은 아닙니다. 예술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가치, 예술을 통해 얻어지는 가치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관점에서 보면 마을공동체, 생활문화사업, 문화적 도시재생 등 문화정책의 확장 영역의 부분에서도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등식은 더욱 유효합니다. 문화정책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그런 것을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경기문화재단 북부문화사업단에서 주관하는 ‘인생나눔교실’이라는 문화예술위원회 사업이 있는데, 이 사업은 결국 문체부에서 만들어서 문화예술위원회에 예산을 주고 실행하는 형식입니다. 은퇴자가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적 소양을 나누자는 교육적 측면이 강한 사업인데, 이 사업의 지향점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사업을 되풀이하며 자가 발전하거나 자기만족에 도취되는 수준이 머무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진흥원이 설립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고,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이 나온 지 20년 가까이 되었으나 예산이 증가하는 등 양적 팽창은 이뤄졌지만 사업의 내실(內實)을 다지는 것은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생애주기별로 문화예술교육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에 집중하기도 하고, 소외계층에 집중하기도 하고, 다문화에 집중하기도 하는 등 파편적이고 단편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죠. 어떻게 총체적 맥락 속에서 묶어내야 할지 논의가 필요합니다.
그 연장선에서 좁혀, 가령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으로 한정해 이야기하자면, 앞서 말씀드렸던 ‘분권’이 왜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고용의 주체, 예술 강사의 파견영역, 장르 등이 중앙기관에서 정한 틀로 진행됩니다. 어찌 보면 분권이 어느 정도 형성된다면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해당 지역이 가지고 있는 문제, 요구는 그 지역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이런 문제가 보완되려면 이 분야의 예술강사가 필요하다.” 고용주체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당 지역이 가지고 있는 환경적 특색에 맞춰야 하는 것이죠.
말씀에 동의합니다. 문화예술교육정책 영역에서의 예술강사는 역할이 한정되지만, 문화예술 분야 전체의 관점으로 본다면 활동영역이 확대될 수 있습니다. 경기도 특정 지역, 예를 든다면 북부 지역의 리서치를 하고 싶은데 기존의 예술강사 풀(pool)을 제외하고 다른 곳에서 그 인력을 찾는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한계가 있습니다. 통합적으로 지역에 맞게 사업이 운영된다면 예술강사로도 활동하고, 도시재생이나 다른 교육영역에서도 활동이 가능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의 틀이 아니라 전반적 문화활성화라는 사업에 포함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좋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분권’이라는 것은 결국 지역 특색에 맞는 정책을 발굴해 냄으로써 굳이 ‘일자리’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감’이 되어가는 과정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예술가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감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일자리에 목 맬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사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는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도 담겨 있습니다. 지역센터의 설립에 관한 것, 지자체장의 예산편성 의무, 지역 학교와 문화기반시설의 장(長)이 문화예술교육의 여건을 마련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분권, 지역 중심의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라는 접근 방법이 이미 법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진흥원의 역할은 전 국민의 생애주기별로 어떤 방식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진행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 일반성인, 장년, 노인 등 각각의 생애주기별로 어떤 가치를 담은 교육정책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진흥원의 역할을 기대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팔다리가 자유로워야 하는데, 지금은 짐이 너무 많아서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중앙 단위 기관에서는 자유로움이 있어야 하고, 그 짐들은 광역이나 기초로 내려서 지역에서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은 거꾸로 모든 권한이 다 중앙에 있습니다. 지역에서는 정해진 대로 할 수밖에 없고 그 외 모든 것은 중앙에서 진행되는 구조이지요.
문화예술교육 관리기관으로서 진흥원의 역할도 정책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고려 사항인 것 같습니다. 관리기관이 문화예술교육 전문성을 갖고 있는가, 집행 과정에서 유관 기관과의 협의·조정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또 책무성을 구비하고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볼 때, 진흥원은 이 세 가지 측면, 다시 말해 전문성 확보, 협의·조정 역량, 책무성에 있어 매우 회의적인 평가를 현장에서 받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진흥원이 여러 측면으로 보았을 때, 말씀하신 분권의 기회를 놓치면서 기관 차원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예술교육을 설계할 때 “과연 이 관리 기관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가?”를 솔직하게 진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 ‘모든 국민의 문화예술교육 기회 보장’이 기본 원칙으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절대 놓치면 안 됩니다. 그것이 해당 정책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의 기본 원칙이고, 그것을 항시 고민하는 주체가 진흥원이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까지 문체부가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체부에서는 각 시·도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뿐만 아니라 재단 관계자를 모아 ‘그것을 할까말까’ 하는 단편적 고민보다는 ‘전반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어떻게 가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주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체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잘 운영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둘 다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근본을 다시 따져보면서 문제의 핵심을 진단해 보는 작업도 필요하고,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서 해결 방법을 찾는 과정이 동시에 병행되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변화가 있겠지만, 이 과정에서 누군가의 큰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교육정책 초기 문화예술교육의 지향점을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예술교육 앞에 ‘문화’를 붙인 나라는 우리뿐일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전 세계 예술교육정책의 지향점과 비교하면 우리의 그것은 굉장히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초기 담론이 그만큼 두터웠고, 이를 형성하는 과정 또한 괜찮았다는 긍정적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각론은 도식화되어 진행되어 왔습니다. 도식화된 전달체계의 관점에 맞춰져 문화민주주의와 문화다원주의에 입각한 현장이 발견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생애주기별 정책 설계 또한 실패한 것으로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성장하는 단계에 있어서 일반적 특성을 고려한 것이고 그것이 실제로 필요한 것이죠. 우리에게는 이것이 부족하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합창’이라는 공동체 예술영역이 가진 보이지 않는 가치들(화합, 배려, 조정, 양보, 공동체에 대한 자기 기억)을 초등학교 시기에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르떼를 중심으로 말했지만, 정책연구, 조사 기능들은 사실 진흥원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들에서도 거의 놓치고 있습니다. 이 기관들이 제일 중요하게 해야 할 일들인데 이 점을 놓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개선되어야만 합니다.
한편으로는 학령기,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엄청난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데, 실질적으로는 그 이후인 장년층, 제2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은퇴 세대나 노년층에 대한 문화예술교육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교육 안에서 자기 성찰의 기회를 찾기 어렵습니다. 입시, 취직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조직에 있다보면 자기를 되돌아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도 문화예술교육의 사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장년이나 노년층에 대해서는 ‘나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생애주기별로 뚜렷한 가치 지향과 목표가 있고, 이에 근거한 전반적 문화예술교육정책을 문체부가 주도하여 각 자치단체와 역할 분담을 하며 만들어가는 것을 이번 정부 들어서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십여 년 동안 예술강사들이 현장에서 노인, 유아 문화예술교육을 해 왔으나, 이 경험들을 축적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만 뽑아서 보내고, 일자리 창출에만 신경을 썼지, 지속 가능성과 질적인 성장은 고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학교 시스템 역시 예술강사에 의한 문화예술교육 경험을 학교 변화와 연결시키지 못한 채 단순한 이벤트로 치부해 버린 것이지요. 문화예술교육의 경험들이 모여서 융합되어야 거기서 새롭게 진전된 아이디어와 방법론이 탄생할 텐데 그것을 함께 풀어놓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엘 시스테마의 실패와 ‘로컬 투 로컬’ 원칙
문화예술교육만 보면 학교/사회 이렇게 나눌 수 있는데, 학교문화예술교육은 이제는 공교육 현장으로 돌려줘야 합니다. 예술가, 특히 청년들의 제대로 된 일자리 확보를 위해서도 지금처럼 고용 형태임에도 생계 유지가 어려운 예술강사 제도를 지속할 이유는 없는 것이죠. 공교육 내에서, 예술을 전공한 사람들의 제대로 된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학교문화예술교육은 공교육 내 예술교육 정상화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진흥원에는 사회문화예술교육이 남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생활문화진흥원이 하고 있는 사업 영역과 많은 부분 중복됩니다. 평생교육 영역 또한 예술교육이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의 얼개로 가져갈 필요가 있습니다. 새롭게 대두될 문화다양성 정책, 이것도 결국은 문화예술교육의 넓은 영역에 포함되기 때문에 정책적 결단과 조정이 반드시 요구됩니다.
엘 시스테마가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출발했다고 말씀하셨는데,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정책 또한 그 태동기에 문화연대와 전교조가 함께 한 교육문화운동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 병폐에 대해 교육문화운동 차원에서 “교육이 문화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문화적 삶에 기여하는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다른 교과(역사, 사회, 국어) 선생님들도 참여했으나 교육과정의 경직성으로 인해 실천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예술교과는 ‘문화적 교육’을 하는 데 있어서 아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육문화운동의 핵심이 예술교육이 되었고, 그 ‘삶을 위한 예술교육’이 참여정부의 ‘향유자 중심’ 정책 패러다임과 함께 문화예술교육정책에 녹아든 것이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정책의 출발점을 생각하고 학교 교육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대안교육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다시 조망하고 의미를 되살려야 합니다.
문화예술교육정책의 초기 담론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집행하는 중앙기관들이 이러한 담론을 외면해 왔습니다. 초기 지향점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죠. 현재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대부분의 사업이 정량적 목표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종의 정책을 주도하는 그룹, 문화행정, 전문가 그룹도 그런 면에선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비판적으로 본다면 그 동안 정책 영역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리더가 부재했고, 조직 자체 내에서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내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비판은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법이 만들어지면서 문화예술교육정책에서 지배구조(structure of dominancy)가 만들어 졌습니다. 새로운 정책을 설계하기까지는 의견수렴과 현장에 대한 진단 등의 노력이 있었으나, 법이 일단 만들어지고 안정화되면서 지배구조가 형성된 것이죠. 그 지배구조에서 권한을 가진 문체부나 진흥원이 편향성의 동원을 지양하고 절차와 합리적 규범에 따른 결정을 하고 이를 추진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죠. 앞으로도 이런 부분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권한을 독점하는 것을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변화는 지역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습니다.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만들고 그것들이 지역에 그대로 넘어오는 형태로 되어 있죠. 지금까지는 여러 가지 중앙 단위의 정책 등에 대해 반성을 했습니다. 사실 경기문화재단의 경우 부끄럽게도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운영을 위해 문체부(국비)와 경기도(도비)와 매칭해서 내려오는 예산 외에는 자체 문화예술교육사업 예산이 없는 상태입니다. 물론 재단 산하의 각 박물관, 미술관의 교육 프로그램은 있는데, 이것은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전시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관객을 확보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 외에는 지금 생활문화팀, 지역문화팀에서 하고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경기도만의 문화예술교육정책을 수립하여 실현해나갈 조직이 없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 점에 대해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문화예술교육정책은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문화정책 영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경기문화재단은 문화예술교육팀이 없고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만 있는데, 제가 볼 때는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를 확대·개편하여 생활문화팀(혹은 문화예술교육팀)을 부서화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교육 관련 부서는 재단의 중추부서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문화예술교육은 모든 문화정책이 시작되는 지점이고 시민 전체의 삶, 생애 동안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공유되어야 합니다. 특히 경기도라는 지역적 측면에서 보면 끄집어 낼 것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평화, 한강이라는 환경적 부분, 각 기초 시·군이 가지고 있는 지역적 문화다양성 등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문화예술교육이야말로 경기도의 문화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배양하는데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임을 인식하고, 문화예술교육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합니다. 중앙정부와의 매칭 유무를 떠나서 도비를 확보해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이 개인의 자유, 사적 가치의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적 가치의 영역에 속한다는 기본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경기문화재단에서 미술관, 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기관의 관리와 운영을 담당하실 텐데, 해당 기관의 존립과 지속 가능성을 전제로 했을 때도 기관 설립 시 부여한 핵심기능 위주로 운영한다면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한계를 느끼는 부분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본래의 핵심 기능의 비중을 줄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과 소통하는 방식이 필요한데 그 대안은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육의 비중을 30% 혹은 50%까지도 확대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문화정책과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새로운 기조가 도출될 텐데 경기문화재단은 거기에 따른 수용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고, 두 분이 말씀 해주신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부가적으로 말씀드리면 중앙정부가 손에 잡히는, 실현 가능한, 성과가 예측되는 정책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모델이나 손에 잡히는 주요 정책은 ‘현장’에 있기 때문이죠. 현장은 사실 지역에 있고요. 그런 면에서 더욱 능동적이고 적극적 태도가 필요합니다. 재단은 산하의 미술관, 박물관 등 기관에서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육 프로그램이 기관의 전시와 연결되어 있는데 사실 그것은 전혀 방어 논리가 될 수 없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혹은 생활문화라는 것은 시민의 일상의 삶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접근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경기도박물관, 미술관은 그 인접 시민을 수용할 뿐, 광활한 경기도 지역 전체를 포괄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경기도의 기초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의 일상 영역은 경기문화재단이 그 역할을 맡아줘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도나 의회에 내부 구성원, 리더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정책 자료라든가 그런 것을 제시할 능동적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박희주
네, 감사합니다.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