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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국모 _밝은마을
  • 2016.12.27
20호 곁봄 | 칼럼
슈타이너의 인지학과 우리 교육사상의 철학적 교감
 
성국모 / 밝은마을

봉천산 팔각정(강화 고인돌 근처). 밝은마을 여름 수련캠프 때(맨 오른쪽이 필자).

예로부터 전해온 탑과 팔각정은 수련문화의 흔적으로, 단전에 있는 9궁(九宮)의 외형적 상징
8각의 한 가운데에 중궁(中宮)이 있고 태극의 4괘인 건곤감이(乾坤坎離)궁이 왼쪽의 4개 기둥,
그리고 태궁과 오른 편의 손/진/간 궁 등이 각각의 8각 기둥에 배치된 형태를 보여준다.
중궁자리에서 외워본다. ‘至氣今至願爲大降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동학 만트라)  
 
  들어가며
 
  공부한 것이 일천한데 제목이 너무 과해 부담스럽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좌충우돌 실행해 왔던 교육실천 무용담(?)을 쓰라면 그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대안교육에 정진해온 교육전문가들께 고견을 듣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제 소견엔 슈타이너는 교육자보다는 다빈치처럼 ‘다방면에 통달한 예술가’라고 보는 게 더 좋습니다. 당시에 풍미했던 물리학, 화학 등 자연과학을 섭렵하고 인간의 문제에 시각을 돌려 종교, 사상, 예술 등 소위 인문과학에 바탕을 둔 의학, 생리학, 동식물학, 농학, 점성학, 우주론, 신비학 등 인간사 전체에 관련한 모든 생각들(아이디어)을 집대성하였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대왕이나 정약용입니다. 흔히 전인교육(全人敎育)이라 말할 때의 바로 그 전인, 꽃피는 학교 김희동 선생 방식으로 말하면 ‘통전인(統全人)’입니다. 
 
“통전(統全)은 하늘, 땅, 사람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으로, 내면의 정신세계(얼)와 현실의 물질세계(몬), 그 사이에 펼쳐진 인간세계(새)를 균형감 있게 조화, 발전 시켜 두루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참된 내가 실현된다는 사상”이다. ―얼, 몬, 새 통전교육
 
 
전인으로서의 교육
 
  전인은 타고날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린 타고나는 것을 애써 교육 주제로 삼지는 않습니다. 동학혁명의 지도자 해월 선생은 소시에 ‘성인들은 원래 저런 분들’ ‘나와는 다른 분들’이라고 생각했다가 훌륭한 스승(수운)을 만나 마음공부를 시작한 후로 ‘성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다만 마음을 정하고 정하지 못하는 데 있음을 알았다’고 실토합니다(해월법설 독공편). 
 
 
(통)전인 슈타이너의 사상의 핵심요소는 무엇인가?
 
  슈타이너 인지학의 핵심은 ‘정신(spirit)’입니다. 자신의 저서에 정신과학(spiritual science)이라는 용어를 쓰며 ‘인간은 정신이 육화한 존재’라는 기조를 유지합니다. 이 ‘정신(spirit)’은 좀 확장해서 보면 천성(天性)입니다. 우리말로 ‘하늘마음, 혹은 한울님(신)의 성품’이라 할 수 있겠고, 가부좌를 틀고 고행과 명상 끝에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 부처의 “진아(眞我)”, 소크라테스의 “다이몬(dimon)”, 예수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등이 마찬가지 말들일 것입니다.
 
 
저차원에 갇힌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 - 영성
  
  정신적 차원에서 인류는 소위 물질과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진보한 게 아니라 퇴보했습니다. 소위 르네상스를 거쳐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인류는 물질과 정신, 이분법 사고에 갇혀버렸습니다. 영혼의 역할을 싹 지워 없애고, 기계론과 물질주의만이 각광받는 산업사회로부터 비롯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전부인 양 살아왔지 않습니까? 슈타이너는 정신과 영혼의 역할을 크게 강조하는데, 이는 천지인(天地人) 동양사상과 일맥상통합니다. 그에 따르면 영혼은 하늘영역인 정신과 땅의 영역인 육체를 연결해주는 심적(心的)인 영역입니다. 이 영혼은 3가지 기제(機制)인 생각-감정-의지를 갖고 사람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 생각-감정-의지는 동양인들의 개념으로는 지(知)-정(情)-의(意)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동양에서 지·정·의 3요소가 조화롭게 갖추어진 사람을 배워야 할 사표로 삼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슈타이너는 자신의 사상인 인지학의 사회적 실천의 일환으로 ‘차원 높은 참 인간’ 구현을 위해 이 ‘영성’ 교육을 필생의 목표로 삼습니다. 
 
  발도르프학교를 시작하기 위해 교사교육에 매진할 때 했던 슈타이너 강의 한 대목을 보겠습니다.  
 
  사람에게는 생각(thinking)와 감정(feeling)과 의지(willing)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의 경우 의지(willing)와 감정(feeling)의 긴밀한 결합을 봅니다. 계속 수족을 움직이거나 자신의 감정에 응하는 운동을 하고 있고 나이가 들면서 생각은 감정과 밀접히 결합하고 의지와는 독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감정이 먼저 의지와 결합하고(개별 영역), 그리고 점차 감정이 의지에서 떨어져 사고와 결합해가며(공적 영역)... 그러므로 교육은 이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특히 감정(feeling)이 의지(willing)에서 분리되는 과정을...(중략) 
 
  감정과 결합한 어린이의 의지(willing)가 감정과 결합한 노인의 사고(thinking)로까지 발달해 갈 때, 사람의 혼(soul)의 작용은 하나의 목표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것이 인생에 있어서 불가결한 길입니다. 어린이의 ‘의지를 갖는 감정’을 풍부하게 기르기 위해 감각교육이 중요한 요소이며 논리적이고 개념적인 교육 방식보다 예술적인 교육 방법을 실천할 것을 권합니다...(중략)
 
  생각(thinking)의 배경이 되는 머리의 중심점은 머리 안쪽의 어딘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감정(feeling)의 배경이 되는 가슴의 중심점은 가슴 내부에는 없고 저편 어딘가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의지(willing)의 배경이 되는 지체계(팔, 다리)의 중심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주변 세계의 전체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은 본래 공 모양을 한 전 세계, 다시 말해 한 점의 정반대인 거대한 구면체입니다. 결국 이르는 곳마다 중심점이 있는 것이며 어떤 곳에도 돌아갈 수 있고 어떤 곳도 중심이 되어 그곳에서 반경이 팔다리에 까지 이르고 당신과 결합합니다. 머리 안에 있는 것은 머리에서 밖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우주라는 배 안에 있는 것은 지체(팔, 다리)를 통해 당신 안에 결합됩니다. 
 
  팔과 다리는 밖에서 덧붙여진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실제로 하나의 우주이며 그 우주 속에서 우리들의 팔다리는 밖에서 들어온 것이 마지막으로 농축되어 눈에 보이게 된 부분입니다. 그것은 사람 본래의 지체계, 요컨대 영적 지체계의 매우 적은 요소밖에 없습니다. 몸과 혼과 영이 사람의 지체계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머리는 작은 구이고, 작은 우주체입니다. 그리고 지체는 거대한 우주체의 일부분이며, 그 축이 인체에 꽂혀 있습니다. 따라서 지체는 우주에 보다 많이 관여되어 있고 머리는 사람 자신에 더 많이 관계합니다. 지체가 우주에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기에 사람은 우주 속을 자유롭게 행동하고 위치를 자유로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의지는 지체를 통해 우주 운동을 모방하는 데 있습니다. 그 의도는 춤추는 일에 의해 실현되며 실제 우리의 지체는 생활 속에서 언제나 춤을 추고 있습니다. 소위 무용은 그 춤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춤은 별들의 혹은 지구의 운행을 인간의 지체로 모방하며 시작된 것입니다...(중략)
 
 
이니시에이트(선각자, 진리 입문자)는 먼저 자신을 돌아본다
 
  슈타이너의 사람 몸, 영혼, 정신에 대한 이런 이해는 깨달음의 체험이 깊은 일종의 ‘이니시에이트(initiate)’의 경지를 보여주며, 불교의 팔정도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탁월한 누가복음서 해설, 연꽃잎 챠크라 요가에 대한 깊은 실천적 인식 등을 통해 볼 때 상당한 수행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인지학을 알고 나서 챠크라 공부와 (단전)호흡 공부를 이어서 해보았는데, 일곱 챠크라에 따른 연꽃잎 개수와 색채에 대한 설명은 실제로 그 명상을 실행하지 않고는 (슈타이너처럼) 그렇게 정묘하게 설명해낼 수가 없는 내용입니다. 필자의 글머리에 팔각정 사진을 단전호흡과 만트라에 관련지어 설명해놓은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발도르프 학교의 필수 과목으로서 영적인 춤으로 알려진 오이리트미도 일종의 ‘몸 수행’입니다. 잘 알다시피 예로부터 동양사상은 수신(修身)을 제일 큰 덕목으로 삼았습니다. 세상에 경륜을 펴기 위해 가정과 자신을 먼저 다스리는 것이 우선이었지요. 고려 말 경세가 중 한 사람이었던 행촌 이암 선생은 명문장 「단군세기」 서문을 지은 분인데, 세상을 바꾸려는 자 먼저 수신을 통해 자신을 바꿔야 함을 후학들에게 거듭 강조하신 분입니다.
 
“가르침을 세우고자 한다면(立敎) 모름지기 먼저 자신을 세우고(須先立自我), 보이는 형체를 바꾸려 한다면(革形) 모름지기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바꾸어야 하는 것이니(革無形), 이것이 바로 나를 알아(知我) 스스로 큰 도를 구하는 것이다(求獨之一道).” ―단군세기 서문 중.
 
 
큰 사상 동학
 
  최근에 여러 종교적 흐름과 수련법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 인상 깊게 체험한 동학 수련의 인내천 사상은 슈타이너의 영성적 인간관인 인지학 사상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신을 인간과 분리한 후 숭배의 대상으로 삼은 기존의 종교나 사상들과는 달리 동학의 인내천은 ‘사람이 한울(자각한 신, 정신, 천)’임을 천명한 ‘혁명적 인간의식’입니다. 이 인식에 이르는 것은 지식이 아닌 실천, 즉 수행입니다. 실제로 만트라(주문-시천주 21자)를 외며 정수리를 통해 들어오는 하늘의 기운(한울님)을 체험하고 수심정기(守心正氣)를 해봐야 압니다. 천신만고 끝에 우주 한울 기운과 조우한 창도자 수운과 그 법통을 이어받은 해월 선생은 5만 년 생명 역사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동방의 이니시에이트(선각자, 진리 입문자, 수행인)들입니다.
 
  ‘사람이 한울님’이라 함은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관점인 ‘정신이 육화한 존재로서의 인간관’과 일치합니다. 수운 선생의 ‘시천주’ ‘사인여천’ 그리고 해월 선생이 그렇게나 강조한 ‘천지부모’ ‘각지불이’ ‘수심정기’ ‘향아설위’ 등은 천지가 하나요 너와 나가 한 뿌리(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천지여아동근 만물여아일체)라는 동양인의 전통 사고를 현실적 실천 지침으로 밝힌 것들입니다. 해월 선생은 수운 스승을 만난 이후 수련에 정진하여 동학의 수많은 추종자들을 길러냈는데, ‘어린아이를 치지마라, 한울님을 치는 것이다’/‘베 짜는 사람이 누구인가? 며느리인가 한울님인가? 바로 한울님이다’(해월 대인접물편)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약한 자들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실천하며 ‘차원 높은 참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동학의 이런 시천주 정신과 인내천 사상은 교육적으로도 대단히 큰 주제가 아닐 수 없어 소춘(小春) 김기전 선생과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의 소년교육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최근 동학을 바탕으로 시민사회단체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그중 동학 연구 및 수련자들 중심으로 2010년에 결성된 ‘한울연대’의 활동이 아주 활발하여 방정환한울학교 설립으로 그 운동을 교육적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1970년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성지였던 원주에 자리 잡았던 한알대안학교도 그 명칭은 무위당 장일순선생의 ‘좁쌀 한 알(一粟子)’에서 왔습니다. 조 한 알은 선생이 즐겨 쓰던 호(號)입니다. 장일순 선생은 또 다른 해월 선생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동학의 실천 지침을 늘 가슴에 새겨 이미 한 세대 전에 한 살림 운동과 신용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한 분입니다. 위기의 현대문명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참된 ‘사람의 길’을 밝혀준 큰 스승이며 천주교 원주교구 평신도회장을 역임했으면서도 늘 동학 경전을 끼고 살았던 분입니다. 사실 저는 무위당 선생(1928~1994)이야말로 ‘문화예술교육과 예술로서의 교육’ 분야에서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생활 수행자(선각자)라고 확신합니다. 한편 종교적으로 원불교, 천도교의 뿌리도 동학입니다. 수운과 해월 두 사람의 큰 행적이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동양의 천지인 사상의 세계화, 대중화를 추동하려 할 때, 괴테나 톨스토이, 그리고 슈타이너라는 큰 사상가들이 서양 유럽에서 활동하며 예술적으로 그리고 교육적으로 같은 리듬을 타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일상 속의 가르침을 앞세운 우리나라의 수련법들 - 생활 철학, 일상 수행
 
  우리나라 고유의 수련법 유파도 셀 수 없이 많은데 그 핵심은 ‘생활 철학’에 있습니다. 종교와 수련은 생활과 동떨어져서 ‘높이, 그리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정화수 떠놓고 하루를 시작해보는 것, 일을 시작하기 전과 마친 후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 사람을 포함해서 주변의 모든 존재들과 사물들에 대해 겸손히 대하는 것, 가끔 마음이 산란할 때 먼 산을 바라보며 하심(下心)하거나 가부좌 명상을 하며 숨을 골라보는 것, 잠자기 전 촛불을 켜고 하루를 정돈해보는 것 등 생활 철학과 생활 수행은 도처에서 수시로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부족국가(나라) 형성 초기에도 수행인들(조의선인)이 나라의 구심으로 역할들을 많이 하며 하늘제사[天祭]를 올렸고 제(祭)―정(政)을 분리하는 일은 후대에 국가 권력이 강화 되면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수행을 많이 할수록 현실적으로 사람 다스리는 일과 사람 관계하는 일을 덕으로서 통 크게 해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일을 가장 잘 하는 사람을 우리 조상들은 통 큰 사람, 활 큰 사람이라 해서 만인이 동의하는 지도자 ― ‘단군’(다루한, 다루칸)이라 불렀고, 그 명칭을 부여받은 이의 통은 인간 세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서 동물, 식물, 자연의 사물 영역까지 이르렀습니다(弘益人間, 濟世理化). 얼몬새 통전교육의 ‘통’과도 같은 말이라 생각됩니다. 이 생활 철학은 사람이 사는 가장 기본적인 먹고[食], 입고[衣], 자는 것[住]에 그대로 녹아 있고, 사람 사이(인간관계)에 사회적 실천 지침으로 그대로 말과 행동 하나 하나에 배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람이 하늘임(인내천)을 자각한 진리 입문 수행자의 삶입니다.
 
 
슈타이너교육의 성과와 그 수행자적 노고(勞苦) 
 
  슈타이너는 자신이 창도한 인지학적 관점의 ‘정신이 육화한 존재임을 자각한 참 사람’을 서양인의 특유한 논리로 세세하게 분석하고 설명하여 서양의 사상 문화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냈습니다. 그리고 이니시에이트(선각자)로서 일상의 할 일과 생활 철학을 담보하려는 시도를 교육 분야에서 실천적으로 해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수행한 사람의 인내심이 아니면 헤쳐 나가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잘된 결과를 보고 그 과정은 소홀히 여기는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걸쳐 천여 개가 넘는 발도르프 학교로 대변되는 슈타이너 교육, 여러 나라들의 수많은 인지학 교육과정과 교사 과정들, 또 세계 인지학회와 그 지부들을 중심으로 한 세미나와 컨퍼런스 등은 한 사람으로 시작된 진리 입문이 얼마나 많은 가지를 치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초창기 인지학은 당시 ‘정신 아니면 물질’이라는 이분법 사고에 길들여진 서양 사람들에게 너무나 생소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선각자로서 인지학 전파를 위해 혼자서라도 발도르프 교사 교육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인지학 관점의 복음 해설서를 써서 발생한 가톨릭 신도들과의 충돌, 그리고 나치 정권에 고분고분하지 않음으로 당한 학교 폐쇄 조치 등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영적 선각자 슈타이너로서는 진리를 위한 일념, 즉 ‘정신이 육화된 존재로서의 사람’이라는 믿음과 교육에 대항 사명이 그 숱한 어려움들을 다 견뎌내게 해주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종막을 고해야 할 것들 그리고 새로이 열리는 시대 
 
  우리 고유의 생활 철학이 실종되고 미국을 정점으로 한 자본주의적 세계관이 기승을 부려 최고의 혼란에 놓여 있는 작금의 경쟁 중심의 교육 체계는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릴 종착점에 와 있습니다. 통합 Vs 개별로 양극화된 동서양의 사고 유형에 그 완충 역할을 할 새로운 천년기를 담보할 동서 융화의 사상이 필요했던 것이 지난 100년간의 시대적 사명이었습니다. 그 한 가운데 우리 고유의 생활 철학과 수련을 압축적으로 정리한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이 있고 슈타이너의 인지학(人智學)이 있습니다.
 
 
영성문화의 흐름들, 그리고 매체와 교육을 통한 대중화에 대한 기대 
 
  제가 대안교육이라는 우물을 파는 사람이라 과문해서 그런지 다양한 세계에 영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한 크신 분들이 더 있을 터인데 공부가 짧아 어디까지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동서 통합학문들이 많이 나오고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 등 다 종교간 교류, 과학영성(온 우주론 등), 아메리카 및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영성문화 같은 인류학적 연구가 활발한데 이런 활동 내용이 인터넷과 SNS(Social Network Service)상의 지식 공유로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빠르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필자는 다만 지식을 넘어서 사람이 영적 존재이며 우주 의식의 주체임을 자각하는 영성(수련)의 대중화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교육적으로 이런 추세는 인류와 우리들 후손들에게 매우 고무적인 것입니다.
 
 
맺음말 - 동서 교육의 만남
 
  아시아인의 생활에 짙게 배어들어 있는 영적 특징과 수행(철학)이 요가와 명상이라는 현대적 도구로 다시 일반화되고 바야흐로 전 세계의 이름 없는 서민들도 그런 흐름을 스스로 알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든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우면서 부딪는 교육 문제를, 소위 물질과학을 앞세워 사람을 효율성 높은 기계로 몰아가는 자본주의적 경쟁 체제로 가져갈 것이냐, 혹은 효율은 떨어지더라도 사람의 영적, 정신적 특성을 잘 고려하여 생활과 지속성을 담보하는 순환 체제로 가져갈 것이냐를 두고 확실히 선택해야할 때가 왔습니다. 
  시대적 흐름이 물론 한순간에 바뀌거나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미 지난 세기의 여러 공과(功過)는 그 흐름이 바뀌어가고 있고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천년의 비전은 앞서 말한 ‘자각한 참사람’을 길러내는 ‘동―서 수신(修身) 교육의 만남’으로 그려볼 수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 생활 철학, 생활 수행을 뚜렷이 인정하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東)의 수련 문화, 그리고 유럽(西)의 인지학적 예술문화, 그 둘의 실천적 조화가 앞으로 그 천년 비전에 대한 실행과 성과를 이룩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믿으며 글을 맺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