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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 한명이 곧 하나의 학교
  • 박형만 _해오름평생교육원 으뜸일꾼
  • 2016.12.27
20호 곁봄 | 칼럼
교사 한명이 곧 하나의 학교
 
박형만 / 해오름평생교육원 으뜸일꾼
들어서기
 
  교육은 무엇이며 어떻게 실현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되묻고 답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정부 및 교육학자와 교육 기관, 그리고 교사 · 학부모 · 학습자 등 모든 교육 주체들의 주된 고민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교육 정체와 교육 철학, 교육 방법론 등에 대해 다양한 방향성 제시와 부단한 시도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교육의 당위성과 가치론에 대한 담론은 부재한 상태로 비인간적이고 기능 중심의 파괴적인 교육 형태와 경쟁 중심의 학습 과정만 판치고 있는 현실입니다. 더구나 초등-중등-고등 교육과정을 이수한 엘리트 중 상당수가 괴물로 등장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볼 때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1966년 발표된 미국의 ‘콜먼 보고서(교육 기회의 균등, Equality of Educational Opportunity)’에 따르면, 당시 미국 사회의 불평등이 빈곤을 더 심화시키고 있으며 그 원인 중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교육 불평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미국은 성별, 인구, 인종, 교육 등 사회 전반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의 문제와 이로 인한 격차를 줄이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당시 존스홉킨스 대학 콜먼 교수는 “도대체 어떠한 것이 교육 불평등을 야기하는가?” 라는 물음에서 시작해서 단순히 학교와 학업성취의 인과 관계를 이끌어내기 위해 무려 4천여 개 학교 60여 만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시작했고, “학교 시설, 설비, 교육과정, 교사의 유능성 등과 같은 학교 내적 요인보다 부모의 양육 방법, 부모의 사회문화적 자본, 가정 배경, 사회경제적 지위(SES, Social Economic Status) 등과 같은 학교 외적 요인이 학생의 학업성취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는 결론을 도출하였습니다. 즉 학업적 성취가 나오지 않는 대다수 학생의 경우 그 원인이 학생의 가정 배경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연구 전에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 교사, 학교 행정가, 학부모들조차도 학급당 학생 수, 학교 도서관이나 연구 시설에 대한 예산 규모, 교사의 보수 수준, 교과 과정의 품질 등이 학업 성과를 결정짓는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모두 ‘학교 효과’입니다. 그러나 정밀한 과학적 조사, 분석 방법으로 연구한 결과는 앞에서 말한 것들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콜먼의 연구 결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학생의 가정 환경’과 ‘친한 급우의 가정 환경’ 두 요소뿐이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라 미국 교육은 전국적으로 평준화 교육을 시행하였고, 교육의 기회 균등을 통해 사회 집단 간 교육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에 반해 우리 사회는 정치 지도자의 철학과 정부 교육정책에 따라 모든 것이 좌우되는 형편입니다. 교사는 일개 기능인으로 전락하고 학부모는 방관자이거나 학생의 진학을 돕는 매니저로 전환되었으며, 학생은 오직 ‘in 서울’과 일류대 진학을 위한 학습 도구로 규정되었습니다. 국제고, 특목고, 자사고 등 부유한 계층 자녀들이 독점한 고급 교육 기관은 일류대를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 교육에 몰입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일반고는 말 그대로 붕괴되었습니다. 일반고교의 붕괴는 90%의 학생들이 미래를 포기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대학 입시 결과를 분석해보면 국제고, 특목고, 자사고 학생들이 주요 대학 진학률의 70%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국 2,300여 개 고교 재학생 180만여 명 중 극소수가 주요 대학 진학에 성공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대학 진학의 결과는 곧 사회적 재화의 분배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문제로 직결됨에 따라 사회 불평등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 안에서는 이미 미래의 인간이 살고 있다”(William Wordsworth). 18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인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이 한 문장으로 표현했습니다. 씨앗 한 톨 안에는 그 씨앗이 자라나서 꽃피우고 열매 맺는 모든 과정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고유하고 특성적인 방법으로 모든 보이는 것, 만나게 되는 것에 감각적인 반응을 합니다. 이로써 한 아이가 경험하는 것은 다른 아이가 경험하는 것과 구별되며 이를 통해 인간에 내재된 독특한 가능성이 성장 과정을 통해 발현하게 됩니다. 따라서 교사는 학습자 안에 깊이 잠재된 가능성을 일깨워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간 성장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성장의 때에 맞춰 배우고 익히며 체험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학습자에게 연결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제공해야 하는 일이 교사의 중요한 역할일 것입니다.
 
  이를 잘 실천하고 있는 우수 사례로 발도르프교육을 꼽을 수 있습니다. 1919년 독일 사상가인 루돌프 슈타이너가 세운 발도르프학교는 전 세계 80여 개국에 걸쳐 약 1,000여 개의 학교, 1,800여 개의 유치원, 700여 개의 관련 시설들이 운영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자유발도르프학교 설립이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1996년도에 스위스에서 열렸던 세계교육부장관회의에서 바람직한 21세기 교육의 모델로서 발도르프학교가 선정되었고 유네스코의 지원과 연구 대상이 되어 세계적으로 그 성과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슈타이너는 인간 발달의 단계를 크게 4단계로 나누어 각각의 단계에 맞는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첫 번째 시기는 태어나서 이갈이를 하는 7세까지 생명 육체(에테르체)의 탄생기인데 이때는 인간의 의지 발달에 중점을 두어야 하고, 두 번째 시기인 7세에서 14세까지의 어린이 시기에는 감정체(아스트랄체)의 탄생 및 발달을, 14세에서 21세 청소년기는 사고(멘탈체)의 발달에 중점을 두어 본격적인 학문으로서의 공부를 하는 시기로 보았습니다. 이리하여 21세가 되면 비로소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사회 구성원으로 책임을 질 수 있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슈타이너의 발달 단계에 따라 7세에서 14세까지 초등학교와 사춘기에 이르는 시기에서는 주로 풍부한 감성을 지닌 감정체의 발달에 중점을 두어 예술을 통한 교육, 예술로서의 교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이란 단순하게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교과로서의 교육이 아니라 수업 전체를 예술적으로 구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수업 전체를 예술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관건은 바로 교사입니다. 교사 자신이 풍부한 예술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예술가로 자각할 때 교육과 수업은 예술이 됩니다. 그래서 발도르프학교에서는 교육을 교육예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교사와 학습자가 함께 시를 낭송하고 하루를 여는 노래를 부르면서 악기를 연주합니다. 풍부한 예술적인 분위기로 수업에 들어갈 준비가 되면 교사는 낮고 잔잔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은 교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듣다가 교사가 전해준 이야기를 공책에 정리합니다. 발도르프학교 교사는 노래, 악기 연주, 습식 수채화, 목탄 그림, 목공, 노작, 춤(오이리트미), 과학 실험, 농사, 역사, 수학, 언어, 문학, 과학, 철학 등 모든 분야에 대해 능숙하고 깊은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을 갈고닦아 아이들과 만나게 됩니다. 한 학급을 8년 동안 이끌어가면서 어린이들의 내적, 외적 성장을 돕고, 어린이 안에 내재된 재능과 가능성을 여는 데 집중합니다. 이로써 한 인간의 온전한 성장을 도울 수 있습니다.
 
  또한 교사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입니다. 자신의 삶이 충만하고 풍부하며 예술적인 감성으로 가득할 때 학습자인 어린이와 만나게 되며, 어린이들은 이러한 교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세워가는 힘을 얻습니다.
 
  교사가 수업 전 미리 ‘여우와 박쥐’ 그림을 칠판에 그려 둡니다. 수업이 시작되면 칠판을 열어 그림을 보면서 여우와 박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림 : 서울자유발도르프학교 ‘동물학’ 시간

 
  서울자유발도르프학교 4학년 동물학 시간 수업을 잠깐 들여다보겠습니다. 아이들은 교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여우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렇게 동물에 대한 세계를 만나게 된 아이들은 자신의 공책에 칠판 그림을 옮기고 그 옆에 이야기를 적어 넣어 공책을 채워갑니다. 교과서가 없는 학교, 그러나 교과 진행에 관한 내용을 교사의 머릿속에 훤히 꿰뚫고 있거나 그려두고 있어 수업 시간은 빈틈없이 채워지고 흘러넘치게 됩니다. 수업 순간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대화를 합니다. 질문과 답이 오가는 흐름은 아이들의 상상력과 논리적 사고를 풍부하게 일구어내는 학습 방법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획일적인 교과서로 일방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제도권 교육과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수업 시간이 환상과 상상으로 가득하고 호기심으로 넘실거리게 되었을 때 학습자의 흥미는 최고조에 이르게 되며, 아이들 몸과 마음은 동물 세계의 신비에 젖어들게 됩니다. 생명이 있는 동물, 식물을 사랑하자는 말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생명의 고귀함과 신비로움을 마음속 깊이 기억하게 됩니다. 체험을 통해 각인된 것은 몸에 스며들어서, 나와 한 몸이 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재생되는 과정을 통해 ‘모든 생명은 고귀하다’는 철학을 신념으로 간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육이 이러한 방식으로 전환되었을 때 살아 있는 교육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오며
 
  교사 한 명이 곧 하나의 학교입니다. 교사가 터득하고 체험한 세계가 넓고 깊을수록, 교사가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이 없어질수록 아이들은 그 너른 품에서 무럭무럭 자라게 됩니다. 모나고 지질한 품성을 잘라내지 못하고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 자신 스스로 예술적인 감성을 기르지 못한 교사,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기보다 직업인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려는 교사들이 넘쳐나는 우리 교육현장이 지속된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자신을 갈고닦아 무성한 잎과 큰 키로 성장한 나무에는 수많은 새들과 곤충들이 함께 먹고 살아가게 됩니다. 무더운 여름날, 나무 그늘을 찾아 쉼을 얻으려는 나그네에게 큰 나무는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 줍니다. 나무는 그냥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지만 말입니다.
 
  대학에 ‘日新又日新(일신우일신)’, 매일 새롭게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사 스스로가 부단히 새로워지려고 할 때, 자신의 한계를 깨우치고 늘 거듭나는 삶을 추구할 때, 교사도 성장의 빛으로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 빛이 환하고 따스하다면 아이들은 그 속에서 빛나는 삶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슈타이너 선생님이 우리에게 전해준 글, 「평화의 춤」은 교사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평화의 춤
마음속 바람이 움트고 의지의 행동이 자라나며 삶의 열매가 여물어 갑니다.
내 운명을 느끼며 나의 운명이 나를 찾아냈습니다. 
내 별을 느끼며 나의 별은 나를 찾아냈습니다.
내 목표가 느껴지며 나의 목표가 나를 찾아냈습니다.
마음과 세상이 하나가 됩니다. 삶이 내 주변에서 더 밝게 빛나며 때로는 힘겹기도 하지만 
삶은 내 안에서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거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자기 존재성을 추구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교사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지금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미리 설계하고 계획안을 구성하여 그 체계에 맞게 이끌어 가는 것이 교사의 본분이라 생각한다면, 한 차원 더 나아가 내 자신이 어떻게 성장하고 더 풍요로워질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더할 때 교사 그 자신은 마침내 하나의 진정한 ‘학교’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