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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재춘 _커뮤니티 스튜디오104 공동운영자
  • 2016.12.27
20호 곁봄 | 칼럼
나름의 입장과 각각의 언어
 
임재춘 / 커뮤니티 스튜디오104 공동운영자

  2016년 올해 지지봄봄이 큰 주제로 삼은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은 사실 문화예술교육이란 무엇인가와 다른 질문이 아닙니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이름이 있기 이전이든 이후이든지 간에 가치 있는 인간됨을 추구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 본래의 의미가 국가의 문화정책 안에서 정부의 언어로 정의되고 제도로 구조화되는 과정, 사람들의 심성이나 무의식까지 파고든 물질 숭배의 태도, 낙후한 정치 문화, 근대 학문과 교육의 병폐 등으로 생겨난 여러 문제들로 인해 문화예술교육은 삶의 문제였다고 호소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있는 이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문제적 이슈들이 있습니다. 중앙정부 주도의 정책 전달체계와 정책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들인데 이를 테면 예술강사의 불안정한 노동환경, 단순히 정책을 전달하는 행정적 역할을 과도하게 요구받고 있는 지역 문화재단과 지원센터의 위상, 그리고 여전히 가시적이고 성과중심적인, 도구적으로 사고되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인식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교육 안에서도 거시적인 문제로 볼 수 있는 이러한 것들 외에 각 지원 사업이나 문화예술교육을 수행하는 다양한 주체들,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질과 관련되어 문화예술교육을 보는 시선이 그리 편하지 않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면들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긍정은 바로 문화예술교육이 우리 사회나 삶을 보는 다양한 차원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과 그런 점에서 변화를 위한 실천에 유연할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앞의 복잡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소하면 좋을까요? 해결하기 위해 우리 각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저는 문화예술교육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제도적 차원의 것에 치우쳐진 것이 오히려 근본적이면서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과 시행령이 정의한 문화예술교육, 전문가와 전문성, 범위와 경계 같은 것들은 말 그대로 정부의 입장일 뿐입니다. 정책의 주도성이 컸을 때 생기는 가장 큰 위험은 ‘대상’으로서는 존재하지만 수평적 ‘관계’로서의 주체성이 약해지기 마련인데 개념이나 입장에서도 이와 같은 수동적 관계들이 생겨납니다. 예를 들면 관료적인 파트너쉽 안에서 문화부와 지원센터의 체계만이 아닌 정책이 주도하는 문화예술교육의 개념 자체가 기계적으로 이식되거나 수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교육, 예술, 복지, 환경, 지역 등 각 영역, 분야의 입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행정가, 교사, 예술가, 문화기획자, 시민운동가, 마을활동가 등 주체의 입장이 있어야 합니다. 각각의 언어들이 동일하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하고 그리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고유하게 다른 생각과 입장들이 존재하여야만 문제를 다각도로 해석할 수 있고 못난 정책을 질책하면서 각자의 현장에서 나름의 입장을 가지고 새로운 실천과 대안을 만들어 갈 때 제도는 바뀌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실제 하는 누군가의 삶은 변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주체로서 지녀야 하는 입장이라 함은 곧 교육철학입니다. 그리고 개념적인 지향을 구체화하는 수행 즉, 실천이 병행될 때 입장이 생명을 지니게 됩니다. 그동안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 하면서 많은 이들이 ‘삶’을 떠올렸습니다. 경험, 체험, 일상, 생활, 공동체, 동네, 관계와 같은 단어들은 삶의 의미를 채워주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것들조차도 학습된 하나의 강박이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이 빠져있거나 깊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철학은 본질에 대한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여러 문제들 중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인식의 문제라는 것을 비추어 예를 들어보면 인식이라는 것이 문화나 예술의 시대적 관점과 함께 배움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근본적으로 ‘인간됨’, ‘인간으로 살아감’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인식을 높이기 위한 해결방법이 부수적인 차원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해서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큰 질문을 열어주실 여섯 분의 스승을 글을 통해 모시게 되었습니다. 왜 배우고, 무엇을, 어떻게 배우거나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스승들의 눈과 가슴, 수업의 이야기들은 어떤 면에서는 익숙하기도 하지만 익숙함 이면의, 보이지 않았던 인간과 생명에 대한 깊고 넓은 통찰은 우리가 두고두고 되새겨야 할 귀한 자각과 각성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천안에 위치한 통전교육연구소의 김희동 선생님과 해오름 평생교육원에서 가르치는 사람을 키우는 박형만 선생님, 해오름 살림학교의 최정필 선생님,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강화도 마리학교의 교장이셨던 성국모 선생님, 초암교육예술연구소 손채수 선생님께서는 발도로프 교육으로 잘 알려진 루돌프 슈타이너의 교육사상인 인지학을 공부하고 우리의 문화와 역사, 현실에 맞는 교육철학과 교육방법론을 연구하고 실천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슈타이너는 교육을 예술로 이해하며 ‘교육예술’이라 지칭하는데 이것은 예술이 부분에서도 전체를 볼 수 있다는 통합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슈타이너의 교육사상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더 나은 교육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지지봄봄 이번 호를 통해 공유하고자 하는 것은 슈타이너 교육사상 자체에 대한 관심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전통사상과 문화의 맥락에서 해석되어지는 교육예술이 무엇이고 철학적 연원은 어디 즈음에 있는지 이해하는 것입니다. 제도와 관계없이 본래 우리 삶에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요구되는 수행으로서 교육이나 예술의 의미들에 관해서입니다. 덧붙여 수행에 필요한 현실적 조건들을 어떻게 조직화하며 만들어 나가는지도 살펴볼 문제입니다. 단지 수업만이 아니라 이와 같은 일련의 실천 모두여야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선생님들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와 통찰, 내용들이 수업으로 구현되는데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셔서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교육철학이 수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상상하는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 김희동 선생님의 발달론 ‘이끌어주기와 내려두기의 알맞은 때’
- 교사 한명이 곧 하나의 학교(박형만)
- 어린이 살림학교의 상생교육(최정필)
- 슈타이너의 인지학과 우리 교육 사상의 철학적 교감(성국모)
- 지금, 여기 너머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배움(손채수)
 
  서천고등학교 미술교사인 김인규 선생님은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발의되었던 2004년 즈음 문해력(literacy)이라는 표현에서 이미 과시적인 태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묻습니다. 인간의 성장이라는 것이 어떤 능력이나 역량 이전에 스스로 존재하기 위한 시간이나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내면적 힘에 대해 당위적인 차원이 아닌 정말 그러하다고 믿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청석에듀씨어터의 이기복 선생님은 예술교육의 보편적 의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고등학교 연극반 교사로 퇴임하고 여전히 학교 밖에서 연극 교육을 하고 계신데 연극을 통해 인격적으로 성숙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확고해질 수밖에 없는 예술교육의 필요성과 의미를 나누어 주십니다. 
 
- 학교 교육과 ‘역량’ 이전의 교육(김인규)
- 예술적 경지와 교육적 경지의 거리(이기복)
 
  지지봄봄을 함께 해주신 선생님들을 뵈면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자신 스스로 그러한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자기 삶에 대한 참 질문을 하지 않고는 불가능 하다고 생각합니다. 발도로프 학교의 교사는 수업을 기술적인 측면에서 예술적 활동으로 할 수 있어야 하지만 똑같이 필요한 것이 ‘열정’이라고 합니다. 열정은 어떻게 샘솟는 것일까요? 슈타이너는 인간과 아이들의 본성에 대한 인식과 세계의 본질을 인식하는 것으로 열정을 가진다고 하였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을 한다는 것은 자기 삶을 사는 것 자체일 수도 있고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공통적인 것은 어느 쪽이든 모두 자기 삶에 속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최소한 더 나은 삶, 가치 있는 활동을 갈망한다면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분명해진 것이 있어 보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