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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선 _문탁네트워크
  • 2016.10.24
19호 곁봄| 칼럼
공유지는 살아 움직인다
 
김정선 / 문탁네트워크

 

  ‘마을 공유지 874-6’(이후 파지사유)은 ‘문탁 네트워크’(이후 문탁)가 만든 공간이다. 세미나하고 강의 듣고 전시가 열리는 장소이며, 졸업식장이 되기도 하고 공연장이 되기도 하는 곳이다. 파지사유는 그때그때 변신한다. 활동을 기획하는 사람과 참여하는 사람 사이의 분리를 없애기 위해 우리는 ‘자율’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파지사유에서는 주인과 손님의 구분이 없습니다. 내가 마시는 차는 내 손으로 만들고 내 손으로 치웁니다. 아우또노미아(Autonomia), 자율은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이며 공유지를 움직이는 활력입니다. 

- 〈파지사유 사용 설명서〉 중에서
*아우또노미아 : ‘자율’을 뜻하는 이태리어
 
 
밥심이 낳은 활동
 
  자율의 리듬을 타고 카페로 이용되던 파지사유에 문탁의 공동체 밥상을 차렸다. 사실 카페에 밥을 차린다니 걱정이 앞섰다. 솔직히 밥 냄새가 나면 왠지 커피 맛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장소가 넓어지면서 더 차분히 밥을 먹을 수 있고 식후에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런 여유 때문인지 우려와는 달리 밥 냄새는 커피 냄새와 잘 어우러졌다. 그리고 밥을 먹으면서 친구들과 공부한 내용을 나누거나 공연을 하는 ‘런치쇼’와 ‘메인디쉬’라는 활동이 만들어졌다.
 
  런치쇼나 메인디쉬는 어떤 테마를 정해서 차곡차곡 기획하고 있지는 않다. 그야말로 누군가 제안을 하면 “그럼 해볼까?”하고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명색이 큐레이터지만 내가 기획한 행사가 손에 꼽을 정도다. 포스터를 만들어 홍보하고 진행을 돕는 것이 나의 주요 임무가 되어버렸다. 
 
  기억나는 런치쇼는 파지스쿨러가 여행경비를 마련하겠다며 신청한 공연이었다. 십 대 청소년 셋이 의기투합하여 우쿨렐레와 클래식 기타 공연으로 버스킹을 했다. 나도 이들을 돕겠다며 즉흥 막춤을 추며 탁자 사이를 헤집고 다녔는데 문탁인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어 이들을 응원해 주었다. 덕분에 제주 강정마을에서 4박 5일 머물다 온 십 대들은 여행 이야기로 다시 보고회를 열었다. 강정마을에서 배워온 춤을 추며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그들을 보면서 아이들이 여행 후에 부쩍 성장한 느낌이 들어 뿌듯했다. 이들은 이 경험을 계기로 ‘파지새’라는 그룹을 만들어 앞으로 더 공연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는데 언제든 환영이다.
*파지스쿨러 : 파지스쿨에서 공부하는 청소년, 청년을 지칭하는 말이다. 파지스쿨은 문탁에서 기존의 학교태와 교육상을 벗어나려는 취지로 만든 청소년, 청년을 위한 인문학 과정이다.
 
 

 

 
  7월에는 귀농하여 출판사를 운영하는 부부를 모시고 메인디쉬로 토크쇼를 열었다. 그분들은 책이 출판되면 아무 연고도 없는 문탁에 한 권씩 보내주곤 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초청하게 되었다. 우리는 상추쌈 출판사에서 나온 책 중 『나무에게 배운다』를 선택해서 메인디쉬 며칠 전 게릴라 세미나를 했다. 그 책이 주는 감동은 토크쇼를 통해서 더 커졌다. 메인디쉬가 게릴라 세미나를 낳고 상추쌈 출판사와의 만남은 새로운 의미와 감동을 낳았다. 그리고 얼마 전 이분들이 직접 농사를 지어 보내주신 양파, 고사리, 밀가루는 우리의 밥상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세상에 없는 특급 영화관
 
  파지사유는 정기적으로 영화관으로도 변신한다. 이름하여 ‘시네마 드 파지’이다. 오직 시네마 드 파지만을 위한 배급사 ‘필름이다(film ida)’도 만들었다. 우리는 상업적으로, 정치적으로 노출되어 보여지는 수동적인 영상(movie)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싶은 영화(film) 그 자체를 이야기하며, 새로운 영화 문법을 발명한 고수들의 작품을 함께 보기로 했다. 세상에는 없는 동네 영화관을 만든 것이다. 그동안 2번의 기획전을 진행했다. 나름 영화 깨나 본다고 생각했는데 기획전으로 만난 여덟 편의 영화는 낯설기만 했다. 
 
  시네마 드 파지에서는 영화만 상영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 상영 후 영화에 대한 발제를 함께 읽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특히 ‘화어권 영화 특집’ 〈혁명과 시간〉에서는 중국 문학 전공자를 특별 큐레이터로 모시고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영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10월에는 ‘동물권’ 영화제를 할 예정이다. 올여름 ‘나무닭움직임연구소’의 여름캠프에 갔다가 문탁인들의 친구가 된 〈잡식 가족의 딜레마〉를 만든 황윤 감독을 초대하게 되었는데 황윤 감독이 파지사유에 놀러 왔다가 그 자리에서 ‘동물권’ 영화제가 기획되었다. 문탁 내에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동물권’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이 기회에 세미나를 하자고 했다. 이 세미나와 영화제가 만나 어떤 역동이 생길지, 앞으로 공유지에 어떤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지 기대된다. 혹시 채식을 하겠다는 친구들이 생겨나 그러지 않아도 소박한 밥상에 고기는 구경도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된다.
 
 

 

 
몸이 공부가 되는 활동
 
  파지사유의 모든 활동은 그저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다. 공부의 표현이고 밥이 예술이 되는 과정이고 능동적인 실천이고 타자들과의 소통이고 공유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건강한 삶, 좋은 삶을 지향한다. 그런 모든 활동을 우리는 양생(養生)이라고 표현한다. 생을 양육하는 활동이라는 뜻이다. 이런 활동에 몸을 어찌 소외시킬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만든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근사(近思)한 양생’이다. 이 ‘근사’라는 말은 『논어』의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에서 나온 말로, ‘절실히 묻고 가까이 생각한다’는 뜻이다. ‘가까이 생각한다’는 것은 일상에서 구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피트니스센터나 요가학원을 가야 가능한 운동이 아닌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활동을 조직했다. 점심 산책, 요가, 백팔배, 단식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근사한 양생’이 확장되어 ‘몸 펴기 운동’과 ‘활기생기총기’라는 운동 프로그램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져 파지사유를 넘어 문탁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근사한 양생 활동을 통해 여러 문탁인들이 몸을 공부의 장소, 즉 수행의 장소임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는데 특히 드라마틱한 효과를 주는 것은 역시 단식이었다. ‘꽃보다 단식’이라는 명칭의 프로그램 운영으로 지금까지 30여 명이 참여했다. 체중이 빠져 기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먹는 것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소박하게 살자는 것에는 쉽게 동의하지만 유독 먹는 것만큼은 좋은 것을 배부르게 먹겠다는 생각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이 활동을 통해 우리들은 그동안 “참 많이 먹고 살았구나”, 또 그 뒤를 이어 “많이 안 먹어도 잘 살 수 있구나”하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이 밖에도 파지사유에서는 여러 활동들이 매일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함께 먹는 ‘밥심’으로 새로운 활동을 만들고, 한 번의 인연에 열린 마음으로 여러 활동들이 이어진다. 일상을 바꾸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허용하면 예기치 않은 활동들이 생겨난다. 그러나 파지사유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사실 여러 사람들의 색깔이 부딪치며 만들어진다. 다르게 말하면 성깔들이 맞부딪치면서 마음들이 맞춰진다. 공유지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색깔과 성깔이다. 이런 에너지들이 자율을 만들어 내고 공간을 채워간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