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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남 어머니학교의 장수비결?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
  • 권단 _옥천신문 제작국장, 황민호
  • 2016.08.16
18호 곁봄 | 칼럼
안남어머니학교의 장수비결? 그건 바로 ‘민주주의’
 
권단 / 옥천신문 제작국장, 황민호
  시골 할머니들은 종종 '풍경'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ᅠ대개의 경우,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말하지 못하는 풍경'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ᅠ어떤 찬사와 미사여구, 갖은 낭만적인 문장을 갖다 붙인다 해도 이때의 그들은 철저히 정물화적인 대상에 불과하다. 현실적 선입견의 틀이 그들을 바라보는 눈길에 그대로 투영되어, 살아 숨 쉬는 개별적 주체로서가 아닌 이미 정형화된 존재로 옴짝달싹 못하도록 가두어 놓는 것이다. 시선의 폭력성은 결박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가령 그건, 우리네 어머니에 대한 획일화된 묘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침묵 가운데 일생토록 고생만 하다 늙어버린, 자글자글한 눈가 주름과 거친 손, 흰머리 그득한 어머니들의 모습이나 가슴속 불덩이를 견디고 또 견디다 끝내 한 덩이 시꺼먼 재가 되어 버린 삶의 이야기 같은 것이 그것이다. 어쩌면 선한 마음의 동정적 시선에서 비롯된 것일 테이지만, 그런 태도가 숱한 문학과 저널에서 반복될수록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의 일방향을 강요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개별적 존재의 애환은 철저히 풍경으로 물러나고, 어느덧 그 잊혀짐마저도 습관으로 굳어지게 된다.ᅠ 
ᅠ 그렇듯 가부장적인 농촌 문화 속에서 그늘로 살아온, 온 집안 살림을 다 일궈내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는 끝내 말할 수 없던 사람들. 스스로의 마음으로 무언가를 선택할 수 없었던 위대한 소수자들이 우리 사회의 동등한 주체가 될 수는 없을까? 시혜의 마음으로 거두어주는 돌봄의 대상, 혹은 주류의 일들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는 소외의 대상을 넘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주체가 되게 할 수는 없을까? 이는 또한 어떻게 현실의 일이 될 것인가? 옥천의 안남어머니학교는 그것이 어떻게 실현 가능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되고 있다. 또한 그것은 현실적 일개 프로그램, 기관을 통한 평생교육을 넘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성찰로서 다가온다. 
 

 
  작년 12월, 안남면 연주리 배바우에 사는 조만순 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조만순 씨는 안남어머니학교의 학생회장이다. 같이 수업을 받던 도근이 사람 조복례(81) 씨가 운명했다는 급작스런 비보에, 몸이 아파 갈 수 없음을 전하는 그에게서 옅은 슬픔이 배어나왔다. 서로를 잘 몰랐던 시절이었다면 이는 어쩌면 혼자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 번의 죽음을 마주하면서도 그는 더 이상 외롭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마음으로나마 함께할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를 떠나보낼 때마다 안남어머니학교 학생들은 저마다 슬픔에 잠기지만,  함께함의 위안과 결속력은 그만큼 더 강해진다. 시집을 와서 수십 년 넘게 살면서도 마실 가는 것조차 쉽지 않거나 기껏해야 마을회관에서의 만남이 전부였던 그들이었지만, 학교가 생기면서 먼 마을의 친구까지 만나게 되고,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나누게 된 것이다. 물꼬가 터지면서 그렇게 여러 마음들이 모이는 큰 저수지를 안남어머니학교는 만들어주었다.ᅠ 
 

  배우는 것이 늘 고맙고 방학이 싫어 개학만 기다린다거나, 학교 떠나기가 아쉬워 졸업이 싫다거나 하는 일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일까? 억지로 하는 기계적인 학습 중독이 아닌 진정한 배움을 원해 이루어지는 공부, 그리하여 학생이 학교를 그리워하고 배움을 즐거워하는 교육의 참모습이 있다면 바로 안남어머니학교의 경우가 그에 근접한다 할 것이다.
  권병애(80) 할머니는 자신의 시에 이렇게 썼다. 
 
“방학이란 즐거운 것일까. 괴로운 것인가. / 집에서 놀기도 힘들고 경로당에 가보니 / 
노인 모두 누워서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 놀기가 너무 힘들다 / 
학교에 가는 것이 낙이고 즐거움인데 / 방학을 하니 외롭고 힘들다 / 
방학이여 빨리 지나가라 / 학교에 가고 싶다” 
 
  마지막의 “학교에 가고 싶다”는 문장에서 절실함이 느껴진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진정 어떤 학생들이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가고 싶은 학교, 배우고 싶은 공부의 모습은 참으로 어떠해야 하며 우리는 과연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교육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와는 좀 다른 맥락에서 강금예(82) 할머니가 쓴 시 한 편을 살펴본다. 
 
“여름방학 / 병이 들어 / 혼자살이 힘들다고 / 서울 며느리 왔다갔다 / 
남고생으로 살아가는 내신세 / 이 세월을 어찌 보낼까” 
 
  자식들에게 어느새 짐이 되어 버린 자신을 동정하고 처량하게 생각하는 어르신들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이정순(85) 할머니의 시에서도 “영감 / 열일곱에 만난 영감 / 걱정이다 / 병이걸려 숨차는 병이 걸려 / 가보지도 못하고 / 쌈 한번 안 하고 살았던 / 영감 떨어져 있으니 / 가슴이 무너진다”고 토로하는 대목을 볼 수 있는데,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깊게 와 닿는다. “이 세월을 어찌 보낼까”, “가슴이 무너진다” 같은 표현들은 기실 평소에는 겉으로 전혀 내색조차 하지 않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시집 간 날부터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 벙어리 삼년'임을 어린 날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기에 수많은 할머니들은 치유되지 못한 상처를 일생 가슴에 안고 살아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런 아픔과 슬픔은 우울증으로 귀결되기 십상이어서, 그로 인해 야기되는 비극 또한 왕왕 보게 된다.  ᅠ
  안남어머니학교는 알게 모르게 이러한 현실의 상당 부문을 유예하거나 풀어왔다. 하지만 어머니학교의 개설만으로 근원적 문제의 심각성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친구가 생기거나 학교에 다니는 사실만으로 현실의 모든 문제들이 일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011년 어머니학교에 다니던 77세 할머니가 강물에 뛰어든 사건은 지역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학교에 다니며 나름 버텨왔지만 끝내 가슴속 근원적 상심까지는 해소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일을 겪으면서 학교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삶을 들여다보고, 보다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어떤 근원적 모색에 대한 절실함이었다.ᅠ 
  많은 어려운 일들에도 불구하고 안남어머니학교는 지역이 어르신들께 선사한 가장 큰 위안이자 선물이 되어 왔다. 그런데 안남 지역의 주민들 역시 어머니학교를 통해 많은 일깨움을 얻고 있다. 그렇게 서로에게서 배움을 주고받는 사이 시나브로 할머니들은 지역의 어엿한 주체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일례로 매년 열리는 안남면의 작은 축제인 음악회 메인 무대에는 어김없이 안남어머니학교 학생들이 장식을 하고, 배바우작은도서관 생일 무대 주요 공연 역시 안남어머니학교 학생들이 도맡아 오고 있다. 
 
  그렇게 할머니들은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의 대상자가 아니라, 스스로 주체로 서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학생회를 구성하여 비록 몇천 원에 불과하지만 자발적으로 마련한 학생회비로 학생회 예산을 만들고, 논의를 통해 집행을 하는 것은 이 안남어머니학교가 이룬 하나의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는 주체적 과정을 통해 자신의 권리와 위상을 만들어 가는 대단한 민주주의의 경험이다. 뿐만 아니라 단지 어르신으로 대접받는 것이 아닌, 자신의 텃밭에서 농산물을 가져와 모여서 밥을 해먹고 김장을 하여 먹거리를 마련하는 등과 같은 일들을 통해 어르신들 스스로가 자신의 가능성을 하나씩 열어가는 과정을 맛보게 된 것이다.ᅠ 
  무엇보다도 일반적인 복지관에서 하는 한글학교 프로그램과의 차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글을 가르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지만, 그 운영방식에 있어 천양지차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 구체적인 모습을 살핌으로써 어머니학교, 나아가 우리의 교육이 어떠한 지향점을 향해야 할지에 대한 하나의 시사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ᅠ 
 
 
 안남어머니학교, 어떻게 시작했을까ᅠ 
 
ᅠ 2003년 2월 7일자 《옥천신문》에는 안남면 도농리에 사는 김귀남 할머니의 한글 배우기 기사가 실렸다.ᅠ당시 일흔이었던 김귀남 할머니는 몇 년 전부터 한글을 배우기 위해 〈보은한글배움터〉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는 수고로움을 감내하며 다니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당시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ᅠ
 
ᅠ "아이구 안남은 그만두고 옥천에라도 생기면 좋겠어요. 매일 차 두 번씩 갈아타고 보은까지 다니려면 얼마나 힘든데 그러니까 1년이 지나도 아직 1학년 책 가지고 공부하지, 눈이 오면 여긴 차 안 들어오거든. 그러면 또 못 가지. 또 바쁜 농사철이면 일거리 쌓아두고 보은까지 어떻게 가. 그러니까 또 빠지지, 옥천이나 안남에서 배울 수 있으면 좀 수월할 텐데...ᅠ새벽에 일어나 새벽밥 지어먹고 시내버스를 타고 인포리까지 나가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한글배움터로 가. 연결되는 차 시간이나 제대로 맞으면 좋겠는데 왜 꼭 40분씩 기다려야 하는지 얼마나 야속한지 몰라" 
 
ᅠ 간절한 바람이 통한 것일까. 2002년 결성된 안남면 주민자치센터는 당시 비교적 건강한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참여해오고 있었고, 이미 이런 이야기들에 대해 듣고 있던 차였다. 그리하여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에 한글 배우기 과정이 마련된 바로 그때, 위의 기사가 난 것이다. 그것이 촉매제가 됐다.ᅠ 
ᅠ 2003년 2월말, 드디어 개교를 맞은 안남어머니학교는 ‘한글학교’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어머니학교’라는 명칭을 내걸었다. 이는 혹 한글을 몰라 다닌다고 하는 심적 부담감을 없애는 것과, 또 학교의 본질이 단지 한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고자 하는 뜻이기도 했다.ᅠ 
 
 
ᅠ 이 학교는 어떤 선지자가 나타나 하루아침에 개벽하듯 만든 것도 아니었고 퇴직 공무원이나 퇴직 교사들이 평생 업의 연장선상에서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관에서 만들어 준 것도 아니었다. 순전히 지역에 사는 평범한 주민들, 즉 토마토 농사를 짓는 농부, 교회 목사, 공판장 주인 등과 같은 다양한 지역의 주민들이 뜻을 모아 만든 것이었다. 그들은 실제 교육을 위해 청주에 있는 문해학교에서 교수법을 공부하고 교재를 준비하는 등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학교를 열기 전 마을 순회를 하며 설명회도 가지고 홍보도 하였다. 이런 과정 끝 개강을 하였더니 80여 명의 학생들이 면사무소 2층에 빼곡하게 들이찼다. 안남초등학교 전교 학생수가 40명 내외였던 시절이었다. 초창기부터 다녔던 조만순 학생회장은 “안남어머니학교 만든다고 동네 청년들 몇이서 왔었지. 그런 맴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용기를 내서 학교에 다니기로 한 거지”라고 말한다. 바로 이런 마음들이 모여 이룬 성과였던 것이다. 2005년 한 할머니는 학교 문집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교장 선생님 고맙습니다. 학교 덕분에 눈을 고쳐서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참 좋아요. 딸도 아들도 모두다 좋아해요. 덕분에 공부하고 눈도 고치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세상에서 나 혼자만 눈 뜬 것 같아요. 모든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들 건강하세요. 행복반 조만순” 
 
ᅠ 당시 입학해서 공부를 한 할머니들 심정이 다 이러하였다. 어머니학교는 화요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동안 진행됐지만, 아침 9시부터 일찌감치 나오셔서 공부를 하거나 기다리는 분들도 많았다. 지금은 한글뿐만 아니라 수학, 체조,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그렇게 공부가 끝나면, 지역에서 마련해준 ‘지역발전위원회’ 소유의 건물로 가 식사들을 지어 드시는데 자발적으로 정한 밥 당번이 있음은 물론이다. 
ᅠ 여기서 안남어머니학교의 운영 방식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 할머니들은 단순히 프로그램 수강자가 아니라 학교의 주체이자 주인이다. 학생회장과 총무를 선출하여 학생회를 구성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교사회에 전달하며, 학교의 모든 일들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며 결정한다. 이는 할머니들 스스로 교육의 대상이자 주체로 서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것이 모두에게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 할머니들 스스로 마을의 다른 할머니들에게 학교 가자는 말을 먼저 꺼낼 정도로 자긍심을 느끼게 되었고, 할머니들의 결정을 충분히 존중해줌으로써 학교와 교사의 부담 또한 그만큼 덜게 된 것이다.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예산을 일부 지원받지만 학교는 주민자치센터와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별도의 법인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 자체로 안남면에서 꽤 비중 있는 주체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조직화된 어머니학교는 항상 염두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조직이었기 때문에 어머니학교의 의견은 항상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존중을 받았다. ᅠ 
ᅠ 안남면 지역발전위원회에서 마을 순환버스를 사기로 결정한 것은 안남어머니학교 할머니 학생들의 바람이 크게 반영된 것이었다. 의견 조사를 통해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마을 순환버스는, 지역발전위원회에서 우여곡절 끝 버스를 구입하고 도서관 셔틀버스로서 군의 운영비를 지원받게 되면서 무상버스로 거듭나게 되었다.ᅠ그렇게 적극적으로 학교 사업에 동참한 할머니 학생들 덕분에 안남면은 무상교육에 무상버스까지 지역의 큰 자산으로 갖게 되었다. 2007년 주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배바우작은도서관 또한 한글을 배우고 교재 역시 무상으로 빌릴 수 있는 공간이다. ‘도서관에서 하룻밤 자기’ 등과 같은 행사를 통해 도서관은 가까운 삶의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무상교육, 무상급식에 무상버스, 도서관까지 할머니들은 어느덧 자신의 뜻으로 일궈낸 복지를 스스로 향유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삶의 질과 직결되는 지점일 것이다. ᅠ 
 

 

 
  안남면 행복도, 옥천군에서 최고! 
 
ᅠ 2011년 9월16일 한국산업관계연구원에서 1억5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만든 〈옥천비전 2014〉 계획서에는 지역별 행복도 조사가 들어있다. 옥천군내 각 읍면별 행복도 조사를 한 결과 군내 9개 읍면 중 안남면이 83.3%로 가장 높았다. 2위인 청산면(60%)과 격차가 무려 23.3%나 난 것을 볼 때 거의 압도적이라 할 만하다. 이 행복도와 관련해 한국산업관계연구원이 내놓은 분석이 참으로 흥미롭다. 한국산업관계연구원은 행복도가 ‘주민 참여’와 깊은 연관 관계가 있다고 분석한다. 이 행복도는 군수, 면장, 의원, 조합장 같은 그 누가 만들어 준 것도 아닌, 오직 주민들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일군 성과인 것이다.ᅠ안남면의 30년 주민자치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어쩌면 그런 분석 결과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령화된 농촌사회에서 생활서비스에 대한 불편과 아울러 일자리에 대한 생활고도 만만치 않아 우울감과 절망감이 팽배한 농촌사회에서 이렇게 높은 수치의 행복도가 나왔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할 것이다. 
ᅠ 그런데 이는 실제의 일상 장면 속에서 할머니들에게 듣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 같으면 살 맛나. 학교도 공짜로 다니지. 버스도 공짜로 타고 다니지. 도서관에서 책도 공짜로 보지. 우리끼리 밥도 해먹지. 배바우장 생겨서 옥천장 굳이 안 나가도 되지, 다 같이 모여 노래도 부르지, 얼마나 재미나. 안남에 사는 게 젤루 좋아” 
  행복이 고스란히 스민 말들이다. 이는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길든 짧든 행복하게 살다 가는 것의 중요성을 문득 떠올리게 한다. 어느 사회, 어느 시대나 불평등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주류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늘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동반한다. 그것에 대한 감수성이 옅어지고 아무렇지 않은 듯 차별이 반복되면서 문화로 굳어 버릴 때 끔찍한 불평등의 풍경은 재생산된다. 본인은 정작 느끼지도 인지하지도 못하면서 반복되는 차별이란 비주류로 소외되고 배제된 자들에게 얼마나 큰 폭력으로 다가올 텐가. ‘할머니들은 그래야 돼’라는 고정관념이, ‘할머니들은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라고 하는 반성적 인식의 징검다리를 건너 ‘똑같은 한 존재로 스스로 서고 싶고 말하고 싶은, 우리와 같은 욕망과 바람을 가진 사람’인 것으로 인지될 때 진정한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ᅠ 늘 말없이 받아주고 희생하며 군말 없이 일하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정형화되면, 맡기고 시키는 사람이야 편하겠지만 받아주고 일하는 사람은 영영 힘든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합의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된’ 착취 구조로서, 더 나쁜 정서적 시스템일 수 있다. 그런 차별과 편견은 사회적 공공성과 민주성을 통해 풀어내야 한다. 이 땅의 지상 과제는 어쩌면 ‘자치와 자급, 그리고 연대’ 아니겠는가? 타자화, 대상화하여 도구시하는 익숙한 패러다임에서 탈피해 모두가 주인인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면, 대변해주고 대신해준다는 말은 사실 금칙어로 규정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참여하고 말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 
ᅠ 그렇다면 과연 누가 참여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 글도 모르고 인터넷은 더더욱 모르며 종일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하느라 다른 생각 할 여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혹은 물리적 휴식의 시간이 확보되지 않은 채 죽어라 일만 하는 사람들에게, 하루 벌어 하루를 간신히 먹고 사는 하루살이 삶들에게, 어떻게 ‘우아한 참여’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참여를 이야기하려면 최소한 누구든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시공간적 토대, 물적, 정신적 토대가 구조적으로 확보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ᅠ 나의 생활이 누군가에 의해 좌지우지 될 때 사람들은 극심한 불안감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또한 좋든 싫든 누군가에 의해 삶이 바뀌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의존적이고 수동적이 된다. 그것은 행복과도 거리가 멀다. 양계장으로 비유하자면 방사형 농장에 풀어놓은 동물복지 인증 마크가 찍힌 닭 신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만족할 것인가? 울타리 너머를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 
ᅠ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어 논의, 결정하고 행동하는 그런 세계를 원한다면, 좋든 싫든 울타리를 없애고 자신의 삶을 관장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 바로 이때 삶의 질은 높아지고 존재감은 한껏 고양될 것이다. 
ᅠ 그리하여 다시 교육을 생각한다. 또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우리의 교육은 그야말로 도시 자본 중심의 국가에 복종하는 국민교육을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르치는 사람의 우월감을 증명하기 위한 엘리트 교육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이란 동등한 ‘서로 배움’이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 속, 생활 속에서의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현현한 배움이어야 할 것이다. 식자들이 자신을 과시하는 교육이 아니라 모든 사물과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경청하면서 들을 줄 알고 배울 줄 아는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ᅠ 
ᅠ 민주주의란 단지 돈 있고 힘 있고 의식 있는 사람들이 소수자를 존중하여 이야기를 들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입으로 스스로를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앞에 ‘대의(代議)’ 자를 붙이며 말하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를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말하지 못하는 자를 말하게 하고, 말할 수 없는 자를 말하게 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리하여 누군가 안남 주민들의 장수와 행복의 비결을 묻는다면, 그것은 당연히 ‘민주주의’라고 답할 것이다. 어떻게 안남에서 그런 일들이 가능했는지를 묻는 말에는 ‘누가 와서 해줄 것’이라는 수동적 인식이 아닌, ‘못해도 어설퍼도 우리가 직접 한다’는 안남 주민들의 삶의 방식이 있어 가능했다고 말할 것이다.ᅠ 
ᅠ 어떤 누군가는 4년, 5년마다 자리를 떠나며 영욕의 부침을 겪지만, 결국 진정한 주인은 그들이 아닌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의 삶터'만큼은 거대 자본과 권력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지킨다는 신념이 있기에 안남의 일은 가능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안남이, 안남어머니학교가, 이 엄혹한 시대를 어떻게 건너야할지 가슴 뜨겁게 묻고 있다.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