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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화와 전통이 삶에 섞여드는 곳 - 민들레연극마을을 가다
  • 안태호 _문화평론가
  • 2016.08.16
18호 가봄 | 현장스케치
신화와 전통이 삶에 섞여드는 곳
〈민들레연극마을〉을 가다
안태호 / 문화평론가
  민들레연극마을을 찾은 날은 마침 품앗이 축제 기간이었다. 2008년 경기문화재단의 축제 지원 사업으로 출발한 품앗이 축제는 올해로 벌써 8회째다. 품앗이라는 이름은 초기 비용을 줄이고 지역/단체 간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공연과 공연, 혹은 공연과 특산품을 서로 나누던 데서 비롯되었다. 일테면 진주의 한 단체와 서로 교통비 정도만 받고 노개런티로 공연을 품앗이하거나, 공주나 가평의 ‘농촌체험마을’에서 수박과 옥수수를 받고 공연을 나가는 식이다. 참으로 보기 드문 빛나는 기획이었으나 일정과 작품의 내용을 조율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까닭에 아쉽게도 지금은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봄 시즌에는 심기 축제, 가을 시즌에는 가을걷이 축제를 진행하며 농촌의 사이클에 맞춰 자연의 절기와 농업의 보람을 연극과 함께 나누고 있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이야기지만, 민들레연극마을은 한 공무원의 오지랖에서부터 출발했다. 2006년 송인현 대표는 한 농림부 공무원의 전화를 받았다. 극단 〈민들레〉와 화성시 〈이화뱅곳마을〉의 ‘녹색체험농촌마을’ 신청을 제안하는 내용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관계였지만, 그 공무원의 제안과 지지에 마을 사람들과 협의 끝에 ‘녹색농촌마을’에 지원되어 민들레연극마을 탄생까지 이르게 됐다. 
 

 

 

  민들레연극마을의 연간 방문객은 많을 때는 1만 명에 육박한다. 극단 구성원들이 민들레연극마을에 일상적으로 거주하는 형태가 아닌 주중이나 주말 체험 일정에 맞춰 찾아온다. 그러나 축제 시즌을 앞두고는 1개월씩 합숙을 하며 축제를 함께 준비한다. 이때에는 아침 6시부터 기초 트레이닝과 메소드 연습을 시작으로, 축제에 필요한 각종 일과에 분주하다. 분주한 와중에도 빼먹지 않는 일은 농사. 민들레연극마을 앞쪽으로는 제법 넓은 밭들이 좌우로 펼쳐져 있는데, 이 밭은 원래 주차장 용도로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빌린 거라고 한다. 
 
  그러나 송인현 대표는 주차장 면적을 넓히는 것보다 단원들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농촌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그 판단은 적중했다. 지금 그 밭에서는 고추와 매실, 고구마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단원들은 얼굴이 새카맣게 타면서도 농사짓는 일을 보람 있어 한다. 당연히 비닐 멀칭이나 농약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업이다(물론, 실제로는 사용하지 못한다는 혐의가 짙은 게 사실이다). 일부 땅은 주민들에게 다시 무료로 분양해 농지로 활용하고 있다. 땅을 일구는 우직함이 민들레연극마을이 갖는 힘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극단 민들레는 신입 단원을 선발할 때 필수적으로 장애인 단체나 공부방에 가서 5회 이상 봉사 활동을 해야 한다던, 언젠가 뉴스에서 본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방식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땅과 눈높이를 맞추는 방법으로서의 농업 역시 마땅한 선택이리라. 
 

 

 

  민들레연극마을 곳곳에서 아이들이 왁자지껄 뛰어다니며 축제의 분위기를 돋웠다. 물놀이장에서 노는 아이들이나, 마당에 있는 토끼에게 수박 껍질을 주다 아예 토끼장 속으로 들어가 토끼와 구분되지 않게 신이 난 아이들을 보는 일은 즐거웠다. 
 
  공간에 대해 설명하던 송인현 대표는 극장이 너무 많아서 자기도 다 못 외울 지경이라며 웃었다. 정식 공연장으로 등록되어 있는 〈사랑채극장〉은 유일하게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다. 5각형으로 지어진 〈별극장〉과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공간감이 인상적이었던 〈다랭이극장〉, 석양을 배경으로 공연이 가능한 〈삼태기극장〉(Sunset Theater) 등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 평론가는 삼태기극장에서 하는 무용 공연을 보고는 자신이 체험한 세계 곳곳의 공연장 중 가장 아름다운 극장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곳이다. 
 

  그날 몇 개의 공연을 관람했는데 인도 배우가 심청전을 모노드라마로 연기하는 것이 이채로웠다. 치마 소품을 활용한 인물 묘사라든가, 한국의 각종 민요까지 섭렵해 천연덕스레 불러 젖히는 배우의 능수능란함이 놀라웠다. 한 달 전부터 함께 합숙하며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한다. 민들레연극마을에서는 해마다 아시아의 연극인들을 초청, 한국의 신화와 설화를 공연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 왔다. 향후에는 한국 배우들이 인도 등 아시아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송인현 대표는 전통과 신화에 유독 관심이 많아 보였다. 
 

 

 

  민들레연극마을에서는 몇 해 전,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을 통해 마을의 신화 찾기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동네 아이들이 지역에 대해 애정을 갖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단다. 아이들과 굴렁쇠를 굴리며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고 마을의 지명에 얽힌 이야기들과 신화를 찾아 나눴다. 청령골과 멍굴섬 등 아이들도 이미 다 알고 있다며 시시해 하던 공간에서도 새로운 이야기들을 발굴할 수 있었고, 사업의 마무리 시점에서는 마을 퍼레이드까지 함께 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과 어울려 마을을 돌아다니는 송인현 대표를 마뜩찮게 보는 시선 또한 없지 않았다. 송 대표의 부친은 지역에서 노인회장을 맡고 있고, 여전히 농사를 짓는다. 한여름 뙤약볕을 받으며 농사에 분주한 아버지가 이제 중년에 접어든 아들이 논두렁 옆에서 동네 꼬맹이들과 굴렁쇠를 굴리는 장면을 지켜봐야 한다면 그 심경 또한 간단치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송인현 대표는 배우(俳優)라는 말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연극을 하려는 그에게 아버지는 광대 배(俳)자를 써 보이며 “왜 사람(人)이 아닌(非) 짓거리를 하려느냐?”라고 하셨다. 그는 광대 배자 옆에 빼어날 우(優)자를 붙이며 ‘배우는 사람보다 빼어난 신과 인간의 매개자’라고 응수했다는 것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여전히 샤먼을 자처한다. 민들레연극마을의 구조도 신화의 이야기를 본 따 만들기도 했고, 해마다 신화를 바탕으로 한 연극 놀이로 아이들에게 신화의 가치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신화와 함께 그가 마음을 쏟는 것은 전통이다.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봉산탈춤 이수자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춤사위와 몸짓에 뿌리박은 인생을 살아온 그지만, 정작 전통이 그저 틀에 박힌 옛것이면 곤란하다고 못박는다. 민들레에서 「똥벼락」이나 「마당을 나온 암탉」 등 창작 동화를 극화하는 작업에 정성을 쏟는 것도 지금 사람들에게 의미가 없으면 전통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다. 현재의 작업이 새로운 전통, 고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30여 가구 남짓한 마을에서 체험마을 사업에 적극적인 집은 15가구 안팎이라고 한다. 대표의 고향인 만큼 지역 주민들과 협력은 원활한 편이다. 부녀회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으러 마을 회관에 가니 동네주민 전체가 마실을 나가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사진 한복판, 주민들 틈바구니에 선글라스를 낀 채 활짝 웃고 있는 송인현 대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주민들과의 화합이나 협력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작물 체험과 각종 만들기 등 마을의 체험 활동을 운영하는 것은 당연히 주민들이 도맡고 있으며, 축제의 안내본부에는 주민들이 지역 특산품을 가지고 와 판매하기도 한다. 주민들이 결성한 협동조합은 단순 결합을 넘어 마을 내에 사무실을 두고 각종 사업을 벌여 나가고 있다. 민들레연극마을 내의 각종 가구들은 주민들과 함께 만든 바로 이 협동조합에서, 버려지는 목재를 재활용해 제작한 것들이다. 
 

 

 

  이 동네는 송 대표의 고향일 뿐 아니라 400년 역사의 송씨 집성촌이다. 농촌체험마을의 성과에 힘입어 송씨 일가는 인근의 종산을 공원으로 만들어 마을의 자원을 확대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한다. 민들레연극마을은 극단 민들레가 ‘마을에 기증한 공간’이다. 단, ‘어린이 문화운동을 한다’는 조건으로. 
 
  송인현 대표는 ‘어린이 연극에 대한 선입견’을 깨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시중에 넘쳐나는 ‘어린이들을 위한’ 연극이란 것은 결국 어린이를 대상화시키고, 어린이를 상업적 수단으로만 보는 결과물들이 대부분이라고 일갈한다. 그는 ‘어린이 연극’이란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 아니라 어린이들도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랬다. 이 날 축제에서 본 공연들이 모두 어른의 눈으로 봐도 어색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인도 배우의 일인극 「심청」,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확장된 시각이 돋보이는 「꽃할머니」, 종이컵의 활용이 놀라운 오브제 인형극 「제랄다와 거인」, 멀티미디어의 재기발랄한 사용이 즐거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개구리 왕자」, 신체배우 김유진의 「몸으로 쓰는 시」까지. 생각해 보면 애당초 어른의 눈과 아이의 눈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 아닐까. 
 

 

 

  엉뚱하게도 배병삼의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의 문제의식이 떠올랐다. 그는 유교의 핵심이란 결국, 위민(爲民)이 아니라 여민(與民)이라고 주장한다. 백성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과 함께하는 것이 유교의 본모습이라는 것이다. 계도하고 분리하여 시혜를 베푸는 힘은 삶의 감각과 정서적인 일치를 가져올 수 없다. 어른도, 아이도 인생 전체로 보자면 결국 과정에 놓인 존재일 뿐 아닌가. ‘어린이 문화운동’을 단호하게 주창하는 민들레의 외침에는 어린이가 세상의 미래라는 상투적 인식을 넘어선 무엇이 있었다. 어린이의 현재를 긍정하고 앞날을 핑계로 지금, 이곳을 저당 잡히지 않겠다는 결의 같은 것이. 
 
  민들레연극마을은 장기적으로 훈데르트바서의 집처럼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에게 활짝 열려있는 자유분방한 공간이 되기를 꿈꾼다. 교육이란 말을 가급적 쓰지 않는다는 송인현 대표의 말이 떠오른다. 어린이 연극이 아니고, 교육 연극은 안 한다는 그의 말을 곱씹어보게 된다. 예술의 역할과 함께 교육을 넘어서는 교육 활동에 대해, 이 민들레연극마을이 삶을 외면하지 않는 고민과 실천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