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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성 _성공회대 외래교수
  • 2016.06.05
17호 곁봄 | 칼럼
문화예술교육 10년, 이젠 ‘잘삶’의 토양이 되어야 한다
김보성 / 성공회대 외래교수

 

1. 돌아보고
 
 지난 10년 동안 정부 문화예술교육정책의 외형적 성장은 실로 눈부실 정도이다. 2005년 88억 4천만원이던 예산은 작년(2015년) 약 15배 규모인 1,300억 여 원으로 불어났고, 예술강사는 1,861명에서 약 3,3배인 6,195명으로, 10년 동안 누적 수혜자 규모도 학교문화예술교육 15,452,016명과 사회문화예술교육 324,648명으로 각각 집계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10년 백서에서 인용)
 
 양적 성장의 속도와 규모는 가히 세계적이다. 문화와 예술이 일상이 되는 삶을 상상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구현해보는 다양한 시도가 학교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양적 성장에 비례하여 질적인 성과도 뒤따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낙관적이지 않다. 
 스위스의 교육자이자 사회 비평가인 페스탈로치(1746~1827)는 “교육은 가까운데서 먼 곳으로 퍼져가는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교육의 목적을 ‘머리와 마음과 손’의 조화로운 발달에 두고 노동을 통한 교육, 실물과 직관의 교육을 실천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문화예술)교육활동이 벌어지는 곳은 마을(지역)과 학교지만 모든 사업을 관할하는 단위는 중앙(문화부)과 광역문화재단(광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이다. 우리나라 문화예술교육 10년의 역사가 구체적인 삶의 현장인 마을(지역)에서 설계되어 실천되지 못하고 중앙과 광역단위의 행정기구에서 통제되고 있는 현실을 이제 냉철하게 되짚고 ‘바람직하고 있음직한 미래의 문화예술교육상’을 위해 실천할 준비를 해야 할 때이다.
 
 
2. 지역, 가족의 연장이며 생태의 일부
 
 바람직한 미래와 있음직한 미래의 문화예술교육상은 무엇이어야 할까. 대학입시제도의 존재 아래 운영되는 교과 연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과연 바람직한 미래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대량 생산과 소비를 위해 속도와 효율만 중시하는 인간(자원수탈형 경쟁력을 가진 인간)을 양성하는 학교와 사회의 가치체계보다, 연대와 나눔을 중시하는 인간(자원순환형 협동심을 지닌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야말로 있음직한 미래의 교육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행복을 추구하는 삶 자체가 목적이 되는 시대의 교육상을 말함이다. 문화예술교육이 막삶이 아닌 잘삶의 토양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다음의 내용은 "21세기가 막 시작되는 새로운 천년은 커다란 가치관의 전환점에 있다"며 삶과 분리되지 않은 교육을 위한 가치관에 대해 홍순명(홍동마을 밝맑도서관 이사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다.
 
1. 산업사회나 제3세계를 위한 최우선의 과제는 우리 삶과 실체 - 곧 건강, 일, 환경을 위한 교육, 그리고 우리의 
    문화적 생활 등 - 를 회복하는 것이다.
2. 우선 가족의 연장 같은 지역사회의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지역적으로 살아야 한다. 한편 우리 먹
    거리, 에너지, 자원의 소비를 지구의 자원과 필요한 조화를 이루도록 지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3. 우리의 일은 기본적으로 우리 가족과 우리 이웃을 위해 해야 한다.
4. 의식과 잔치 등 즐겁고 축제적인 것이 우리 생활에 들어와야 한다.
5. 예술은 모든 사람의 창조성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상업적 오락의 단순한 생산자 이상이라야 한다.
6. 남녀는 진정한 평등을 사적인 자리나 공적인 자리에서 누려야 한다.
7. 건상은 질병이 결여된 상태가 아니다. 우리 건강은 육체, 가족, 지역사회, 환경에 대한 관계에서 온다.
8. 학교는 지역사회에서 운영하여야 한다.
9. 지역은 생태의 일부며, 지역과 생태는 함께 존중되어야 한다. 땅은 먹거리의 근원일 뿐 아니라 정신적 자양의 
    바탕이 된다. 우리 도시는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야 한다.
10. 거룩한 것과 정신적인 것이 우리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17호 지지봄봄 편집장을 맡고 대주제를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으로 정했다. 지난 10년간 정부의 주도 아래 급속히 확대되어 온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마치 청년 실업률을 낮추려는 정부의 정책과 지표를 위한 (젊은 예술강사)인건비 지원사업으로 보이거나, 창의적 예술가의 예술교육이라기보다 예술강사의 개인기에 기반한 어중간한 예능수업 정도로 인식되고 ‘교육’보다는 ‘지원사업의 창구’로 보이는 현실에 대한 반전을 꾀하고 싶었다. 
 위 인용글은 삶과 동떨어지지 않는 생활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충남 홍성 홍동마을 일대를 탐방하며 들른 밝맑도서관에서 담아온 내용이다. 가족의 연장이며 생태의 일부라고 여기며 지역사회의 활력을 강조한 점이 인상적이다. 결국 잘삶과 분리되지 않는 문화예술교육은 지역사회 특히 마을을 단위로 실천되어야 함을 깨닫게 해주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통합학습의 매개로 문화예술방법론을 활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발도로프교육과 슈타이너학교 중에서 영국의 교사양성대학인 에머슨칼리지가 몇 년 전에 에머슨빌리지로 전환한 사례도 미래교육의 실천은 결국 마을이어야 한다는 교훈일 것이다. 
 
 
3. 내다보고 – 생태마을 해외사례
 
 산업혁명 이후 20세기까지 세계는 부국강병을 토대로 한 강제적이고 물리적 힘으로 표현되는 Hard Power(경성국가)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문화를 토대로 한 자발적 동의로 얻어지는 능력을 뜻하는 Soft Power(연성국가)인 교육, 학문, 예술, 과학, 기술 등 인간의 이성적 및 감성적 능력의 창조적 산물과 연관된 분야가 주도하는 시대이다.
(매일경제용어사전 부분발췌 인용 및 재구성)
 
 소프트파워의 시대는 곧 문화예술의 생활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나아가 인간학의 실현을 위한 토대가 되고 있다.(근자에 활성화되고 있는 인문학 열풍을 보라!)
 
 소프트파워의 산물로 마을공동체를 재건한 사례도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을 구성하기에 충분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영국 북쪽 끝 스코틀랜드의 핀드혼(Findhorn) 마을을 주목해보자. 1962년 11월 6명의 사람이 황량한 모레이만의 모래톱에 정착하며 시작된 공동체가 이제는 4만 입방미터 대규모 농장을 갖춘 자연친화적 생태공동체가 되었고, 매년 70여 개 국에서 1만 여명의 외국인이 찾아온다. 이 곳은 명상과 성찰 의식을 위한 장소로 가득 차 있다. 
 식사 때나 일할 때, 춤출 때 함께 손을 잡는 Tunning 의식은 노천성소나 공원성소 그리고 자연성소 및 영성교육장에서 구성원들 사이에 영적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한다. 명상 못지않게 노동 또한 강조되어 주민들은 1주 35시간을 일해야 한다. 
 
 핀드혼의 에코빌리지 프로젝트는 다음 네 가지 중점이 있다. ①환경친화적 주거 건물을 세울 것 ②재사용 가능한 에너지 공급체계를 갖출 것 ③지역 단위에서 유기 농산물 생산 여건을 갖출 것 ④문화적 다양성과 구성원들의 총체적 건강을 지향하는 사회적 가족 공동체를 실현할 것.
 
 의.식.주와 함께 건강, 교육, 예술, 생태 등의 요소가 지속가능한 마을의 조건이지만,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필수 구성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다른 마을의 재발견 사례는 일본의 산촌(里山: 마을숲을 뜻함) 자본주의(우리나라에는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 제목으로 출간됨)이다. 핀드혼 마을과는 사뭇 다르게 매우 현실적인 잣대를 제시하는 곳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구매하여 사용하지만 돈이 부족해져도 물과 식량, 연료를 계속 얻을 수 있는 부차적인 산림 자원 시스템을 활용해서 지역을 풍요롭게 하자는 것이다. 
 이 곳은 지역경제 불균형, 취업난, 저출산, 석유 및 원자력 에너지 자원 문제 등 현실 머니자본주의의 한계로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보며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산촌자본주의의 지향 역시 대안적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을 프로그래밍 할 때 담아야 할 요소라고 생각한다. 
 
 마을(지역)을 근본으로 하는 잘삶의 문화예술교육은 위 두 마을공동체 유형에서 그 대상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인류의 빈곤은 수렵사회가 아닌 자본주의 맹아기인 농경사회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마셜 살린스의 저서 『석기시대 경제학(Stone Age Economics)』에는 '석기시대 가족제 생산양식은 필요를 충족하는 만큼만 생산하여 효율적일수록 더 적게 일하게 되는 노동최소화의 원리가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또한 현대 주류경제학인 성장주의 경제관을 비판하며 ‘신 수렵채집문화 문명생활양식’을 주창한다. 수렵채집민의 삶이 대량생산 시장경제인 길브레스적 노선보다 원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양극화가 심화된 고령화사회의 현실은 불안정한 무산계급(Precariat)인 잉여인간을 출현시켰다. 회색 콘크리트문명의 상징인 한강의 기적이 만든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정성장시대인 초록문명의 생명중시 공유경제시스템에서는 오히려 잉여인간이 제2 중흥의 주역세대로 부상할 수 있다고 본다. ‘도-농 크로스 귀촌마을 시민’이야말로 잘삶 문화예술교육의 핵심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발상, 전환하기
 
 머지않은 미래에 4도 3촌(4일은 도시에서 주말3일은 농산어촌에서 생활하는 양식) 생활인을 대상으로 펼쳐질 ‘잘삶의 문화예술교육’은 지금까지 해온 인력송출 형태의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예술강사 개인기에 의존하는 교육은 반복적 기능을 전수하는 형태의 한계를 뛰어넘기 어렵다. 또 교육과정 역시 협력형 보다는 개별 성취형이 많아 지역특성을 담아내기도 쉽지 않다. 마을(지역) 특성을 담아내고 여러 예술장르가 융합되어 동일 주제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창의체험을 통해서 해결을 함께 모색하는 프로젝트/프로그램으로 방향을 전환하여야 한다. 경기문화재단은 이미 2007년 방과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서 프로젝트형 프로그램사업 형태를 기획, 실행한 바 있다.(당시 한국일보신문기사 참조)

 
(섬진강 기적의 산물)
 

 

 

 
 현행 예술강사 운영제도는 매년 예술강사 모집 공고를 통해 강사를 뽑는다. 이후 뽑힌 강사를 대상으로 집체교육 형식의 연수를 거쳐 재배치하는 소위 인력송출 방식의 프로그램이다. 예술강사 신분안정과 처우개선을 쟁점으로 악덕(?) 기업주격인 국가(광역지자체)를 상대로한 예술강사 취로사업 제도개선 요구가 우려한대로 사회문제화가 되어버렸다.
 창의력이 경쟁력인 시대에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이고 개인적 효과에 대한 국민공감대를 확산하는 일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토대가 빈약한 외형적 성장 위주의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위기에 봉착하였다. 
 
 예술강사에게는 예술가로서의 자존감을 되찾게 하고,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에게는 창의적 인성이 본능화되도록 효과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제도혁신이 필요한 때이다. 현행 예술강사 개별 연수제도는 지역거점별/장르융합형/프로젝트형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형태로 전격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진행했던 기초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시범 사업에서 확산되어 현재의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운영은 더 다양하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광역문화교육지원센터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제도개선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 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대학의 사례가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독자적인 사업예산 확보와 인력 구성을 통해 독립적인 위상을 가진 활동 환경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정책개발과, 기획공모사업을 통한 민간 문화예술교육 역량의 성장을 도운 사례는 충분한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또한 사업을 운영함에 있어 반드시 결별해야 할 지점은 문화예술교육 공급망이 반드시 정부 주도로만 유지되어야 한다는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는 공공재로서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그에 적합한 그릇에 담아내는 민간 역량의 성장을 돕는 진짜 ‘지원’센터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양상은 중앙-광역-기초단위 관계기관의 밥그릇싸움 수준을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모든 사안은 통합하고 융합해야 한다면 특히 문화예술교육은 세분화된 지역단위 마을공동체로 더욱 잘게 흩어져야만 한다. 문화예술교육의 향후 10년은 마을공동체의 성과를 중심으로 ‘생활과 분리되지 않는 교육’으로서 바람직한 전형 창출을 향한 협력.경쟁의 시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잘삶의 문화예술교육이 갖춰야 하는 필요충분조건을 앞의 글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잘삶 문화예술교육은 선조들의 오래된 지혜인 ①‘전통문화’와 미래의 혜안인 ②‘인문학’을 각각 깔판과 덮개로 삼아 그 안에 다양한 ③‘예술장르’를 버무리고 ④‘생태’적 내용을 중심으로 ⑤‘노작활동’을 통해 빚어내는 창조적 감성과 안목을 길러내는 교육이며, 일상적인 ⑥‘생활문화’의 튼실함을 바탕으로 ⑦‘지역(마을)’ 단위로 활성화될 수 있는 특성을 지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