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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예술로 ‘뿌리내림’하는 우리의 삶
  • 이효순 _상상놀이터 대표
  • 2016.05.26
17호 곁봄 | 칼럼
문화예술로 ‘뿌리내림’하는 우리의 삶
이효순 / 상상놀이터 대표

 

 

 가평군 설악면은 인구 8,637명, 4,165세대, 세대 당 평균 2.07명, 141,51㎢ 면적을 가진 농촌지역이다. 신천리를 포함하여 모두 15개의 리로 나뉘어져 있다.(2015년 12월 기준) 
 경기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에 참여하게 된 설악중학교는 2016년 3월 기준 225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고, 이 중 96명이 다문화가정의 친구들이다. 전교생 대비 다문화 친구들의 비중이 43%가 된다.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Simone Weil 1909~1943)는 인간에 대한 의무 선언의 서곡 <뿌리내림>에서 뿌리를 잃고 방황하는 시대의 문제 원인을 ‘뿌리뽑힘’으로 보았다. 프랑스 공장의 노동자나 농민들이 그랬으며, 또한 나치의 침략으로 ‘나라’, ‘민족’의 뿌리가 뽑혔다고 보았다. 
 우리 역시 ‘뿌리뽑힘’을 겪었으며 지금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을 갖기 어렵고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기대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사람 사이의 기본적 관계망이나 유대감이 기계적, 기능적 관계로 대체되었다. 농촌지역 다문화가정의 친구들은 관계형성에 더욱 취약하다. 
 
 
 
 
  설악면은 어떤 의미의 공간이며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 설악면의 친구들은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 뿌리의 근간에 설악면은 있을까. 설악면에서 태어났거나 설악면으로 이사를 왔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친구들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채운 설악면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세울 근간에 ‘우리’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친구들에게 설악면에 대해 물었을 때, 영화관도 없고 쇼핑몰도 없으며 마땅히 놀 수 있는 장소가 없는 ‘시골’이라는 답변을 했다. 설악면은 고향도 아니고 부모님의 선택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뿌리내림’하는 장소와 공간은 일상적 삶의 근간이 된다. 최병두는 Urban Archives에서 최근 많은 지역에서 이런 일상적 삶의 장소가 ‘상실’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새로운 장소의 창출을 통한 삶의 장소성의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논의의 발단은 ‘장소’를 공간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치환하여 체험적이고 구체적인 활동의 기반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단순한 사건이나 활동이 펼쳐지는 현장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장소의 뿌리 내림-Rootedness'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과 더불어 존재론적 안정감을 보장받는 토양으로 간주하였다. 
 
 
 
 
 설악면을 대상지로 잡고 최병두가 말한 장소의 '뿌리내림'하기 위해 관계 프로그램 '인사'를 기획하였다. 사람 사이에 지켜야할 예의인 ‘인사’는 ‘인사’를 나눌 만큼의 관계 형성이 전제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라는 말 속에 내포된 의미와 서로에 대한 관심을 공유함으로서 설악면이라는 공동체를 의미 있게 인식하고 그 속에 ‘뿌리내림’하길 바랐다.        
 
 
 
 
 공동체를 뜻하는 커뮤니티(community)는 라틴어로 같음을 뜻하는 communitas에서 왔으며, 이 말은 또한 communis, 즉, '모두에게 공유되는'에서 나온 뜻이다. communis라는 말은 라틴어 접두사 con-(함께)와 munis(서로 봉사한다는 뜻과 관계있다)의 합성어이다. 공동체는 함께 봉사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친구들과 마을에서 공동체, 일체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설악면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곳에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함께함으로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자 했다.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존듀이(John Dewey, 1859~1952)는 우리의 삶을 이루는 무수한 ‘경험’을 능동적 측면과 수동적 측면으로 나누고 있다. 경험은 ‘해보는 것-행함/trying'과 ’겪는 것/undergoing', 이 두 요소가 결합되고 상호작용하며 우리의 경험을 형성하게 된다. 설악중학교 학생들에게 어떤 ’겪는 것-겪음/undergoing'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해보는 것/trying'이 달라지리라 생각했다.  
 
 

 
 친구들이 마을에서 경험한 것을 단어로 도출해 내면서 마을에 대한 사고의 단어가 가지고 있는 질감, 느낌, 감정, 정서를 표현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더하여 ‘나’와 ‘너’ 그리고 ‘가족’을 표현하는 수업을 했다. ‘나’를 중심으로 친구, 가족, 마을 사람들까지 이해의 폭을 확대함으로서 마을을 이루는 사람을 이해하고자 했다. 이런 수업 과정에서 설악면 인구의 절반을 이루는 어르신과의 관계형성을 위해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에 참여하는 15명의 친구 중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이들이 3명이다. 이 친구들이 살고있는 천안2리와 신천리에서 활동하기로 하고, 그 마을의 이장님을 만나 마을 조사를 실시했다. 
 몇 곳의 집을 방문해보니 밭에 각종 채소를 심고 모내기로 바쁜 때에,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이 뒷전으로 밀려 어찌 손써볼 수 없는 상황인 것이 확인되었다. 혼자사시는 할머니는 몇 년째 청소를 하지 못해 각종 쓰레기로 집안이 엉망이었다. 
 이후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며 어르신들의 집에 찾아가 빨래 대신 해드리는 프로그램이 1차 수립되었다. 실행 방식은 봉사의 형태를 취하며 기대효과는 어르신과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관계형성에 두었다. 이는 존듀이가 말한 능동적 측면의 경험과 수동적 측면의 경험이 상호작용함을 나타낸다. 시키는 ‘일’이 아닌 ‘찾아’하는 공동의 작업과정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됨을 의미한다. 
  
 또한 존듀이는 경험의 연속적인 이어짐은 시간적 차원으로 설명되며 경험과 경험이 연결되며 이전의 경험이 이후 경험의 성질을 바꾼다고 했다. 이를 눈덩이 굴리기에 비유했는데 눈덩이가 클수록 굴러가면서 한 번에 묻는 눈의 양이 많아지는 것처럼, 많은 경험을 할수록 이전의 경험들로 인해 이어지는 후속 경험은 더욱 풍부해지고 또한 경험이 상호작용하며 양적, 질적으로 변하는데 이것이 곧 ‘성장’이라고 보았다. 
 
 

 
 
 미국의 알린 골드바드(Goldbard, Arlene)는 <새로운 창의적 공동체>에서 예술프로젝트는 유형학을 만들기 쉽다고 했다. 연극, 발레, 콘서트, 개인전 등 최종 산물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이나 마을만들기사업처럼 공동체 문화개발 사업에 대한 명확한 유형학은 아직 없다. 이는 문화예술의 즉흥적인 특성과, 과정에 대한 강조 그리고 광범위한 사회적 무대(지역적 특성과 대상의 상이함, 인구구조의 차이 등)의 영향력이 아주 많은 변수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존듀이의 말처럼 개인의 능동적 경험/행함의 확대를 통한 개인의 성장이 마을의 성장을 이끌어 내리라 믿는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설악면에 ‘뿌리내림’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고 정서적 공유지를 확대해 나감으로써 아이들이 마을과 함께 성장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