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더봄
-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 문화예술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 김보성 _17호 편집장
- 2016.05.26
17호 대분류 | 좌담회
문화예술교육 비평지&웹진 ‘지지봄봄’ 17호 좌담회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 문화예술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일 시 : 2016년 5월 2일 17시~20시
장 소 : 수원
참석자
- 김보성(17호 편집장,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 이병곤(경기도교육연구원)
- 이현주(성남문화재단)
- 이효순(상상놀이터)
- 김종길(경기문화재단 문화재생팀장)
- 전지영(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장)
전지영
안녕하세요?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센터장을 맡고 있는 전지영 이라고 합니다. 다들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지지봄봄’ 17호 편집장을 맡아주신 김보성 선생님과 사전 회의를 하면서 이번호의 주제를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 문화예술적인 삶이란 무엇인가>로 잡고 편집위원을 추천해달라 부탁드렸는데요. 오늘 이렇게 편집위원분들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지지봄봄에 수록될 원고를 부탁드리기 전에 편안하게 주제 관련한 대화를 나누면서 지지봄봄 17호에 대한 조금 더 구체적인 방향을 모색하고 생각의 결들을 모아보고자 오늘 이 자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김보성
다들 잘 지내셨지요? 전화로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 자리는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발행하고 있는 비평 웹진 ‘지지봄봄’ 17호의 좌담회 자리입니다.
우선 서로 초면인 분들도 있을 테니 한 분 한 분 소개를 드리자면 경기도연구원의 이병곤 선생님, 성남문화재단 문화사업부 차장이신 이현주 선생님, 상상놀이터 대표로 문화예술교육 관련 체험학습 모든학교를 운영하시는 이효순 선생님, 마지막으로 경기문화재단 문화재생팀 김종길 팀장님을 모셨습니다.
저는 문화예술교육계에서 오랫동안 고민 해 오신 분들이 오늘 만나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만으로도 참 뿌듯하고 할 일을 다 한 것 같습니다.(웃음) 다들 바쁘신 중에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오늘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한 마포문화재단 진현희 팀장님은 글로써 17호에서 함께 뵙도록 하겠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번 지지봄봄 이야기를 하자면, 제가 이번 편집장 제안을 망설임 없이 수락했던 이유 중 하나가 17호 주제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이 저에게도 관심 있는 화두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시대를 시민예술시대, 생활문화시대라고 하는데, 주변에 문화예술교육을 교육공학 특히 테크놀로지(technology)로만 인식하고 있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문화예술교육도 평생교육 체계처럼 그냥 일상화된 삶에 일정한 형태로 정착시켜야 할 요소라고 봤을 때 편집위원님들처럼 각 분야의 현장에서 자기 철학을 가지고 오래 일해오신 분들이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을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까?’의 고민을 이번 원고에 녹여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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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
작년에 <문화예술교육 10년>을 주제로 지지봄봄 16호 편집장을 맡으며 문화예술교육 원론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도대체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인지, 어떻게 시작을 했는지, 무엇을 표방했는지 다시 돌아보게 되었는데요. 관련해서 요즈음 제도화 되어있는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만 봐도 거의 90%의 예산이 예술강사지원사업에 몰려있음을 확인하며 놀랐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을 좀 비켜서서 살펴보며 교육철학이라고 하는 원론적인 맥락에서 철학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초기 단위의 대안 교육 또는 학교 밖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논의하는 자리들 속에서 이 교육철학에 대한 논의들이 꾸준히 다루어져왔는데요, 저는 그 중에서도 『처음처럼』 잡지에 지금의 문화예술교육이 상실하고 있는 귀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제도의 대안으로서의 교육 혹은 교육철학의 원론적인 내용과 의미에 대해 레이첼 카슨이나 헨리 데이비스 소로의 『월든』 등 우리가 읽어왔던 책들에 많은 부분이 담겨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가 원론적으로 생각해볼 만한 좋은 책들을 소개해보고 싶어요. 그 맥락에서 우선 이번 지지봄봄에는 잡지 『처음처럼』의 서평을 써보려 해요.
김보성
이번 호의 방향을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으로 가려면 현실에 밀착된 고민이 시작되어야한다고 봐요. 그리고 그 시작이 바로 중앙과 광역이 아닌 기초단위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강사를 예로 들자면 기초단위에서 뿌리내리고 활동하는 예술강사들이 그 지역에 맞는 소재, 역사, 인물을 토대로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개별이 아닌 여러 장르의 예술강사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프로젝트(프로그램)를 개발해서 지역문화예술 교과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학교는 강사를 ‘받는’ 방식이 아니라 개발된 프로그램 리스트를 검토하고 선택하는 거지요. 지역에 착근된 강사와 프로그램들로 지역의 문화를 만들고 광역 또는 중앙 단위에서 실시하는 연수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커리큘럼을 개발할 수 있게 유도하는 방식을 생각해봤어요.
이때 기존의 프로젝트는 일정 횟수가 진행되면 똑같은 내용과 형태로 더 이상 반복될 수 없도록 구조를 만드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교육자는 계속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만들어야하지요. 이러한 기획내용이 일정한 시기동안 누적되면 본인도 모르게 다양한 프로젝트를 보유하고 전문성이 생길 것입니다. 이는 결국 발전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은 계속 실력이 향상될 수 있어 교육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기획과 교육내용에 발전성이 없어서 채택되지 않는 프로그램은 자연히 퇴화, 정리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질적 발전을 위한 방안이지요.
전지영
지금의 강사 시스템은 수업의 질 관리가 어렵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사실 문화예술교육이 생활이나 삶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생각한다면 ‘예술’이 아닌 ‘교육’이 붙은 순간 누군가와 어떤 본질, 가치를 훼손 없이 공유해야하는 일종의 책임성이 수반됩니다. 그래서 교육이 담고 있는 가치와 내용,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의 방법론 적인 것에 대해 계속 고민해야 하는데 현재 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이러한 고민들이 부족한 것 같아요. 삶에 대한 고민이 없기 때문에 가치 공유를 해야 되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활동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결국 현장이라는 실제적, 생활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이슈에 대한 점검 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제도의 문제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김보성
이병곤 선생님, <이것이 미래교육이다.>에 보면 슈타이너학교의 에머슨 칼리지가 나오잖아요? 에머슨 칼리지가 에머슨 빌리지로 변화 과정에 있다고 들었어요. 저는 이것에 매우 중요한 상징적 내용이 있다고 보는데요. 이 내용을 지지봄봄 17호에 소개하면 어떨까요?
슈타이너 학교가 문화예술교육을 통합교육의 기재로 쓰는 학교 시스템이었잖습니까. 그런데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에머슨 칼리지라고 하는 교원전문대학교에서 교사를 양성하다가 에머슨 빌리지라고 하는 마을로 아예 시스템을 전환한 거예요. 이러한 상황이 시사하는 바는 사실 크거든요. 저는 이번 호 주제인 '삶으로서의 문화교육'이라는 맥락을 감안해 볼 때, '왜 에머슨 칼리지가 에머슨 빌리지가 되었는가'하는 흐름을 연결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지영
좋은 사례일 것 같아요. 아직 국내에 자세히 소개되지 않은 내용이기도 해서 흥미롭습니다.
이병곤
저는 15~16년 전에 이곳에 가보았는데요. 에머슨 칼리지는 잉글랜드 남부의 절간 같은 시골마을에 있어요. 에머슨 빌리지로 변화할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만 현황 자료를 더 찾아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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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저희 재단은 신규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강사 보다는, 창의적인 교육안을 위주로 뽑고 있어요. 최종 선정된 강사는 본인이 기획한 교육안을 직접 시연하는 면접을 시행하는데, 대부분의 교육안을 보면 교육 받을 대상을 정하지 않았더라고요. 자신이 기획한 프로그램이 어느 대상에게나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굉장히 평면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이유를 생각해보면 강사들이 학습자들의 삶을 체험하면서 그들의 삶의 양식을 이해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봐요.
김종길
그 맥락에서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적 방향을 내부적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예술강사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면 여러 장르가 만나서 동일한 의제를 놓고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예술강사 재교육이나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통섭(通涉)적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도록 정책을 전환해 보는 거죠. 다양한 장르의 선생님들이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쪽으로 유도해 나가야해요. 현재의 개인기 중심의 예술 교육은 처음부터 지향했던 바가 아니니 이것을 어떻게 바꾸어낼 것이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전지영
사실 다양한 장르의 선생님들이 모였다고 해서 그 프로그램이 그분들의 삶이나 생활 이슈에서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 않을까요?
김종길
이번 호 주제와 다른 정책적인 부분을 잠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조금씩이라도 이렇게 유도해가면 이후 문화예술교육의 흐름이 바뀔 것인데 광역에서 이런 정책적 방향을 잡아주지 못하면 기초에서도 시행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현주
성남에서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조례 제정을 준비하며 고민한 것이 있어요.
성남시는 신도시와 본도심 사이에 정서나 교육에 대한 관심도 등이 차이가 크지요. 그렇다보니 기본 교육안을 가지고 지역별, 대상별로 교육 계획을 유연하게 변화시키지 않고는 좋은 효과를 얻기 힘들거든요. 한편 지역적 특징을 찾아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분들은 사실 지역의 강사들이죠. 타 지역 강사보다는 해당 지역 강사들이 지역의 학교교육이나 사회교육을 잘 이해하고 있으니 더 효과적이에요. 그래서 기초 재단에서는 지역 강사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교육을 진행하고, 이후 광역센터에서 제공하는 고급과정 교육을 통해 다시 발전적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지역화하면 좋을 것 같아요.
김종길
역설적으로, 개인기가 부족한 선생님들 중에는 내용적으로 굉장히 좋은 부분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있으니 여러 강사가 함께 하면 더 좋은 교육안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요.
김보성
인력송출 사업과 다름 없는 지금과 같은 파견사업은 근원적으로 프로그램 제안사업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이지요?
김종길
예, 도리어 어떤 기관에서 강사들과 협력하여 교육안이나 프로그램(프로젝트)을 시범적으로 만든 후 학교에 역제안을 하면 참여하는 강사들은 그 프로그램 안에서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어요.
전지영
지금 그렇게 시행하고 있는 곳이나 프로그램도 있지 않나요? 광명에도 하고 있고... 제가 알기로는 교육부에서 작년부터 문화예술교육사업을 별도로 시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현주
거기에 문제점이 하나 있는데요. 학교에 중앙 예산이 투입된다는 정보를 입수해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들어가려고 하면 정작 예산이 없다는 말씀을 하세요. 교육부에서 지원되는 예산 중 정작 문화예술교육으로 투입되는 예산은 많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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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곤
작년에 성남형 교육 연구를 맡아서 공동연구자로 참여를 했어요. 말씀하신 대로 지자체가 확보한 교육 프로그램 지원에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고 있더군요. 여기에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일정 부분 포함되어 있고요. 문제는 그 예산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을 인프라 구성이 안되어 있어요. 예산이 투입되는 곳을 보면 민주시민 교육하는 곳, 환경교육, 체육교육 등을 실시하는 곳이지요.
예술강사들을 발굴하고 적절한 수요처에 연결시켜주어야 하는데 중재할 수 있는 기구가 학교 밖에 없고, 학교에는 그런 기능 구조가 더욱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는 기계적으로 예산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랍니다.
전지영
좋은 프로젝트라도 학교 관리자나 담당 교사가 누구냐에 따라서 효과가 너무 달라요. 강사와 학교를 연결하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씀하신 대로 학교의 특성도 정확히 알고, 또한 강사의 프로젝트도 정확히 이해하도록 연결 짓는 매개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김보성
예, 그럼 이번에는 기관(학교)에서 일하시다가 문화예술교육사업을 하게 되신 이효순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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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순
저도 앎과 실천이 일치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같은 것... 저 역시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실현해보는 것이 꿈이었어요. 다행히 경기문화재단에서 기회를 주셨고, 작년에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으로 설악중학교 다문화 아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요. 나를 보고, 너를 보고, 우리를 보며 관계를 확대하는 내용의 교육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후 지역을 들여다보는 '마을 읽기'를 했어요. 설악면은 농촌이기 때문에 노인인구가 많아요. 그때 저희 테마가 '흙으로 만나는 따듯한 사업'이라서, 어려운 집 방 하나를 정해서 따뜻하게 고쳐보자 라고 마음먹었는데 막상 실천해보니 너무나 좋은 거예요.
올해에는 ‘인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자’라고 생각해보았어요. 설악면이 지역은 넓고 인구밀도는 낮아요. 그래서 서로 인사 나누기가 정말 어려워요. 저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 90% 이상이 이웃과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관련해서 2월 초 사업에 선정된 후 전년도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이 다니는 학교에 찾아가 교장선생님을 만났어요. 작년 영상 가지고 가서, “올해도 하고 싶습니다.” 했더니 교장선생님이 보시고는 저한테 뭘 원하느냐 물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정기적으로 수업할 수 있게 아이들 모아주시고요, 2학기에는 자유학기제의 일환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라고 했더니 바로 다음날 담당선생님을 지정해서 전화도 주시고, 봉사동아리 아이들을 모아주셨어요.
이후 아이들과 프로젝트 이름를 정하고 진행하고 있는데 프로젝트명은 바로 <빠라바라빨래방>입니다. 농촌이라 겨울에는 어르신들이 너무 바빠서 옷을 빨지 못하세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이장님도 만나고 노인정도 방문하면서 빨래를 대신 해드리고 있지요. 앞으로는 인터뷰하고 포스터도 만들어보려고요.
참, 프로그램을 아이들과 진행하다보니 우리의 정체를 궁금해 하시는 아버님들이 계시더라구요. 그분들을 모아서 자신을 표현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별거 아닌데 어느 한 분이 오십 살 넘어서까지 당신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하시면서 진행 내내 우시더라고요. 그 후로 저희 프로젝트에 몇몇 아버님들이 함께하게 되었어요.
김보성
들어보니 딱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이네요.
전지영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말씀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의 삶부터 들여다보고 거기에서부터 사고의 출발점을 찾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이병곤
2주 전 즈음 일본에서 40년 넘게 지역만들기 운동을 해 오신 이케가미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지속가능성과 지역공동체 문제를 이야기하시던 중 뜬금없이 헌법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당신이 한국의 헌법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대단히 훌륭하다는 겁니다. 교육 받을 권리, 노동할 권리, 표현할 권리들이 어디서 실현되는지 생각해보라더군요. 결국 내가 다니는 직장, 학교에서 실현되고 내가 사는 마을에서 실현되거든요. “이것을 볼 때 결국은 헌법을 마을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작업이 지역공동체다. 지역 안에서의 삶도 그래야 되지 않겠냐.” 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김종길
실제로 우리나라 초기 제헌헌법은 중도 사회주의와 함께 유럽식 사회주의와 미국식 법제도 중 가장 좋은 것만을 선취해서 만든 헌법이에요. 그런 내용적인 부분들을 마을 단위로 끌어내겠다는 건 굉장히 급진적인 거네요.
이병곤
김보성 선생님이 10년 전부터 문화예술교육은 마을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주장을 계속 해오셨거든요. 보편적,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누리는 것은 개인으로 보편적 권리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물론 권리 차원을 뛰어넘은 더 깊은 인간의 인문학적인 가치 실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는 단위가 지금까지 중앙 아니면 학교였잖아요.
그것 말고 지역공동체 안에서 이효순 선생님이 하셨던 작업을 다층적으로 만들어가는 일이 다음 단계 문화예술교육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요.
전지영
문화예술교육이 마을단위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혹은 그게 맞다는 생각을 하신 계기가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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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성
기본적인 사회구조가 중앙집권화되어있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가장 큰 모순임은 다 아는 사실이지요. 사실 중앙정부가 만든 정책을 살펴보면 대부분 중앙단위 기관의 실적이 드러나고 담당 팀이 빛나는 사업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사업은 경기도가 중앙정부보다 2년 먼저 시작했던 부분입니다. 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대학이 그것인데요. 사회예술교육이 먼저 서야 학교문화예술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만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이미 실천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인데요. ‘사회문화예술교육의 기본은 지역이고 마을이다.’는 생각은 이미 그때부터 하게 되었지요.
학교문화예술교육을 보자면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작은학교 교사모임 공동체가 있었고. 연수 때마다 모여서 혁신적인 교육사례들을 공유하고 있었어요. 이후 제가 조직과 예산을 가지고 교사분들을 직접 만나러 갔습니다. 그분들과 작업을 하게 되었고 작은교사 연대모임과 함께 다양한 학교 현장에서의 실험들을 시작했어요. 지역중심의 사회문화예술교육이란 콘셉트로 작은학교의 선생님들을 연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대학 안에서 실행되고 있었던 내용으로, 사회문화예술교육과 학교문화예술교육이 통일되어있었던 겁니다.
이병곤
그것이 기전문화대학하고 제가 당시 일하던 광명시 평생학습원이 자주 만나서 프로젝트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지역으로 깊숙이 들어가 문화예술교육을 해야 되는데 그때만 해도 지역사회 여러 조직이나 사람들을 활성화 시키는 곳이 많지 않았어요.
광명시가 전국 최초의 평생학습도시였는데 학습도시 사업을 통해 이미 활성화된 조직들이 있었고, 경기문화재단이 여기에 좋은 프로그램을 지원하여 결합시켜 주었지요. 그때 제가 목격했던 시너지 효과는 정말 가슴 떨리는 것들이에요.
이효순
저도 그때 인천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있었지요. 당시 전교조 선생님들하고 문화예술교육 연수를 했어요. 반응이 참 좋았고, 그분들이 학교에 가서 교과 통합을 시도하기도 하셨어요. 저희는 교과 연계 프로그램을 가지고 들어갔었죠. 10년 전인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김보성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은 두 가지 트랙이 필요해요. 지역 밀착형 마을 만들기 사업, 평생 교육이 한 축이라면, 좋은 전형을 창출해서 전국화 시키는 것이 또 다른 한 축이겠지요. 제대로 된 실력과 내용을 가진 프로그램이 전국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해요. 이 두 트랙이 같이 돌아가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개인기 중심으로 잘나가는 사람만 전국으로 돌며 진행하는 것은 맞지 않아요.
학교에서 입장으로서는 이러한 교육이 이벤트성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으니 착근되지 않는 거예요.
경기문화재단 차원에서 31개 시군단위로 사례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체 기획사업과 엄선된 정예 인력을 가지고 경기도 전역에 지원할 수 있는 커리큘럼과 내용을 개발해내고 역량을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종길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했을 때, 문화예술교육이 실현되는 지점을 작은 마을 단위의 공동체에 맞추어볼 수도 있지만, 삶을 이루는 혹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슈로 돌아가보면 개개인의 인간학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도 집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삶이란 결국 한 개인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삶이라는 말이 어원적으로는 '살'과 '앎'의 합쳐진 것이고 삶을 쪼개면 '살앎(사람)'이 되죠. 그리고 '날 생'자와 '깨달을 각'자를 써서 '생각'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항상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사람이라는 뜻이 한자어와 우리말의 결합을 통해 나타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것이 결국 한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삶의 양식, 삶으로서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서입니다.
문화예술교육은 근본적인 맥락에서 이런 껍질을 벗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 맥락에서 문화예술교육이라고 하는 방법론도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일종의 됨됨이로서의 사람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가치가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라고 가정해본다면 다소 어렵더라도 교육학에서 이야기하는 '인간학으로서의 성숙되기'를 건드려 줄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전지영
이효순 선생님은 문화예술교육 기관에서 실무자의 역할을 하시다 스스로 삶의 방식과 패러다임을 아예 바꾸신 경험치가 있으시지요. 그 계기를 살짝 들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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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순
제가 2013년에 노인들을 위한 유니버셜 디자인을 했는데요, 아이들에게 디자인은 기능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어요. "너희는 그것을 쓸 사람들의 자세와 태도, 삶을 배워야 한다. 노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절대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없다."라고 이야기해주었지요.
저는 문화예술교육으로 아이들과 함께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를 보고, 너를 알고,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 과정을 통해 배우는 거야,"라고 항상 이야기해요. 빨래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도울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그 마음인거에요. 빨래가 돌 동안 할머니 옆에서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요.
관계를 만들려면 내가 서야하지요. 내가 없이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거든요. 자신이 서고, 친구를 보고, 또 옆에 엄마, 아빠도 보고. 그런 단계들을 만들어 가면서 마을로 들어가는 거거든요.
모든 문화예술교육의 기본은 자세와 태도를 배우는 것이고, 그 자세와 태도를 통해서 마을이 되었든, 대상이 되었든, 그렇게 확대된다고 봅니다.
김종길
한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의 철학을 가진 한 주체가 다른 주체와 관계 맺는 만남이 정말 중요하지요. 각각 제대로 건강하게 선 주체들이 서로 기대고, 보살피고 보듬어주면서 건강한 관계도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그럴 수 있을 때 진정으로 공동체가 확장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맥락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중요합니다. 그 마을 안에서 사람을 길러냈고, 보살폈고, 아이들이 컸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늘 학교가 다 해줄 것처럼 말하지요.
김보성
지역사회학교라는 용어가 교육학 용어에도, 행정 용어에도 있어요. 한국전쟁 후 유네스코에서 학교 지원사업을 진행했을 때 ‘학교는 아이들을 위한 배움의 터전뿐만 아니라 학부모인 지역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센터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지금까지 학교가 담장 안에서만 놀았다면, 오히려 배움의 터전은 마을, 지역사회이고 이것은 다시말해 지역사회가 곧 학교라는 것을 문화예술교육에서 진행해왔음을 의미하지요.
전지영
마을, 지역, 이런 이야기를 할 때 한가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어요. 요즘 신도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공허함이 훨씬 크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요. 그럼에도 그들에게 마을이나 지역성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아요.
경기 지역에는 아직도 마을이라는 단위가 존재하고, 구도시, 신도시 등 지역성에 대해 이야기 할 지점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가 갖는 삭막함을 스스로 깨트릴 수 있는 여지가 없어보여요. 가끔 저는 역차별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대도시, 신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다 누리고 있으니 굳이 대안적인 문화예술교육 혜택의 기회를 제공해야하는가'하는 식의 선가르기식 시선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정말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제도 밖 대안적인 문화예술교육이 좋은 것이라면 경제적 풍요에 가려져 정서적, 철학적 빈곤을 겪고 있는 부유한 도시 아이들에게도 그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에는 대상의 가림이 없어야한다는 맥락에서 꺼내 본 이야기입니다.
마을이 아닌 신도시, 아파트에서 이러한 문화예술교육, 공동체적 활동이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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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성
기전문화대학을 운영할 때, 용인 아파트 단지 어머님들 모임 아파트 지하에 있는 유휴부지를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셨어요. 그 결과 주민들을 위한 마을도서관인 장미 도서관이 만들어졌지요. 그곳에서 공동체 모임도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하니 엄마들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고, 이후 마을의 단지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사는 아이들도 도서관에 올 수 있게 되었어요.
이처럼 농촌이 아닌 도심 지역에서도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만드는 것은 문화예술교육으로 가능해요. 실제로 건강한 자주모임이 만들어지면 충분히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과 충분히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저는 경험했습니다.
이효순
제가 2012년 혁신학교인 부평초등학교에 있었을 때 학교를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를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학교는 놀이공간이 충분하니 공연도 하고, 책도 빌려볼 수 있지요. 그래서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잔소리 메들리>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엄마들이 참여하게 되면서 그분들의 결합이 강력한 힘이 되어 학교중심의 프로그램이 지속되었어요. 비록 거칠었고 세련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오고 가는 내용은 무척 의미 있었지요.
전지영
교육학이나 교육철학적인 지점에서도 주체성, 삶의 주체로서의 개인성 등에 대한 강좌가 많은 것으로 알고있는데요.
이병곤
많지요. 사실 그것이 교육학계에서 지난 30년 동안 이어진 논쟁의 핵심이에요. 자유주의(libertarianism)와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 사이에 엄청난 긴장이 있었지요. 김종길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문화예술교육의 특성상 개인의 자각과 체험이 개별적으로 일어나 미적인 체험이 개인적으로 향유되고 개인 안에서 무언가 일어나지요. 그것이 사람의 됨됨이를 바꾸게 하는 힘도 있고요.
그런데 우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주체라는 내적 중심을 갖게 되었는가를 잘 살펴보면, 개인적인 자극에 더하여 가족, 지역, 골목 등 모두 영향을 주거든요.
근데 저는 아나키즘(anarchism)적 사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개인과 공동체가 동시에 중요해요. 국가 또는 자본의 거대한 폭력의 실행주체로부터 개인을 보호해 주는 것이 공동체에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보호 받으려면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 맥락에서의 공동체는 국가가 아닌 마을이거나 이웃이에요. 나를 형성했던 지역, 그것이 바로 공동체입니다.
공동체 안의 주체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아요. 예를 들면 언어 같은 경우. 우리가 언어를 구사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거든요. 호칭어 안에서 관계망이 형성되고 존칭어 안에 이미 나의 서열의식이 녹아들어 있지요. 이건 자기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거든요. 언어가 날 선택했어요. 언어가 날 만들고 있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해서 주체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나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지영
문화예술교육이 어떠한 공학 없이 그냥 시작한 거잖아요. 외람되지만 제가 문화예술교육계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이곳을 처음 들여다보았을 때 과정이 소위 제가 상상한 것처럼 ‘문화예술적’이지 않아서 정말 놀랐어요.
제 입장에서는 중앙 단위에서 내린 지원 사업을 맡아서 일을 하는 것이 제도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느껴졌어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행정업무를 하며 제 팀원들이 속으로 병들어가는 것을 계속 지켜보는 고통이 있잖아요. 실제로 작년에 센터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거든요.
김보성
이야기를 전환하여, 이 자리에 없지만 진현희 팀장은 대한민국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청소년 문제를 문화예술교육의 방법론으로 풀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비행청소년의 문제를 현장에서 문화예술교육으로 풀어가는 <체인지업>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소개해주시기를 부탁드려보겠습니다.
이현주
진현희 선생님을 만나 이것저것 들었는데 홍익대학교 인근의 자원과 공동체가 너무 좋더라고요. 홍익대학교가 청년들에게는 로망이고 또한 독특한 문화예술교육이 형성이 되어있지요. 그러한 환경의 도움을 받아 잘 실행하고 있더라고요.
김보성
우리나라 통계에 전혀 잡히고 있지 않지만 청소년 홈리스가 정말 많아요. 하지만 해결 정책이 어디에도 없어요. 그 해결 방안을 마포문화재단에서 시작한거죠. 비행청소년을 위한 밥차부터 시작해서 아이들이 관심을 유도하고 이후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실제로 <체인지업>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아이를 인디신과 연결해서 기타리스트의 길을 열어주었는데 그 아이가 현재 음반도 내고 실제 음악가로 데뷔하였어요.
이병곤
한 해에 학업을 중단 하는 아이들이 6만 3천명이거든요. 그 중 삼분의 일 정도는 대안학교를 가든, 해외를 나가든 홈스쿨링을 하는데 문제는 나머지 아이들이에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어요. 외국 선진국 같은 경우에는 지방정부가 그 아이들을 책임지도록 되어있어요. 특히 의무 교육 학령기까지는 지방 정부가 학교를 떠난 아이들의 교육까지 책임져야 해요. 영국 같은 경우는 Pre Referral Unit이라는 학교 밖 학교에서 아이들을 모아 가르쳐요.
이효순
저는 아이들이 돈 때문에 가출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가정불화 때문에라서 집에 돌아갈 수 없대요. 그래서 쉼터 같은 곳에 머물곤 하는데,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비록 계속 옮겨 다녀야 하지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하네요.. 다만 치료적 접근이 필요하죠.
이현주
교육이 인성교육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문화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은 공동체가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이고요.
김보성
다시 돌아가자면,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할 때는 제도적인 접근에서 보면 평생교육과의 관계를 떼어놓을 수 없어요. 그리고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을 평생교육시스템에 탑재시키는 방법적인 고민은 이제 광역이 해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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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영
이제 Life-long learning과 문화예술교육은 같은 트랙이어야 해요. 단 문화예술교육은 콘텐츠웨어로 평생학습이라는 하드웨어에 탑재되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보성
예, 긴 시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어 주셨는데요.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을 이 짧은 시간에 다루기에는 한계가 많은 듯 합니다. 그럼에도 다양하고 의미 있는 시간들을 나누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반가운 마음 갖고 돌아가셨으면 하고요. 17호에 수록할 원고는 오늘 나누어주신 이야기들을 근거로 작성해주시되 구체적인 글 제목과 내용은 다시 한번 각자 고민해주세요. 지금까지 기획하셨거나 경험하셨던 사례를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