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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현 _인문학자, 역사학 박사
  • 2015.12.29
16호 곁봄 | 칼럼
『만인보』 가 노래하는 인간과 삼라만상
 
박성현 / 인문학자, 역사학 박사

 

 필자는 젊은 시절,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고 자본주의사회로 넘어가던 과도기인 1992년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었는데, 그곳에서 감탄했던 인상적인 일들 중의 하나가 ‘미적 교육’의 문제였다. 필자에게 미지의 세계이던 러시아미학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설레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처음 갔을 때, 당시는 수작업으로 참고문헌을 찾아야하던 시절이라 도서목록카드들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미학의 여러 연구주제들 중에서 ‘미적 교육’이라는 제목에 속한 목록카드함들이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또 하나의 기억은 어느 작은 소도시의 박물관에서 만난 어린이들의 모습이었는데, 열 두어서너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같이 온 어른들―아마도 부모들―에게 전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어른들은 흐뭇하게 듣고 있는 모습이었다. 수년 후 필자가 귀국했을 때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박물관에 견학 온 어린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로웠던 적이 있다.

 

  미학 문헌들 중에 미적 교육이 가장 많은 목록함들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사회주의 시기 새로운 인간형을 창출하기 위한 정책 안에 ‘미적 인간’의 추구가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었음을 뜻한다. 러시아어로 ‘미적 교육’이라는 용어에서 ‘교육’이라는 단어는 ‘학교교육’이라는 표현에서 상용되는―좁은 의미에서 종종 지적 영역을 상기시키는―‘오브라조바니예’(образование)가 아니라, 한 인격체로서의 양육의 의미가 포함된 ‘보스삐따니예’(воспитание)를 사용하는데, 이는 미적 교육이 전인교육(全人敎育)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방증이라 볼 수 있다. 미적 교육은 인민의 미적 의식을 제고(提高)하고, 미적 체험을 통해 미적 감정, 취미, 미적 지각능력, 상상력과 창조력을 계발하며 궁극적으로 ‘미적 인간’을 지향한다. ‘미적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주위세계와 건설적으로 창조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인간이다.

 

 감성과 이성이 조화를 이룬 미적 상태에서 인간이 총체성을 획득하고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고 본 쉴러(F. Schiller, 1759-1805)의 미적 교육론은 아름다움과 예술이 전인교육의 필요조건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적 지각의 교육인 예술은 궁극적으로 인간성의 교육이고, 반면, 교육은 개개의 인간 원석을 하나의 전인적 인격체로 다듬어가는 일종의 예술이다.

 

  인간의 총체성 혹은 전인적 인간을 완성하기 위한 이 미적 교육의 핵심에는 의심할 바 없이 문학작품이 위치하고 있다. 보통 특정한 주제와 소재를 가지고 주요 인물 몇몇이 등장하는 문학작품들과는 달리, 고은시인의 『만인보』는 온갖 인간군상이 망라되어 있다는 점에서 박물관적인 효과가 있다. 수천의 인물들과, 드물지만 심지어 동물, 자연물까지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인보(萬人譜)의 다른 이름은”, 저자 스스로 완곡하게 밝히고 있듯이, “만물보(萬物譜)”인 것이다 (고은, “만물 혹은 만인 : 『만인보』를 마치면서”, 창작과비평 38(2), 2010.6, 311면). 그래서 『만인보』에는 “불 안 들여 뜯은 방고래에서 / 집 나갔다던 개 죽어 있”어 “아버지가 조심조심 들어다 뒷산에 묻어 주”니 “다음날 […] 비 오자 나뭇잎 컹컹 짖으며 푸르”르기도 하고 (「죽은 개」, 2권), “아침나절은 아이들 차지 / 낮에는 할아버지들 차지 / 밤에는 아버지들 차지 아저씨들 차지”가 되는 공동체 삶의 공간으로, “거기 가면 / […] / 이 세상 혼자일 수 없어 / 혼자 시루떡 먹고 간 배 부끄”러워지는 미제마을 “김재홍 면장네 집 앞 정자나무 / 수리조합사무소 앞 물푸레나무” 밑도 있다 (「정자나무」, 5권).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해 직접적으로 배우게 해주는 『만인보』의 시들은 나와 너와 우리들에 대한 시들이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성찰은 개인의 존중과 공동체의 존중으로 나타나고, 전자는 다시 자신에 대한 존중 즉 자존과, 타인에 대한 존중 혹은 배려로 표현된다. 

 

 

 

  첫 번째, 자존과 존엄, 인간의 품위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시의 예로 「뒷산 도사」(8권)를 들 수 있다 (시 전문 참조). 해방 후 굴곡의 시대에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누군가는 관촌 뒷산 마루 아래 방공호 굴에서 거지로 살아가지만, 그는 “제법 때운 냄비도 / 돌 세워 괴어놓고 / 얻어 온 식은 밥[을] 데워 먹”을 만큼 자신을 존중할 줄 안다. 그는 또한, “때 되면 / 어제 간 마을 아니고 / 다른 마을”로 밥을 얻으러 가는 예의가 있다. “풍에 맞았다 살아나서 / […] / 발등 퉁퉁 부어 / 그 발등 떼어놓기도 힘든 나날”에도 그는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할 줄 안다. 그러하기에, 그가 학질을 앓느라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무방비상태로 인간의 품위를 잃은 모습으로 타인들 앞에 노출되었을 때 우리는 일종의 비애감을 느끼게 된다. 

 

  두 번째,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몸에 배어 늘 도움을 베푸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죽음과 관계된 곳에서 베풀어지는 덕이라면 더욱 빛나는 바, 「대천 노창길이」가 그런 인물이다. “눈 하나는 인두로 눌러 지졌는지 / 푹 꺼져 맥[을] 못 추는” 바람에 눈 하나로 보아야 하는 그이지만, “초상났다 하면 / 제일 먼저 달려가서 / 차일 쳐 주고 / 마당솥 걸어주고 / 큰 멍석 / 작은 멍석 / 둥근 멍석 깔아주고 / 상 내가고 / 상 들고 나오고 / 이렇게 한 이틀 / 초상집 국수에다가 / 막걸리 서너 사발 대접 받고 / 상여 나가는 날 / 마당 구석구석 다 쓸어주고 돌아”가는 사람이다. “동네 초상집마다 / 그렇게 해주는지라 / 울음도 없는 상제 마누라 퍼질러앉아 / 욕보았네 한마디 없어도 / 어디 섭섭한 줄 모르고 돌아”가는 사람, 바라는 거 없이 베푸는 마음이다 (「대천 노창길이」, 8권).

 

  세 번째로, 공동체에 대한 존중 또는 ‘더불어 삶’에 대한 이야기가 『만인보』의 인간학에 담겨 있다. 시인의 어린 시절 마음의 스승인 「머슴 대길이」 아저씨가 그런 삶을 실현하는 인물이다. 그는 한글학습이 금지된 일제 말기 소년 고은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 남하고 사는 세상이란다”라고 가르쳐 준 사람이다 (「머슴 대길이」, 1권). 또한, 떠돌이 등짐장수가 “그만 장삿길에 대바구니값 없애고 / 딱한 처지가 되자 / 선뜻 […] 새경 밑천 뚝 떼어 / 돈을 뀌어주”는 사람이다. 해가 계속 바뀌어도 돌아오지 않는 등짐장수에게 그가 돈을 떼었다고 마을사람들이 떠들어도 그는 초연하다. 마침내 3년 만에 돌아와 빚을 갚으며 대바구니장수가 “돌고 돌다가 이제야 왔네 미안스럽네”라고 하자, 오히려 “그동안 고생 많았지요?”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다 (「대바구니장수」, 1권). 대길이 아저씨의 넉넉함은 “임자 없는 무덤 두 개”를 “머슴이라 주인네 일 틈내어 / 쉴 참 내어 얼른 깎아”주는 데서도 드러나는데, 이러한 그의 행동은 그를 따라 “동고티 동렬이도 거기 가서 낫질”하게 만드는 파급력이 있다 (「벌초」, 2권).

『만인보』의 인간학은 물론 긍정적인 인물들만 다루지는 않는다. 5,600 여명의 등장인물 속에는 수많은 부정적 인물 유형들이 출현하는데, 민중의 경우는 대부분 시인의 애정이 느껴지는 해학적인 묘사로 이루어지는 반면, 지식인의 경우는 그들의 사회적 역할이나 영향력이 갖는 비중으로 인해 화자가 준엄하게 책임을 묻거나, 비판적인 어조를 띠게 된다.  

 

 『만인보』는 이렇듯, 인간을 노래하고 인간을 배우게 하는 인간학 교과서이다. 고은시인이 “만인보의 또다른 의미도 인간 또는 인간사의 대지이기를 바란다“고 말할 때 이런 맥락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시인이 사유하는 『만인보』의 의미가 사실은 이보다 훨씬 광활하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 본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존중, 즉 타인(타자, 타존재)에 대한 존중과 공동체적 삶에 대한 존중은 인간 외의 다른 동물들과 자연물들까지 포함한다는 것, 다시 말해 모든 존재들에 적용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 속에서 기아와 전쟁뿐 아니라 동물학대나 환경오염에 대항해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타존재를 존중하고 더불어 살기 위한 맥락에서이다. 고은시인이 『만인보』의 또다른 의미를 ”더 나아가 땅이라는 유일성을 넘어 무궁한 우주 은하의 성운과 대기권의 풍운 그리고 지구 생명의 연원인 바다 속의 삼차원과 손잡은 우주학적 자연사학적 본능에도 부합“(고은, “만물 혹은 만인 : 『만인보』를 마치면서”, 앞의 글, 314면)할 것이라고 할 때, 『만인보』는 이미 인간학을 넘어 우주론적인 존재학으로 나아가게 된다. 『만인보』가 인간을 노래하는 이면에는 기실 삼라만상의 노래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 모든 시의 인용은 2010년도 완간개정판에서 하였다.)

 

 

 

뒷산 도사

 

관촌 뒷산 말랭이 밑

비나 와야 소리내는

마른 개울 건너

일제말에 판 방공호 굴 안에는

해방 이래 홀아비 거지 하나가 들어 산다

제법 때운 냄비도

돌 세워 괴어놓고

얻어 온 식은 밥 데워 먹는다

찬밥 먹으면 명 짧아진다고

꼭 데워 먹는다

 

밥 먹고 나면

헌 짚멍석에 누워

굴 안이 웅얼웅얼 울리도록

무슨 소리를 한다

과연 도사 아니고 무엇이더냐

때 되면

어제 간 마을 아니고

다른 마을 가세말 쪽으로 가

한술 한술 얻어온다

그 도사 걸음걸이 하도 느린 걸음이라

걸어가는지

머무는지

아예 가재걸음인지

한참 있다 보아도

거기 그대로 있다

풍에 맞았다 살아나서

사람을 보아도

마음뿐이지

어디 고개 제대로 굽혀져야 말이지

발등 퉁퉁 부어

그 발등 떼어놓기도 힘든 나날

허나 어쩔 텐가

걸어다녀야 입에 밥 들어가는데

쉬어터진 묵은 김치 가드락 들어가는데

 

그 뒷산 도사

사람마다 성이 최가라 하기도 하고

유가라 하기도 하고

그 흔한 김가라 하기도 하고

그 도사한테 가서 물어보아라

틀림없이 배가다 배가 하기도 하고

 

몇 사람이 뒷산 밑 도사네 굴로 찾아갔다

어이 도사

자네 성씨가 무엇인가

하고 굴에 대고 소리지르니

학질 한죽 앓는 중이라

그냥 뻘뻘 떨고 있을 뿐

누더기 바지에

오줌 싸

푹 젖어 있을 뿐

장난치러 온 사람들 물러서고 말았다

 

허기야 성이나 이름이 무슨 소용인가

기어가는 짐승 성 있던가

이름 있던가

 

서녘 하늘 낙조에 부자 있던가 거지 있던가

못난 사람이나 제 이름 따라다니느라

죽을 때까지

제 이름 종노릇이지

 

(만인보8, 1989, 출처: 창비, 2010년 완간개정판)

 

일러스트_프롬로즈 윤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