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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수 _안무비평가
  • 2015.12.29
16호 곁봄 | 칼럼
인간의 지혜를 들깨우는 사슴뿔도서관 샤먼은 왜 필요한가
 
김남수 / 안무비평가

 

사슴뿔도서관이란 어떤 위상에 있는가

 

 사슴뿔도서관은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위상을 되찾는 도서관으로 기획되었다. 아니, ‘호모 사피엔스’라니? 새삼스럽게 그 무슨 망발을? 이런 반응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색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자. 지금은 신자유주의라는 ‘악마의 맷돌’이 인간을 콩처럼 넣어서 두유로 갈아버리는 자본주의 체제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아니다. 칼 폴라니에 따르면, 인간을 자원으로 삼아서 기기깅 돌아가는 ‘악마의 맷돌’이 갑인 세상이다. 언제부터? 사실은 산업혁명 때부터! 인간은 1968년 “상상력에게 권력을!”이라는 표어를 던진 적도 있지만, 지금은 맷돌에 갈려서 좀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실상이라면 어떡하겠는가?

 

 사슴뿔도서관은 판교테크노밸리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8층에 자리잡고 있어서 모두 한 가닥 오해를 한다. 호모 사피엔스? 좋다. 생각하지 않는 자기긍정, 자기계발의 처세형 인간들이 온만신에 걸어다닌다고 치자. 거기서 지금 정권의 목표인 ‘창조경제’, ‘문화융성’을 위해 밑밥을 까는 지식 공작을 하는 거잖아? 아냐? 진심으로 말하지만, 전혀 아니다. 사슴뿔도서관은 문화산업에서 말하는 콘텐츠 생산, 인문학+테크놀로지+산업이라는 융합적 수익모델이 요청하는 콘텐츠 생산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 지금 판교테크노밸리든, 무슨 융복합예술이든 캐치프레이즈화된 것은 지식편집의 통속적인 버전이다. 인문학을 도구적 이성이자 자원으로 삼아서 바삐 지식의 조각보를 만들자는 것인데, 이것은 철지난 포스트모더니즘에도 한 자락 걸쳐져 있는 비루한 방법이다. 

 

 

<사슴뿔도서관은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위상을 되찾는 도서관으로 기획되었다.>

 

 웅숭깊지는 않다고 해도 지식이 지금의 승리한 지식으로 머물러 있는 형태를 거슬러 올라가서, 즉 지식의 고고학적 역행을 통해서 지식화되지 못했거나, 지식이지만 서구의 지식에 패배당한 지식, 혹은 굴종당한 지식을 재호출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의 토대 없이 그저 들뢰즈니 레비나스니 지젝이니 하는, 유행하는 사상을 가공하고 패러프레이징하는 것으로 한두 계절을 땜빵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아무리 비판적인 지성이 인문학의 핵심이라고 해도 결국 서구중심주의에 재포획되어 헛물을 켜는 격이 되어버리는 것이 현재 인문학계의 다반사 아닌가. 

 

 

사슴뿔도서관이란 무엇인가

 

 사슴뿔도서관은 20세기초 독일에서 아비 바르부르크라는 강호 인문학자가 신화학, 인류학, 문학, 철학, 미술사, 과학 등등의 분과학문을 종횡무진, 최대한 교차시켜서 만든 ‘핵심 아이디어’를 비단뱀처럼 칭칭 감아서 새로운 생명적 느낌으로 차오르는 지식의 형태를 만드는 도서관을 재발명했다. 소위 바르부르크 도서관은 16세기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에서 잠깐 꽃피웠다가 서구의 지식생산에서 영원한 잠재성으로, 그러나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해온 ‘마니에리슴’에 기초한 것이다. 즉 인간의 잡동사니 사물과 지식들을 한데 ‘비벼서 엮는 것’(백남준)으로서 신의 얼굴 혹은 신의 목소리를 출현시키는 완전한 지식을 결합한다는 것이다. 지나간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결합술[ars combinatorial]의 한 형태지만, 불행히도 속류 니체이즘에 영향받은 건방진 휴머니스트들이 완전한 지식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신성성[the divine]을 상실해버렸다. 지금 교토대라든가 도쿄도립대학에서 활발한 ‘마니에리슴’ 붐은 바로 “알고 싶지만 알게 되면 금방 싫증난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냉소주의적 지식욕을 타개하려는 새로운 시도이다. 

 

 사슴뿔도서관은 인간의 지식이 지식이라는 도구적 이성의 영역에 여전히 계몽 신화로서 머물러 있는 것에서 많은 문제점이 빈발하고 있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라는 것을 진단하고, 지식의 결합술이 아예 합성술[ars synthesia]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의 용광로를 만들고자 했다. 이 합성술이란 바르부르크 도서관이 썼던 지식편집에서 이미지 내러티브에 더해서 책이라는 무한우주, 증식우주를 해방하여 컨텍스트 내러티브를 곁들인 것이다. 우리는 현재 책이라는 공포가 있다. 사슴뿔도서관은 ‘독서’하지 않고 ‘용서’한다. 이때의 ‘용서’는 用書이다. 책을 사용하기. 어떻게? 우선 아이들의 순수한 즐거움을 상기해보자. 아이들은 책을 보면 적극적으로 찢는다! 그 찢는 음향과 찢는 우발적 모험을 사슴쁠도서관은 사랑한다. 

<오래전 북방의 샤먼들은 사슴뿔을 쓰고 굿을 했다.>

 

 “용서하자!” 라는 것. 온갖 장르와 분야의 책들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의 문장이거나 한 패러그래프거나 한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나머지는? 우리는 300페이지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남기지만, 그것은 시간 속에서 희미하게 흩어지는 인상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책의 한 강렬한 부분을 찢어내라. 맥락에서 찢어내어 동기감응시켜라. 즉 같은 기운의 컨텍스트 내러티브를 구성하라. 이런 것이다. 사슴뿔도서관이 지식의 용광로를 만드는, 합성술을 구사하는 작업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가장 소박하고 가장 가벼운 충동, 즉 책을 대범하게 찢을 수 있는 유희로부터 발생했다.

 

 

샤머니즘으로서의 매개자

 

 사슴이란 동물을 보자. 이 동물은 머리 위에 식물을 이고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이 식물은 나뭇가지처럼 생겼고, 뇌과학의 용어를 따르면 ‘수상돌기’의 넝쿨숲이다. 우리의 뇌 속에는 넝쿨숲의 나무가 1천억 그루 있다고 한다. 대략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무의 개체수가와 일치한다. 이 기묘한 내부와 외부의 동시성! 게다가 시야를 확장하면, 우리가 살고있는 우리 은하계의 별들의 수가 또한 1천억 개라고 한다. 지대무외 지소무내! 마이크로한 세계와 매크로한 세계가 신기하게도 동시성을 보여주는데, 이 사슴뿔의 형상은 인간의 ‘생각’이 우주의 ‘존재’와 박자 감각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렇다. 이 사슴뿔은 인간이 ‘굿 아이디어’를 내놓을 때, 발생하는 신경세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사슴뿔로 된 금관을 쓴 샤먼 킹은 ‘호모 사피엔스’가 지향했던 초인이었다. 이 초인은 소우주로서의 인간계 지식과 대우주로서의 자연계 지식을 결합하고 상호소통시키는 샤먼일 수밖에 없었다. 양자역학과 우주물리학이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마이크로와 매크로 사이를 매개하는 이러한 샤먼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졌다. 사슴뿔도서관은 ‘호모 사피엔스’가 서구 근대라는 분석적 지식으로 수렴되는 존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 삶과 죽음, 성스러움과 속됨, 사냥과 숭배, 의식과 무의식 등등 양가적인 세계를 전체로서 받아들이는 존재였음을 상기하고자 한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편집의 작업이 아니라 인간이 본래 이 자연과 우주 속에서 하나의 ‘동물’로서 오히려 신성한 것을 느꼈던 존재임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식의 합성술로서 신성성을 회복하는 것. 이것은 우리가 현재 <아바타>,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같이 자연과 우주로 성큼 나아간 SF 영화에서 샤머니즘의 정서가 훅 하고 깔리는 이유와도 상통한다. 

 

 

일러스트_프롬로즈 윤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