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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실천적 철학으로서의 ‘(문화)예술’을 사유하다
  • 전성원 _황해문화 편집장
  • 2015.12.29
16호 곁봄 | 칼럼
삶의 실천적 철학으로서의 ‘(문화)예술’을 사유하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활동적 삶(vita activa)’이란 용어를 통해 인간 삶의 조건을 ‘노동과 작업, 그리고 행위’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분하고 있다. 노동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생산되어 삶의 과정에 투입되는 모든 활동을 뜻한다. 노동은 삶의 지속과 유지를 위한 생물학적인 과정이다. 작업은 예술, 문화 활동 등을 포함한 창의적인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노동처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이나 생물학적 삶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창의와 상상을 표출할 수 있는 일련의 과정들을 모두 작업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행위는 시민적 관계 속의 삶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활동을 의미한다. 로마인의 일상언어에서 ‘살다’라는 단어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다’라는 뜻으로, ‘죽다’는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정치적인 단어이다. 사람은 나 홀로 생계유지를 위해 ‘노동’을 하고, 나만의 예술적인 삶을 위해 ‘작업’을 할 수도 있지만, ‘행위’는 반드시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렌트는 노동과 작업도 인간의 삶의 조건이지만, 인간을 인간되게 만드는 것은 행위와 실천이라고 말한다.

 

 예술은 곧 아름다움, 미(美)에 관한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런 인식은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형성된 관념일 뿐 역사 이래 더 오랜 세월동안 예술은 삶과 일상의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해왔다. 서구에서 예술(art)이란 말은 라틴어 ‘아르스(ars)’에서 왔고, 이 말은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techne)'에서 왔다. 테크네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무엇인지 아는 것, 다시 말해 ‘도구적(기술적) 이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테크네를 활용해 물건 등을 제작하는 것을 그리스 사람들은 ‘포이에시스(poiesis)’라고 했는데, 이것이 라틴어로 옮겨져 ‘포에시스(poesis)’가 되었고, 다시 영어로 가서 ‘포이트리(poetry)’, 즉 ‘시(詩)’가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서구에서 ‘언어를 다루는 기예(文藝)’는 ‘가구를 제작하는 기예(工藝)’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기술(藝)’의 하나였던 셈이다. 테크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앎의 범주 안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포이에시스 역시 이성적인 규칙에 의거하여 행해지는 모든 실천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베틀을 만들거나, 도자기를 굽는 일은 물론 학문이나 웅변술을 연마하거나 병사를 조련하는 일, 회화와 조각, 건축 같은 일 따위도 모두 여기에 속하는 일이었다. 고대에는 지성적 인식을 추구하는 진(眞)과 도덕적 인식을 추구하는 선(善), 감성적 인식으로서의 미(美)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닌 인간이 추구해야 할 참다운 가치로서 통일성을 이루고 있었고, 이것을 전인적 가치라고 불렀다.

 

<2014년 진행된 문화예술교육 국제워크숍 '천국으로 가는'은 

 

우리 사회에서의 유토피아가 실현될 수 있고 천국은 낯선 곳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나 근대 계몽주의의 추구 이래 아름다움에 대한 감성적 인식은 지성적 인식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자적인 것으로 여겨지면서 아름다움, 미(美)는 학문과 윤리로 환원될 수 없는 예술의 몫이 되었다. 18세기 바움가르텐(Baumgarten)이 미를 감성적 인식의 완전성으로 규정하고, 미를 예술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예술=미’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근대예술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근대의 특징 중 하나는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에서 지적했듯이 과거에는 고상한 예술가나 직업으로 분류되었던 것조차 자본주의적 전문 직업군의 하나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예술가는 중세교회나 궁정의 장인에서 분화되어 아름다움을 일구는 전문적인 직업으로 인식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근대의 예술은 중세교회와 궁정의 권위로부터 탈피해 자유를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예술은 낭만화되었고, 일상의 삶과 분열하기 시작했다. 현대예술에서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자본주의와 기술문명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존재 조건이 변화하고, 분열된 주체로서의 인간을 극복하기 위한 예술적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예술교육현장에서 삶과 예술은 여전히 근대 자본주의와 산업으로서의 전문가 양성의 틀 안에 갇혀 있는 듯 보인다.

 

 한나 아렌트는 ‘문화’란 “행위하는 인간에 의해 정치적으로 안정을 얻는 공적 영역이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며, 또 아름다운 것인 그 사물들을 전시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문화는 “문화와 정치의 갈등과 긴장에도 불구하고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심지어 상호의존적”이라고 주장한다. 굳이 아렌트의 말에 따르지 않더라도 일상의 삶이 축적된 문화와 일상의 삶을 결정짓는 정치는 결코 상호대립적일 수 없으며 서로를 규정짓는 힘이란 점에서 상호의존적이다. 우리가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논의하지만 그 모든 논의가 결국 정치적인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러나 이때의 상호의존적이란 말은 정치가 잘되면 예술도 저절로 잘 될 것이란 뜻이 아니다.

 

 정부 등 공공부문이 문화 부분에 개입하는 일련의 행위 및 상호작용을 문화정책이라 정의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문화와 예술이 정부의 정책으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제5공화국 시절이었다. 롤랑 바르트는 “거짓말보다 신화가 더 많은 것을 속인다”고 이야기했는데, 출범 당시부터 정치적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었던 5공 정권은 강권적 통제를 위장하기 위한 수단(soft power)으로 문화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시기의 문화예술정책은 과거 전통문화 중심에서 국민의 문화복지, 지역 문화 발전에 대한 투자 등으로 확대되었으며, 대중문화의 붐을 이끌었다. 5공이 독재를 위장하기 위해 문화예술을 동원했다면, 1987년 6·10항쟁 이후 등장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새예술정책’, ‘창의한국’ 같은 문화정책은 문화·예술을 ‘산업’ 차원에서 대상화하고, 경제적 효과와 그 결과에 치중하는 경향을 문화사회 담론으로 은폐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부터는 그런 노력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이전 정부들이 추진했던 문화예술정책 자체가 전면 폐기되거나 퇴보하였다. 경제성장을 제1순위로 표방한 이명박 정부에 들어 문화예술정책은 ‘경제의 전체주의’라고 해도 좋을 만큼 모든 순위에서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지난 IMF외환위기 이후 공동체의식이 급속도로 붕괴되면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사회가 된 뒤부터 권력의 의지가 인문학 연구와 수용, 문화 행위, 예술창작과 향유 등 전반을 규정하고, 강제하는 유일한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의 “우리도 일본 닌텐도처럼 창의성 있는 제품을 개발할 수 없느냐?”는 발언이다. 이 발언은 당시 일본의 닌텐도DS란 게임기의 인기를 보고서 우리도 문화적 창의성을 발휘해 경쟁력 있는 (문화)상품을 개발할 수 없느냐는 것이 요지였다. 이보다 2년 전인 2007년 애플은 최초의 스마트폰인 아이폰2G를 출시해 닌텐도를 이미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토목건설기업의 CEO 출신 대통령은 이런 눈앞의 상황조차 볼 수 없었고, 보려고 하지 않았다.

 

 예술교육 전문가인 앤 뱀포드는 예술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소통수단으로 인류에게 예술은 언제나 가장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했다. “모든 사회는 예술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예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수록 그 사회에서 예술은 발전”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사회의 반영이 아니라 사회 그 자체인 셈이다. 근대 예술은 지금까지 정치, 종교, 권위 등으로부터 멀어져 스스로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싸워왔지만(arts for its own ends), 현대 예술은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간에 스며들어 개인과 사회의 창조적 삶의 매개라는 사회적 가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술이 이처럼 변화해가는 이유는 노동과 작업, 행위로 분열된 일상의 삶과 예술을 통합하고, 그 중에서도 행위로서의 예술을 강조하여 분열된 근대의 주체들을 다시 전인적인 존재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 상호관계 속에 살아가는 ‘전체로서의 세계’를 조망하려는 노력, 인간존재를 해명하여 세계의 미래를 현재화하기 위한 ‘실천적 삶(vita activa)’이 바로 예술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형식이나 기교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삶을 연결하는 사회적 매개체이며, 예술의 창조성이란 구체적인 형태를 가진 예술작품, 창조적 결과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극복의 삶을 창조하도록 매개하는 것이다. 예술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해석과 하나의 진리를 강요하지 않고 개별적 주체의 기호나 흥미, 관심이나 욕구, 이성과 세계해석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예술적 매개는 개인과 사회의 보다 열려진 삶의 창조 과정에 기여한다. 자본과 권력의 논리가 대중의 감각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 상호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공동체의 장마저 소멸시켜 가는 지금, 예술교육은 인간을 인간되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예술의 철학을 만들어내는 생성의 장이 되어야만 한다.

 

일러스트_프롬로즈 윤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