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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교육이 인성교육이며, 인성교육이 예술교육이다
  • 권재원 _성원중 교사, 우리교육 편집위원
  • 2015.05.29
16호 곁봄 | 칼럼
예술교육이 인성교육이며, 인성교육이 예술교육이다
권재원 / 성원중 교사, 우리교육 편집위원

 

 2016년부터 인성교육진흥법이 본격적으로 적용된다. 국가, 지자체, 학교는 의무적으로 인성교육을 위한 예산을 편성 실시해야 하며, 교육부는 그 성과를 평가하고, 이 교육을 담당할 인성교육 단체, 교육원, 프로그램을 인증해야 한다. 얼른 들으면 그럴듯하다. 공부보다는 인성, 즉 사람 됨됨이가 더 중요하다는 논리는 교육 현실을 비판할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논리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기에는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 인성교육에서 목표로 삼아야 할 ‘사람 됨됨이’가 어떤 종류의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누구는 ‘나라사랑’, ‘전체를 위한 희생정신’ 같은 것이 바로 그 됨됨이의 핵심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혹은 웃사람에 대한 순종, 혹은 예절 따위를 됨됨이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냉전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반공정신’을 됨됨이의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하기까지 할 것이다. 물론 오늘날 이런 것들이 바람직한 사람 됨됨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분명 이러한 주장들은 그 시대에는 진지하게 고려된 것들이었다. 이와같이 바람직한 사람 됨됨이에 대한 기준과 원칙은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르다. 즉 도덕은 상대적이다.

 

<한국 최초의 민족학교 '오산학교'는 민족정신 고취와 인재양성에 뜻을 두었다.>

 

 하지만 도덕이 완전히 상대적인 세상은 살아있는 지옥이나 다름 없다. 옳고 그름, 선과 악의 기준이 사라지기 때문에 누구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고, 어떤 형태의 사회도 유지될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지구 전역에 걸쳐, 그리고 수천년에 걸쳐 문명사회를 만들어왔다. 이는 시대와 장소가 아무리 달라지더라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도덕 원칙이 있다는 증거다. 이른바  ‘황금률’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으면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동아시아)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기독교)

“남이 했다면 비난 했을 일을 너는 하지 말아라.”(고대 그리스 탈레스)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모든 타인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단순히 수단으로 서만 사용하지 말고 동시에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행위하라.”(근대 서양, 칸트)

 

 그 밖에도 거의 모든 시대, 거의 모든 지역의 종교와 규범에서 이와 흡사한 것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즉 너의 처지와 다른 사람의 처지를 다르게 보지 말라는 것, 소위 말하는 “입장바꿔 생각하기”(易地思之)가 바로 가장 보편적인 도덕원칙이며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사람 됨됨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황금률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존중하는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실천은 한결같이 “남이 원하는 것을 하라.”가 아니라 “남이 너에게 해주었으면 하는대로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타인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타인존중을 빙자한 이기주의가 아닐까?

 

 절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우리 자신의 마음을 통해 이해할수 밖에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이 공연한 말이 아니다. 우리는 타인의 마음은 커녕 자신의 마음조차 읽어내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타인의 마음, 다른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가를 직접 들어보던가 아니라면 미루어 짐작해 볼 수 밖에 없다.

 

 만약 고려하고 배려해야 하는 타인이 한 두사람이라면 직접 물어보고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타인이 불특정 다수이거나 대면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미루어 짐작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면대면 관계가 어려운 불특정 다수의 타인들을 상대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황금률, 즉 가장 기본적인 사람 됨됨이는 불특정 다수의 뜻과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과 태도다.

 

 그렇다면 이 불특정 다수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다행히도 인간의 보편성에 기댈수 있다. 홉스의 말대로 사람들간의 차이는 특권이나 특별한 대우가 필요할 정도로 편차가 크지 않다. 따라서 나 자신과 불특정한 타인간의 차이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나를 기준으로 삼아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내가 ‘타인이 되어 보는 것’이다.

 

 이때 두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는 다른사람의 입장에 나를 집어넣어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현실의 벽을 넘어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마치 현실처럼 생각할수 있는 능력, 즉 상상력이다. “만약 내가 왕이라면~”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내가 왕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상상력을 통해 왕이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왕으로서 신하들에게 듣고 싶은 말과 듣기 싫은 말이 무엇인지 미리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실제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어떤 느낌을 받을 것인지 아는 것을 넘어 공감하는 능력이다. “내가 ~ 라면 이 상황에서는 매우 슬플 것이야.”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실천까지 가지 않는다. 실제 그 슬픔을 느낄수 있어야 실천의 동력이 생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정서를 단지 아는 수준을 넘어 같이 느낄수 있는 능력을 ‘정서적 공감능력’이라 한다. 결국 인성, 도덕성, 혹은 바람직한 사람 됨됨이의 핵심은 다름아닌 상상력과 정서적 공감능력이다.

 

 

 

<상상력은 공감능력에서 비롯한다.>

 

 한나 아렌트가 나치의 전쟁범죄자 귄터 아이히만과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사실도 특별한 악의, 잔인성, 사악함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아이히만은 단지 상상력과 정서적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메마른, 그러면서 근면한 심성의 소유자일 뿐이었다. 상상력과 정서적 공감능력은 ‘착함’의 근원이며, 악은 다만 이 능력의 결핍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결핍이 근면성과 결합될때 바로 악마가 탄생한다.

 

 문제는 상상력과 정서적 공감능력은 태어나는 순간 장착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늘어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들은 꾸준한 교육과 훈련의 결과다. 물론 인간은 안면인식능력과 거울뉴런을 통해 직접 얼굴을 볼수 있는 타인의 마음은 헤아리고 그 정서도 느낄수 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교육을 통해 일반적 타자의 관점을 취득한 다음에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움베르또 마뚜라나는 도덕이란 ‘올바른 것을 아는 것’(know what)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을 ‘수련하는 것’(know how)과 관련된다고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그 수련의 내용은 무엇일까? 이미 수천년 전에 인류 역사상 최초의 직업 교육자인 공자가 보여주었다. 다름아닌 예술교육이다.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교재는 다름아닌 엄선된 시집『시경』과 음악(악기)였다. 물론 공자는 글재주나 악기 연주법을 가르치고자 하지 않았다. 순임금과 같이 선량하고 위대한 인물의 작품을 감상하고 연주하게 함으로써 그 작품을 창작할 당시의 어질고 선한 마음에 공감하도록 하는 것이 그의 교육 목표였다.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현재 눈 앞에 없는, 심지어 죽은지 오래된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함께 체험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사실 도덕의 황금률 자체가 일종의 예술적인 활동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연극이나 영화에서 역할을 맡는 것과 흡사하다. 또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이 그에게 행할 작위 혹은 부작위의 결과와 그 사람의 감정을 예상하는 행위는 일종의 이야기(narrative) 창작 활동이나 다름없다. 다양한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또 실제 창작 활동에 참여했던 사람이라면 이런 일들에 능할 것이다. 그러나 예술적 체험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일상생활의 범위를 벗어나는 상황을 상상하고 느끼는 일을 힘들어 할 것이다. 즉 그만큼 비도덕적일 것이다.

 

 근래들어 갈수록 세상이 각박해지고 인성이 황폐해진다는 탄식소리가 높다. 그러면서 이른바 인성교육, 즉 사람 됨됨이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살펴본 바와 같이 사람 됨됨이의 가장 중요한 근간은 상상력과 공감이다. 그리고 예술이야말로 상상력과 공감의 보고라는 사실은 공리나 다름없다. 안 그래도 바쁘고 복잡한 학교에 인성교육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 공자가 실천을 통해 보여주었듯이 예술교육을 더 강화하고 내실있게 운영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인성교육이다.

 

 

일러스트_프롬로즈 윤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