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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원재 _문화연대, 지지봄봄 15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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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더봄 | 방담회
지역사회에서 문화예술교육의 과제와 비전
이원재, 김월식, 박형주, 송수연, 전지영

 

 
 
 
일시 : 2015.10.30 19:30
 
장소 : 사당역 달여울
 
참여자 
 
 - 이원재(문화연대, 지지봄봄 15호 편집위원) _ 사회
 
 - 김월식(무늬만 커뮤니티) 
 
 - 박형주(하자센터)
 
 - 송수연(문화연대)
 
 - 전지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센터장), 박아롬(지지봄봄 담당자), 오린지(지지봄봄 코디네이터)
 
 - 한상은(녹취)
 

 

 
이원재(사회)
 문화예술과 관련해서 (‘지지봄봄’ 같은) 이런 저널이 없지요. 토론은 종종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문화예술교육 관련된 담론을 담은 저널은 없었어요. 
 오늘 좌담은 이번 주제 중에서도 지역문화예술에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문화예술교육의 이론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는 내일 하실 분들이 따로 있기 때문에 오늘은 현장과 좀 더 가까운 이야기를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현장에 오래 계셨으니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진행을 맡게 되어 화두를 네 개 정도 준비를 했는데요, 꼭 여기에 국한되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시면 되고요. 먼저 질문을 하나 드릴게요. 저는 개인적으로 문화예술교육에서 지역문화예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역문화예술 교육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형주
 지역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오래전부터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더군다나 사회와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지요. 그런데 왜 이런 이슈들이 다시 떠오를까를 생각해보면, 그만큼 사회 자체가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결핍에서부터 그 반대급부로 더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건데요. 지역사회의 활성화는 예전부터 많이 이야기되어 왔는데 왜 이런 이슈가 다시 제기되느냐 하면,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문화는 생활을 기반으로 하지요. 
 그 생활의 이면에는 생존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생존과 생활의 단계를 넘어서서 문화 단계까지의 기반이 있는 것인가 물었을 때, 대답은 ‘없다’는 것이지요. 삶을 탁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 자체가 붕괴되다 보니 이것에 대한 갈급함이 본능적으로 그것을(지역사회를) 찾는 것 같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들어요.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역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삶이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보는 도구로서 문화나 예술이 쓰이지 않으면(도구라는 표현이 조금 그렇긴 한데),
 혹은 그런 루트로서 활용이 되지 않으면 자칫 단순히 지역의 자원을 얼마나 활용하고 밖에서 얼마나 많은 활동을 하는지 등의 상식적인 틀에 얽매이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금 시대에서 지역사회의 필요성 혹은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생활 세계 자체가 붕괴가 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복원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의식 속에서 지역사회라는 담론이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안에서 문화예술은 지역사회의 회복에 어떤 식으로 기여를 할 것이냐에 대한 과제를 계속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교육이라는 것이 회자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전지영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지역’이라는 의미가 가끔 혼란스럽거든요. 특정 지방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살아가는 지형을 말하는 것인지요. 
 

김월식
 예전에 월간미술에 나왔잖아요. ‘지역은 있지만 지방은 없다’고. 그 말은 중심의 대비로서의 지방이라는 것이 아니라 중심 주위에 객체가 모여 있는 것이 지역이지요. 
 
박형주
 단순히 지역사회라고 봤을 때 물리적인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물리적이다 하더라도 삶의 터전이라고 하는 것에 가깝지요. 내가 어디에 살고 있고, 어떤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지요. 문화예술교육이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취지로 시작된 게 아닌가 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의 출발도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계하는 것으로 시작을 했었고요. 사실 그 안에서 지역사회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방이 아니라 당신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우리가 어떤 양식을 가지고 보는, 일종의 돋보기와 같은 의미였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반문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안 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안보이기 때문에 계속 지역사회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몇 가지의 키워드, 가령 자원을 어떻게 활용했느냐 등에 국한되어 형식적으로 지역연계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이원재
 사회적 위기, 결핍, 구조의 변화에서 지역과 지역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이 제기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문화예술교육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지역이라는 것이 영토적 구획이나 물리적 공간의 문제를 넘어서 중요한 삶의 가치인 것 같아요. 지역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관계, 커뮤니티, 일상이라는 가치가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지요. 우리는 그동안 일방적인 물리적 팽창, 개발주의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살아왔고 그것을 일반적으로 글로벌화라고 이야기해 왔다면 그것들이 가지고 온 삶의 위기들이 있잖아요. 
 최근에 자주 이야기되는 관계나 커뮤니티의 소멸처럼, 지역은 이러한 삶의 질감, 관계, 커뮤니티 등을 고려하는 가치를 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이웃이라고 생각할 때랑 나와 무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관계가 완전히 달라지잖아요. 그 사람이 아파보일 때, 그 사람이 사고를 쳤을 때, 저 사람이 내 동네 이웃이고, 누구 아들이고, 혹은 내 친구 형이고 이런 거랑, 모르는 사람이랑은 다른 것처럼 사회 전반적으로 소멸됐던 것들의 가치를 고민할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이게 문화예술교육과 중요하게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현실 교육의 상당부분이 삶의 터전의 접점과는 괴리된 채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제도교육, 학교교육을 오랫 동안 받지만 실제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삶의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화예술교육, 특히 지역문화예술교육의 중요한 역할과 가치가 부상하고 있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자연스럽게 자라나면서 또래문화 로 배울 수 있었던 것들이고, 동네 형들, 골목에서 다 배웠던 것들인데, 지금은 상품으로 구매해야하는 사회가 되었으니까요. 이것을 뭐라고 표현하던 삶의 질감을 느끼고 교육하는 과정에 대한 필요들이 높아진 것은 사실인 것 같고, 문화예술교육에서 아름다움이나 창의성 같은 것도 중요하지만 생활, 생존 그리고 관계 등의 맥락에서 지역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월식
 체육하고 놀이도 과외를 하는 것을 보고...(그렇죠) 사실 불과 30년 터울의, 한 개의 세대가 흘렀을 뿐인데 말이지요. 그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요. 삶을 관찰하고 사유하고 성찰하는 방식, 그리고 소유까지 이끌어내는 방식이 지금과 같이 부재하다면 지역을 특별히 가르치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저도 몇 해 동안 전국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가이드라인이 너무 정책적으로 지역성에 꽂혀 있으면 그 지역에 대한 컨텐츠들이 너무 유사하게, 그게(가이드라인이) 없으면 전국이 유사하게 나타나는...(현상이 있어요.) 뭐 특별히 어디라고 이야기는 안 하겠지만(웃음).
 오히려 문화다양성의 측면에서 보면 컨설팅이라는 가이드라인 자체가 굉장히 위험한 거구나 생각했지요. 그래서 그렇게 가이드라인이 제한되기보다는 개인적인 삶의 욕망이 편협할 정도로 다양해야지 만이 이 지역성이 훨씬 더 발현될 거예요.
 다시 말하면 이웃과의 관계가 늘 긍정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 차이들이 기본적으로 존중되는 것이 다양성이 병존하면서 사는 세상인데, 그런 것들을 자꾸 봉합하려고 하는 것이죠.
 첫 번째로 제한적인 것은 너무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안에서 아이들에게 ‘의당 윤리적인 것’들, ‘뻔한’ 것들을 교육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지금 문화예술교육기관이 전국적으로 오픈 소스가 되면서 그것들의 카피를 통해 확장되는 컨텐츠들입니다. 지역을 읽고 사유할 수 있는 능력들이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늘 문제인 것이지요. 그 두 가지가 지금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원재
 제가 자주 쓰는 말인데요, ‘왜 공공기관의 문화예술교육 결과보고서에는 늘 많은 아이들이 웃는 모습만 나오나요?’(웃음). 아이들이 웃는 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프레임이 다 짜여 있다는 거잖아요. 양적 프레임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늘 희망고문처럼 웃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부분에서는 문화예술교육의 다양성 혹은 본질성하고도 관련이 되는 것 같아요. 지역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송수연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송수연
 아까 이야기하신 것들에 대체로 동의해요. 제 생각에는 사람들의 생활이나 삶에 대한 관심, 자기 시공간에 대한 계획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고요. 일상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앞서 이 질문에서 잠깐 지역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봤는데요, 저는 제 그라운드를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들이 있습니다. 그게 혼자서는 할 수 없고 함께할 수밖에 없는, 제가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는 동료들을 만드는 것이지요. 그것을 지역이라고 따지면 이웃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그라운드를 새롭게 만드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요, 질문 역시 이런 문제와 맞닿아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고요. 
 제가 문래동에서 활동을 하지만 사실 문래동의 지역성이 있는 활동은 전혀 안 해요. 일부러 예전과는 다르게 관계 맺는 것에 거리를 두는 편인데요, 한편으로는 거리를 둠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분들이 또 새롭게 모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그라운드를 만드는 게 아닐지, 또 사람들이 자기 그라운드를 만드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아 그 필요성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김월식
 제가 두 가지를 딱 들어서 간단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지금 제가 있는 수원이라는 곳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화성으로 유명하지요. 그렇다면 수원의 지역성이라는 것은 늘 그런 것만 있는 것이냐 생각해보는 겁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은 지동이에요. 오원춘 사건도 있고 해서 분위기도 흉흉했는데요, 제 작업실 옆에 현대 지동 슈퍼마켓이 있어요. 30년 동안 슈퍼를 했는데 망했어요. 그리고 바로 그 옆 건물이 서울목욕탕이에요. 그러니까 근대의 지동은 현대랑 서울을 쳐다보고 있었던 거예요.
 제가 생각했던 지동의 삶의 맥락은 그런 근대화되고 싶었던, 현대화되고 싶었던, 혹은 서울과 같아지고 싶었던 ‘욕망’의 지동이 포함되어 있다는 거죠. 그런 지역적 삶을 읽고 그 욕망들을 사유하고 그걸 반영하는 것들이 올바른 게 아닌가 생각을 해보는 것이지요.
 
이원재
 중앙에 대비되는 변방으로서의 지방이 아니라 삶에 천착하는 그라운드로서의 지역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다들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지역문화예술 지원정책은 그런 것들을 적절히 지원하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또 지역문화예술정책이나 제도가 그런 취지와 가치를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그 부분이 느껴지지 않아 어려움들이 많잖아요. 
 
김월식
 잘 따르지는 않지만 해마다 이런 식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선 제안된 가이드라인들이 오히려 예술가 혹은 예술가 집단의 자율적 상상력을 침해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10년 동안 문화예술교육이 지원했던 일련의 공모 방식이라는 것들이 문제라는 것이죠. 사실 문화예술교육에서 교육자들이 하는 것들이 예술가만의 혁신적이고 동적인 읽기와 수행이 포함되어야 하는데요, 그런 것이 없이 사설학원하고 경쟁하는 듯한 프로그램들도 양산이 되고요. 그래서 야생성이 떨어지고 다들 고만고만해지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지원을 받아야 단체들도 그걸로 운영도 하고 인건비도 주고 하는 건 생존의 문제니 어쩔 수 없는데, 그런 것들이 지속적으로 가는 게 과연 타당한지 질문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지원방식을 좀 더 건강하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해마다 기획서용 컨텐츠들이 난무하고, 전국이 똑같은 것을 하고....... 그야말로 무난하고 ‘하향평준화’되는 것들이 있었지요. 오히려 지원정책은 새로운 요구에 부응할만한 것들에 일정량 파격적으로 실험을 해볼 수도 있겠고요.
 경기(문화재단)만해도 각 지원센터마다 지원 사업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지역형 컨텐츠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거는 없이 있는 사업만 돌리는, 이른바 ‘택배사업’만 계속하고 있으니 질적인 성장을 이루는 게 어렵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송수연
 제가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 모니터링을 하러가는데요, 그 때 어떤 태도를 가지고 이들을 만나야하는가가 항상 고민이에요. 재단이 원하는 기준으로 보면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아요. 거기에서 어떤 상황, 맥락에서 되고 있는지를 보는 게 중요한데, 그 시간이 되게 짧거든요. 그래서 인상적인 것만 볼 수밖에 없는 것 같고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제가 느끼기엔 지원보다는 관리차원에서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하는 사람들도 그걸 아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실험적인 것을 더 하지 못하고 거기에 그쳐서 수동적이 되고(자기검열이 있는 거예요.), 네. 그래서 느끼게 된 것이, 어떤 이야기를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왔다고는 하지만 항상 저는 거기에서 선이 있는 거예요. 진행할 때도 어색한 부분들을 보이시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안타까운 것 같아요.
 
박형주
 지원제도의 수준 자체가 사실 생존의 단계에서 지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맞아요.) 통제술로 계속 작동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티를 안낼 뿐이지 이야기를 하다보면요, ‘그렇게 하고 싶은데 하면 지원 안 되잖아요’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럴 때 ‘안 되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하고 말은 하는데, 사실 이게 어느 정도 생존의 영역으로 다가와 버리는 거예요.
 과감하게 생존의 문제를 포기해라 이런 이야기밖에 안 되는 것이지요. 지원이라는 것이 생존의 수준에서 칼자루를 쥐고 계속 좌지우지하면서 문화예술교육으로 전향하는 많은 단체들을 통제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게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어요. 오래된 단체일수록 너무 능수능란해졌는데 재미는 너무 없어지고, 그 때 하셨던 것들은 왜 지금 안하냐고 물으면 그분들은 이미 제도에 너무 잘 맞춰져 있는 거예요. 이제 올해의 주제가 나오면 거기에 맞춰서 사업을 할 수 있는(기획안에는 다들 기계가 되어서). 그걸 좋게 봐야하는 건지 나쁘게 봐야하는 건지 어느 순간 헷갈리더라고요.
 

 

김월식
 단체의 성장을 위해서 어느 정도 지원을 끊고 1, 2년간 재연구를 하는 단체들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그런 판단을 내리는 게 쉽지 않지요. 자기 혼자 내리는 결정이 아니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런 결정을 보면 참 용기 있는 행동 같기도 하고요.
 
전지영
 저는 여기 온지 얼마 안됐으니까 팀원들에게 문화예술교육 잘하는 데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좀 망설이실 때도 있어요. 문화예술교육을 모르는 사람한테 저게 좋다고 말하려면 어떤 것을 기준으로 말해야할지 고민하고요. 저도 가서 보면 솔직히 좋다고는 생각하는데 ‘과정형’은 아니지 않나 생각할 때가 있어요. 제가 기대하거나 생각했던 지역성이 안 보일 때도 있고요. 차라리 새로 기획하거나 고민 많이 하는 팀들이 훨씬 잘하는 거 같을 때도 있고, 그런데 또 보는 시각은 각자 다르지요. 그러니까 이건 ‘잘한다, 못 한다’의 기준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잘한다, 잘 못 한다’를 말하는 것 자체가 어떤 제도 안에서 기준과 판가름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과연 평가나 모니터링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지요.
 
이원재
 첫 번째 문제는 지역문화 자체를 위한 정책적 목표를 세워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말씀하신대로 정책이라는 것은 지향점을 가지고 추진되는 것이지요. 그게 없다면 엄밀히 말해서 평가의 기준이 없다는 것이잖아요. 그냥 막연히만 있는 거예요.
 두 번째로는 그 목적이 다각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어떤 것은 보편적 서비스를 목적으로 하는 게 있을 수 있는 거고, 어떤 것은 하나의 특별한 프로젝트가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층위를 가져본 적이 없어요. 문화부든 진흥원이든 정부든 어떤 흐름을 정하면 그거에 다 따라가는 거니까요. 그러니 시민문화나 문화예술교육, 커뮤니티아트 쪽으로 오면 그게 마치 예술적으로 가치가 낮은 작업을 해야 하는 것 같은 틀이 짜여 있는 거예요. 수용자의 입장만 강요되는. 사실 작가들이 그런 작업을 통해서 굉장히 창의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환경도 안 만들어지고요.
 설상가상 기관에서는 시민들의 수요라는 논리를 가지고 정책적 성과만을 강요하는 것이죠. 그래서 대중적인 수용성을 넘을 것 같으면 위험해서 안 되고 특별한 건 특별해서 안 되니 다들 고만고만해지는 것이지요.
 구조면에서는 지역문화예술교육 자체가 삶의 여러 면들과 접촉하고 있기 때문에 다각적인 목적과 지원의 틀을 가져야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너무 일률적이었던 것 같고요. 또한 지역문화예술을 삶의 새로운 가치나 삶의 방식, 관계라기보다는 ‘교육의 보완재’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만약 학생들이 토요일에 학교 안가면 토요일에 교육해줘야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오히려 기존 교육과는 또 다른 문화예술교육으로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방법보다 거대한 교육 제도의 보완재처럼 썼고요. 그게 결국에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나 주체 형성은 부재한 채 개별 프로그램과 사례만 나오는 구조를 만들었지요.
 이런 것을 정책이 주도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장의 분위기를 촉발시켜야 하는데 거꾸로 제약하는 프레임을 강하게 걸고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전지영
 한편으로는 정책의 틀, 제도가 없을 수는 없잖아요. 세금을 걷어다가 잘 분배해서 써야하는 그 자체가 정책이잖아요. 틀이라는 것은 있어야 하지요. 그 틀이 어디까지의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틀과 정책이라는 것이 일반 서민들, 시민들의 자발성을 위해 어디 정도까지 개입해야하는지 사실은 기준이 너무 없다고 보거든요.
 
박형주
 그 문제는 지금의 정책 자체가 소비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이게 소비재로서 소비자들에게 얼마만큼 잘 가는지를 보는 거고, 평가라는 건 탈락의 기제로서 쓰는 거예요. ‘탈락이야 너는 내년에 안 돼’라고 하면 그 안에서 불안을 조장하는 것이지요. 사실은 무얼 남길 것인지에 대해 봤을 때, 단순히 이걸 지원해서 뭘 남길 것인지(가 문제인 것이죠). 지역재단이나 지역문화예술단체에서 지원을 통해 뭘 남길 거냐고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면 ‘이 프로그램으로 몇 명이 기뻐했다, 혹은 만족해했다’. 그런데 그 만족을 위해 다른 것들이 얼마만큼이 희생됐는지는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자칫 잘못하면 단체들이 ‘관성화’됐다고 평가될 수도 있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정치하시는 분들은 그걸 역으로 이용하시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사실은 한 번도 정책을 쓰시는 분들이 이 단체나 예술가들을 파트너로 받아들인 적이 없다는 것이죠. 
 지역을 전달하는 것은 삶을 전달하는 건데요, 삶에는 보편성이 있잖아요. 기쁠 때도 있지만 슬플 때도 있는 거고, 안 될 때도 있는 거고, 잘될 때도 있는 거고 그런 거거든요. 이런 게 독려가 되는 시기에는 그런 과정 속에서 누구나 겪게 되고 만나게 되는 일들이 있지요. 그런 일들을 불안 속에서 함께 견뎌주는 힘들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문화부나 정책을 만드는 분들은 그 불안을 견디지 않으려고 하는 거예요. 우리는 성과를 냈는데 이들이 성과를 못 내서 탈락시켰다는 걸로 자기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고요. 이 패턴은 재단이나 지역들이 다 가지고 있다고 봐요. 그러다보니 어떤 지역의 단체를 파트너로서 계속해서 그 불안을 같이 견뎌주면서 ‘이 불안을 같이 이겨내보자’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니까 빨리 (지원을) 끊고, 그들의 책임을 면하려고 하는 태도를 많이 봤어요.
 아무리 제도를 잘 짜도 이걸 2,3년을 기다리면서 파트너로 간다는 느낌이 없으면 그 어떤 사람들도 그 제도가 당연히 불안 기제를 작동시키는 거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고요. 그러면 결국 단체들은 거기에 본능적으로 적응할 수밖에 없어요. 지원제도 자체가 어디를 지향할거냐, 파트너를 얼마나 만들 것이냐, 아이들이 기뻐했다는 걸로 끝낼 것인지 지역시민이 기뻐했다는 걸로 끝낼 것인지 등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제안이 있어야 그걸 통해서 몇 년 동안의 구체적인 목표들이 설정된 상태에서 운영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마치 우리가 지역사회의 문화예술교육하면 새로운 지역에 맞는 주제를 던진 다음 그 주제를 가지고 문화예술교육을 많이 하는지가 중요시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모든 곳에서 지역사회문화예술을 하지만 결국은 다 똑같아지는 것이죠.
 

이원재
 조금 부연을 하자면 모든 정책들이 그러하지만 특히 지역문화예술교육이라는 것은 삶의 지점부터 올라올 수밖에 없는 건데요, 문화예술교육 정책 자체가 그런 거버넌스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진흥원조차도 기본적인 조직 구조 자체에 지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나 지역문화 주체들을 핵심적인 파트너로 고려하거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냥 사업이나 프로그램 단위로만 정책을 짜왔기 때문에 당연히 현장에 대한 이해나 욕망을 알 수 없지요. 
 교육정책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주체가 만들어지거나 교육받은 주체가 변화해야 하는 거잖아요. 지금처럼 그냥 한번 관람하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참여한 주체의 숫자가 중요한 문화예술교육은 실제로 교육적 가치나 효과를 가지기 힘듭니다. 대부분의 교육프로그램의 결과는 그냥 ‘몇 명이 했다’ 이거예요. ‘몇 명이 만족했다’도 아니고 그저 ‘몇 명이 했다’. 자랑스럽게 말해요. ‘저희가 1년에 몇 천 명이 왔습니다’라고 하는데 제가 볼 때는 자랑할 게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예요. 계산을 해보면 거기에 온 학생들은 1~2시간밖에 거기 안 있었던 거예요. 그럼 이건 ‘관람형’ 시설에 가까운 평가인거지요. 수가 적더라도 목표를 어디에 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 교육적 효과나 과정이 목적이라면 거기에 맞는 정책적 평가와 가이드라인이 있어야하는데 그런 것이 없는 거죠.
 
김월식
 저는 예전부터 지역에 대한 자율성, 자율적 기획과 지원, 실험 같은 것들이 늘 가능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역 센터 단위에서 이런 논의가 과연 타당한가. 결국 진흥원이나 문화부가 고민하지 않으면 이건 전혀 개선될 여지가 없는 건데 말이지요. 만날 지역 센터 단위나 광역 단위에서 이런 고민하고 내봐야 허무한 느낌이 드는 것이지요. 또 팀장이 ‘왜 이건 이렇게 안 하냐’ 하면서 투쟁도 해주시고 이런다고 바뀔 거 같은지를 모르겠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제가 아르떼 들어가서 그 암울한 벽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웃음). 
 그런데 오히려 이런 것도 있어요. 사실 문화부나 진흥원에 안 내려가도 지역단위로 지역문화예술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예산 없이 자율적으로 실험하는 단체들도 있고요. 그런 단체들에 대한 발굴 및 지원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대안공간하고 국공립창작공간과의 관계를 보면 결국 미술관 및 박물관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지역의 공간이나 대안공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계속 성장하는 것이지, 한 쪽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작년에 제가 쓴 글 중에 미술관 및 박물관의 교육과 대안공간의 교육에 대한 것이 있어요. 둘 사이에 태생적으로 구별되는 점은 있어요. 그것들의 네트워크를 좀 잘 만들어주고 보완시키는 게 하나의 방법이 아닌가 생각해요.

 

 

송수연
 저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게 바로 생태계라고 생각하는데요, 기금사업이 나면 일부러 준비해가는 그룹이나 단체들이 있지요. 그런데 안하는데도 많거든요. 순환할 수 있는 구조나 상황이라는 것을 마련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게 기금지원으로 안 되는 것이면 다른 방식이라도 만들어 보는 것들?
 
김월식
 최근 연구비 지원 같은 것들이 좀 걱정이 돼요. 새로운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것들을 실험해보고 연구해보고 하는 것들 말이지요. 교육이라는 것이 아이디어가 생각난다고 바로 실현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현장에 접목해보는 것들에 대한 지원은 전무후무한 것이지요. 
 
박형주
 삶이라는 것이 딱 공모 기간에만 뭔가가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공모는 언제 이루어지고 언제 마무리되니까 1년 동안에 한번 공모해보라는 방식이 아니라 동료를 만드는 방식이어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서 말한 방식은 서로가 서로를 피해자로 만드는 거예요. 진흥원은 진흥원대로 피해자라고, 하고 센터는 센터대로 피해자라고 하고, 단체는 단체대로. 그러다보니 우리 삶과 마찬가지로 기관들도 다 외로워지는 거예요. 혼자서 ‘나는 이거 하고 싶은데 말할 사람이 없어’, 그런 패턴인 거거든요. 다 같이 외로워지는 건데요, 여기서 나간 사람들은 그 외로움에 못 견뎌서 그런 것이고요. 이건 우리가 새로운 방식의 관계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한테 다시 외로움의 구조 안에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건 쉬운 일이 아닌 것이지요. 오히려 이런 방식을 풀려면 계속 찾아가서 그들의 요구와 필요들을 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단순히 언제 모집해서 언제까지 사업을 하고 언제까지 끝낸다는 이런 단일한 패턴이 아니라 지원의 방식 자체도 달라져야 되는 것이죠.
  지원시기 등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거고요. 사업의 경우에는 한 달 짜리도 있을 수 있고 1년 짜리도 있을 수 있는데, 그것에 대한 조건들이 많이 여지가 생겨야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설계할 수 있냐는 거예요. 우정이라는 개념이 좀 그렇긴 한데, ‘우정의 문화예술교육’이라고 해야 하나요. 새로운 우정을 쌓아나가는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이건 삶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사람이 왜 이렇게 힘들어지는 것인지 그리고 지금 불안과 외로움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요, 우리가 문화예술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시범과 관계들을 회복해나가자는 거잖아요. 단순히 물리적 공동체 하나를 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만드는 방법 그 자체를 잃은 것 같다고 해야 하나요? 그 방법을 다시금 회복해가는 훈련이라고 봐야하지 않나 싶어요. 그렇다면 그 우정의 문화예술 교육을 다시 한 번 해봐야 하는 것 같고 그게 정책에 반영이 돼야 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김월식
 사실은 만날 책상에 앉아서 특정 단체 욕만 하면 뭐 할 건가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단체가 왜 새롭지 않느냐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이 단체가 성장할 수 있게 들여다보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역지원’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정책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대안인것이지요. 새로운 단체를 지원하고 그분들이 이쪽으로 잘 올 수 있게끔 잘 안내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제가 공방작가들 공동체 관련 컨설팅을 두 번 했잖아요. 사실 단체를 만나보면 굉장히 수동적인 느낌, 주눅 든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라 ‘아, 이거 재밌을 거 같은데 한 번 해볼래?’하는 말이 나와야하는데 그런 단체를 만나는 게 쉽지가 않잖아요. 적극적인 감흥이 돌 수 있도록 하는 지원정책 안에서 그 사람들이 즐거워야 즐거운 컨텐츠를 만들겠지요. 그분들이 토요일에 다섯 시간 일하고 돈 받는 알바로만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책의 지원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것이죠.
 
전지영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김월식
 제 생각에는 지원금이 내려오잖아요, 그럼 50프로만 뽑아서 원래대로 하고 나머지 50프로는 그 단체의 성장을 위한 걸로 쓰는 거예요(웃음).

 

이원재
 최근에는 흔한 단어가 됐지만 ‘생태계’라는 것이 잘 쓰이지 않던 용어였지요. 사실 생태계를 생각하면 오히려 더 심플한 것 같기도 해요. 왜냐하면 문화예술교육 정책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예술지원정책이 생태계, 사람들의 생애주기처럼 실질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채 진행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지원받기 위해 서로 경쟁만 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우정이 안 생기는 거예요. 필요한 게 다르잖아요. 누군가는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서 필요한 것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것보단 공간이나 교류라든지 필요한 것은 다 다르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다 한 바구니에 넣고 경쟁을 시키는 것이고요. 또 지역 안에서 보면 누구는 누구의 멘토나 튜터가 될 수 있는 관계일 수 있잖아요. 선후배 관계처럼 말이죠. 이런 역할에 대한 지원을 해주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동일선상에 두고 계속 경쟁을 시키니까. 지원정책은 1년짜리 단기적 결과물이 목표가 아니라 그 생태계를 장기적으로 놓고 설계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투자해야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새로운 젊은 단체에 대한 교육의 역할을 할 수 도 있는 것이고요. 컨설턴트라고 해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전문가로 와서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안에서의 삶을 함께 고민하고 협력하는 컨설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박형주
 인력을 양상 한다고 해서 아카데미를 만들게 아니라요, 그들은 지원을 받는 몇 개월 동안 그 지역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인 거잖아요. 그 사람들이 함께 일궈주는 그런 게 인력양성인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인력양성 아카데미를 보면 대부분 너무 교육공학적인 것들이(저희도 요즘 그 이야기를 무지하게 하고 다닙니다.) 들어오는 거예요. 교육공학자들의 논리와 방식들이 결국 만들어냈던 것이 철저하게 삶과 분리되어서 뭔가를 다 배운 다음에 하는 마인드인거죠. 이것이 완전히 정착이 되어있기 때문에 문화예술교육에서도 논리 자체가 학습에 먼저 맞춰져 있는 거예요. 다 배우고 나서 그 다음에 현장에 나가는 거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우리가 배울 때는, 골목에서 논다는 건(서로 감각적으로 마주볼 수 있는 기회를 안 만들어 주는 거예요.) 서로 부딪히면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것이지요. 삶속에서 어떤 부분을 포착해내는 것이거든요. 그것들을 아예 안 만들고 그냥 하나의 교실로 들어와서 학습을 하게하는 교육공학들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 보면 다들 그럴싸한 교육공학 책들이 나오기 시작해요. 그건 보여주기가 쉽거든요. 예술은 삶에서 어떤 부분을 포착해가는 방법론을 가지잖아요. 왜 우리가 예술과 문화를 여기에 붙이냐는 질문을 했을 때  예술의 그런 점들을 어떻게 살릴 거냐고 한다면, 아카데미 같은 제도부터가 전면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원재
 참 아이러니 한 것이, 문화예술교육을 처음 제안한 이유가 근대 지식교육이 실패했기 때문이지요. 계속되는 학습형 인간. 그런데 학습을 다 받아도 35살 먹고 대학원 박사를 따도 삶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간들이 나오는 것에 대한 성찰로 인해 가져온 것인데요, 이 제도가 거꾸로 문화예술가의 직관적 혹은 감각적인 부분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형식화된 교육 공학으로 다시 설계되는 현상들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김월식
 정책을 만들 때나 하다못해 심의나 컨설팅을 할 때 그 자리에 예술가들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물론 예술가들이 이런 자리에 오면 말도 자기방식대로 하고 본인만 편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거나 심사를 할 때도 그 균형을 무너뜨리긴 해도 몇 명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원재
 요즘에는 그런 사람들을 못 본지도 오래됐어요(그런 사람이 있어야 된다니까요.).
 
전지영
 저도 문화예술교육이라고 해서 이 센터에 왔는데 제가 만나는 대상이 정확히 어떤 정체성을 가지신 분들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들이 예술가인지 교육자인지.
 
이원재
 다 있는 거예요. 교사들도 있어야 하고, 예술가도 있어야 하고, 그 중간에서 경계를 넘나들고 연계해주는 예술교육자 역시 양성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현재는 학교는 교사 본인들 이야기 외에는 아무 신경을 안 쓰고 마치 예술 강사는 예술계에서 예술 하던 사람들이 능력이 안 되는데 먹고는 살아야하니까 온 것처럼 인식이 되어있는 거예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주체들의 전문성이 사회적으로 축적되고 공진화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양한 중간예술도 만들어내고 교육적 장도 열어야하는 건데, 아까 말씀하신대로 여기도 경쟁과 배타성만 존재하지 우정이 없는 구조입니다.  
 
김월식
 이게 일자리로 연결이 되면서 뭔가 집단적 이기심으로 작동되는 것 같고요.
 
전지영
 진흥원에 가서 이슈파이팅하며 싸우는 것이 오래됐고 근데 한편으로는 자신이 없어요. 예술 강사만을 위해서 내가 싸울 수 있나 생각할 때 자신이 없어요. 편을 든다는 것은 어느 한쪽이 약자거나 아니면 다른 쪽이 불의하거나 그래야 편을 드는 힘이, 동기부여가 되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동기부여가 흔들리는 것이죠. 둘 다 뭔가 균형이 맞지 않고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을 봤기 때문에 어느 한 쪽으로 서있기가 힘들어요. 
 그리고 예술 강사라는 게 단지 학교교육만의 일인가 생각을 해보면 저는 지역문화예술교육과 학교문화예술교육이 분리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분들이 결국 지역 안에서 예술가나 교육자로 활동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중앙단위, 기관, 관리자의 입장에서의 정책이나 제도가 어떤 우리들만의 입장을 모아서 만드는 게 해결이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에요. 
 저는 활동가 분들의 인식을 바꿔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정책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현장을 잘 몰라요. 저는 이 분야를 어떻게 보면 훨씬 더 몰라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것이지요. 문화예술은 정책이나 제도로 시작된 게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 문화예술이 가진 희망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저는 들 때가 있어요.
 
박형주
 선호가 어떤 거냐에 따라 논란이 될 수도 있는데요, 저는 틈새전략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 틈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문제이지요. ‘송곳’이라는 만화를 보면 이런 게 나오거든요. ‘프랑스 기업이면 노동법도 잘 지킬 것 같은데 왜 이들이 한국에 와서 불합리한 태도를 보이지’ 했을 때, ‘한국은 안 해도 되기 때문에’라고 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있는 거잖아요. 우리가 지적하는 문화예술강사들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경쟁을 없애자고 이야기해놓고 사실은 불안 기제를 통해서 그들을 훈련시킨 것이지요.
 이 사람들을 생존의 문제로 계속 몰아가니까 당연히 격렬하게 나올 수밖에 없는데요, 이게 사실 선후 관계가 굉장히 애매하긴 하지요. 그렇지만 이걸 직접적으로 풀 수 는 없다고 봐요. 계속 제도화 시키면 시킬수록 더 어긋나는 과정이 생겨서 오히려 저는 그 틈새를 어떻게 만들어 볼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다른 식의 관계를 만드는 장을 실험을 해볼 수 있나 하는 것이지요. 제도를 보완해가는 방식은 여기서 안 한다 하더라도 중앙에서든 어디서든 할 것 같아서 오히려 지역은 다른 식의 관계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이원재
 센터장님이 말씀하신 취지나 기본적인 부분에는 당연히 동의하는데요, 반대로 말하면 누구나 주체이고 각자의 사회적 역할이 있기 때문에 그건 타자화 될 수 없는 것 같아요. 정책 분야에 있거나 제도 분야에 있는 사람은 자기 일에 대한 스스로의 입장과 책임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다면 생태계를 한 번에 훅 보내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제도 같은 경우는 문화부 5급 공무원의 책상에서 나쁜 의도도 아니고 그냥 잘해보고 싶어서 제안했는데 그것이 한 방에 전국에 있는 자율성을 없애버릴 수 있는 거예요. 문화예술교육사 제도처럼 말이죠. 사실은 행정과 현장 모두가 타자화되지 말고 스스로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생태계를 만들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송수연 선생님이 말씀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송수연
 저는 솔직히 말하면 문화예술교육의 과잉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모든 행위들도 문화예술교육의 의도를 갖는 것이 아닌데 문화예술교육을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사실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도 있거든요. 그런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해달라는 제안도 받는데요, 솔직히 말하면 그 프로그램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아까 말했듯이 자율적으로 제 그라운드, 동료들을 만드는 게 훨씬 재밌지, 그 프레임 안에 들어가면 날것들, 실험적인 것들이 다 사라지거든요. 제가 몇 년 간 봐왔을 때 너무 문화예술 교육의 과잉이 아닌가 싶고 경쟁하는 시장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도나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건 아니면 교육을 하는 사람이건 작업을 하는 사람이건 그걸 지역에서 어떤 관계로 푸는 사람이건 문화예술교육말고 그냥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화예술교육이라고 하는 것이 학습이나 지식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창의적 교육이 어떤 기획안에서 만들어진 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이런 교육에서는 감각도 중요하지만 요즘 사회의 변화 구조를 볼 때 개인들이 의견이나 견해를 갖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생각이지요. 저를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워낙 훈련이 안 되어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출발하는 교육이 중요하지 않을까 해요. 저는 그걸 비평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 그런 교육을 경험하는 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지역의 장에서라면 여러 가지의 관계 속에서 그런 것들을 매개하거나 촉발할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월식
 현실적으로 교육을 하는 단체들을 보면 일단 밖에 나가는 것들을 상당히 두려워해요. 워낙 사고에 대한 보험은 들었는지에 대해 따지죠. 아이들이 좀 넘어지고 다칠 수 도 있는 건데 너무 방어적이 되다보니. 
 
이원재
 박형주 선생님도 지역문화예술교육 관련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생태계를 더 잘 만들어 갈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신 게 있으신가요?
 
박형주
 지역사회의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나 제도는 이미 많이 이야기되었고 나왔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더 뭔가가 나올 수는 없을 것 같고 그 중에 뭐라도 하나 제대로 하는 게 먼저인 것 같은데요, 저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다 혹은 없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태도를 가지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것은 그 태도를 다잡는 작업인건데 지금은 다들 징징거림 밖에 없는 거예요. 이건 요즘 청소년들한테도 나타나고 있거든요. 대화가 되는 게 아니라 계속 징징거리고요. 이게 오독되면 굉장히 불편해지는 말이기도 한데요, 교육이라는 건 성장을 하기 위한 것이거든요. 한 인간으로서 자기 몫을 해갈 수 있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요. 삶의 기술이랄지 성장이라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걸 제대로 못해내면서 공동체 안에서 협상을 하는 과정을 배울 수 없었던 거예요. (경험치가 없는 거죠) 대화에 대한 불편함도 있는 거거든요. 견뎌야 하는 것도 있는 것이고, 의사를 표현하는 것도요. 
 우리가 예술에서의 자기표현을 매우 아름답고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냥 자기 입장을 표현하는 것이거든요. 그것들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훈련도 해보고, 어떤 식으로 했을 때 불편함이 생기고, 그 불편함을 어떻게 해소하는지 생각도 해보고 하는 과정을 쌓아가는 것이지요. 그런 훈련이 사회 전반적으로 안 되고 있는 것인데요, 그게 기관에서도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 징징거림을 어떻게 없앨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서로가 둘러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계속 다른 쪽의 문제를 부각시키기 보다는 지금 내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뭘까 하는 등 각자의 태도를 바꾸는 데에서 이 지역사회 문화예술이 바뀌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게 바뀌지 않고서는 계속 피해자 논리로 가게 되겠죠. 그래서 제도는 들어가는데 실제 실효성은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교육을 다루는 사람들의 태도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원재
 그렇다면 지역문화예술교육 관련해서 꼭 정책적인 것이 아니어도 앞으로는 생태계를 위해서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했으면 합니다. 
 
김월식
 글쎄, 과제라고 이야기 하면(과제라는 단어를 빼고 아이디어? 제안?) 저는 예술가, 작가의 입장으로 돌아가요. 작가 입장에서는 늘 새로움과 실험에 대한 갈망이 있는데요, 어쨌든 그것들은 언제나 늘 서걱거리고 낯선 것들이기 때문에 동시대에 바로 각광받거나 ‘맞소통’되기가 쉽지 않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이들이 세상에 확장성있는 방향을 제시해주고 그게 단초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되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문초에 주춧돌을 얹혀 놓으려고 하지 않는 상황인거죠. 특별히 지역문화예술이라기보다는 송수연 선생님 말씀처럼 문화예술교육이 뭐냐는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을 해보는 거죠. 우리는 실험적이고 새로운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어쨌든 적극적이고 관용적으로 수용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는 겁니다.
 제가 안타까운 것은 진짜 좋은 예술가가 있는데 예술 교육을 못해요. 왜냐하면 예술과 교육이 있을 때 거기에는 번역이라는 것이 필요하잖아요. 그리고 그것이 본인이 가진 능력과는 전혀 다른 것이지요. 잘하는 일과는 다른 기획을 하는 것도 많이 봤어요. 우리는 그런 것들을 좀 고민해야 해요.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에 다른 시각과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거잖아요. 그건 결국 세상을 넓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밑거름 중에 하나예요.
 좋은 예술가들이 예술교육을 하라고 하면 마치 자기는 격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지요. 미술관이 딱 그렇잖아요. 전시는 메인이고 마치 교육은 서브인 것처럼?(이제 많이 바뀌었어요.)(웃음) 그런 것들을 오히려 정책단위에서 집중적으로 지원해주고 끄집어 낼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이것이 과제라기 보단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송수연
 예술가들이 가장 교육을 잘할 수 있는 비법은 작업실인 것 같아요. 아마 오픈스튜디오를 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것 자체만으로도 환기되는 것들이 많을 것 같고요. 
 문화예술교육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유산 같아요. 내가 누구랑 뭘 했었는데 ‘아’하는 순간 지나친 어떤 감각과 기억들이 있잖아요. 마치 유산처럼 그 시간과 기억이 연장이 되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의 감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적 성찰도 중요한데요, 문제는 너무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변화되는 환경과 어떻게 연결을 시킬 것인가가 무척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떤 좌표가 필요한 것 같아요. 문제는 그 좌표를 보면서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데 그 주변이 항상 변한다는 거예요. 나는 이 좌표를 보고 가는 데 이미 지형은 변해있어서 결국은 표류하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은 문화예술교육의 과제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게 아닌가. 거기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들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게 또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몫이기도 한데, 그걸 자극하는 게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전지영
 어떻게 보면 창작센터, 오픈스튜디오가 대중하고 소통하면서 문화예술의 가치를 사방으로 뿜어내는 방식의 교육이라고 생각을 해야지 교육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요. 작가들이랑 자주 만나고 그들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만들면 그거에 대한 경험치가 쌓이는 그 자체가 교육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우리나라는 어느덧 문화예술‘교육’ 이래가지고 그 프레임을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죠. 이건 또 그것과는 달라야한다는 요구와 구조들이 계속 생기니까 그렇다면 교육이라는 말을 굳이 붙였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풀지가 숙제인 것 같아요.
 
이원재
 그에 대한 답은 ‘교육’을 붙이는 전략을 통해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는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걷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예술 그대로가 교육’이 안되는 이유는  제도가 오히려 그것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사를 경유하지 않으면 접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또 학교가 막고 있고, 공무원이 막지요. 오히려 이런 것을 걷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유롭게 예술가를 만나서 소통하고 거기에서 교육적 효과를 찾아낸다는 것이죠. 
 이건 비유지만, 어릴 때를 생각하면 우리끼리 동네에서 좋아하는 형이 생기거나 어떤 사람이 멋있으면 그게 우상이 되는 거지,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그 사람을 소개시켜주면 그 사람은 그 순간에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는 거거든요(웃음). 그리고 행정하시는 분들에게도 걷어내는 작업이 훨씬 공이 많이 들어가고 어려운 것이잖아요. 이제는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기보다는 걷어내는 정책도 적극적으로 고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요. 

 

이원재
 오늘 지역사회에서 문화예술교육의 과제와 비전에 대해 굵고 깊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한번의 방담회로 과제와 비전을 도출하기엔 부족함이 없지 않지만 내일 진행될 15호 '문화예술교육의 본질과 현대적의미'를 다루는 좌담회로 바톤을 넘기도록 하구요. 오늘 이자리는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지영
 마지막으로 지지봄봄 15호 방담회에 참석해주시고 많은 말씀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