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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프레임을 배우며 세상 보는 프레임이 변했다"_(사)경기도장애인정보화협회 군포시지회
  • 고영직 _문학 평론가
  • 2015.08.21
14호_곁봄_현장비평
"사진 프레임을 배우며 세상 보는 프레임이 변했다"
고영직 / 문학 평론가

 

 

 

 

 

 

 

 

혼자 밥을 먹으면 눈물이 난다. 식욕이 없어서

혼자 산책을 하면 외롭다. 상점이 모두 문을 닫아서

혼자 영화를 보면 구석에 가서 울고 싶다.

등이 갈라지면서 또 하나의 내가 기어나와

갈라진 등을 두드리며 나를 위로해줄 것 같아서

 

혼자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 집을 지나친다.

더 오랫동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_ 안주철 시 「노인이 되는 방법」 중에서

 


 

노년은 무엇으로 사는가. 안주철의 시는 노년기에 경험하는 역할 상실의 문제를 매우 쓸쓸한 언어로 환기하는 작품이다. 역설적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노인이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 아니라 외롭기 때문에 노인이 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되는 것처럼. 노년기에 경험하는 역할 상실을 대체하는 새로운 역할을 찾지 못한다면, 노년의 삶은 너무나 쓸쓸하고 또 쓸쓸할 법하다.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스스로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멋진 노년의 문화를 형성해야 함은 물론이다. 노년일수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시공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며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삶의 문화가 요구된다. 노년의 문화 활동을 설명하는 이론 가운데 활동이론(activity theory)이 설득력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활동이론은 노인들의 사회적 활동 참여가 높을수록 심리적 만족감과 생활 만족도가 높고, 긍정적인 자아 개념을 갖게 된다는 이론이다. 노년의 ‘학습’이 새로운 변화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노년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노년 문화예술교육은 양적 성장에 치우친 나머지 사업의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젊은 예술강사를 선발해 노인복지관 등에 파견하든가, 아니면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한 사람의 노인 ‘존재’를 온전히 보려는 대신에, 노인 ‘문제’로써만 접근한다는 점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철학 부재라고 해야 할까. 노년을 대상화하는 물량 위주의 사업이 아니라 어떻게 노년을 삶의 주체로 서게 할 것인가. 노년 스스로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자기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지원 시스템은 부재했다. 2015년 봄에 출범한 수원시평생학습관의 노년 학교인 <뭐라도학교>가 각별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어떻게 십분 살리느냐가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올 것이다.

 

올해 처음 추진되는 <인생나눔교실>의 경우 노년 세대와 젊은 세대 간에 문화적 공유지대를 형성하고 소통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없지 않다. 그러나 노인(어르신) 멘토를 선발해 지역아동센터 어린이, 자유학기제 중학생, 군인 등 청(소)년 세대와 만나게 하는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더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필요해 보인다. 노인이 보유한 경험을 청(소)년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형식은 절대 곤란하다. 그것은 인생 나눔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리고 학습 참여자들의 ‘자발성’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만만치 않은 숙제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자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어르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노년기일수록 나와 소통하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배움을 중단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움은 지금 당장의 쓸모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쓸모 이상의 가치를 준다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경기도장애인정보화협회 군포시지회의 [행복스토리 미디어에 담다]는 (장애)노인들이 사진과 영상 기술을 익히며, 나와 소통하고 지역 사회와 소통하고자 하는 지역 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이다. 지난 2010년 처음 미디어교육을 해온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고 있다. (장애)노인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교육은 그 자체로서 ‘공부가 인권이다’는 생각을 평소 나는 품어왔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누구나 지역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혼자 세상에 설 수 있는 ‘자립(自立)’과 같이 설 수 있는 ‘연립(聯立)’은 둘이 아니라는 차원에서 그러하다. 혼자 설 수 있어야 같이 설 수가 있는 것이 아니던가. 최근 장애운동의 화두로 부상한 탈-시설 운동이 갖는 함의 또한 동네(지역)에서 ‘같이 살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실제 학습자들은 교육이 진행될수록 지역 사회에 대해 자세히 ‘관찰’하는 힘을 기르게 된다. 의왕시 자연학습장에서 진행된 출사(出寫) 수업에서는 연꽃을 비롯해 야생화와 나무를 관찰하며 사진을 찍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한 포기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알고 싶은가. 그러려면 몸을 낮추어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지역 사회의 작은 문제라도 장애인의 눈으로, 노인의 관점에서 보게 되고, 사진과 영상 작업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 또한 자세를 ‘낮추는’ 데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55세 장애남성 참여자는 “사진 찍는 프레임을 배우면서 세상을 보는 내 프레임 또한 변했다”(최원상)고 말한다. 사진 찍는 공부를 하며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프레임에서 조금씩 벗어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사진 찍는 행위는 결국 자신의 어떤 감정을 표현한다는 의미와 무관할 수 없다는 진술이리라. 다시 말해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이 슬픔보다는 주로 기쁨의 상태를 자주 경험했음을 의미하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함께 배우는 든든한 동료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법하다. 그리고 이 점에서는 64세 은퇴한 여성 참여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동아리 활동을 하며 생활에 활력소가 되고, 가족과 지인들도 적극 지원한다. 소속감과 결속감도 더 강해졌다.”(김윤순, 64세)

 

 

 

 

 

 

노은영은 《노인의 동아리 활동과 삶의 변화에 대한 질적 연구》(2015)라는 논문에서 서울 노인복지관 2곳에서 활동하는 남녀 노인 6명을 심층 면접한 결과를 활동이론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노인들의 동아리 활동은 다섯 개의 주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①심신의 건강, ②자존감 및 삶에 대한 의욕 향상, ③다른 여가 활동으로의 연결, ④사회적 교류 확대, ⑤노인에 대한 인식 변화 등이 그것이다. 어느 학습자가 사진 프레임을 배우며 사회를 보는 프레임 자체가 변했다는 앞의 진술과 통하는 결과인 셈이다. 이것은 노년의 문화예술교육이 학습자들에게 일종의 ‘마음의 사다리’ 노릇을 하고 있다는 의미일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장애)노년 문화예술교육의 질적 제고를 위한 고민은 여전히 필요해 보인다. 6년째 협회에서 미디어교육을 해오고 있는 황혜경 강사(42)는 “(장애)노인 교육은 무한반복 훈련이다”며 그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 말은 (장애)노인 교육의 이러한 속성을 기다려주지 않는 현재의 공모사업에 대한 문제 제기일 법하다. 현장에서의 고민과 더불어 (장애)노인 문화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한 담론 형성이 동행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의 시각장애인 미술관인 톰 갤러리의 무라야마 하루에(村山治江) 관장은 “우리 맹인들도 로댕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의 권리장전으로서 퍽 울림이 있는 표현이다. 장애인을 정의할 때, 뭔가 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하는 디스어빌리티(disability)의 관점이 아니라, 신체적·정신적 손상을 의미하는 임페어먼트(impairment)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사회는 문제가 많은 사회이다. 이 점은 노인에 대한 관점과 태도에서도 동일하다. 장애인을 정의하고, 노인을 규정하는 우리들의 언어 사용부터 달라져야 한다. 장애인 또는 노인을 규정하는 기표와 기의 사이에 존재하는 심연과도 같은 간극을 좁혀야 하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장애)노인은 아름답다. 공부하는 노년이 아름다운 이유는 출세하기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니고, 나를 위한 공부이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뭘 어떻게 배울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우리가 살면서 선택한 행동들이 지금의 나를 이룬다는 관점은 노년의 교육에서 특히 중요한 것 같다. 이때 앞으로의 인생설계 같은 비전을 제시하고 공유하는 ‘총론’ 식의 교육이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사진이든 춤이든 자서전 쓰기든 간에. 우리는 너무나 자주 ‘각론 강박증’을 몹시 앓았다. 노년에 배워야 할 진짜 배움은 ‘나는 나를 어떻게 대했는가?’ 같은 큰 질문이다. 그것이 바로 내 존재 자체로 목적 되기를 경험하는 경지가 될 법하다. 우리 사회는 ‘노인이 되는 방법’을 더 많이 고민하고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꼰대’ 말고 ‘꽃대’가 되기 위하여!

 

 

 

[현장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