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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은 완성을 꿈꾸지 않는다" _ 자율학습모임 날파람
  • 고영직 _문학 평론가
  • 2015.08.21
14호 곁봄 현장비평
"청년은 완성을 꿈꾸지 않는다"
고영직 / 문학 평론가

 

 

 

 

 

 

‘할 예정이었어’와 ‘할 수도 있었어’와

‘했어야 했어’가 모여

햇볕을 쬐며 누워

할 예정이었던 일과 할 수도 있었던 일과

했어야만 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모두가 갑자기 달아나 숨었어.

꼬맹이 ‘했어’가 나타났거든.

_ 셸 실버스타인 시 「세 친구」

 

 

당신은 위 시에 등장하는 세 친구 가운데 어느 유형에 속하는가.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1964)로 유명한 미국 작가 셸 실버스타인이 쓴 위 시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합리화하며’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시라고 할 수 있다. 나와 당신은 이 시에 나오는 세 친구 가운데 적어도 하나 이상의 인물 유형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 셋 모두 해당되는 것 같다. 위 시가 강력히 환기하듯이, 나를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체인지 메이커는 세 친구가 아니라 ‘했어’라는 꼬맹이였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의심을 하며 결정장애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시절에, 나와 당신은 ‘했어’라는 꼬맹이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

 

혼자 모든 일을 잘할 수는 없다. 동료와의 만남과 연결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과 비슷해지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저널리스트 티나 로젠버그는 『또래압력은 어떻게 세상을 치유하는가』에서 또래(동료) 집단의 사회적 압력을 의미하는 ‘또래 압력’(peer pressure)의 긍정적 힘이 나의 정체성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힘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또래 집단의 존중을 얻도록 도와주어 행동 변화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티나 로젠버그가 공식․비공식의 수많은 또래 소모임을 관찰하며 내린 결론은 또래 집단 특유의 ‘손잡고 나아가기’(Join-the-Club)라는 전략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 책에는 소속감에 대한 열망이 사회 치유(social care)의 역사를 만들어낸 무수한 현장 사례들이 제시되고 있다.

 

당신은 그런 또래 모임(친구)에 소속되어 있는가. 아마 공식․비공식 또래 집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를 추구하는 성과사회 대한민국은 극심한 피로감을 양산하는 피로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적지 않게 양산되는 현실을 보라.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다룬 연극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연출 박근형)는 일본 사회의 경험을 다룬 연극이지만, 지금 여기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어느 배우가 “세상은 왜 그런 거지?”라며 술회하는 대사가 퍽 인상적이었다. 한 마리 고치처럼 자신만의 사일로(silo)에 틀어박혀 지내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표현한 대사가 아닐까 싶다. 위 대사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나 세상과의 ‘연결’을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사일로 효과에 대응하는 동료효과(peer effect)가 필요하다. 갈수록 험한 세상이 되어가는 우리 사회에서 동료효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자산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동문학가 이오덕과 권정생이 30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한 일화는 유명하다. 수년 전부터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으로 정착한 학습공동체(CoP) 사업의 경우 구성원들이 공동 관심사를 중심으로 한 학습과 문제해결을 위한 학습공동체로서 뿌리를 내린다면 지역문화 생태계 활성화와 자생력 확보에 적잖은 도움이 되리라는 점은 당연하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고 무의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현재의 CoP 지원사업의 경우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 교안․교재 개발에 치우친 점은 대폭 손질해야 한다. 한 사람의 성장과 성숙은 ‘목적 없는 공부’ 행위와 동료와의 우정에 있는 것이 아니던가. 너와 내가 만나 함께함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배움과 성장의 의미를 공유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2015년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불가사의한 자율학습모임] 지원사업의 의미 또한 이러한 배움과 성장의 의미를 공유하고자 한 정책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성남 분당에서 활동하는 ‘날파람’은 예술(교육)과 과학을 연결하는 공부를 하며 동료효과를 십분 느끼고 있는 20대 청년 모임이다. ‘중딩’ 시절부터 한 동네 친구인 유미진, 윤지혜, 김동현, 세 명의 구성원들은 사진을 활용한 융합적 지식과 창의적 사고가 가능한 미래형 스팀(STEAM) 교육을 연구하고 있다. 스팀 교육은 과학과 예술을 접목한 종합교육이라고 한다. 사진영상(유미진), 수학(윤지혜), 기계공학(김동현)을 공부한 전공을 살려 장차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접목하려는 것이다. 세 친구가 또래 모임을 만든 것은 지금 현재의 고민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함께 나누자는 목적이 크다. 소위 ‘범생이’로서 부모가 원하는 대학에 갔지만, 학교에서 배운 지식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있는 듯했다. 뒤늦게 ‘오춘기’를 겪는 셈이랄까.

 

현재까지의 경과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이들은 왜 멘토에게 배우는 방법 대신에, 또래끼리 동아리를 결성해 ‘노는’ 모임을 계속 하는 것일까. “멘토 선생님들은 우리 세대를 자꾸 ‘깎고 다듬는’ 것만 같아요. 멘토 선생님을 만날수록 내 자신이 자꾸 수동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우리끼리 뭔가 할 때가 가장 재미있습니다.”(김동현) 대학생 김동현의 말이다. 학교를 마친 두 사람 또한 이견이 없다. “또래 모임은 동등한 관계여서 좋습니다. 때로 거친 대화도 주고받으며 상대의 의견을 수용합니다.”(윤지혜), “예술하는 친구들과만 대화하다 보니 ‘이 길이 맞나?’ 싶을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모임에서 떠들다 보면 스스로 답을 저절로 찾게 됩니다. 누가 답을 줬냐고요? 준 사람 없어요! 아마 준 놈도 모르지 않을까요?”(유미진)

 

세 사람의 이야기는 CoP 같은 또래 집단의 특징을 잘 요약한다. 우리가 소속감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서로 평등하다는 점 때문이라는 것이다. 각자의 관점과 의견을 가만히 들어주는 것으로도 의견이 조율된다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실제 그런 학습모임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스웨덴 스터디 서클과 덴마크 시민교육에서 그 생생한 예를 볼 수 있다. 스페인 대안공동체인 마리날레다의 민주주의 실험 또한 학습모임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소소하고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 발견하는 재미를 함께하는 학습모임 같은 네트워크는 ‘의외로’ 힘이 센 것이다. 창의성과 상상력을 중시하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완전한 우연을 의미하는 ‘세런디피티’(Serendipity)의 의미를 결코 폄훼해서는 안될 것이다. 미국 예술교육자 제시카 호프만 데이비스가 ‘만약에’의 놀라운 힘인 상상력을 강조하는 맥락 또한 세런디피티의 의외성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CoP 지원사업에서 지금 당장의 사업 성과물을 요구하는 방식이 무의미해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분당의 날파람 청년들은 학습모임을 통해 약한 관계(weak tie)의 강한 힘을 체득하고 있는 듯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3시간에 걸쳐 반(半)조립식 종이 카메라를 조립하는 청년들의 내면에서 무슨 ‘조화’가 이루어지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있다. 이 청년들은 ‘왜’라는 질문은 없고 ‘OX’만 이야기하는 대학 강의실에서는 결코 배우지 못한 충만한 자기교육(self education)의 시간을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인생에서 꼭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은 하나의 강박관념에 불과할 수 있다.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청년들이 급증하는 이 시절에, 분당 날파람 청년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는 과연 ‘학습 친화적인 사회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학습친화 사회를 위해서는 수강생 대비 예산 효율성 따위를 따지는 방식의 평가 기준을 만드는 것보다 평가 자체를 없애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팝송 제목처럼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만나는 모임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일까. 청년 노동자 전태일의 ‘바보회’가 그러했고,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과 C.S.루이스가 만든 문학 동아리 인클링스(Inklings)가 그러했던 것처럼, ‘손잡고 나아가기’라는 전략을 구사하는 학습모임은 나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동력이 된다. 오직 ‘인간만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의미를 앎을 나누고 삶을 함께하는 공부 공동체에서 확인할 수만 있다면, 나와 당신은 퍽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실버스타인의 시에 나오는 세 친구의 변명이 아니라,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1844)에 나오는 우정의 원리가 필요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리라.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