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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더불어 성장하는"_평택 장당 도서관
  • 백현주 _수원시 평생학습관 기획실장
  • 2015.08.21
14호 곁봄 현장비평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더불어 성장하는"
백현주 / 수원시 평생학습관 기획실장

 

 

 

꿈다락토요문화학교 평택 장당도서관의 <우리동네 오성 ‘마을인물백과사전’>

 

 

 『마당을 나온 암탉』의 저자 황선미의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은 유년기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소설이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경기도 평택, 풍족했던 고향 살림을 뒤로하고 외갓집 단칸방에서 살게 된 연재네 가족. 서러운 단칸방 타향살이는 어느 날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헌 집을 새집으로 바꿔준다며 초가집을 불태워버리는 것으로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분노도 해보고 임시로 판잣집 하나를 뚝딱 만들어도 보지만, 스며드는 바람과 추위에 결국 가족들은 잠잘 곳을 찾아 뿔뿔이 흩어진다. 가족은 ‘바람이 사는 꺽다리집’처럼 무력하고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그 이야기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평택에선 또 다른 새집 짓기가 시작되었다. ‘대추리사태’로 상처를 남긴 미군기지 이전을 시작으로, 대기업의 산업단지와 국제신도시 건설, 철도의 확충과 평택항 개방까지 대규모 개발계획은 이 동네를 지금 가장 ‘핫’한 땅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외부 사람들의 주목이 커지면 커질수록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며 먼저 살아오던 사람들의 삶의 기반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어쩌면 영영 사라질 농토와 그곳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오성도서관은 여기에 주목했다.

 

  평택평야에서 팽성읍의 번개들과 함께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오성들녘. 사실 평택은 예로부터 안성천과 진위천을 따라 밀려들어오는 바닷물 때문에 농사짓기가 어려운 땅이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가난한 농부들이 둑을 막아 땅을 한 뼘씩 개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땅을 일본 해군시설대가 들어와 빼앗더니 한국전쟁 때는 또 미군이 들어와 차지해버렸다. 그래도 농민들은 다시 악착같이 갯벌을 개간해 땅을 넓혔다. 1973년 아산만 방조제가 완공되고 밀물의 침입이 끝난 뒤 평택평야는 옥토가 되었다. 그렇게 일군 평야가 다시 개발에 몫을 내주고, 인구 7천의 오성면은 이제 평택의 거의 유일한 농촌지역으로 남게 될 처지에 있다. 그리고 여기서 농사를 짓는 마지막 세대는 아마도 10~20년쯤 지나면 사라지지 않을까.

 

  장당도서관의 분관인 오성도서관은 2013년 개관을 하면서 이런 주민들의 삶과 시간을 고민하는 도서관이 되어야 하고, 그래야 도서관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곳의 삶과 사람들을 기록하는 작업, 일명 “오성 마을인물백과사전”을 기획했다. 지역의 청소년들이 지역의 어르신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방식을 택했다. 오성들녘의 오랜 터주대감들과 척박한 땅에서 간척지를 개간하여 살아온 이주민들이 함께 갈등하고 공존해온 삶을 아이들이 다시 기록하게 하는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마주한 아이들은 긴장감과 어색함에 한참이나 말문을 열지 못했다. 지난 시간에 선생님과 함께 만든 질문지를 띄엄띄엄 읽어내려가며 오물거리는 수준이었다. 아이들은 당황하고 있었지만 할머니는 다행히 눈치를 못 챘다. 대신에 시집살이를 시작으로 어렵던 시절의 이야기를 유려하진 않지만 물 흐르듯이 편안하게 풀어놓았다. 굶주림이 일상이던 어린 시절, 온갖 수모와 괄시와 원망을 지나 극적인 화해에 접어드는 고부간의 긴 여정, 엄격한 아버지, 모든 게 결핍했지만 그래서 더 절실했던 삶의 의지 따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어느새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옛날 얘기를 더 청하는 손주들처럼 몰입해서 이야기를 청취하고 있었고, 그래야만 해서가 아니라 호기심이 동해서 궁금한 것을 질문하기 시작했다. 억척스레 살아온 삶에 대한 자부심, 그러느라 메말라버린 정서에 대한 부끄러움과 아쉬움을 발설할 때에는 아이들 역시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배가 고팠기 때문에 배에 힘이 없어서 정말로 허리띠를 졸라맸다는 말에는 같이 ‘웃픈’ 한숨을 쉬었고, 빨래판에 손으로 직접 빨래를 했다는 대목에선 경이로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눈빛에 한껏 고무된 할머니는 지나치게 공부하는 자녀들 세대에 대한 측은지심, 농사를 지으며 하늘과 땅에 순응하고 의지하면서 습득해온 지혜를 쏟아내며 빛을 발했다. 이런 순간이 있었을까. 이들은 질문에 정성껏 답해주고 그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귀 기울이는 모습만으로 서로 존중받고 충만해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16세 소녀, 소녀들 사이의 교감은 역사교육을 넘어서 인간학을 향해 열려있었다.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더불어 성장하는 이보다 더 교육적인 순간이 있었을까.

 

 

 

 

  다시 ‘꺽다리집’으로 돌아가 보자. 판잣집에 스며드는 혹독한 추위로 아버지 얼굴에 마비가 오자, 아버지는 아예 “방구석에 부려진 덩어리”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연재와 오빠는 아버지를 위해 벼락 맞은 대추나무 가지를 구하려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 결국엔 자신과 그토록 불화했던 재순이를 비롯해 동네 아이들이 하나같이 벼락 맞은 대추나무 가지를 구하러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시간 여 인터뷰가 끝나고 이 동네 사는 아이들은 동네의 모든 게 새롭게 보인다고 했다. 아파트 동네에서 온 아이들은 분명히 이곳에 또 오고 싶을 거라고 했다. 할머니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삶과 그들의 공동체, 그들이 뿌리내린 장소와 자연까지 자기 자신에 포함시키는 인디언처럼 아이들은 마을인물백과사전을 완성할 때까지 자신이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지를 탐색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르신부터 아이들까지 이웃을 향하여 동네를 향하여 이해와 관심을 요청하게 되었을까. 벼락맞은 대추나무 가지를 같이 구하러 다닐 준비가 되었을지 궁금하다. 

 

 

[현장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