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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호_공유회] ‘나에게 문화예술교육은 무엇인가?
  • 강원재 _00은 대학 연구소
  • 2015.08.21
14호_더봄_공유회
"나에게 문화예술교육은 무엇인가?"
 
 

 

 

 

일시 : 2015년 8월 5일 18시~22시

 

장소 : 가톨릭대학교 청년회관 다리

 

참여자

 

 - 강원재 00은 대학 연구소, 지지봄봄 편집장

 

 - 고영직 문화평론가, 지지봄봄 편집위원

 

 - 채효정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지지봄봄 편집위원

 

 - 강우진 다사리문화학교 수료생

 

 - 김재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생

 

 - 최윤성 구로는 예술대학

 

 - 박아롬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 오린지 지지봄봄 코디네이터

 

 

 

 

강원재 : "이번 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14호의 방담회는 자유롭게 형식 없이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그 자체로 지지봄봄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전달될 수 있게 진행을 하겠습니다. 방담회 주제는 나에게 문화예술 교육 무엇인가?라고 잡았어요. 지지봄봄 14호 편집위원님(고영직, 채효정)들 외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수강 학생 중에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김재현씨와 구로는예술대학 학생이었다가 지금은 동네예술학부를 기획을 하고 있는 최윤성씨. 다사리문화학교의 경험과 재밌는 사례들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강우진씨가 참여해주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

 

언제 문화예술 혹은 문화예술교육이 소중하다고 느껴졌는가?

 

 

 

 

 

강우진 : 인생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소중하게 다가왔다고 생각하는 시점을 이야기 하는 거죠? 저 같은 경우는 문화예술교육이 소중했으나 살짝 스쳐 지나간 시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리코더부 활동을 했는데 선생님의 리코더 연주를 듣고 리코더에 빠지게 되어, 3년 동안 리코더를 항상 들고 다닐 정도로 좋아했었어요. 그 이후에는 고등학교 때 이과를 다니면서 문화예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살다가, 대학에 가서 사진을 전공하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인문학도 배우고 했던 것 같아요.

 

 

 

강원재 : 지금도 하고 싶지 않은가요?

 

 

 

강우진 : 아, 지금도 항상 해보고 싶어요. 집에 모셔두었어요.

 

 

 

강원재 : 사회문화예술을 하시는 분들이 그런 것 같아요. 그 순간을 잊지 못해서 나이가 들어서 다시 찾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동아리를 찾아 활동을 하게 되면 생업과 헷갈릴 정도로 가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아요.

 

 

 

김재현 : 저는 2012년도에 동아리 사람들과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라고 도시농부학교에 간 적이 있어요. 흙을 만지는 것 자체가 감정적으로 낯설고, 새롭게 다가왔어요. 그리고나서 글쓰기 수업에서 농사를 경험했는데 땅위에 씨를 뿌리고 2주 뒤에 싹이 나고, 이런 경험이 말로는 잘 표현이 안 되지만 감정적으로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는 ‘아 왜 지하철역에서 학교까지 가는데 흙을 못 보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강원재 : 그 이전에는 인지하지 못했었나요?

 

 

 

김재현 : 중고등학교 때부터는 거의 감각을 못했던 것 같아요.

 

 

 

채효정 : 돌이켜보면 저도 오늘 흙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것 같아요.

 

흙이라는 자연적 존재를 통해서 예술적 감수성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게 어떻게 보면 도시라는 인공적 공간의 역설적인 면 같아요.

 

 

 

고영직 :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쯤 홍역을 된통 앓아서 보름 정도 학교를 안 갔어요. 학교에 안 가니 너무 좋았어요. (웃음) 그때 바람도 못 쐬고 해서 집에서 바깥을 관찰했는데, 그래도 너무 심심해서 신학기 교과서를 다 읽었어요.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거인의 정원』이란 이야기가 「키다리 아저씨의 정원」이란 제목으로 교과서에 실렸어요. 아주 멋진 정원을 가진 거인의 정원에서 놀던 아이들을 다 쫒아냈더니, 그 거인의 정원만 ‘시베리아’처럼 겨울이 계속된다는 내용이었어요. 이 이야기가 나에게 퍽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어요. 뭐랄까, ‘이야기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 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이 이야기가 내 인생 최초의 이야기로 기억됩니다. 아마도 제가 책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 것도 그 이야기책의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 무렵에는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조차 없었던 시절이지만, 여하튼 그 이야기책의 힘은 매우 강렬한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채효정 : 저는 역설적이지만 ‘결여’를 통해서였던 것 같아요. 문화적 예술적 결여.  제 고향은 통영인데요. 서울이라는 대도시와의 만남을 통해 처음으로 나의 문화적 결핍을 깨우쳤던 것 같아요. 통영은 문화가 없는 곳이었구나 하는. 문화시설이라곤 고작 영화관 정도 였으니까. 지금은 좀 다르지만 그때는 통영은 자연의 세계, 서울은 문화의 세계였어요. 서울에 왔더니 친구들이 콘서트를 보러가고,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고 하는 거예요. 아마도 그게 문화였겠죠. 

 

그러면서 나는 유년기동안 이런 것이 하나도 없었구나하는 자각을 했던 것 같아요. 예술의 전당 같은 공간은  얼마나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누르는 지 참 문화적 열등감을 크게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는 긍정적 계기보다는, ‘문화 없는 자’, ‘예술 없는 자’라는, ‘없는 존재’로서의 각성을 하게 된 거죠.

 

제가 나중에 어떻게 극복을 했냐면, 어느 순간 도시의 모든 것들이 깨작깨작한 것이라고 느껴지더라구요. 바다의 힘을 아는 사람에게 오션월드같은 워터파크가 비교되지 않는 것처럼.

 

나중에 공부하면서 가우디 같은 유명한 건축가나 카잘스 같은 예술가들도 나 같은 바닷가 촌뜨기 출신이구나라고 알게 되면서 극복이 된거죠.  

 

 

 

고영직 : 채효정 선생님 이야기와 비슷한 맥락에서 그런 경험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당시 저 또한 몹시 아팠고, 심심했는데, 집안에는 읽을 책이 없었어요. 당시 아이들의 로망인 계몽사판 『세계명작동화』 같은 시리즈가 집에 있었을 리가 없었으니까요. 그때 교과서에서 접한 오스카 와일드의 이야기가 나에게 큰 위로와 힘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제 경험적 진실의 언어로 말하자면, 나에게 최초의 문화예술교육은 어쩌면 결여 내지는 결핍에서 온 것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죠.

 

 

 

강우진 : 저 같은 경우는 문화적으로 굉장히 풍요로웠어요. 피아노학원, 미술학원, 서예학원 다 다녔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예술이 예술로 안 느껴지고 공부로만 느껴졌던 거죠.

 

그런데 리코더가 저한테는 처음으로 음악이 음악으로 다가왔던 경험이었던 거예요.

 

 

 

채효정 : 저 지점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문화예술교육이 양적으로는 풍요의 시절이 되었지만 그런 식으로 많이 접한 아이들이 자라서 예술적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는 건지는 의문이 들어요.

 

 

 

김재현 : 아까 결여 이야기하신 것처럼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군대에서는 신문만 봐도 즐겁게 느껴지거든요. 센서같은 거라고 생각돼요. 조용한 상태에서는 센서가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데, 교육이라는 것이 이런 센서들을 무뎌지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최윤성 : 생각해보니 저도 도시아이였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문화예술에 노출되는 기회가 많았어요. 그래서 저에겐 콘서트를 가는 건 문화적 경험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요새는 이런 것들이 많고, 거대하고, 빠르게 올라오기 때문에 애틋하지 않은 것 같아요.

 

구로는 예술대학에서 숨겨진 마을의 이야기로 마을을 만들어보는 경험을 하였는데, 잘 놀았어요. 과정이 좋았던 것 같아요. 보통은 장소에 가면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마을을 바라보고 발견하는 과정 안에서, 그 속도 안에서 각자 그 장소를 경험하고 천천히 지켜봐주는 과정이 좋았어요. 다른 큰 문화예술을 만나는 것보다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문화예술교육이 뭐냐 질문을 받았을 때 여기서 경험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강원재 : 윤성씨는 음악. 작곡, 연주를 하는데 음악이 언제? 어떻게 찾아왔나요?

 

 

 

최윤성 : 해방구처럼 음악을 많이 듣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어요.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노래방엔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없어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다보니 내 노래를 만들게 되었던 것 같아요.

 

 

 

강원재 : 문화예술교육은 결핍을 느낄 때 소중하다가 이번 주제의 결론이네요, 

 

 

 

 

두 번째 질문

 

문화예술교육의 매개자는 누구 혹은 무엇인가?

 

 

 

 

강원재 : 재현씨의 경우는 도시농부학교로 이끌었던 분. 우진씨는 리코더를 연주해준 음악 선생님, 고영직 선생에겐 교과서, 채효정 선생에겐 통영, 그리고 윤성씨는 구로는예술대학이 있었네요.

 

저 같은 경우 중학교 국어시간에 시를 쓰게 된 후, 선생님이 문학반을 함께 하자라는 초대를 받게 되면서 시를 만나고 알게 된 것 같아요. 이렇게 매개해주는 사람이나 환경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해봅시다.

 

 

 

김재현 : 저는 작년 여름부터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면서 거기서 아이디어를 내고 구상 하는 것들이 예술과 비슷하다고 생각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것들을 할 때 동기는, 멋있는 것들이 아니라 재밌어 보이는 것들 내가 만들어 보고 싶은 것들이고, 그것들을 만들어보는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문화예술교육도 특별한 것이 아니고 턱을 낮추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고영직 :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저의 경우 어떤 사람이나 환경이 아니라, 내 안의 ‘상처’ 같은 것들이 적잖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밥상머리에서 밥 먹는 식구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네요. 누군가 나를 인도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가하고 나는 살아가겠다’라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책일 수도 있고,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일 수도 있겠지요. 함석헌 선생이 ‘앎’은 ‘앓음’이라고 풀이한 적이 있는 것처럼!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사후적인 해석이죠. 혼자 나를 에워싼 상황에 대해 근원적으로 돌아본다고 해야 할까. 일종의 ‘더듬이’를 세워 그때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원재 : 마음의 상처라는 것도 외부의 상황 때문에 일어날 수 있게 되는 건데, 그리고 이것들을 각자 어떻게 받아들이고 각자의 이야기로 만들어 갈 수 있는지가 중요하네요.

 

 

 

채효정 : 저 자신의 미적 감수성을 키워준 것도 문화적 체험 공간은 아니었어요.

 

제가 자란 공간인 통영에서는 죽음이 도처에 흔했죠. 어촌 마을이 그렇잖아요. 바다로 나간 배가 돌아오지 못하면 온 동네 줄초상이 나니까.  옆집에 나랑 놀던 옆집 아저씨가 어느 날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경험, 그리고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그 무거운 분위기. 그런 일을 겪으면서 바다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또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죠. 잔잔한 아름다움이 있는 반면에 시커먼 바다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워지는데, 이런 경험들이 삶의 깊이를 만들어내고 나중에 다시 책을 읽을 때나 음악을 들을 때 미적체험의 깊이를 만드는 것 같아요. 사실 미술관이나 도서관의 경험만으로는 이런 깊이가 생겨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요새는 획득할 수 없는 것들을 영화관이나 미술관 같은 공간에서 대리 체험하게 만들고 있지만, 삶의 경험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음악, 미술, 책 그 자체만으로는 인간의 성장을 만들 수 없는 것 같아요.

 

 

 

김재현 :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요. 학교에서 독거노인을 돕는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물품들을 준비를 해서 갔더니 이미 다른 단체에서 많이 받은 거예요. 봉사활동 가기 전에 우리 안에서 관념적으로 ‘불쌍한 분들로 생각했던 게 아닌가.’ 그리고 그 생각으로 더 그분들을 더 격리 시킨 게 아닌가. 그래서 실제로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들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후에 어떻게 행동할지 표현할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우진 : 저 같은 경우는 정서적. 거대한 충격을 받지 않았어요.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해야 할까요. 조금씩 접해오면서 예술이랑 문화랑 가까워진 것 같아요. 사람이 좋아서 다니고 교류하면서 무엇을 하다보니까 조금씩 경험했어요. 다큐멘터리 동아리를 오래하면서 함께 무언가를 하게 되고 조금씩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익숙해졌어요. 이런 과정들이 쌓이게 되면서 새로운 생각이 들게 되죠. 

 

 

 

김재현 :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무언가를 같이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고, 밥만 먹고 그냥 헤어지는 모임이 있는 것 같아요. 목적을 통해서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났는데 뭘 하고 싶은 친구들을 만나는 게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세 번째 질문

 

자연과 삶이 사라진 시대의 문화예술교육은 무엇인가?

 

 

 

 

 

강원재 : ‘자연과 삶’, 그리고 ‘예술’이야기를 하자면 ‘자연‘이라는 원 경험들이 내 삶을 다시 감각을 깨우고 ‘삶’ 속에서 느낀 상처, 상실해본 삶의 경험 그것이 예술적 감각으로 옮아가는 것 같아요.

 

예술이라는 것이 자연을 흉내 내는 것부터 시작을 했다면 자연이 사라진 시대에 예술이라는 것이 뭔가? 인공적 환경 시스템만 남은 이 상황에서 예술이라는 것이 뭔가? 원상이 사라진 시대에 인공적인 것들이 오리지널화가 되어가는 이 시대에서 그것만을 경험하고 있는 세대들이 겪게 되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강우진 : 젖어들었던 것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관심이 가고 활동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예술대를 다니고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감수성이 없구나.’ 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당시에는 머리로 찍었던 사진들이 많았어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대하고, 감정을 대하게 되면서 감성이라는 것을 되찾았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죠. 

 

 

 

김재현 : 아까 원상과 인공적인 것들을 이야기하실 때 생각난 것이 있는데요. 

 

프로그래밍 계발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는 농부랑 비슷해요. 다른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프로그램에만 집중해요. 만나는 사람들도 학력, 나이 등을 신경 쓰지 않고,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면서 새로운 언어, 서로 코드를 보면서 아름다움을 찾고 화합을 추구해요.

 

그래서 무엇을 보는가도 중요하지만 만드는 행위도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강원재 : 현대적 장인 같네요. 솜씨 좋은 대장장이가 만든 곡괭이를 보고 ‘예쁘다. 예술적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이...

 

 

 

강우진 : 프로그래밍뿐만 아니라 인공적인 분야에서 일궈 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김재현 : 김훈의 자전거여행에서 보면 자전거의 구조를 이야기하면서 인생을 이야기하죠, ‘뭘 보느냐는 중요하지 않겠다.’라는 생각도 했어요. 

 

 

 

채효정 : 원경험이 없어지는 환경으로 가고 있다고 이야기 했는데요. 엄밀하게 보자면 사실 인공 환경도 자연 안에 있는 거거든요. 세계 자체가 절대로 완벽하게 인공화 될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 인공적인 환경이나 문화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해도 삶이 주는 비극을 피해갈 수는 없는데. 학교에서 학생들이 쓴 글을 보면서 놀랐던 것이,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슬픔이란 빨리 없애야하는 경험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우리 모두에게 작년의 세월호의 경험이 남아있을 텐데 그게 어떤 방식으로도 공동체적으로 승화되지 않고 파편화된 내면의 감정과 상처로 남아있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어릴 때부터 슬픔 같은 감정은 빨리 해결하고 없애야한다는 식으로 배우면서 자라오지 않았나 싶어요. 슬픔ㆍ고통ㆍ분노ㆍ불안 이런 감정들은 비정상적인 감적이라 생각하고 정상적인 감정인인 행복ㆍ안정으로 빨리 회복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반면 슬픔이란 감정 자체를 아예 못 느끼는 경우도 있었어요. 슬퍼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는 하지만 감정으로서는 느끼지 못하는 거죠. 슬퍼한다는 것과 슬퍼해야함을 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건데 말이죠. 분노하는 것과 분노를 ‘아는’ 것이 다르듯이.

 

문화예술교육은 분노를 아는 인간이 아니라 분노하는 인간을 만들고 슬픔을 아는 인간이 아니라 슬퍼하는 인간을 만들어야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반대로 감각을 예상된 경로로만 표출시키도록 교육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고영직 : TV 프로그램은 하나같이 매개된 경험을 말합니다. 히말라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마치 자신이 히말라야에 갔다온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해봤어?’가 아니라 ‘봤어?’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 연장선에서 문화예술교육도 그렇고, 대학교육도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지론이기도 한데요, 저는 아이들을 시인이나 예술가로 만드는 것은 절대로 교육이 아니고 큰 의미의 ‘자연’라고 생각해요. 이때의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Self-so)과 본성(nature)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겠지요. 결국, 어떻게 매개된 경험이나 지식이 아니라 어떻게 직접 자연을 만나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이 관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강원재 : 삶의 경험이 예술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예술을 통해서 그 순간으로 가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예술의 존재적 가치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자신의 삶의 상처나 상실감, 갈망 등을 표현한 표현물들을 통해 그 작가가 접했던 그 순간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을 텐데 왜 우리는 이 도시 안에서 많은 예술 작품들, 순간들을 만나면서 그것이 탄생했던 그 순간으로 들어가지 못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드네요. 과잉 때문일까요?

 

 

 

김재현 : 좀 긴장된 상태로 사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콤플렉스가 주입되지 않았나. 말싸움을 할 때도 먼저 화내는 사람이 지는 거다. 공부할 때도 그런 것 같아요. 냉철하고 스마트한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콤플렉스가 우리한테 있지 않나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긴장을 조금만 풀면 나도 주변에 있는 것들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최윤성 : 이성적으로 잘해야 되는 것이 많은 것 같아요. 해야 하는 것과 잘해야 하는 것 

 

 

 

강우진 : 저는 살짝 다를 수 있는데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문화들을 저희 세대들이 못 느끼는 것은 그런 경험들을 못 겪어서 공감대가 형성 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런 인공적인 환경에 적응한, 적용된 저 같은 사람들이 완전 공감하는 것이 있는데 인터넷 짤방 이예요. 저는 이것들이 정말 문화(예술)적이라고 생각해요. 볼 때 마다 ‘어떻게 이런 창의적인 생각을 했을까?’라고. 그리고 이 중에 쓸데없이 ‘고퀄’이라고 진짜 장인 정신으로 만드는 것들이 있어요. ‘진짜 할일 없구나’, ‘이거 어떻게 만들었지?’ 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요. 이런 것들이 사실 인터넷상에서 굉장한 파급력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이런 것들의 탄생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채효정 : 그런 욕구. 어떤 에너지의 힘, 어떤 미적인 표현의 의지가, 인간의 본질 규정 속 안에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제대로 응집되거나 표출되지 않고, 소모되고 소비되고 사라져버리는 것, 기호처럼 떠돌아다니다 그냥 흩어져버리는 식으로 되어서 굉장히 아까워요. 되게 중요한 건데. 이것들이 중요한 방향으로 물길을 터간다면 굉장히 커다란 무엇이 될 텐데, 계속 파편화된 형태로만 있다가 사라져 버리니 아쉬워요.

 

마찬가지로 짤방의 그런 장인 정신들이 좀 깊이 있게, 체계적으로(?), 아니면 흐름을 가지고 모아져 가면 어떤 새로운 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일반화된 장 말고 또 다른 형식의 창조적 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잠재된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고. ‘그거 자체를 예술이다’라고 말하기는 좀 어려운 거 같아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잘 모아야 할지는 재단이나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김재현 : 전 ‘제대로 해야 할까?’에 대해서는 회의가 있어요. 짤방같은 서브 컬쳐가 많이 판치는 것들을 이제 우리가 ‘제대로 한번 해보자’라고 하는 순간, 어려워지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우리가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좋다고 해서 만화 단지를 만들고 몇 십억을 투자하는 것이 좋은 게 아니거든요. 사실 지브리가 생긴 발단은 수많은 B급 문화가 있는 환경 속에서 지브리 같은 애니메이션이 생긴 거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라는 사람들이 수준 낮은 것들을 볼 때 저거 예술도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런 성장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강원재 : 지브리가 생겨 나온 것은 일본이 급속한 서구화와 패전의 경험, 그리고 도시의 급격하게 발전, 그러면서도 한 편에서는 수많은 민담이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 시골 출신의 도시세대가 생기고, 이런 상황에서 만화가 발전하고 이런 B급 문화들이 등장하고, 표현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한 환경에서 지브리라는 것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들이 아니었을까. 그럴 때 B급 만화가 등장하게 되는 전 단계에서 삶의 경험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네 번째 질문

 

문화예술적 경험이 교육 안에서 가능하기 위해서는?

 

 

 

 

강원재 : 문화예술적 경험을 통해 세상이 바뀌는 경험들을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메타포 하나를 내가 알게 됨으로써. ‘하늘의 별이 다 같은 별이 아니네.’, ‘어제의 별이 오늘의 별이 아니구나.’, ‘이 컵이 역시 그냥 컵이 아니구나.’하는 식으로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하는 것인데. 과연 우리는 이런 경험들을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이런 것들이 경험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오늘 문화예술교육 방담회니까.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이런 경험들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일단은 가능한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가능하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이야기 나눠봅시다.

 

 

 

 

 

 

 

김재현 : 두 가지 사례가 있는데, 한 가지는 그림 그리는 사례였어요. 친구 중에 미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양쪽의 시력차이가 커서 명암 같은 것을 특이하게 보는데, 미대입시 준비를 할 때 정물화를 그리면 명암을 특이하게 넣었다고 해요. 근데 그림을 보고 강사가 이것 이렇게 그리면 안 된다, 명암 이렇게 반대로 그리면 안 된다고 해서 친구가 외워서 시험을 봤데요. (그런데 제가 볼 때 이 친구가 명암 다르게 계발했으면 훨씬 더 멋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이번 학기 때 이 친구에게 그림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제가 무엇을 그려가도 다 잘했다고 했어요. 이상한 것을 그려가도 이렇게 그리기 쉽지 않다며 이야기 해줬어요. 답을 정해주지 않고 잘했다고 해주는 것이 오히려 예술교육에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었을 때는 두꺼운 책을 통해 배우니까 한 학기동안 검은 화면을 못 벗어났어요. 그래서 이거 무슨 재미로 하나 했어요. 방학 때 친구들한테 배우게 됐는데 훨씬 빠르고 재밌고 이론에 대해서 깊이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교육을 할 때도 답을 정해놓지 않고, 예술에서도 그럴듯한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하지 않나 생각해요.

 

 

 

강원재 : 정답이 있는 것들의 경계가 필요하다는 거죠.

 

 

 

강우진 :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무엇을 하든 받는 사람이 주체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요새 제일 고민하는 부분이 ‘아이들이 체험활동을 어떻게 하면 재밌게 할 수 있을까?’인데, 저번에 체험활동을 진행하였는데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기존의 체험활동은 선생님이 하는 대로 따라만 다녀서 인형 같다고 너무 싫었다고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풀어놓고 스스로 찾아보게 했어요. 그랬더니 완벽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즐겁게 찾아다녔어요. 그래서 무엇을 하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풀어주고 동기 부여를 해주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정말 냉정하다고 느껴져서 한 번은 선생님들에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이 요즘 아이들은 좋은 말로 쿨해서 무엇을 주려고하는 게 쉽지는 않다고 하셨어요.

 

 

 

채효정 : 그 쿨한 정서가 가장 큰 장벽인 것 같아요. 지금 교육은 논리-수학적이고 합리적인 아이들로만 만들고... 공감하려면 뜨거워야하는데, 무엇을 항상 식히다 보니까 항상 심드렁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제가 권하는 방법은 사랑이에요. 연애를 허하라.(하하하) 그래서 대상에 대해서 미칠 듯이 함몰하고, 그것을 잃어보는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여러 가지 대상이 있을 수 있는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제일 큰 것 같아요. 

 

 

 

강원재 : 요새는 사랑하는 것도 되게 시크한 것 같아요.(하하하)

 

 

 

채효정 : ‘썸’이라고 하지요. 가장 큰 이유는 돈.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해요. 수업 때 썸에 대해 토론하고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지금의 학생들은 사랑에 노력하고 투자할 시간이 없어요. 만날 시간도 없는 거예요. 또 하나. 감정, 감성과 관련해서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거예요. 어느 정도의 안에서 내 삶이 크게 휘청하지 않을 정도만 가는 것은 괜찮은데, 누군가를(무언가를) ‘사랑’ 하다 내가 휘청해버리면 학점부터 시작해서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그 고통과 상실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는 거죠.

 

 

 

고영직 : 엉뚱한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저는 학습자들에게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좀 멋지게 말하자면 ‘고독’이 필요한 것이지요! 고독을 허하라! (웃음)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랄까, 이런 것들이 많이 약해진 데에는 고독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성인들 할 것 없이 너무 ‘긴장’된 상태로 일상을 사는 것 같아요. 고독은 몸과 마음을 ‘이완’시킵니다. 그래야 뭔가를 할 수 있는 궁리도 나오고 그렇죠. 비어 있는 시간, 흐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롯이 자기 자신을 만나는 고독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고독력이 생깁니다. 놀이의 3요소가 놀 시간, 놀 공간, 놀 친구 아닙니까? 요즘 저는 ‘비밀기지’를 하나 만들려고 궁리하고 있습니다. 

 

 

 

 

 

강원재 :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문화예술교육시간에 아무것도 안하는 거네요.

 

 

 

고영직 : 그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최윤성 : 문화예술교육이라고 하면 그 시간에는 다 같이 열심히 해야만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현장에서는 그런 것들이 실행되는 게 어려워요. 앞에서 자꾸 나서서 ‘무언가를 이렇게 합시다.’, ‘저렇게 합시다.’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속도에 맞춰서 해야 하지 않을까요. 각자 따로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하나가 될 수 있는 실행. 여럿 속에 있지만 각자 존재할 수 있어야할 것 같아요. 스스로의 동기들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김재현 : 동감하는데요. 혼자서 노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자존감도 감을 찾는 것인데 혼자서 자신과 대화를 하면서 어느 지점에서 슬퍼하고 기뻐하는지 감을 찾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혼자 있을 때 노는 방식을 제시해주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박아롬 : 저도 자신감 부분이 많이 공감되네요. 좀 더 강렬하게 ‘자뻑‘이라고 하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학창시절에 다른 친구들보다 많은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했지만 임팩트는 없었고 다른 친구들과 평범하게 지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 친구들이 ’넌 자신의 감정 표현에 거리낌이 없어서 특이했었다.‘라고 이야기해줘서 알게 되었어요. 하교 할 때 앞을 안보고 하늘 보고 걷느라 친구들이 양옆에서 붙잡아 주거나 야자하기 싫다고 운동장을 보며 펑펑 운다든지.. 성인이 되고 힘든 상황이 왔는데 어떻게 표현할지 답답했는데 그 생각이  나서 따라 해봤었다고. 말하더라구요.

 

자신에 대한 ‘자뻑‘도 필요하고, 고독함(감정)이 맞으면 같이 있지 않아도 공감과 공유가 되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강원재 : 그 고독 속에 자신을 놓아줄 수 있는 용기와 그것이 가능한 환경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약간 단정을 하고 이야기한다면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것이 시간을 한 시간이나 두 시간으로 정해두고, 스무 명 서른 명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을 하고 있는 예술강사분들을 만나보면, 이런 것들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학생들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경험토록 할 수 있는 것인가 싶어져요. 혹시 그런 경험들이 있을까요?

 

 

 

김재현 : 학교에서 미술수업을 들었을 때 첫 시간에 주머니 안에 물건을 넣고 촉각으로만 그리는 시간이었는데, 처음에는 옆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볼까봐 신경이 쓰여서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어요. 그 다음 시간부터는 한 주제를 가지고, 일주일 동안 그림을 그리고, 수업시간에는 만나서 그려온 그림들을 발표만 했어요. 작업은 각자하고, 공유하는 것이 저는 좋았어요. 친구들의 생각도 듣고, 그림은 혼자 오롯이 만들고, 이런 것들을 분리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강원재 : 좋은 방식인 것 같아요. 혼자서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하고, 경험하면서 만드는 과정들과 그리고 그것을 같이 나누는 시간은 함께 하는 것.

 

 

 

김재현 : 함께 그림을 볼 때도 좋다 나쁘다가 아닌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겠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 나누었어요. 재밌었던 건 친구의 작품을 보고 연상해서 다음 그림을 그렸던 방식도 좋았던 것 같아요. 

 

 

 

 

 

 

 

 

채효정 : 제가 하는 예술과 정치라는 수업은 첫 시간에 숲으로 가요. 시를 읽고, 자기 나무를 찾아서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갖고, 그 다음 시간에 그 나무와의 만남을 시로 표현하게 하는데, 사실 멘붕이죠.(하하하) 나중에 작품을 모아보면 경향성이 나눠지는데, 관찰하는 성향들은 겉에서 나무를 바라보고, 나머지 두 가지 성향의 학생들은 나무에 감정 이입을 하거나 나무를 자기화해요. 대상과 나 사이에 합치가 일어나고, 이런 식으로 각자의 시간을 가진 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나누며 공동의 작업으로 창작하는 과정을 거치는 거죠.

 

 

 

강원재 : 각자의 시간을 충분히 주고, 그 시간 안에 이뤄진 경험을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는 거네요.

 

 

 

채효정 : 네, 참 좋은 것 같아요. 시 역시 주관적인 체험으로 나무를 보면서 슬퍼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고. 또 주관적 체험들임에도 서로 나누는 게 가능하고 서로의 감정을 또 감상을 하게 되고. 감각과 공통 감각, 이런 것들을 포착하기도 해요. 중요한 건, 숲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조망만 하다가 안에 들어가면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는 거예요. 

 

 

 

최윤성 : 전에 수업에서 공동 드로잉을 했었어요. 벽만한 전지를 펼쳐놓고 같이 그림을 그리는 거였어요. 처음에는 주제가 있었죠. 사실 그때는 그림이 잘 안 그려졌어요. 그 후에 ‘지금 내가 감각하고 있는 것들을 표현 하세요.’ 하는 순간 조금씩 그림이 그려지는데, 열댓 명의 사람들이 한 도화지 안에서 그림을 그려나가는데 각자의 영역들을 침범하기도 하고 침범당하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모습들이 나오게 되요. 서로 아무 말도 안하지만 서로를 느끼고 지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3시간 정도를 그리고 끝났는데 그리고 난 후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각자 따로 또 같이 했던 거예요. 같이 그림을 그린 친구들 모두 좋은 경험이었어요.   

 

 

 

채효정 : 저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한 적 있는데, ‘1인1획 프로젝트’라고 강의동 앞에 큰 캔버스를 두고, 오가는 사람에게 단 한 획만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리게 했어요. 처음에는 엉망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다들 신중하게 자기만의 한 획을 그리는 거예요. 완성된 그림이라는 것이 누구의 머릿속에도 없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멋지게 만들려고 노력하며 붓질을 하였어요. 완성된 그림은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추상화 작품인가 느낄 정도였어요. 색채라든지 구성이라든지 생각해서 만든 것처럼. 집단지성의 작동이랄까, 인간들의 협동의 움직임을 볼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최윤성 : 그런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잘 그리고 싶기도 하지만 서로의 것을 망치는 쾌감도 있어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거예요.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내가 침범하는 그림을 그리려면 다른 사람의 그림을 지워야하는 거죠. 그림을 지우면서 그 사람에게 훅 들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서로의 영역들을 침범하면서 더 가까워지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경계가 무너지면서 또 다른 그림이 되죠.

 

 

 

채효정 : 한 획을 그리는 동안 짧은 시간 안에 혼자 많은 고민과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고, 한 시간 동안 나무와 만나는 경험도 일상 속에서는 없는 혼자만의 시간이었을 거예요. 

 

사실 요새는 몸이 물리적으로 혼자 있다 해도 페이스북이나 핸드폰으로 항상 연결 되어있으니까.  일종의 과잉 연결 상태라고 할 수 있죠. 그 때 우리는 세계와 ‘소통’ 하기보다는 계속 그냥 외부에 ‘반응’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만의 방법은 혼자 걷는 것인데. 반응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분출하는 것인데, 홀로  걷는 시간 동안 탁주가 맑아지듯이 그게 가라앉으면서, 걸러지면서 비로소 어떤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고영직 :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너무나 많이 외부의 힘에 의존하고 삽니다. 좀 자라면 유치원에 가야 하고, 더 자라면 학교라는 제도에 들어가야 하고……. 그런 식으로 국가와 시장이라는 시스템에 의존하고 사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를 ‘아웃소싱’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런 안락을 위한 시스템 속에서는 저마다의 고독과 상처와 분노의 감정이랄까 하는 부분이 싹 거세(去勢)되고 ‘미끈덩한’ 형태로 변형됩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의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궤도에서 ‘이탈’하는 방식의 새로운 접근 방식이 요구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예제가 폐지된 것은 남북전쟁의 결과라기보다는 도망노예들의 탈주(脫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의 지원방식에서 이탈한 이후 어떻게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남아 있겠지만. 

 

 


 

 

다섯 번째 질문

 

‘좋은’ 문화예술교육을 어떻게 계획할 수 있는가?

 

 


 

 

강원재 : 마지막 질문 하나를 나눠볼까요. 

 

문화예술적 경험이 교육 안에서 가능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 나누었는데요.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 만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넘나 들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고영직 선생님은 지금의 문화예술교육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제기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우리는 ‘좋은’ 문화예술교육을 어떻게 계획할 수 있을까요?

 

 

 

 

 

고영직 : 저는 무엇보다 ‘동료’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 해 7만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학교에서 이탈함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이유는 학교에 가면 친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같이 밥 먹을 친구가 있고, 같이 놀 친구가 있는 것이지요. 친구를 만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문화예술)교육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세 가지의 ‘사이(間)’라고 봅니다. 시간-공간-인간, 이것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요즘 자유학기제 때문에 학교 선생님들과 학교 예술강사들을 더러 만난 적이 있는데, 학교 선생님들보다 학교 예술강사들이 너무나 경직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자유학기제 관련해서는 오히려 학교 선생님들이 더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인상을 갖게 됩니다. 학교 예술강사 내지는 예술가들이 자기 영역을 오히려 사수(死守)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커리큘럼도 너무나 상투적이구요. 아이들의 의견을 청취해 보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이 점에서 사회문화예술교육의 경우 아이들이든 성인들이든 노년이든 간에 지원 시스템을 학습자를 주체로 만드는 지원 시스템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생각합니다. 학습자를 위한(for) 시스템이 아니라 학습자에 의한(by)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강원재 : 헷갈리는 게, 학습자 중심의 교육이 이뤄져야한다. 이것에 대해 이견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지만,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학습의 주도권을 넘길 수 있을까요? 아니면 아이들이 스스로 찾을 때 까지 건드리지 말아야 할까요? 가끔 훌륭한 교사가 뭔가를 제시해줬을 때 그제서야 내가 원하는 게 그것이었다면서 반응하는 경우를 보는데요. 이런 부분이 고민되네요.

 

 

 

강우진 : 저는 학습자가 뭘 배우고 싶은 게 아니라 뭘 해결하고 싶은가로 접근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이나 문제들을 들어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이런 학습이 좋을 거 같다’ 이런 식으로 같이 만들어가는 형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요새 역사문화 콘텐츠를 전달을 위한 프로젝트 준비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지식적으로 전달하려고하면 아무런 감흥이 없어요. 아이들이 나 연결된 고리가 있으면 관심이 있어 하고 재밌어 해요. ‘배우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게 있어?’할 땐 힘들었는데 네가 관심 있어 하는 것과 이거 연결이 있다. 라고 이야기하면 관심 있어 하고 재밌어 했어요. 그런 식으로 무엇을 배운다기보다는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생각하고 있는지로 접근해야하지 않나 생각해요

 

 

 

채효정 : 저는 아까 ‘인간, 공간, 시간’ 이야기 하실 때. 무엇을 볼 것인가에 있어서 최근에 관점이 바뀐 것이 있어요. 예전에는 교육학의 연구나 책들을 보면 프로그램, 교육방법론, 교수학습방법론이 중심이었어요. 사람은 부속 요소이고 프로그램에 계속 집중하는 거예요. 

 

그런데 반대로  ‘이런 사람’이 지금의 교육체제 안에서 나올 수가 없는데, ‘이런 인간이 지금의 교육체제 안에서 어떻게 생겼지?’ 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찾아내서 이 사람을 성장시킨 조건이 무엇인지를 한번 찾아보는 거죠. 방향이나 포커스를 바꾸는 거죠. 굉장히 중요해요. 프로그램에만 계속 주목하게 되면 다른 현장에서는 아예 다른 형태가 될 수도 있고, 근데 사람에 집중하게 되면 그 사람의 다른 조건을 찾아보고 추적해볼 수 있는 거죠.

 

우리 이번 방담회의 사유의 방식도 그런 것일 수도 있어요. 각자에게  어떤 계기가 있어서 미적 감수성이나 예술적인 충격이나 자신의 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들을 봤잖아요. 지금까지 해왔던 지원 체계든 미술이론, 사례연구에서는 다 이런 식으로 이뤄지지 않았죠. 포커스를 조금 다르게 보면 다른 출구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고영직 : 이번에 인터뷰를 많이 시도해 보세요. 

 

 

 

강원재 : 어떻게 보면 프로그램은 고정될 수가 없는 것 같거든요. 똑같은 프로그램인데 이쪽에서는 잘되고 저쪽에서는 안 되고, 외국에서 잘된 사례를 가져와도 우리나라는 잘 안되고, 같은 선생님이 해도 a반에서는 잘되는데 b반에서는 안 되는 경우. 그 상황, 조건, 사람들에 따라 늘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순간에 잠깐 이 찰나에 교수가 무엇을 해야 하는데 안하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 순간에 형성되는 것들은 같이 만들어 갈 수 밖에 없는데. 이런 것들을 프로그램으로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안 좋은 프로그램이 던져져도, 훌륭하게 해내는 강사들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이런 감각들이 참 중요하다 싶어요.


 

 

강원재 : 이번 방담회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로 하구요. 오랜 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