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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있는 생명에서는 소리가 난다. 컬쳐커뮤니티동네 ‘얼렁뚱땅 생태도감’
  • 강원재 _땡땡은 대학 연구소 제 1소장
  • 2014.12.13

 

 

  김포시는 물 좋고, 햇볕 좋고, 바닷바람 드는 드넓은 평야의 훌륭한 벼를 수확하던 곡창지대에서 수많은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선 신도시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불과 20여 년 동안에 이뤄졌다. 그런 만큼 지역 곳곳이 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다. 김포시 곳곳은 마천루를 이룬 미분양 아파트들이 자극적인 플랜카드를 경쟁적으로 내 걸고 집을 사 줄 손님을 유치하고 있다. 반면 어느 곳은 학교 옆에도 주택 옆에도 냄새나고 소음 심한 공장이 들어서면서, 땅값이 오른 주민들은 집을 팔거나 임대를 놓고는 마천루로 이사 가고, 도시에서 밀려났거나 가진 것 없어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일할 곳을 찾아온 외국인 근로자들로 이뤄진 지역이 된다. 

  <컬쳐커뮤니티동네>의 양재혁 작가가 <하성제일지역아동센터>(이하, 아동센터)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하성면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에 속한 개풍군이 접하고 있어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의 발전은 처음부터 어려웠고, 중소규모 축산시설과 공장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는 전반적으로 가난한 지역이다. 즉 지역 전반으로 인구의 이동이 많고, 그래서인지 아동센터를 다니는 아이들의 들고남도 잦아지고 있는 추세라 한다. 양재혁 작가는 지난 해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성면의 생활환경을 담은 ‘하성사용설명서’를 제작하는 작업을 했었는데, 올해는 그 후속작업으로 지역의 자연환경을 담는 ‘얼렁뚱땅 생태도감’ 제작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얼렁뚱땅 생태도감 프로젝트’는 <컬쳐커뮤니티동네.의 교사들과 20여명의 초등1~6학년 아동센터 아이들이 관찰자적 시선으로 지역을 돌아다니며 발견하고 채집한 자연생태물을 다분히 주관적이고, 그래서 예술적인 방법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아카이빙 한 후, 이를 ‘생태도감’이라는 이름의 책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10월27일, 아동센터 수업에서는 그동안 몇 차례 지역탐사를 통해 아이들이 채집해온 나뭇잎, 열매, 풀, 꽃 등 다양한 자연물의 특성과 느낌을 각자 말해보고 자신의 시선으로 이름을 짓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후 준비된 투명비닐로 진공·포장해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평소 수업에서는 양재혁 작가가 아트워킹을 주로 담당하고 주희란 선생이나 윤영욱 선생이 관찰지도룰 담당해왔는데, 이날은 두 분 모두 개인적 사정으로 양재혁 선생 혼자 14명의 아이들을 만나야 했다. 그래서인지 양선생은 이날 꽤나 많은 진땀을 흘려야 했다.

 

 

 

 

     양작가 : 오늘은 윤영욱 선생님이 아프셔서 나 혼자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늘은 특별히 선생님을 많이 도와줘야 해요.

     아이들 : ... 전에 하시던 선생님은요?

     양작가 : 아! 주희란 선생님은 저번에도 말했지만 아이를 가지셨어요.

     아이들 : 거~ 작년에 하시던 선생님요?

     양작가 : 아! 채희선 선생님은 개인적 사정(결혼)때문에 그만 두시게 된 거예요.

 

  아무래도 아이들은 ‘슈퍼돼지’ 혹은 ‘양배추’라 부를 수 있는 친근한 양재혁 작가보다는 채희선 선생이나 주희란 선생과 돌봄의 애착 관계가 더 형성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채선생과 주선생이 아이들에게 공식적으로 작별인사를 하지 않은 모양이다. 지난해부터 계속 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에는 지난 ‘하성사용설명서’ 작업을 통해 만난 맛있게 먹었던 분식점이 왜 사라졌는지도 모른 채 사라진 것처럼 왜 그때의 선생님이 말도 없이 이 수업에서 사라진 것인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는 아이들의 일상마저 비켜가지 않고 있는 듯하다. 

  지난 수업에서 채집해온 ‘탱자’와 ‘말라버린 들꽃’를 들고, 양작가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만져보라고 하면서 느낌을 물었는데, “똥같다”, “개똥, 토끼똥”, “전등”, “딱딱하고 더러운 느낌이다”, “쭈글쭈글하다”, “까칠까칠하다”, “거지같다”는 아이들의 ‘솔직한’ 대답이 이어졌다. 유아들은 만물의 내적 연관성을 생각지 못하고 분리해서 바라보지만, 어린이는 “만물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질서정연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바라 볼 수 있으며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항상 자신과 관련이 있는 사물을 가장 명확하게 보고, 가장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그의 저서 [인간의 교육]을 통해 밝힌 프뢰벨(1782~1852)에 믿음을 따르자면, 아이들이 느끼는 하성의 자연환경은 ‘쭈글쭈글’하고, ‘거지’같으며, ‘더러운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이 말없이 사라진 것이나 맛있는 분식점이 어느 날 없어지는 것이나 자신이 지난 시간 채집한 자연이 쭈글쭈글 더러워진 것을 모두 연관해 느끼고 있는 중인 것이다.  “지역의 자연을 아이들이 만나면서 긍정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이를 예술적 표현으로 전환하면서 지역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의 자긍심을 갖도록 하고 싶었다”는 양작가의 교육적 목표가 먹혀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이러한 지역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발딛고 살아가는 거지같은 환경에서 긍정의 이미지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선을 촉발하는 이야기와 의미가 필요하다. 가령 쭈글쭈글하고 거칠거칠해진 탱자에 대한 이야기를 ‘집이나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와의 연결을 시도하면서 생명의 근원과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갔더라면 어땠을까? 자연과 생명,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이 더 생길 수는 있지 않았을까 싶다. 

  수업이 계속 이어지면서는 얼핏 보아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혓바닥들 내밀면서 다른 아이를 놀리는 아이(새로 온 아이), 그리고 그것을 참지 못하고 놀리는 아이를 때리는 아이(이전부터 있던 아이), 싫다는 친구(이전부터 있던 아이)를 따라 다니며 신체적 접촉을 계속 시도하는 아이(새로 온 아이)들로 인해 수업은 전반적으로 산만하고 시끄러웠다.

 

    양선생 : 도훈이, 진영이 일어나서 저쪽 벽 쪽으로 가서 벽보고 서있어

             (좀 지난 다음) 도훈이, 진영이 또 놀릴 거야?

    도훈이 : 아니요

    양선생 : 도훈이 들어가서 앉아. 진영이는 도훈이 때릴 거야?

    진영이 : 네

    양선생 : 그럼 계속 서 있어

             (또 좀 지난 다음) 진영이, 도훈이 때릴 거야?

    진영이 : 아니요

    양선생 : 들어가서 자리에 앉아. 앞으로 그러지마

 

  양작가에 따르면 이 아이들은 얼마 전 아동센터에 왔다고 한다. 아동센터 교사들이 다른 수업에는 붙일 수가 없어서 이들을 다른 아이들과 따로 있게 했는데, 이 아이들이 양작가네 수업에 쭈뼛거리며 관심 있어 하는 걸 보고는 “어떤 아이들도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양작가는 이들을 수업으로 초대했다고 한다. 새로운 아이들로 인해 수업이 어수선해지고 이전의 평화로움이 깨졌지만 나는 양선생의 생각이 옳았다고 믿는다. 알바니 프리스쿨의 크리스메르코클리아노 선생은 ADHD(주의력결핍장애)를 겪는 아이들에게 처방되는 리탈린이라는 각성제의 폐해에 대해 소개하면서 “각성제의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활동과 무언가를 탐색하고 장난을 치고 누군가와 교류하는 사회화를 위한 행동까지 억제하는 데 있다. 각성제는 온순하고 수동적이며 스스로를 사회에서 고립시키려는 경향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장애를 겪는 아이들을 수업에서 분리하는 것은 사회적 리탈린을 처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좋은 수업이 곧 평화로운 수업인 것은 아니다. 익숙한 것과 불편한 것 사이에서 긴장을 가지면서 합리적이면서 비폭력적이며 조금 더뎌도 애증을 갖고 함께 살 수 있는 관계의 질서를 스스로 찾아가는 능력이 발현되는 수업이, 외부환경은 온통 모순투성이고 타자들인데 처음부터 주어진 평화로움 안에 안주해버려 긴장의 상호작용 감각이 무뎌져 버리는 수업보다는 단절되고 일상의 어떤 것이 갑자기 사라지는 게 익숙해져 버리는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더 좋은 수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업 후 양작가는 “당분간 진도를 빼지 말고, 아이들과 충분히 좀 놀아야겠다”고 했다. 그 역시 맞는 말이다. 놀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놀이자들이 서로 인정하고 동의해야만 하는 자율적 규칙이 있어서 관계의 질서 찾기와 공동체감 형성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데 아쉬움이 있다. 이날 수업에는 굳이 앞으로 몇 주간을 놀이 시간으로 따로 갖지 않아도 그 자체가 놀이의 효과를 발휘했을 만한 장면들이 있었다. 예를들어 놀리는 도훈이를 채집해온 자연물과 연결해보려 했더라면, 참지 못하고 때린 도훈이를 자연물 혹은 환경에서의 비유를 찾아보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평소 양작가를 생각해볼 때 1인 2~3역을 하면서 아이들 돌보느라 진땀 흘리지만 않았더라도, 불쑥 찾아온 내게 멋진 수업 보여주려고 오버하지만 않았더라면 분명 놓치지 않았을 것들이다. 그래서 양선생에게 아이들에게 좀 미안해졌다. 앞으로 지지봄봄 현장비평은 ‘아이들과 교사들이 함께 스스로의 수업을 공개하겠다고 하는 시간과 장소’로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수업비평의 행위 그 자체가 현장에서 참관한 이들 모두 함께 규칙 있는 대화를 하면서 이뤄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 역시 들었다.  

 

   생동하며, 살아 숨 쉴 뿐 아니라 삶을 흥분시킬 수 있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교육이 가능한 순간, 적절한 장소, 새로운 (주제의) 교육내용을 소개해야 하는 순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삶을 흥분시키고, 자연적이고 합리적인 교수 체계의 분명한 특성은 바로 이런 순간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만일 이 순간을 확실히 발견한다면 교육할 내용은 그 자체 살아있는 법칙에 따라 저절로 전개되면서, 교사 자신에게 알려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사의 주된 관심은 교육내용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 가능 순간을 발견하는 데 집중되어야 합니다.(프뢰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