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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의 감수성, 하루하루 켜켜로 새기다 -죽산 꿈다락방의 양재석 선생님 이야기를 듣다
  • 김경옥 _공간 민들레 대표
  • 2014.12.12

 

 

지난 4월 한반도 남쪽, 이미 봄이 가득했던 그 바다에서 300여명의 꽃다운 어린 청춘들이 ‘생명’을 잃었다. 사람들은, 봄꽃이 지천에 널렸어도, 한여름 초록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려도, 늦가을 노란 은행잎이 거리를 덮어도, 그새 하얀 눈에 크리스마스 노래가 울려 퍼져도, 그날 그렇게 죽어간 아이들을 떠올렸다. 올해 우리는 이렇듯 비극적인 죽음을 만나, ‘생명’을 지켜내는 것의 엄중함을 곱씹어야 했다. 더 이상 무얼 해도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리긴 틀려먹었다. 

 

올 한해 그야말로 뭘 해도 떠나지 않는 ‘그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그런 분을 지지봄봄이 만났다. 죽산 꿈다락에서 아이들과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가는 양재석님이다. 아이들과 만나 무얼 어떻게 하고 계신지, 이야기를 들었다. 

 

 

 

 

“목금토 생태미술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을 만나는데, 이름의 배경이 있어요. ‘木(목)金(금)土(토)’란 일상생활의 근본이 되는 요일 중 나무와 금속과 흙으로 대표되는, 자연을 상징하는 물질이죠. 이름에서부터 아이들의 잠재된 예술적 감수성을 자극하겠다는 제 의도를 명확히 하고 싶었어요.

구체적으로는 상반기 하반기 나눠서 3가지 소재별로 5주씩 수업을 진행하는데 첫 주는 관련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현장학습을 가고 둘째 주부터는 본격적인 수업을 진행하는데 그 첫 시작은 앵글과 암실커튼으로 암막을 만들고 그 안에 각 소재의 다양한 모습을 느낄 수 있는 물건을 넣어서 아이들이 손의 촉감과 후각만을 이용해서 각 물건들 느끼고 기억하게끔 유도합니다. 

만약 나무를 주제로 수업을 시작한다고 하면 그 암막에 나뭇가지와 나무블럭, 톱밥, 대패밥 등을 넣어두고 그것이 ‘나뭇가지이고, 나무블럭이고, 톱밥이고, 대패밥이다’라고 알아맞히는 것은 아니에요. ‘이것은 가늘고 단단하긴 한데 두 손으로 만지면 휘어진다(나뭇가지). 딱딱하지만 매끈하고 부드럽다(나무블럭). 거칠거칠한 가루 같고 뭔가 매운 냄새가 난다(톱밥). 얇고 만지면 잘 부러지는데 무슨 냄새가 난다(대패밥).’처럼, 이렇게 아이들이 그 재료들에 대한 느낌을 충분히 느끼고 난 후 단단하지만 두 손으로 만지면 휘어지는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린 다든지,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일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뭇가지의 거친 단면으로 선을 긋는다든지, 나뭇가지를 굴려서 나오는 불규칙한 패턴을 연구하든지 하는 과정으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또한 아이들이 직접 대패질해서 나온 대패밥을 펴서 책갈피나 어떤 형상을 표현한다든지 하는 것으로 아이들이 재료(자연물)의 특징을 직접 느끼고 이걸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유도를 하려고 합니다. 

바비인형이 나오면서 이 세상 모든 소녀들의 꿈은 사라졌다는 말이 있듯이 제가 어렸을 때 (바비인형이나 완벽한 장난감이 나오기 전) 나뭇가지 하나만 있으면 총도 되었다가 칼도 되었다가 배도  되었다가 하루 종일 갖고 놀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나뭇가지가 이렇게 생겼으니 이런 걸 하고 놀면 되겠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까 이런 것도 할 수 있겠네 하면서 계속 대상을 관찰하고 고민했기 때문에 가능했죠. 하지만 요즘은 언제 이 아이들이 이런 고민을 할 수가 있을까요? 완벽하지 않은 재료로 자기가 느끼고 해석하고 고민하고 상상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창의력과 예술적 감수성이 살아난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그 재료가 주변의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물이라면 더 바랄게 없겠죠.“     

 

‘교감’이다. 이미 정해진 통념에 선입견까지 보태, 느낌을 조작하는 게 아니라, 온전히 그와 내가 만나고, 그래서 느끼고, 그렇게 그에게 다가간다. 아이들은 그에게서 ‘교감’을 배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주어진 이름과 이미지를 연결해내는 객관식 문제풀이 같은 체험활동이 전천후로 일어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참으로 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주마간산 격으로 이뤄지는 체험교육과는 워낙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어쩌다 이런 작업을 하게 된 걸까?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고미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건축과 가구, 불상에 관심이 많은데 국보급이 아니라도 시골에 남아있는 작은 석불들이라도 찬찬히 살펴보면 그 시대 석공들의 돌 다루는 솜씨가 정말 멋지다는 것을 재차 느끼게 됩니다. 돌을 조각 하는 것이 아니라 돌 속에 들어있는 부처님을 꺼낸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석공들의 예술적 감각에 감탄하게 됩니다. 돌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안 되고서는 그런 작품을 만들 수가 없죠. 이처럼 어떤 창작행위, 특히 미술에서는 재료의 선택에 앞서서 재료에 대한 이해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아빠의 경험으로 봐도 유치원 방과 후 강사를 하는 강사의 입장에서 봐도, (공교육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사교육의 특성상 단지, 꾸미고 빈칸을 채우는 결과물 위주의 기능위주의 교육일 뿐인 현실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한창 예술적 감수성과 자극이 필요한 어린 아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프로그램이 없을까 싶었죠. 그러다 생태미술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제가 흙, 물, 불의 종합 예술이라는 도자기를 전공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제 고등학교 미술부 친구가 경주의 선재미술관에서 아직 학예연구원으로 아직 재직 중인데 자주 전화 통화하면서 저만 가지는 생각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미술체험 프로그램인 것 같아서 그 친구와 많은 이야기 끝에 꿈다락 프로그램에 신청하고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일죽 작은 도서관에서 처음 꿈다락을 진행할 때 ‘청미천 생태미술’이란 타이틀로 아이들에게 흙놀이, 천연염색, 숲놀이 등 다양한 생태미술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여러 자연물로 할 수 있는 미술활동으로 아이들의 오염되지 않은 예술적 감수성을 자극하고 깨워주려는 의도였습니다만 썩 잘됐다는 느낌보다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과연 이런 것이 아이들의 창의력과 예술적 감수성에 도움이 되겠냐 했어요. 단순히 기법을 익히고, 빈칸을 메꾸고, 대상물을 꾸미기에 급급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됐습니다. 

예를 들어 나무를 소재로 수업을 한다면 시각, 촉각, 후각 등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나무의 여러 느낌을 충분히 느끼는 것이 중요한데, 정작 그 나무를 이렇게 저렇게 꾸미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나 했던 거죠. 

그런 맥락에서 지난 수업과정 중에 주변에 있는 죽주산성에서 눈을 감고 맨발로 숲길을 걸으며 산새소리, 바람소리, 맨발에 밟히는 마른 풀의 느낌 등을 느끼는 수업을 했는데, 그때 주위 보이는 나무와 꽃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나무의 이름을 말해주면 아이의 기억에는 나무의 이름만 기억 될 뿐 온전한 느낌을 기억하지는 못할까봐. 나무나 풀 이름은 커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죠. 학교에서나 책을 통해서나.“              

 

 

이름은 나중에 알아도 된다. 무슨 과에 속하고,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 먼저 머리에 새겨두게 하지 말자. 우선 ‘직접 만나 느껴야 한다!’, 

무릇 존재와의 만남은 그래야 할 것이다. 머리에 든 온갖 정보로 미리 재단하고, 판단하지 않고 온전히 내가 만나므로, 비로소 그 존재를 알아가는 과정이 바로 제대로 된 ‘만남’일 것이다. 

‘직접 만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풀었던 작업이, 아이들에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해졌다. 

 

“단기간에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죠. 활동 중에 보이는 아이들의 진지한 표정과 집중력에서, 이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는 아이들에게 좋은 자극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난 죽주산성에서의 수업에서 무슨 냄새가 나? 하고 물었을 때 “햇볕냄새가 나요”라고 말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햇볕냄새. 참 좋은 냄새죠. 마당에 뽀송뽀송하게 마른 이불호청에서 나는 냄새.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아이의 이 한마디로 며칠 행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들은 대로만 알지 않기, 통념으로 재단하지 않기, 우리가 세월호에서 배운 것 중 하나다. 생명을 지키는 일은 자신의 감수성이 살아있게 하는 일이다. 감수성을 죽이지 않으려면, 쌜 수 없이 많은 날, 순간순간 감수성을 일깨우는 ‘짓’이 있어야 한다. 양재석 님이 아이들과 하는 작업은 그렇게 쎌 수 없이 많을, 아이들의 일상에서, 순간순간 깨어있기를 당부하는 비나리 같은 작업이다. “햇볕냄새가 나요.” 하는 아이의 말에서, 그의 비나리가 통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요즘은 뭘 하든 4월 16일을 떠올린다. '비극의 시작은 과연 어디부털까?' 하는 질문에서 한시도 자유롭지 않다.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린다'는 말을 화두로 ‘민들레’라는 곳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지만, 여태 말로만 잘난 척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싶다, 죽산 꿈다락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그는 416을 어떻게 받아 안고 있는지 물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마냥 부끄럽기만 하고, 미안하고, 그 비극에 자의든 타의든 기여를 한 기성세대가 된 게 부끄럽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혼란스럽고 뻔뻔한 이 사회에 대한 절망감도 느끼구요. 아마 여느 부모가 느꼈던 감정과 별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애가 두 명인데, 큰애는 딸이고 고3 입시생입니다. 둘째는 아들인데 중2구요. 이제 거의 다 키웠다고 생각되는데, 지나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애들은 항상 제가 걱정하고 잔소리 했던 것 보다는 잘해왔었다고. 큰 탈 없이 잘 자라준 것만 해도, 참 애들한테 고마워지더라구요. 그래서 지금은 애들한테 미안하기도 합니다. 지켜보고만 있어도 잘 해나갈 아이들인데 괜히 부모랍시고 참견하고 제 기준에 끼워 맞추려고 했으니...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이란 이름하에  다양성과 창의성은 무시한 채 똑같은 기준으로 규격화 시키는 거죠. 단지 통제하고 평가하기 쉽다는 이유로. 그 교육이 아이들의 인생을 책임지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적어도 문화예술교육만큼이라도 아이들의 다양성과 창의력을 인정해야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오히려 더 가벼이 여기고 무책임한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봅니다. 종이가 있으면 다 메꿔야 되고, 하늘은 똑같이 푸르며, 음율의 감동보다는 음악의 암기를 가르치는...

어떤 자극과 현상에 대해 분석하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창의성이 결여 된 이런 교육에서는 지난번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는 장담 못하죠. 

좀 다른 이야기지만 생태학에서는 단순화와 획일화된 생태계는 멸종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논처럼 인위적으로 관리되는 생태계는 인간의 부단한 개입이 있으면 겨우 종이 유지되고, 인간의 개입이 없는 논은 종의 멸종이 닥칩니다. 건강한 생태계는 종의 다양성인데 지금 이 사회는 논처럼 극히 단순하고 획일화 된 생태계일 뿐입니다.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생태계는 기성세대가 만든 더 단순하고 획일화 된 생태계라고 생각합니다. 외부 자극에 대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없는 생태계죠. 문화예술교육만이 이런 단순하고 획일화 된 생태계에서 종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건강하고 다양한 생태계를 위해서는 아이들을 구속과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고 자연인이란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외부 자극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자기만의 방식대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예술 아닌가요? 아이들이 어떤 현상이나 자극에 대해 섣불리 개입하고 미리 틀을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지켜보고 기다리는 것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지켜내는 길은, 결국 스스로 생명으로서의 자존감을 잃지 않고, 그 감수성이 끊이지 않고 발동되도록 돕는 것, 문화예술교육은 그 길에 이르기에 가장 좋은 징검다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