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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를 향한 미술수업?
  • 김경옥 _공간민들레 대표
  • 2014.06.23

지지봄봄 10호 _ 현장에서 논하다

자유를 향한 미술수업? - 알라딘의 미술수업 

 

 

김경옥(공간민들레 대표)

 

 

 

 

  알라딘은 오래전 공동육아 교사 시절부터 쓰던 김용양 씨의 별칭이다. 그 시절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아이들의 변덕스런 호기심을 가득 채워주던 그녀는 사십을 훌쩍 넘긴 지금도 청소년들과 다양한 미술활동을 하며 요술램프의 역할을 여전히 하고 있다. 오늘은 그녀의 활약 중에서도 ‘공간민들레’에서의 미술수업을 소개한다. 

 

 

자유롭다는 건

공간민들레는 학교를 나온 중고등학교 연령의 청소년들이 모여 배우고 성장하기를 도모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알라딘은 일주일에 한번 ‘자유를 향한 미술수업’을 한다. ‘자유를 향한’이라니, 영 감이 안 온다. 그녀에게 물었다. 

“그냥 멋있잖아요. 자유! 누구랑 이야기 하다가 그렇게 말하는 데 그 말이 대개 멋있더라, 어쩜 내 삶의 목적도 그렇고, 사람들의 모든 행위가 바로 자유로워지려는 몸부림 같은 거라 생각한다. 자유롭다는 건…, 음, 아이들에게 쉽게 설명한다고 한 건 이렇다. 가령 우리는 누구나 습관 또는 기억을 가진다. 트라우마라는 것도 있고. 그런 것들 땜에 힘들어한다. 

그래서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내가 말하는 자유다. 

말하자면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하는 거다. 트라우마에서 자유롭다는 건, 그것이 있어도 수용 되든, 도전 하든지, 패배하든, 그것의 존재를 자각하는 거다. 자유란 긍정적이거나 밝거나 이겼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극복되었다는 건 아니다. 다만 매순간 그 사실을 자각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화가 많이 난 상태다 하면, 내가 화가 났구나 하고. 이것 때문에 화가 나는구나 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게 깨어있는 것. 그러므로 휘둘리지 않고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을 자유로운 것이라 보고, 이 수업을 통해 그런 사람으로 나아가는 데 한 발짝 내딛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자유를 향한 미술수업’이라 해봤다. … 근데 사실 이런 말은 몰라도 좋다. 그냥 멋있으니까 된 거다.” 

 

 

감각 붙들기

이런 ‘깊은 뜻’을 가진 알라딘의 미술수업은 3월에 처음 공간민들레에 나온 아이들에게 소개가 됐고, 소개를 들은 아이들 중 열 명 남짓의 아이들이 신청해 지금 그 아이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연령대는 열네 살에서 열일곱까지 골고루 섞여 있다. 여자 아이들이 좀 더 많은 편이다. 수업의 흐름은 주로 개인작업과 그 작업의 결과물을 나누는 공동작업으로 어우러진다. 공동작업을 하게 되면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 보게 된다. 그 타인의 모습에는 내 모습도 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고 듣지만 그 이야기들은 언제나 자신을 건드리는 법이다. 

그렇게 타자를 통해 자신을 보고, 자신을 통해 타자로 확장되어 가는 경험을 하면서 인식의 확장을 꾀하려 한다. 알라딘 표현대로 하면 자유로워지는 셈이다. 매번 다른 활동이지만 이런 흐름을 반복하면서 확장, 이해, 수용의 과정을 만들어 가려 한다. 

알라딘의 논리는 이렇다. “어른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갖고 있는 감각들을 보통은 닫고 산다. 주변에 언제나 너무 많은 이미지와 생각들이 넘쳐나다 보니, 내 감각들을 죽이거나 모른 척해야 살아남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자기 감정을 잘 모르는 현상이 생긴다. 

무슨 느낌인지, 심지어 기쁜지 슬픈지도 모르기도 한다. 결국 자기 컨트롤이 안 되기도 하고. 그래서 수업에서 끊임없이 시도하는 건 감각을 살아나게 하려 한다.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같이 뭔가를 보고 그것에 대해 말도 하고 하다보면 내 머리 속에 있는 것도 다 튀어 나온다. 어느 순간 ‘아하,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순간 말이다, 그럴 때 내가 하는 역할은 ‘그래 니가 말한 그게 딱 정확해’ 하고 말해주는 거다. 그려면 자신이 가진 감각이 정확했다는 흐뭇함도 느끼고, 균형감각도 갖게 된다. 소리에 대한 감각이건 보는 거건 무겁다 가볍다 같은 거든, 감각은 실은 모두 뭉쳐져 있어 일일이 포착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게다가 차단시켜버리기도 하고. 이런 모든 감각을 눈으로 깨우는데 그룹으로 하게 되면 힘이 다르게 나온다.” 

아이들은 계속 그리고 또 나눴다. 세월호를 그리고 자기를 그리고 친구를 그리고 슬픔을 나누고 분노를 나누고 화를 나누고 후회를 나누고 기쁨도 나눴다. 아이들은 아직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자신을 그리 드러내지도 않는다. 좀 지나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이 보이고, 그리고 또 마침내 나에 대한 이해도 생기고 목소리도 점점 커질 것이다.  

 

스토리로 나와 밖을 보다

5월에는 책을 만들었다. 책이라곤 하지만, 그리 거창한 건 아니고, 일종의 스토리가 있는 그림모음집 정도다. 이렇게 책 작업을 하게 된 건 그 전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꽤 출중하다는 걸 포착했기 때문이다.  

가령 자연의 리듬을 살피는 작업이 있었다. 하루의 리듬을 관찰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아침에서 다시 아침으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근데 아이들은 그냥 해가 뜨고 지는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저마다 깊이는 다 달랐지만 작은 스토리들을 담았더란다. 그 뒤 각자 주제를 정해서 일 년이라는 시간으로 확장해서 그려보기로 했다. 시간을 확장해보니 예상 밖의 재밌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좀 더 스토리에 집중해서 그림을 그려보라고 주문한 것이다. 

그 중에 열다섯 살 다인이의 ‘사과의 비극’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은 내가 봐도 재밌다. 

다인이는 워낙에 사과나무를 자주 그렸다고 한다. 그것도 선명한 빨간 사과를. 

 

 

   

 

   

 

   

 

 

사과나무는 동화같다. 다인이뿐 아니라 다들 쉽게 책을 만든다. 속도가 좀 다르긴 하지만 어려워하지 않는다. 알라딘은 표지 만들 때 팁을 주는 걸로 자신의 역할을 최소화했다고 한다. 주제랑 책 사이즈, 종이를 포함한 재료도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쓰게 했다. 

따로 구입하지는 않고 민들레에 있는 종이나 물감, 파스텔, 색연필 등을 쓰게 하기는 했다. 그럴 때면 재료의 특징이나 성질에 대해 필요할 때 조금씩 알려주는 식이다. 그러다 아이들중에 너무 후다닥 끝내는 이가 있으면 그제사 슬쩍 좀 더 해보자고 거드는 정도로 개입했다. 

내용은 온전히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뒀다. 

이 작업의 핵심은 ‘지켜보기’겠다. 마지막에 묶인 작품들을 보고, 그걸 묶어줄 제목을 잘 정해보게 했는데, 거기서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아 함께 고민해주는 일도 했다 한다. 

 

자유롭다는 건 깨어있다의 다른 말

3월에서 5월까지는 전체 수업 흐름 안의 한 묶음으로, 주로 습식수채화로 풀었다. 습식수채화는 우선 도전하기가 쉽다. 특히 경계가 없는 이 그림의 특징 상 모든 사물은 서로 이어져 있고, 또 모든 존재는 유기적인 관계 속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거창하게 말하면 우주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우주가 있음을 경계 없는 습식수채화로 다가간다. 그렇게 습식수채화로 처음엔 자연의 리듬을 느끼게 하고, 시간을 더해가면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활동을 시도한 것이다. 그게 바로 책 작업이었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그러므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성취감도 느끼게 한다. 책의 퀄리티는 중요하지 않다. 

성실하게 했고 마무리를 했다는 것 짜체가 엄청난 성취다. 성취의 경험이 얼마나 아이들의 성장에 중요한지는 두 말할 필요는 없겠다. 

6월 중순부터는 조소 작업을 할 예정이고 한다. 조소는 지금까지의 습식수채화 작업에 비해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 몸을 써서 사물을 구체화하는 작업으로, 말하자면. 3차원 작업이다. 수채화라는 2차원 작업에서 3차원으로 건너뛰는 엄청난 변화를,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게 이렇게 구성한 이유라고 한다. 조소작업은 2차원 작업이었던 그림 그리기에 비해 그리 익숙한 작업은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작업이 주는 당황스러움, 난감함, 어려움 같은 게, 

게다가 몸을 마구 써야 하는 이 작업으로 감각을 살려내는 훈련을 이어나간다. 

 

우리는 ‘살아있지만’, 그리고 우리의 오감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포착하고 있지만,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일상을 보낸다. 글 앞에서 밝혔듯, 알아차리지 않도록 프로그래밍화 되는 건지도 모른다. 오히려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타인의 감각이다. 남이 뭐라 할지만 궁금하지, 자신의 외침엔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알라딘은 이 상태를 부자유한 상태로 인지하고 이를 깨우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알라딘의 미술 수업은 일종의 감각 일깨우기 훈련 같은 거란 생각이 든다. 감각을 그리고 감각을 나누고 하는 과정 속에서 새삼스레 자신이 무얼 느끼고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를 깨닫는다. 이 작업을 계속 하다보면 어느새 일상에서도 자신의 감각이 움직이는 흐름을 지켜보는 자신이 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 

 

알라딘은 말한다.  

“너의 감각을 소중히 여겨! 길들여지지 마! 그래야 우린 자유로워 질 수 있어!”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