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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한샘 _예술가
  • 2018.05.30

24호 넘봄 
보이지 않던 가치들의 교환
손한샘 / 예술가


 

사람과 사람이 무언가를 같이 할 때, 각자의 생각, 가치관, 역사, 표현, 시간은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그만큼 타인의 그것과 교환되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상황과 정서들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복잡함이 개별 입장만을 대변하려고 할 때 다른 생각들은 더욱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이렇게 어렵고 어려운 그 소통을 지역축제를 매개로 7년째 시도해오고 있는 ‘예술장돌뱅이’ 프로젝트가 있다. 이들의 활동이 교육적 맥락으로 기획되거나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 간의 ‘다름’을 그 자체로 마주하고 교환해보고자 하는 태도는 문화예술교육에서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지점으로 보인다. ‘예술장돌뱅이’의 손한샘 기획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 내용을 들어본다.

 

 

Q. ‘예술장돌뱅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나눔장터나 지역축제와 같은 공공의 현장에서, 사람들과 협업할 수 있고 협업의 다양한 관점과 방식들을 실험할 수 있는 작가들을 워크숍을 통해 발굴하여 현장에 참여시키는 프로젝트입니다. 2012년부터 시작했고 경기문화재단 지원사업을 통해 3년간 지원을 받았고 현재는 지원금 없이 외부 축제나 행사 등에서 섭외가 와서 1년에 10-15회 정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30명 정도의 작가들이 참여 중이며 행사 참여시 보통 11-6시까지 진행합니다. 일반적으로 1회 행사에 8명의 예술가가 참여하나 주최측의 요청에 따라서 5-10명이 가기도 합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현장을 보면 참여 예술가들이 각자의 테이블/자리를 확보하고 지역주민이나 관객을 만나는 작업을 합니다. 그 작업의 기본적인 전제는 예술가와 관객이 돈이 아닌 것을 물물교환하는 것이며 이야기, 감정, 경험, 소리 등 보이지 않는 것을 교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체험 프로그램과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예술가가 일방적으로 예술이나 체험 컨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무언가를 서로 주고받는 것을 시도합니다.
 


 

Q.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구체적인 작업 사례를 듣고 싶습니다.

A. 예술가마다 방식이 매우 다양합니다. 서로의 다른 가치관을 발견할 수 있는 카드게임을 예술가가 직접 제작해 와서 관객과 1:1로 마주 앉아 게임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성인이 주로 참여하였고 30분 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고 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예술가는 어떤 날은 그림이 그려진 여러 개의 주사위를 가져왔는데 관객이 그걸 던져서 그림이 나오는 대로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관객의 이야기 자체가 교환요소가 됩니다.

어떤 예술가는 달고나에 수상한 첨가물을 넣어 새로운 맛의 달고나를 관객에게 만들어 줍니다. 달고나가 만들어지는 동안 관객은 자신의 인생을 맛에 비유한 글을 적어 예술가에게 줍니다. 예술가와 관객은 달고나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교환하게 됩니다.

어떤 예술가는, 관객이 특정인이나 세상에 대한 욕을 전해주면 그것을 캘리그라피로 적어줍니다. 또 어떤 예술가는 관객의 관상을 보고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은 이성이나 동성의 얼굴을 그려줍니다. 예술가가 그리는 동안 참여자는 이상한 설문지를 작성하여 줍니다. 또 어떤 예술가는, 관객이 종이에 적혀진 단어들 중에 없애버리고 싶은 것들을 뚫어서 지워버리면 그 흔적들을 가지고 흔히 잡초라 불리지만 이름이 있는 풀들을 그려줍니다.

예술가들은 조금씩 작업 내용을 바꾸기도 하고 재료의 변화를 주기도 합니다. 자신의 기존 작업을 중심으로 내용을 짜보기도 하고 전혀 다른 것을 그때그때 해보기도 합니다.
 






 

Q. 개별 예술가들의 작업이 흥미로우면서도, 순수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이런 프로젝트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전문적인 작품 발표 공간이 아닌 지역축제에서 관객을 만나고 예술가가 적극적으로 소통을 시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완성된 작품을 보여주기보다 관객과 끊임없이 무언가를 주고받는 과정이 예술가들에게도 낯설 수 있겠다고 느껴집니다.

A. 본 프로젝트 활동을 예술, 창작으로 의미화하는 것에 있어서 예술가마다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기획자인 저는 계속해서 새로운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있는데 제안을 받은 예술가 중 일부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은, 예술가 스스로 이런 활동을 예술로 해석하는 데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10명 정도 제안했을 때 3명은 관심이 없고 4명은 한두 번만 참여하고 3명이 끝까지 자기 색으로 참여하곤 합니다.

참여 제안을 받았으나 하지 않거나 오래 참여하지 않는 예술가는 이런 활동이 유치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별 볼 일 없다, 단순 체험 작업이다,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한 예술에 대한 전형적인 틀을 가진 사람은 참여를 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개인작업만 하던 사람이 아니라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나 다른 일을 하던 사람이 더 오래 합니다. 마이너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가 오래갈 수 있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서로의 작업 이야기를 하는 모임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저도 고민 중입니다.

 

Q. 그럼에도 참여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볼 때, 이 프로젝트가 예술가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예술가들이 사람들을 만나는 기술이 느는 것 같습니다. 작업에 변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1년 동안 작업실에서 그림만 그리던 작가도 있었는데 프로젝트를 하면서 작업적 성향이나 내용이 바뀌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만 그 계기는 아니지만 새로운 걸 하게 만드는 자극으로 작용하긴 합니다.

그리고 예술가에게 새로운 시도를 해볼까 하는 용기를 줍니다. 옆에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는 예술가를 만나고 같이 이야기하다가 생각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보통 전시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는 전시 뒤풀이와도 다른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작업하는 것,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 전시된 작품만 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창작에 대한 여러 측면을 고민하고 다른 사람의 작업 과정을 볼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앉아서 가만히 자기의 고민이나 작업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찾아보는 기회가 됩니다.

 

Q. 이 프로젝트가 예술가에게 그러한 기회로 작용하는 지점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예술가와 관객이 물물교환을 한다는 것이 본 프로젝트의 전제이지만 물질적인 것이든 비물질적인 것이든 과연 서로 교환할 수 있을까를 실험하는 것이 예술가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 된다고 봅니다. 경험, 감정 등을 교환하기 위해서는 결국 예술가 스스로 태도나 작업을 여러 방식으로 되돌아보고 바꿔야하기 때문입니다. 예술가가 교환의 방식을 아이디어적으로 풀거나 교환된 무언가만 확인하려할 경우, 프로젝트에서의 작업적 의미가 협소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 프로젝트는 사회와 만나고 일반인과 소통하는 형태를 띄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술가 스스로에게 자기 확장의 의미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예술이 타인에게 다르게 해석되거나 전달될 수 있으며 무언가와 교환되기에 쉽지 않음을 예술가 스스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현장을 온전히 예술가 스스로 마주해 보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특징이자, 전형적인 예술을 기대하는 이가 참여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점은 예술가에게 예술, 창작하는 것에 대한 물음을 던집니다. 그 경험들이 쌓이는 과정에서 예술가는 ‘나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나 태도’를 실험할 수 있습니다.
 


손한샘 기획자
 

Q. 이 프로젝트가 문화예술교육에서 중요한 요소인, 예술가/강사/기획자의 태도 혹은 교육철학과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문화예술교육은 예술적 활동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만나야만 하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할 수 있긴 한데, 기획자분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A. 예술가를 처음에 만나면 그 사람이 해왔던 것,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들과 연관된 워크숍을 통해 각자의 작업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예술가들이 처음에는 (그림으로 예를 들면) 자신이 보기에 잘 그린 것들만 저에게 보여줍니다. 못 그렸거나 실패했다고 여기는 것,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작업들은 안 보여줍니다. 그러나 저는 후자의 작업들에서 또 다른 의미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작업들을 더 들여다보고 예술가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 사람의 무의식적인 부분이나 개별적인 사연을 발견하기도 하거든요. 그것을 더 발전시켜서 작업으로 만들어봅니다. 그리고 작가들도 그것을 매개로 다시 다른 사람(관객)을 만납니다. 그랬을 때는, 자기 스스로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로부터 시작된 작업이기 때문에 본인이나 작업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기보다 가치부여를 일반적이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그랬듯이 다른 사람들도 하찮다고 여겼던 것에서 의미나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일반적이거나 특별하다고 여겨졌던 것들보다, 그동안 또 다른 가치를 생각해보지 못했던 무엇들 간의 교환을 시도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이 (교육적 관점으로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은 아니지만) 교육철학과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돈이 아닌 것을 교환해보는 프로젝트 현장에서, 여전히 교환되기 어려운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관객이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들이 가치가 있다고 느끼지 않는 경우, 그것이 교환될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술가가 관객에게 무언가를 그려달라고 하고 그것을 교환하려고 해도 관객 스스로 그 그림에 의미부여를 못하면 교환이 잘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관객이 받아가는 입장이 될 때는 그 자체를 좋아하지만 자신이 무언가를 예술가에게 줘야할 때에는 겸연쩍어하거나 망설이곤 합니다. 나의 것이 잘났다 라고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위축되어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죠. 자신을 마음껏 표현해보고 그것을 존중받았던 경험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잘 표현된 결과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 뭔가를 표현해본다, 난생 처음으로 그런 작업에 참여해본다는 자체로 의미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게 어떤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그런 와중에 예술가가 주는 어떤 물건만 받아가려고 너무 성의 없이,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도 역시 자신의 것에 대해 의미부여를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 생각보다 자주 ‘자신의 생각이나 표현에 의미부여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오랜 침묵이나 망설임 끝에 평범해 보이는 무언가를 꺼내놓으면 우리는 큰 관심을 보인다. 그 이유는 표현된 결과물이 아니라 그 사람의 미묘한 변화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를 이끌어내는 강사나 예술가의 태도는 전문화된 기술습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문화나 예술도 섞일 수 있는 현장에서, 그것은 얼마나 다양하게 시도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시도를 ‘잘’ 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런데 ‘예술장돌뱅이’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예술가의 성실한 노력보다는, 스스로의 변화나 기다림이 더 중요하게 보이기도 한다. 자신에게서 그리고 타인에게서 보이지 않던, 혹은 보려하지 않던 의미를 찾는 태도도 보인다. 그 태도가 문화예술교육에서 강사나 예술가의 교육적 주제, 목표, 철학, 가치관을 뒤집고 재배치시킬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손한샘

회화를 전공했지만 주로 설치작업을 하고 있고, 설치작업을 하지만 사람들이 감상하는 작업보다는 사람들이 관여하는 작업에 중점을 두고 활동한다. 이를 통해 예술로 사람들과 관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