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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마귀가 수레바퀴 앞에서 건네는 그림
  • 임체스 _잔꾀
  • 2018.05.30

24호 더봄 
사마귀가 수레바퀴 앞에서 건네는 그림
임체스 / 잔꾀


적벽대전을 앞두고 위나라 조조의 군대는 수상전에 익숙하지 않아 뱃멀미로 심각하게 고생하고 있었는데, 방통이 찾아와 배와 배를 쇠사슬로 묶어 서로 연결하고 그 위에 판자를 놓아서 육지에서처럼 이동할 수 있는 연환지계(連環之計)의 꾀를 내어 배들이 따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다. 여기에 오나라 주유는 황개를 희생시켜 배신자로 침투시키는 속임수 즉, 고육지계(苦肉之計)를 끼워 넣어 대계(大計)를 완성시킨다. 이후, 거대한 위용을 내세우며 한 덩어리로 연결된 위나라 배들은 황개가 군량이라고 속인 기름 먹인 볏단 돌격대와 오나라 궁수들의 화공(火攻)을 받아 피하지도 못하고 모든 배가 불타버린다. 여기서 조조가 패배한 과정을 살펴보면, 흔들리는 배들을 묶어서 안정을 꾀한 것이 빌미가 되었고, 거짓 항복이 비수로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는 것을 가늠하지 못한 현장의 날씨도 주효했다. 이때 절묘한 타이밍을 잡은 촉나라 제갈량의 동남풍 퍼포먼스가 멋들어지게 성공하며 화룡정점을 찍는다. 이후, 천하는 셋으로 나뉘어져 삼국 시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게 된다. 

<삼국지>이야기의 출발이 된 방통의 연환지계(連環之計)로부터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새로운 정책을 상상해본다. 새로운 상상이란 현실부정의 진단이 필요하기에 계책을 논하기에 앞서 현실인식 또는 현장의 문제들을 먼저 건드려보고자 한다.


♔-♚ 걱정과 우려
도도새, 제니오니스, 스텔라 바다소, 파란 영양, 태즈메이니아 주머니늑대, 오록스, 독도 강치, 콰가 얼룩말, 큰 바다 쇠오리, 시리아 야생당나귀, 서부 검은코뿔소, 포클랜드 늑대, 분홍머리 오리…. 이 ‘멸종’된 동물들처럼 우리 문화예술교육 생태계에서도 유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까운 과거의 어느 순간부터 특별한 교육관을 갖고 있는 작가와 독특한 과정의 수행방식 그리고 고유한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있다. 희귀 동물들이 인간들 때문에 멸종되었다면, 예술교육단체들은 시스템 때문에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동물들이 서식지 파괴와 생태계 교란, 환경변화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들의 소유욕에 의한 밀렵으로 사라지고 있다면, 예술교육단체들은 낮은 임금과 복잡한 지원체계, 감시 관리로 인한 자존감 훼손 그리고 과중한 업무로 이 바닥을 떠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실종 현상은 ‘공모지원사업’에서 ‘하향평준화’란 내리막길 진단으로 지금의 우리를 마주하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제도는 허점을 보완하며, 원활한 진행을 위해 발전 또는 진보하고 있는데, 왜 교육프로그램은 답보의 상태이거나 퇴행의 길을 걷고 있을까. 한탄과 체념을 치유할 수 있는 백신 프로그램이 필요한 시점이다. 


♕-♞♘ 자연선택설이 만든 높이
“동물이 어떤 기관을 다른 기관보다 더 자주 쓰거나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그 기관은 사용 시간에 비례하여 점차 강해지고 발달되며 크기도 커지게 된다. 반면, 어떤 기관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그 기관은 점차 약화되고 기능도 쇠퇴하여 결국 사라지게 된다.”  

이 논리는 기린의 목이 기형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으로 설명되곤 하는데, 아래의 그림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다르게 읽히기 때문이다. 목 길이가 다양한 기린들은 여러 예술 강사들로, 나뭇가지의 하향선이 높아지는 현상은 지나친 업무기준과 온갖 자격 요건들로, 엎어지거나 쓰러진 혹은 죽은 기린들은 현실 적응이 어려워 포기한 예술가와 예술 강사들로 새롭게 보인다. 무서운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오해의 시선은 그동안 궁금했던 예술 교육자들의 멸종 위기와 도태의 원인이 되는 파편 하나를 보게 만들었다. 우리가 왜 주변을 보지 못하고 위를 향해서만 살아왔는지를. 교육 환경은 여전히 직선적이지만, 이제는 동심원으로 바뀔 때가 되었음을.
 

 01

[문화예술교육 환경이 만들고 있는 기형화 과정] 



♝-♟♟♟ 사이비와 신도들
 최근 문화예술교육사라는 골칫덩이가 나타났다. 그동안 국가전문자격증 소지자가 없어서 문화예술교육 수준이 낮았던 것이 아닌데 말이다. 이것은 정부와 대학 간에 이루어진 얄팍한 술수와 허울 좋은 호객으로 만든 자격증 장사일 뿐 교육현장의 전문성 및 일자리 창출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예술 강사들을 옥죄는 금제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왜곡된 시선일지언정 이것은 감히 정책 폭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기회를 보장받고 싶다면 그리고 자리를 보존하려면” 이라는 제도적 엄포 아래 자격증을 취득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우리를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예술 강사들과 교육자의 길을 꿈꾸는 예술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대학의 납부창구로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내려 받은 자격증으로 현장에서 모은 쌈짓돈은 조만간 다시 대학의 납부창구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슬프게도 그리고 열 받게도 제도는 2급을 안착시켰다고 여겼는지 1급을 준비 중에 있기 때문이다. 한 등급 높은 1급으로 그동안 양산해온 2급을 관리 감독하겠다는 심산이다. 학위처럼 자격증 인플레이션을 조장하고 예술과 교육을 서열화하려는 저급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제 문화예술교육사가 되려는 행렬은 아니 되어야만 하는 행렬은 아니 될 수밖에 없는 행렬은 헌금을 들고서 예배를 보듯이 대학을 성지처럼 순례해야 한다. 제도는 숫자라는 실효성 없는 성과지표를 얻고, 대학이 손 안대고 코풀기를 반복할 때 예술 강사는 공허한 자격증을 끌어안고 액자에 낀 먼지만 닦게 될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사 의무배치는 질적 성장을 보장하지 못한다. 비정규직 기간제 강사들만 늘어날 뿐이다. 이론과 실재의 간극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졸음유발의 동일한 이수과목들로 부족분을 메우겠다는 형이상학은 현장의 형이하학 앞에서 무심하고 무참하게 내팽개쳐질 것이다. 학교 밖 예술교육의 문제를 공교육의 기준으로 준비시켜 해결할 수 있다는 나이브한 생각이 오류를 범한 것이다. 강요된 교의와 통제된 시스템은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포장주의 때문에 다양한 예술 강사들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교육법이 훼손될지도 모른다. 안정을 위한 관리교육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교육을 생각해야 한다.

한편, 현장은 예술 강사의 역량보다 교육 공간 서비스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준비하는 실험적 예술단체들은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갖고도 수행할 공간이 없다고 토로한다. 동사무소 및 도서관 같은 공공공간은 비어있지만, 주말에 근무할 인력이 없기 때문에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근래엔 주중 교육도 가능하도록 확장되었다지만, 우리의 아이들이 얼마나 바쁜지 검토되지 않은 무용한 술책이다. 이게 현실이고 현장이다. 또 하나의 넘사벽은 차상위계층(문화행정은 언제나 등급으로 구별 짓기를 좋아한다.)을 합류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이 조항은 감정적으로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느 아이가 거리낌 없이 자신을 가난으로 드러낼 수 있으며, 다른 아이들과 당당히 마주하겠는가. 더욱이 케어해줄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제한된 시간 안에 교통 혼잡을 뚫고 여기저기서 데려와 이곳저곳으로 안전하게 귀가시키기란 미션 임파서블이다. 상식적으로 요구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게 현장이고 현실이다. 무엇이 먼저고 중요한지 좀 살피길 바란다. 

“문화예술교육사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확산되기 위해서는 확장적 역량도 중요하다. 첫째, 자신의 장르나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는 통합적인 문화예술교육 역량을 지녀야 한다. 둘째는 대상, 프로그램, 환경 등 지역적 특성을 잘 이해하고 반영할 수 있는 지역 전문가로서 역량이 필요하다. 셋째는 경영, 인력, 시설운영, 홍보 등 민간에서 문화예술교육의 관리자로서 역량이 필요하다. 넷째는 기획, 사무행정, 시설관리, 홍보 등 공공에서 문화예술교육의 행정 지원가로서 역량이 필요하다. 다섯째는 기관, 지역, 교육사, 예술계, 교원 등의 협력 대상자와 학생, 학부모 등 교육 대상자로 구성되는 네트워크 활용에 대한 역량이 필요하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발췌]

이것은 한마디로 ‘슈퍼우먼-맨 예술 강사 만들기’이다. 이 모든 걸 수행하려면 공무원처럼 근무해야 한다. 주 1회 3시간 시급을 받는 예술 강사(3등급으로 분류된)에게 가당치도 않은 요구다. 시급 밖에서 예술 강사들이 1주를 얼마나 준비하고 애쓰고 있는지를 염두에 두어야한다. 밑줄 친 두 가지 항목에만 힘을 쏟아도 온전히 발휘될 수 있을지 의문이며, 나머지 항목들은 엄밀히 말해서 기관의 일인데, 은근슬쩍 예술 강사에게 떠넘기고 있다. 공무원 인력감축으로 남아있는 잔업이 고스란히 예술 강사의 두 손으로 인계된 것이다. 때문에 감축된 행정인력은 다시 보충되어야 한다. 그리고 행정가들에게도 사무실의 기능적인 업무를 벗어나 현장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 문화예술교육은 예술 강사의 역량만으로 업그레이드 될 수 없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행정가와의 파트너쉽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좋은 행정인력이 특별한 예술 강사를 키워낸다는 사실을 곱씹어 보길 바란다. 


♔-♞♘ 바람잡이와 방황하는 교육
호들갑 떠는 ‘4차 혁명’이란 표어 때문에 눈앞의 문제들은 덜 중요한 것들로 치부되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 세계를 향해서 유비무환의 자세를 취하게 부추기는 무리들이 있다. 하나의 사례로 최근 호황을 누리고 있는 코딩교육이란 미래 직업교육이다. 언제부터가 교육은 인간의 완성이 아니라 직업의 쟁취를 위해 만들어지고 있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인간의 다양성과 상호의존성 같은 소통능력이 아니라 뭔가를 조정하는 사고패턴을 훈련시키고 있는 것이다. 블랙코미디 같아서 쓴웃음이 난다. 마치 신대륙을 찾아 떠나는 선단처럼 소유욕과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야만적 교육-모델이 재생되고 있다. 한 방향으로의 경향성과 경쟁의식은 다시 기린의 그림을 연상시키기에 위험 신호가 감지된다. 교육 내비게이션은 재설정 되어야 한다. 세계가 하이테크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로우테크를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인류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이고, 인류가 세계를 구현하게 된 근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필요한 교육은 오히려 1차 산업인 농업과 함께 해야 한다. 농사를 위한 농사교육을 말함이 아니다. 수확량(성과)을 고려하지 않는 농사짓기를 시도한다면, 잘못 수행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실수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이런 상황은 아이들이 새롭고 창의적인 놀이를 만들어내기에 좋은 조건이 된다. 실패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이것이 아이들이 갖고 있는 힘이다. 예술 강사는 그런 놀이들이 무엇과 연관되어 있는지 알려주고 좀 더 적극적으로 놀 수 있는 토대만 만들어주면 된다. 예를 들어, 밭고랑을 만드는 도형학, 흙 성분과 돌을 살펴보는 지질학 및 광물학, 씨앗을 뿌리는 간격과 배열의 미적 생태분할, 농기구와 근력의 물리학, 농사짓는 모습으로 발생한 표음문자, 아치형 대나무 골조와 비닐을 덮는 건축술, 기상관측의 천문학과 가뭄을 극복하려는 기우제, 토템과 신화, 빗방울 소리의 청음과 박자감, 노동을 해소하려는 노래와 춤, 햇볕과 방위를 보는 지리적 관찰, 작물의 경제학과 잡초학, 해충과 익충의 곤충학, 개미의 진딧물 관리법과 미시적 관찰, 퇴비의 미생물학과 지렁이 분변토를 활용한 친환경 문제, 비료와 지력의 관계성, 수확의 즐거움과 공동체 의식, 작물의 성장속도와 계절의 변화, 종자의 보존과 관리, 꽃잎과 피보나치 수열, 진흙탕과 수로 놀이 등등 농사는 모든 학문과 놀이의 기초 그리고 촉감과 감각의 세계가 잠들어 있는 영역이다. 무엇보다도 농작물을 돌보는 농부의 마음을 몸소 겪어볼 수 있다. 


♔-♕-♗-♘-♖-♙ 멸종위기 교육프로그램 보존법
상상의 출발은 현장을 떠나는 독립적인 예술 단체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들이 진행한 다양한 교육법들 그리고 고유한 프로그램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을 어떻게 해야 다시 붙잡아둘 수 있을까. 당연히 장기간 호출은 힘들 것이다. 그러면 시공간을 압축한 일시적 합류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단체는 떠나도 교육법과 프로그램은 좀 더 지속시킬 수 있지 않을까.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은 이들에 대한 추천공모를 받는 것이다. 이후의 일은 아래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a. 이 모든 것을 승선시켜 묶어둘 교육 선단이 필요하다. 만약, 아르떼 아카데미의 <교육연수 워크숍>에 흡수될 수 있다면 단기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기관의 협력과 떠난 예술 단체들의 소환술이 성사되면, 이것으로 1차 연환계(連環計)는 만들어진다. 

b. 여기에 예비 문화예술교육사를 교육 대상으로 하는 고육계(苦肉計)을 쓰면, 프로그램은 돌아갈 동력을 얻고 교육선단은 새로운 항해를 할 수 있게 된다. 이 항해는 예비 문화예술교육사들의 현장실습으로 연장되는데, 기존의 보편적 양성과정에서 배양법에 변화를 준 것이다. 복제된 커리큘럼으로 대동소이한 시각과 능력을 주입하여 현장에 정착시키려는 무의미한 시도에서 교과서를 쓰지 않는 현장의 발명된 교육법으로 수행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c. 이것을 시범적으로 실행하려면, 학교/미술관/비영리 기관의 공간 협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때 협력기관에게는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율권이 주어져야 한다. 이것까지 성사되면 2차 연환계(連環計)가 완성된다. 예비 강사들은 다양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천해보는 경험을 맛볼 수 있다. 현장 수행에 있어서의 예술교육은 연수 프로그램을 기초로 하지만, 예비 강사들의 교육관과 창의성에 의해 수정/보완/축소/확장/삭제/첨가의 과정을 거쳐 나름의 방법론으로 실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되는 실수와 현장의 문제들 그리고 예측 못한 상황들이 발생할 것이다. 이것들을 꼼꼼히 기록해두는 일 또한 중요한 과정이다.

d. 뿔뿔이 파견되었던 강사들은 다시 한 자리에 모여 그룹별 복기과정을 거친다. 오류를 다듬고 우연적 사건과 변수에 대한 확장성을 논의하면서 문화예술교육사로 활동하는 법을 하나씩 익혀간다. 

e. 실습으로 진행된 교육프로그램을 다른 곳에서 모방하듯이 재현하거나 편곡하듯이 변형하여 사용하고 싶은 현장의 욕구가 발생될 수 있다. 따라서 원 기획자나 예술 단체에게 저작권을 보장하는 제도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예술교육프로그램도 엄연한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제도가 보장된다면, 제야의 고수들이 우후죽순 나타나 문화예술교육의 황금기가 도래할지 누가 알겠는가.

지금까지의 대항해가 마법처럼 발진된다면, 재생과 부활의 열기로 불타오르는 교육 모델 그림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누가 멸종 위기의 다양한 예술 단체들이 머물 수 있는 안전한 토양을 제공하려고 하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창안해 낸 고유한 교육법이 지속가능발전할 수 있도록 어느 곳에서 후원할 것인가. 따뜻한 동남풍을 기다려 본다.




임체스
체스 마니아로 디자인 개발과 글쓰기 작업을 하고 있으며, 출판물로는 「귀띔 체스」시리즈가 있다. 그 외 교육예술연구팀 <잔꾀>와 적정기술스토브를 개발하는 <공도창공>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