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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으른 엄마의 심심한 놀이법
  • 장문정 _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실무자
  • 2018.05.30
24호 가봄 
게으른 엄마의 심심한 놀이법
장문정 /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실무자

 나는 네 살, 여섯 살 두 아이의 게으른 엄마다. 물론 남부럽지 않을 저질체력도 갖고 있다. 아이들과 하루를 오롯이 보내야 하는 주말이면 방바닥에 들러붙은 등을 떼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이 나름 대단한 걸 해내고는 “엄마 나 좀 봐봐” 할 때도 (되도록 진심을 다해) 누워서 감탄사를 한다. 집안의 모든 집기와 장난감이 펼쳐지는 가게 놀이를 할 때도 난 누워서 물건을 파는 가게 주인이 되고, 멀리서 손가락으로 가리킨 물건을 배달시키는 손님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부모로서 죄책감이 올라올 때면 무언가를 만들어보자며 집에 있는 박스를 주섬주섬 모아다가 펼쳐놓기도 하지만, 이내 원하는 모양대로 오려주곤 ‘자, 이제 여기에 그림을 그려봐’ 하고, 도로 눕는다. 그렇다고 두 아이의 엄마가 설마 마냥 누워만 있겠는가. 나에겐 챙겨야 하는 하루 세끼와 설거지 거리가 있고, 빨래를 돌리고, 널고, 개고, 일주일 내 소복이 쌓여있는 먼지를 닦아내야 하는, 해치워야만 하는 밀린 집안일이 산재해있다. 평일 퇴근 후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끔은 저녁을 먹고, 빨래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밤 9시 반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보통 엄마가 몇 평 되지도 않는 집을 수십 번 오가는 그 시간 동안 두 아이는 입을 벌리고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매일 보던 똑같은 장난감을 매일 다르게 갖고 노는 신기한 일을 하기도 한다. 보통의 아이들이 다 그렇듯 아이들은 끊임없이 심심해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놀잇감을 찾아 헤매고, 또 결국 찾아낸다.

육아의 3단계
 육아는 보통 3단계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아주 원초적인, 생존을 위한 보살핌이 1단계, 놀아주기 혹은 뭔가 교육적인 것을 제공하는 일은 2단계, 그리고 마지막 3단계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보살핌이다. (아마도 눈치챘겠지만, 나는 1단계를 수행하는 것조차 심히 버거워하는 중이다.) 아이는 자랄수록 1단계보다 2단계를, 2단계보다 3단계를 원한다. 나보다 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은 체력적으로 힘들어도 지금이 덜(?) 힘든 거고,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며, 그 시절이 그리워질 거라고 말한다. 힘들어서 허덕이는 나에게 그런 말은 좀 꼰대 같이 들리기도 하는데, 가끔은 정말 그럴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겪어보지 않은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라 판단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냥 회사에서의 업무별 장단쯤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육체적인 힘듦이냐 정신적인 힘듦이냐 하는. 아무튼 대개 수많은 주 양육자들은 보통 1단계도 힘들어하긴 하나, 아이들이 끊임없이 매달리며 놀아주기를 바라는 2단계의 순간부터 더 큰 어려움에 처한다. 나가겠다고 칭얼대고, 심심하다고 울어대고, 아이를 그냥 두면 기껏 정리해놓은 살림살이가 한바탕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것도 목격한다. 우리 아이를 00천재로 키우기 위해 두세 살부터 조기교육을 시작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 시기 많은 양육자들은 그저 아이들과 끊임없이 놀아주어야 하는 것에 지쳐 등 떠밀리듯 온갖 프로그램을 전전하게 된다. (물론 아주 드물게는 수많은 프로그램을 스스로 개발하고, 섭렵하기도 한다.) 웹상에는 아이와 갈만한 곳, 아이와 놀아주는 방법, 아이 장난감 만들기, 아이를 위한 프로그램 등이 검색어로 넘쳐나고, 이를 제공하는 스마트폰 앱과 키트들도 넘쳐난다. 수많은 문화센터의 주력 상품이 유아 프로그램이기도 한 까닭은 그만큼 어린 아이와 놀아주는 건 모두에게 고된 노동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를 위한 수많은 프로그램들
 게으른 나조차도, 아이와 집에 갇혀있는 시간이 미칠 것만 같아서 밖으로 나가곤 했다. 문화센터 프로그램을 등록하고, (그것도 유아발레와 수영 같은!!) 온갖 체험부스를 떠돌기도 했으며, 키즈카페와 놀이동산, 박물관과 미술관, 어린이 공연 같은 것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곧 아이만을 위한 프로그램에 내가 함께 동반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컨디션이 들쑥날쑥한 아이를 들쳐업고 꼬박꼬박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등장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부지런함을 요하는 일이었는지, 뭔가 대단한 것 같아 보였던 프로그램이 사실 집에서 매일 하던 놀이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은 별로 길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가 나에게 원하는 것 또한 크지 않다는 걸 알았다. 아이는 그저 내가 종종 눈을 맞춰주고, 날이 좋으면 함께 산책을 나가고, 신기한 돌과 나뭇가지를 줍고, 별다른 것 없이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옥상에 앉아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는 걸 함께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심심해하면 심심해할수록, 내가 일부러 프로그램을 만들어 참여시키고, 옆에 앉아 놀아주지 않으면 않을수록 스스로 노는 법을 알아가는 듯했다. 얻어온 장난감 미끄럼틀이 지루해져 매달릴 즈음 누워서 종이 한 장 던져주며, ‘자 이걸 깔고 타봐’ 하면 아이들은 마치 썰매를 타는 듯 한두 시간쯤은 깔깔거리며 미끄럼틀을 타댔고, 커다란 매트 한 장을 깔아주고 ‘자, 여기는 바다야’하는 한마디에도 인어공주가 되었다가, 상어가 되었다가, 신나게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기도 했다.   

문화예술교육 지원만 5년째
 나는 예술과목을 전공했고, 의미도 기억나지 않는 교육방법론과 교육철학 등의 마치 교양과목 같은 몇 개의 수업을 듣고 2급 정교사 자격증도 받았다. 청소년 기관의 인턴과 방과후교사를 전전하기도 했으며, 출산과 육아휴직 기간을 제외하고는 지역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햇수로만 5년은 족히 일했다. 그러니 교육 관련해서 나는 본 것도, 주워들은 것도, 만난 사람도 꽤 많다. (적어도 내 딴에는 그런 것 같다.) 그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었고, 많은 것을 들려주었다. 또한 교사와 강사를 막론하고 진심으로 자신의 현장에서 좀 더 좋은 교육을, 때로는 아이들이었고, 때로는 어르신들이었으며, 때로는 같은 교육자인, 누군가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모습들을 수없이 보여줬다. 비록 서류상 정형화된 프로그램일지라도, 그걸 설명하는 방식이 서툴고 어눌할지라도, 그들은 자신이 만나는 이들의 삶을 살폈다. 스스로 밥 한 끼를 챙겨 먹을 힘이 필요한 아이에게는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고 음식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고, 한창 딱지치기에 몰두한 아이들에게는 시끄럽다고 학교가 금지한 딱지치기 시간을 제공했다. 길가에 꾸물거리는 지렁이를 관찰하다가도 자연을 가르쳤고, 각각의 다른 아이들이 각각의 다른 삶을 사는 모양새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덕분에 나는 지루해하는 아이들에게 종이 한 장을 던져주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무언가를 꽉 채우기보다, 비워내는 법을 배웠고, 프로그램이 아닌, 좀 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놀이의 방식을 고민했으며, 아이들의 심심함을 그냥 지켜볼 줄도 알게 됐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도 그래서 무척 좋아하는데, 워낙에 교사가 아이들을 돌봐야하는 시간이 긴 탓이기도 하지만, 되도록 아이들이 방 너머 방을 돌아볼 수 있는 자유와 하루 종일 마당의 흙만 파낼 수도 있는 비어있는 놀이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혼자 놀다가, 함께 놀기도 하고, 종이 상자로 집을 짓다가, 쓸데없이 흙을 채에 곱게 거르는 일에 몰두하기도 한다. 물론 이곳에도 이탈리아의 유명한 유아 학습 프로그램 ‘레지오 에밀리아’ 같은 (저게 6, 7세 아이들에게 가능한 거야? 라는 놀라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교사의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 훌륭한 학습 시스템도 있다. 이건 기회가 또 주어지면 썰을 풀어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냥 아이들의 자유시간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종종 양육자로써 보다 짜여진,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욕망이 끓어오르기도 하지만, 나는 지금의 그 비어있는 시간들이 좋다. 그게 실내든, 실외든, 자연이든, 자연이 아니든, 조금 심심한 아이들이 비어있는 시간 속에서 자기만의 놀이법을 발견해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게 감옥 같은, 혹은 수없이 많은 놀이 프로그램이 범람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문화예술교육이 할 수 있는, 아주 멋진 일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다.

   
새 둥지의 새알들, 솔잎 이불도 덮어주고 떠남, 좀 누워보라는 말에 다행이도 누워 있어주는 아이들


 누워있길 좋아하는 엄마는 동네 공원에 함께 산책나간 아이들에게도 누워있길 권한다. 아이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평상에 솔방울과 솔잎으로 만든 둥지에서 곧 태어날 아기 새를 돌보는 동안 나는 근처에서 산 커피를 홀짝이며 가만히 앉아서 감탄사를 쏟아낸다. 아이들이 그걸 받아주고, 알아서 놀아주니 나는 복 받은 게 틀림이 없다.




장문정
인천에서 문화예술교육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게으르고 어리바리한 두 아이의 엄마이자,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는 육아공동체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최근 두 아이를 키우며 각성하여, 최대한 덜 열심히 살아보고자 노력하는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