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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과 그림농사 짓는 예술가’와 ‘만들기 덕후인 예술가’
  • 정민룡 _광주북구문화의집 관장
  • 2018.05.30
24호 곁봄 
'아이들과 그림농사 짓는 예술가’와 ‘만들기 덕후인 예술가’
‘교육하는 예술가’가 바라보는 문화예술교육
정민룡 / 광주북구문화의집 관장


예술교육 과정이 예술가의 창작과정

“나는 어머니가 스승이다. 그러고 보니 많다. 땅도 선생님이고 물도 사람도 아이들까지… 그런 농촌에 살면서 작업할 수 있기도 하고 소망했었다. 나는 그림을 어떻게 농사 짓 듯 할 수 는 없을까? 하고 땅과 씨름하고 있다.”

 예술교육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화가 박아무개씨(아이들은 그를 할아버지 예술선생님이라 부른다)는 ‘땅을 대하는 겸손의 예술철학’을 펼치기 위해 수묵과 황토 흙을 재료로 농사 짓 듯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에게 땅, 물, 바람 등 자연은 단순히 그림의 재료나 오브제가 아니라 캔버스 자체고 논, 밭, 물도랑, 수로 그리고 모내기와 같은 농사일은 빈 도화지에 그리는 수묵화의 선이고 면이 된다.
 
농촌 마을 작업실 한켠에 틀어박혀 그림농사에 열중한 그가 화실로 아이들을 불러오게 된 동기는(교육참여 예술가가 된) 처음에 순전히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꼬맹이 ‘놉’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가 연중행사로 하는 ‘모내기 예술 퍼포먼스’의 참여자로 아이들 ‘놉’을 빌린 것이 계기가 되어 ‘땅과 예술반’이라는 그의 예술수업이 생기게 되었다. 하루짜리 품이었던 것이 이제는 7년이라는 시간동안이나 지속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화실과 마을을 배경으로 아이들과 함께 그림농사를 짓고 있다.
 
아이들을 화실과 마을로 불러들어 자기 앞마당에 예술 활동을 한답시고 모내기를 흉내 내는 장난, 농사로 치자면 문전옥답(門前沃畓)을 만들기도 하고 마을을 온통 물 그림으로 어지르는 짓(?)을 감행하고 있다. 자기 그림농사의 일꾼으로 부리면서 논 주인인 자신이 걸쭉한 새참이라도 내도 부족할 판에 고작 과자 부스러기로 아이들의 놉을 대신 치루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단순히 예술강사 - 교육대상자의 관계가 아니라 아이들을 작품의 공동 저자쯤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지?
 
자신의 창작과정의 일환으로 예술교육의 과정(교육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활용하려는 의도다. ‘교육하는 예술가’의 문화예술교육을 바라보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우선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의도하지 않은 아이들의 자유로운 표현방식을 자신의 창작과정과 작품에 빌려 올 뿐.(이 때문에 굳이 겸손한 태도로 아이들이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했을까?)
 
“땅과 예술” 수업은 단순한 미술표현 수업이 아니다. 자연 놀이를 통한 미술 수업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그의 표현에 의한다면 그냥 ‘물장난, 흙장난’이다. 흙을 장지에 던지는 행위, 흙물이 화선지와 얼굴과 옷에 튀겨 난장판이 된다든지, 물장난의 일환으로 물선 이어 긋기, 물 달리기 경연 등. 자신만의 독특한 수업방식을 ‘물장난, 흙장난’으로 규정해버린다.

일반적인 예술교육에서의 미적 표현은 주로 짜인 교육 프로그램에 의해 조작적으로 이루어지지만 그가 말하는 미술 표현은 그냥 재미로 하는 장난, 놀이다. 자연스럽게 외부 환경과 상황 안에 놓이게 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의도하지 않는 즉흥적인 표현 형식이 나타난다. 그의 눈에는 매우 독특한 표현 양식으로 비춰지게 된다. 이를 작품의 표현기법으로 재구성하고 응용한다. 그가 작업하는 방식이다.

※ <땅과 예술반> 수업 과정
배추는 하늘 먹고, 무는 땅 먹고/ 담양 5일 장보기/ 서마지지 논베미 모내기 수업/ 물그림 그리기 / 나 닮은 허수아비 만들기 / 흙장난 1 / 흙던지기/ 땅따먹기 논그림/ 바람과 놀기(모빌로) /물달리기 / 땅바닥 그림 / 풀다리, 꽃다리 만들기/ 물감나무 /까마귀를 좇아서 / 연날리기 / 대나무 낚시하기


예술가의 취미와 문화예술교육

앞서 소개한 박모 예술가와는 전혀 다른 결을 지닌 정아무개 예술가의 예술수업은 메이커가 중심이 되는 만들기 수업으로 진행된다.
정아무개씨는 스스로를 오타쿠라고 칭한다. 그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거리낌 없이 학교를 전쟁터로 스승을 전제주의 독재자로 폄하한다.

“삶의 지혜는 예술가들의 말처럼 교과서와, 스승에게서 없었다. 그래도 그림을 그린다는 기술 때문에 이렇게 그림 그리는 코스로 몰려가게 되었다 사실 나의 꿈은 과학자였다. 아니면 발명가. 무언가를 만들고, 실현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내가 중1 때 일이다. 과학 경진 대회 날 전기손난로를 만들어 과학 선생님에게 발명품 제출했지만,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그 후 몇 십 년 후 같은 기술의 전기손난로가 상품으로 나왔다. 그렇듯 사회는 나의 고차원적 식스센스를 무시했다. 나의 덕후적 탐구는 항상, 사회 전반적 보편성을 배반해서, 그에 합당한 짐을 짊어지게 만들었다…”

그는 과학자의 꿈이 제도 교육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었던 경험을 반면교사로 뭔가 다른 차원의 예술교육을 통해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취미에 몰입하는 그의 덕후 기질은 그가 추구하는 새로운 예술 스타일로 자리 잡게 하는데 있어 영감이 되었으며 이제는 메이커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까지 하게 되었다.
그의 예술수업은 취미와 취향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며 특히 만드는 일에 몰입하는 메이커 수업이다. 만드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반복하고 변주하여 2차적 창작물을 만드는 것 ‘창작행위’이자 덕후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몰입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실제 그의 수업인 <장난감 공장>에서는 주로 하드코어한 장난감을 만드는 일을 한다. 용접을 하고 뼈대를 만들고 동력 장치를 만들어 게임을 하는 등 유희적 취미를 즐긴다. 물론 이와 같은 수업은 전통적인 장르중심의 예술교육은 아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의 ‘놀잇감 장치를 만드는 욕구’은 넓은 의미에서 표현 요구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어린이 메이커 교육프로그램은 통합, 융합적인 접근을 지향하는 문화예술교육과 어긋나지 않는다.

그의 예술철학인 만드는 과정의 몰입과 즐거움, 손의 중요성, 취미와 예술의 경계 등이 투영된 수업이라는 것에 주목한다.
원래 그는 <장난감 공장>이라는 수업의 예술교사로 참여하기 전 <물건의 재구성>이라는 예술교육의 보조 선생님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technic(기술) -> skill(기능) -> work(일)’로 발전하는 과정을 경험했다. 도구 다루는 기술로부터 그 기술이 몸에 배어 스킬이 되는 과정 그리고 테크닉과 스킬이 기초가 되어 상상한 것을 실현하는 창작과정(work)의 순환을 아이들로 부터 깨달았을 것이다.
 
“나무 깎기 수행에 통과한 소수 정예 부대들은 동방신기 고정 팬들처럼 제자리를 고수하게 되었습니다. 망치질하기, 철사 다듬기, 못질하기, 컴퓨터 분해하기, 사포질하기, 톱질하기 등 아이들이 좀처럼 겪기 힘든 일들을 예술프로그램을 통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아이들이 매우 차분히 사고 없이 수행한 점은 그토록 지겹게 했던 나무 깎기의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 별다른 방향 없이 지루한 나무 깎기만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리하지 않았다면 부잡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이 안전사고가 많이 났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높은 관심법으로 아이들이 공구를 차분하게 다루게 된 것입니다. 2학기 수업이 마무리 되어가는 시점에서 아이들은 한 명씩 대단한 스킬을 갖게 되었습니다. 문지성은 톱질의 귀재가 되었고, 진광이는 망치로 못질을 아주 잘합니다. 어른을 능가할 정도입니다. 은률이는 나무 깎기를 잘 하게 되었고, 재인이는 칼질을 하면서 손이 베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형도는 철사를 잘 다듬게 되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공구를 쓰는 데 있어서 아주 능숙해졌습니다.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뭐든 척척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위와 같이 그는 만들기(making, craft)과정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재료를 찾을 수 있어야 하고 도구 다루는 기술을 숙련시키고 재료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만 예술창작의 동기가 생긴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도구를 사용해 가면서 손이 할 수 있는 일을 체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위와 같이 교육에 참여하는 두 명의 예술가의 수업 사례를 들어보았다.
그들이 만난 몇 명의 아이들을 소개한다. 필자와 이 두 예술가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예술로 배우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협력가 friendship 
아이들은 '듣기와 귀 기울이기'를 통한 협력가다. 친구들과 협동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마을 사람들의 지혜를 듣고, 귀 기울여 교감하는 진정한 협력가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 이웃을 배려하고 존중한다.


01
김승유 학생(땅과예술반 초등2학년)은 단골 리어카맨을 하면서 리어카 끄는 법을 갈파한 노하우를 1학년 후배들에게 일러준다. 선후배 멘토링을 통해 협력한다.


탐구(탐험)가 explorer 
아이들은 탐험가가 된다. 교과지식을 넘어선 탐험가다.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자신의 지식과 기능을 총동원하여 한 가지 문제를 끈질기게 관찰하고 탐구하는 예술탐험을 하며 '보기'와 꼼꼼하게 '들여다보기'를 즐기는 탐구자가 된다.

02
유태종 학생(장난감 공장 초등3학년)은 제시한 수업재료 및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고 항상 엉뚱한 창작물을 만들어 낸다. 종이갑옷, 머리띠 선풍기, 고무줄 총 등.


쟁이 makers 


박지원 학생(주말건축반 초등 5년) ‘인간 직쏘기’가 별명일 만큼 톱질과 망치질의 귀재, 자르고 붙이는 기술을 몸에 익히면 생각한 대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예술가 artist 
아이들은 '허물기와 짓기'를 실천하는 예술가다. 과거의 습관이나 틀에 박힌 생각을 허물고새로운 눈으로 보고 표현 할 수 있는 창조자다. 천천히 걷고, 풍경의 냄새, 소리, 촉감 등 감성만으로도 사물을 판단할 수 있다.


04

06
박주은 학생(땅과예술반 초등 5년) 이제야 그림은 도화지에만 그려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땅이 도화지가 되고 흙이 물감이다. 흙장난, 물장난이 곧 미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상상력과 표현의 한계는 극복된다.

놀이꾼 playworkers 
남승민 학생(장난감 공장 초등5년) 노는 게 젤 좋아! 놀이를 창조해내는 놀이 기술자들이 된다. 놀잇감을 고안하고 노는 방법을 알아가는 진정으로 놀 줄 아는 어린이가 된다. 가르쳐 주지 않았다. 놀이와 교육의 경계를 고민하게 하였던 학생. 





일꾼 labor 

   
이승민 학생(주말건축반 초등6년), 이재윤 학생(주말건축반 초등3년) 삽을 뜨는 것, 벽돌을 나르는 것, 나무를 깎는 일 등 수업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활동은 신체활동을 동반한다. 그래야만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으며 동시에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머리로 상상만 하고 마는 활동이 아니다. 거듭된 시행착오를 통해서 상상한 것을 다시 수정하면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상상을 현실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정민룡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활동했고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이후 광주북구문화의집에서 문화시설을 운영하면서 문화예술교육과 시민문화활동을 매개하는 활동을 했다. 요즘에는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생활문화를 디자인 하는 일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
생각하는 손 등 공방프로그램, 노작 중심의 예술교육인 <바퀴달린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