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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곁봄
  • 마지막에 대한 예의
  • 안준철 _순천효산고 교사, 시인
  • 2013.12.31

 

 

 

촛불과 관련한 시가 내겐 유난히 많다. 5년 전부터 우리 학교가 촛불 졸업식을 해온 까닭이다. 말하자면 그 촛불 시편들은 학교를 떠나는 졸업생들에게 바친 송가인 셈이다. 솔직히 매년 같은 주제로 시를 쓰다보니 조금은 식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탕을 하고 싶은 유혹을 용케 이겨내고 해마다 새로운 시를 써서 낭송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남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태 전 촛불 졸업식에서 낭송한 시「촛불-긍정의 상상력으로」의 일부다.   


촛불이 아름다운 것은
어둠이 촛불의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촛불과 어둠이 한 마을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빛이 조용히 어둠을 나무라듯
촛불이 어둠을 좋은 말로 타이를 줄 알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도 어둠이 있습니다.
어둠이 있어서  
내 안에 빛이 있는 것도 알게 됩니다.
하여, 어둠을 부끄러워하기보다 
마음의 촛불을 켜들고 
내가 빛나야할 이유를 찾고 싶습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전문계 특성화고다. 전문계라고 해도 대학 진학률이 꽤 높지만 취업 후 진학을 생각하고 있거나, 졸업과 동시에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아이들도 꽤 많다. 이제 곧 사회로 나가게 될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어둠속에서도 내가 빛나야할 이유를 찾는 것! 바로 그것일 수도 있으리라.   


그동안 내가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중에는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불우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최고가 되기 어려운 아이들은 최고만을 기억하는 일등지상주의 사회에서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마지막 수업이랄까? 세상이 그들을 쉽게 이기지 못하도록 손에 작은 조약돌이라도 하나씩 쥐어서 보내고 싶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돌을 말이다. 어느 해 촛불 졸업식 때 낭송한 시 「촛불을 켜면」의 전문이다.  


촛불을 켜면 작은 동그란 원이 생깁니다.
그 동그란 원은 아직 어둠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어둠의 면적이 아무리 넓어도
작은 동그란 원을 침범하지는 못합니다.

마음의 촛불을 켜면 작은 동그란 원이 생깁니다.
그 동그란 원은 아직 슬픔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슬픔의 부피가 아무리 커도
작은 동그란 원을 슬픔으로 물들이지는 못합니다.

꿈을 꾸면 작은 동그란 성이 생깁니다.
그 동그란 성은 아직 현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파도가 아무리 높아도
작은 동그란 성을 쉽게 무너뜨리지는 못합니다.

촛불을 켜면
내 마음의 촛불을 켜면
꿈을 꾸기만 하면
아무도 희망을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우리 학교가 촛불 졸업식을 하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상상을 하지는 마시라. 졸업식장에서 참새처럼 무시로 떠드는 아이들도 촛불 앞에서는 좀 숙연해지겠지, 하는 고육지책에서 나온 발상이었으니까. 하긴 3년 과정을 갈무리하는 졸업식은 교육의 성패를 여실히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했으니, 남의 말을 전혀 경청하지 않는 인간을 배출하는 졸업식이 무슨 의미인지, 고민이 깊어질 법도 했다. 다행히도 이런 해묵은 문제를 방치하지 않고 교육적 상상력을 통해 해법을 모색해본 것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축제 업무를 맡고 있다. 올해처럼 공식적인 업무분장으로서 축제를 맡지 않아도 해마다 공연 연출은 내 차지가 되곤 했다. 축제 준비는 학기말 고사가 끝난 뒤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한다. 그리고 축제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학생들은 졸업식 무대에서 앙코르 공연을 하게 된다. 축제 마당에서 마음껏 발산한 끼들이 선배들을 위한 후배들의 멋진 축하 공연으로 승화되는 셈이다.


우리 학교 졸업식은 대학교 졸업식을 방불케 한다. 졸업식 가운을 입고 학사모를 쓴 학생들의 모습은 평소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그것도 학생들의 입을 봉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대학이 아닌 취업의 길로 곧바로 들어서는 학생들에 대한 배려의 의미도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졸업식이 끝나고 학사모를 쓴 채 가족들과 사진촬영을 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마음이 뿌듯해지곤 했다.     

 
나는 해마다 마지막 수업시간에 하는 일이 있다. 아이들에게 하얀 종이를 한 장 나누어주고 거기에 ‘내가 아름다운 이유’ 다섯 가지를 적으라고 한다. 여기엔 마지막 평가의 의미도 담겨 있다. 나는 아이들이 학창의 경험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해주길 바랬던 것이다. 아름답지 않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과는 달리 백지 앞에서 침묵시위를 하는 아이들도 많다. 어느 핸가 자신에겐 아름다운 것이 하나도 없다고 아예 고해성사(?)를 한 아이에게 해준 말이다.  


“너에게 아름다운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아름다울 수도 있어. 자신을 성찰할 줄 아는 것만큼 이 세상에 더 아름다운 것도 없으니까. 넌 아름다운 거야!”


촛불이 아름다운 것은 어둠을 환히 밝혀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촛불은 오히려 어둑해서 아름답다. 올해도 촛불 졸업식에서 시를 낭송하게 된다면 너무 환하지만은 않은, 어둑해서 더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다. 가난과 불우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멋진 제자들을 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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