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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찬호 _성공회대 교양학부
  • 2013.11.16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그리고 교육

 

김찬호(성공회대 교양학부)

 

 

 

 

“내 집사람이 일찍이 말하기를 “매일 밤 베개 밑에서 ‘쉬이! 비켜섰거라!’하는 권마성(勸馬聲)이 들리는가 하면, 노새 말방울 딸랑거리는 소리가 나고, 또 때로는 마부가 종종거리며 말 앞뒤로 뒤따르는 소리가 나서 잠자리를 어지럽히는데, 그 소리가 도대체 어디서 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말해주기를, 잠이 막 들락말락 하는 순간에 정신을 번적 차리고서 어디서 나는 소린지 애써 신경을 써 보라 했더니, 바로 그 소리가 머리 위 병풍 사이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병풍이었는데, 괴이 여겨 그림을 다른 곳으로 아예 치워 놓았더니 그 뒤로는 다시 그런 일이 없었다.”

 

 

 

이것은 조선말기 고관을 지냈던 이유원의 글로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이라는 책에 인용되어 있다. 인간은 생존 이상의 것을 추구한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정신의 영역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동물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세계를 살아가고, 그 부피는 대단히 광활하다. 그것은 삶의 기쁨과 행복이 체감되는 곳이면서 동시에 고통과 불행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 의미의 우주는 상상에 의해서 구성되고, 예술은 그 집약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은 가상의 세계를 매개로 이뤄지는 지적, 정서적, 신체적 활동으로서, 또 하나의 리얼리티를 창조한다. 위에서 인용한 일화는 예술이 빚어내는 체험이 얼마나 ‘리얼’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진정한 예술은 전혀 엉뚱하고 뜬금없는 미궁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허구이면서도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일찍이 괴테는 “예술만큼 세상에서 도피하기 좋은 방법은 없다. 그러나 예술만큼 확실하게 세상과 이어주는 것도 없다.”고 설파했다. 피카소도 "예술은 우리가 진실을 깨닫게 만드는 거짓이다."라고 비슷한 관점을 피력했다. 이것은 더 넓은 맥락에서 놀이의 본질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놀이는 현실을 넘어서면서 동시에 그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삶의 질서에서 잠시 이탈하여 또 하나의 질서를 창조함으로써 고루한 일상과 습속을 상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과 놀이의 핵심은 자유다. 자유로운 인간이 그것을 즐길 수 있고, 그것을 즐기다 보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 기존의 틀에 얽매이는 마인드셋으로는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또는 예술과 놀이를 통해서 그러한 틀로부터 풀려날 수도 있다. 그 틀이란 무엇인가? 삶과 사회를 일정한 모습으로 유지시키는 생각과 시스템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형태의 <경계>들로 가시화된다. 인간의 여러 가지 활동들이 영위되는 제도, 그리고 그것을 의미론적으로 뒷받침하는 범주들이 바로 경계의 핵심이다.

 

21세기는 제반 경계들이 허물어지거나 얇아지는 시대다. 그래서 예전에 쉽게 만나지 못하던 것들이 유연하게 섞인다. 학제간 연구, 통섭, 과제 중심의 팀 구성, 퓨전, 크로스오버, 트랜스내셔날리즘,,, 탈경계의 역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영역을 고집하면서 그 안에 안주하면 도태되기 쉽다. 전문가는 여러 가지 자원들을 결합시켜 자기 나름의 새로운 범주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경계를 넘어서는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더 나아가, 전혀 낯선 세계를 기꺼이 마주치면서 거기에서 생겨나는 의외의 사건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예술은 그러한 품성이 자라나도록 이끌어준다. ‘창조성은 경계에서 발생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예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주어진 제약이나 한계 안에 갇히지 않고 과감하게 돌파할 때 이질적인 요소들이 어우러지면서 전혀 새로운 상상과 경험이 생성된다. 제도적인 울타리나 활동의 테두리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여러 가지 경이로운 화학반응을 경험해야 한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발상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예술 자체의 경계를 넘어서 다른 분야와 연계되어야 한다.

 

그것은 청소년들의 교육 과정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지금 학교의 예술 교육은 음악이나 미술 시간에만 국한되고, 그것도 그 방면으로 대학에 진학할 학생들이 아니면 별로 의미가 없는 수업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미적인 체험은 예술 교과목의 울타리를 넘어 여러 학습 행위에 긴밀하게 맞물리고 스며들 수 있다. 그 시너지가 불러일으키는 감성적 반응은 배움의 세계를 질적으로 고양시키면서 그 내용을 충실하게 이해하고 거기에 관련된 창의적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유럽의 어느 고등학교 수업의 예를 보자. 체육관에 메트를 길게 깔아놓고 아이들이 연달아 덤블링을 한다. 체조 시간인가보다. 그런데 그 메트 옆에 그냥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양쪽으로 마주 보고 앉아 도화지에 뭔가를 열심히 스케치하고 있다. 그들의 눈은 자기 앞에서 덤블링하는 동료들의 몸동작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그린 그림들은 제 각각이다. 운동하는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체육과 미술이 만나 전혀 새로운 수업 프로그램이 된 사례다.

 

다른 교실로 가보자. 아이들은 여러 색깔의 찰흙으로 다양한 형태의 작은 물체들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들을 조금 변형시키고 자리를 바꿔가면서 사진을 찍는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미술 시간? 그렇지 않다. 그들이 만들고 있는 것은 물체들은 화학의 여러 원소들이다. 어떤 물질과 어떤 물질이 결합하면 어떤 물질이 되는가? 화학 시간에 머리에 쥐가 나도록 암기한 내용을 그렇게 알기 쉬운 그림과 연속 화면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사이에 화학적인 원리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주 쉽게 이해되거나 숙지되는 것이다.

 

그러한 커리큘럼의 구성에는 리얼리티 자체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북돋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저런 전공이나 범주로 구분되기 이전의 본질을 근원적으로 탐구하는 마음은 지성과 감성의 경계까지도 허물어버린다. 거기에서 우리는 삶의 제반 활동들을 유기적으로 잇고 자유자재로 엮을 수 있다. 일과 학습과 놀이의 칸막이를 뛰어넘어 존재 자체를 고양시키는 문화가 향유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와 타인 사이를 가로지르는 계급이나 신분의 사회적 구분선들을 지울 수도 있다.

 

그런 지향에 철저했던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훈데르트 바서가 있다. 그는 자신의 건축물을 짓는 노동자들이 단순히 주어진 대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의 공동 주체로서 작업에 참여하여 제안하도록 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노동자들이 자기 가족들을 초대해서 일하는 모습을 보도록 했다. 타인의 지시나 명령에 복종하는 노예가 아니라,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노동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는 진정한 문맹은 창조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창조는 자기의 일에 마음이 온전히 담길 때 가능하고, 그를 위해서는 소외가 극복되어야 한다.

 

삶은 그 자체가 놀이일 수 있다. 예술적 상상력과 감수성에 힘입어 우리는 수많은 세계를 경험한다. 학과목, 장르, 활동, 제도, 조직, 나이, 남녀, 직업, 빈부 등 여러 차원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 자체가 위대한 유희다. 세상에 의해 규정되는 나의 모습으로부터 홀연히 떠나 다양한 존재로 변신할 수 있다면, 거기에서 생겨나는 마음의 힘으로 고단하고 모욕스러운 현실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여백이 허용되는 사회는 인간의 잠재력과 선한 본성을 이끌어낸다.

 

김찬호  l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문화인류학, 청소년교육과 문화, 가족관계와 부모 자녀소통, 마을만들기,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 등의 주제로 강의와 글쓰기를 한다. 지은 책으로 '사회를 보는 논리', '도시는 미디어다', '문화의 발견: KTX에서 찜질방까지', '휴대폰이 말하다', '교육의 상상력', '생애의 발견', '교육개혁은 왜 매번 실패하는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작은 인간', '경계에서 말한다', '학교와 계급재생산' 등이 있다.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