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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곡동 예술교육의 ‘나우토피아’를 꿈꾼다
  • 고영직 _문학평론가
  • 2013.11.11

 

 

우리의 배움은 생애 전반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 이때 우리 사는 삶터가 새로운 배움이 이루어지는 학교 밖 학교로서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배움의 친(親)지역화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것이다. 지금의 (근대)교육은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의 고향과 조국의 가치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마저 배반하도록 하는 탈(脫)지역화 내지는 반(反)지역화 경향이 너무나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학교 교육이 인간과 생태계의 요구가 아니라 기술과 경제의 힘을 추종하는 인적자원을 양성하려는 교육 현실에서 비롯한다.

 

결국 지역화가 해답이다. (예술)교육의 지역화 정책이 필요하고, 예술(운동)의 지역화가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행복의 경제학』에서 “지역화는 근본적으로 관계에 관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사람과 자연계와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재구축하는 것이 지역화에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람들과 단단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려는 마음은 저 옥중의 수인(囚人)이라 할지라도 다르지 않다. 인기척이 있는 삶과 사회는 이웃을 형성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어느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말하는 이웃이란 누군가가 개념화한 사회적 자본(로버트 D. 퍼트넘)을 비유한 표현이라고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우리는 이웃과 강력하고 단단한 유대를 원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문화체육관광부가 36억 건의 빅데이터(Big data)를 분석해 공개한 「2013년 국민인식변화」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혼자,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다”라는 지극히 개인주의적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현재, 일상, 퇴근 후, 소소하다, 지르다, 혼자’와 같은 핵심 키워드들이 의미 있는 증가폭을 보이며, 소위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형성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타인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즐기는 1인문화에 익숙하다는 점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이러한 사회적 조건을 고려할 때, 사회의 소멸 현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회학계의 주장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인 것(the social)을 재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인 전환(the social turn)을 위한 모색은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변방이란 지방적인 것을 의미하는 지리적 표상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어느 시인이 표현한 것처럼 “인간의 가장자리 사회의 가장자리”(백무산)라는 은유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보아야 옳다. 어쩌면 그런 ‘가장자리’에서 싹트는 지역화운동이야말로 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강요하는 사회 없는 사회적인 것에 대항해 사회적인 것을 재구축하려는 우리 시대의 거점 공간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점에서 나는 “참된 진보를 추구한다면 영토에 정주하지 않는 것, 즉 탈영토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견해는 오류이다”라고 파악한 정치학자 마거릿 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는 민중의 생활세계에서 공론장을 구축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 공론장 구축 과정에서 문화(예술)적 재구성이 갖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그런 이유 때문일까. 지난 6월말 안산시 국경 없는 마을 원곡동에서 <우리를 위한 예술>(Art for us/Earth)을 표방하며 출범한 아트포러스의 교육실험은 우리의 주목에 값한다. 배움과 예술의 공동체를 표방하는 아트포러스는 7년째 안산에서 활동해온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참여 작가들을 비롯해 지역 활동가, 예술가, 인문학자가 참여하여 장차 창조적인 나눔의 공동체를 실현하고자 한다. 아트포러스 프로젝트는 경기문화재단과 안산시의 매칭펀드 형식으로 3년간 후원된다. 안산시의 무상임대로 원곡동 여성근로자복지센터 2층에 입주한 아트포러스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어린이, 청소년, 한부모 여성을 비롯한 여성 노동자, 이주노동자(고려인),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전방위적인 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수요자 맞춤형 교육으로 진행되는 아트포러스 예술교육이 찾아가는 예술교육의 방식과 비슷해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장차 예술인협동조합을 결성할 구상이다. 예술가와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포럼, 전시, 파티 같은 다양한 기획을 통해 예술가의 재교육과 역량강화는 물론이요, 원곡동 지역 주민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의 접점을 형성하려 하고 있다.

 

안산여성노동자회 산하 한부모 여성들과 함께하는 교육을 진행하는 나의 경험적 진실에 따르면,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아트포러스의 예술교육은 주민들의 자발적 자조(自助) 모임을 형성하고 강화하는 데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감히 확언할 수 있다. 이 점은 아트포러스의 예술교육이 공통의 진리가 아니라 공통의 행동에서 우러나오는 협력적 연대의 방식을 취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제 한부모 여성들과 함께하는 <위풍당당 아트를만나다>에서 우리는 시를 읽고, 글을 쓰고, 수다를 떨고, 술잔을 기울이며 이 험한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다리가 되고,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신뢰할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좋아하는 시를 낭독하며 한부모 여성가장으로 살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담담히 고백하던 어느 수업 장면을 나는 잊지 못한다. 만해 한용운 선사의 표현을 빌리면 “너의 가려는 길은 너의 님이 오려는 길이다”라는 점을 스스로 확인했던 과정이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1층 경로당 어르신들과 시립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하는 <세대공감: 우리가 만드는 예술> 교육 또한 퍽 유의미하다. 라은영 경기자바르떼 교육위원장을 비롯해 통합미술연구회 아낌없는주는나무 소속 노양미, 강은아, 양현옥, 홍은경이 참여해 목걸이, 점토, 색종이를 활용한 다양한 창작 수업이 진행되었다.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 에너지와 어르신들의 경험이 함께 어우러지는 예술교육이 이루어진 셈이랄까. 한 공간에 거주하는 조-손(祖-孫) 간에 격세(隔世)를 넘어서는 친밀한 사랑과 우정의 공동체가 형성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원곡동 인근 감나무골작은도서관, 모두다문화도서관을 비롯해 작은 도서관들에 양재혁(작가), 김재화(배우) 같은 예술가들을 파견해 아이들과 함께하는 예술교육 또한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사람이 햇볕정책이다!’라는 위대한 가치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예술교육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 또한 스스로 설 뿐만 아니라 함께 설 수 있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있다는 점을 아마 누구도 부정하진 못하리라.

 

학교 밖 배움터를 지향하는 아트포러스의 브랜드 상품은 <릴레이 현대예술 특강>과 <인문학 특강>이다. 릴레이 특강에는 김남수(안무평론가), 김동일(사회학자), 이세기(시인), 심보선(시인)이 참여해 지역 예술판에서 화제를 모았다. 겨울에는 캠프 형식으로 진행된다. <인문철학특강―미술관 옆 철학관>은 철학자인 백용성 대표가 예술의 죽음이 운위되는 시대에 예술적 이미지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개괄하는 특강을 진행했다. 또한 옥상을 활용한 정원 가꾸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가 하면, 옥상 커뮤니티 형성 차원에서 <다문화 공중(公衆/空中) 정원 : 원곡 스카이>전을 비롯해 2층 전시실에서도 다양한 전시들이 월 1회 이상 열리고 있다. <원곡 스카이>전에는 김종희, 김태균, 이도, 정민희, 정인교, 추수희, A+C(이미경, 김보배, 송지은, Qrator)가 참여했다. 크고 작은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예술가와 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술과 음식을 같이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즉석 파티’가 열리는 점은 은근한 중독성이 있는 매력이 아닐 수 없다.

 

 

 

 

 

6월말 출범한 아트포러스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열린 예술대학을 표방하며 새로운 복합문화커뮤니티를 확실히 실험하고 있다. 아직은 현재진행형이어서 학교 밖 배움 공동체로서의 평가를 내리기에는 성급한 측면이 없지 않다. 자체 내부평가를 통해 사업의 강약 조절이 필요해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백용성 대표는 “원곡동에서 실현 가능한 자발적 소모임들을 활성화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른바 ‘타급자족’이 아닌 ‘자급자족’의 형식으로 어떻게 아트포러스를 원곡동의 복합문화커뮤니티로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의 ‘방향’이 어느 정도 읽혀진다. 백 대표의 이런 고민은 최근 자치와 자립의 삶터로 유명한 충북 옥천을 다녀온 뒤에 더 깊어진 듯 보였다.

 

예술가들이 현실에 개입하여 지금 당장 일상에서 구현되는 ‘나우토피아(nowtopia)’로서의 공동체를 꿈꾼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트포러스는 짧은 시간 동안에 전방위적으로 커뮤니티 아트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역동적인 배움터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 그런 만남과 교류에서 열림과 닫힘 혹은 수렴과 확산의 변주(變奏) 과정을 거친다면, 아트포러스가 추구하려는 커뮤니티 아트의 자연스러운 ‘무늬’가 정해지리라 나는 믿고 있다. 안산 원곡동에는 지역의 열린 배움터를 꿈꾸며 내일의 원곡동을 경작(耕作)하려는 아트포러스가 활동하고 있다. 우리를 위한 예술은 서로가 손을 잡고 함께하려는 과정에서 마침내 실현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커뮤니티를 기쁨의 공동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