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곁봄
- 공공기관 문화시설의 '창조적 공유지' 몸살 앓기
- 김종휘 _성북문화재단 대표
- 2013.08.24
2012년 9월에 출범한 성북문화재단에는 크고 작은 문화시설이 많다. 도서관 5곳이 있고 내년 상반기에는 구청에서 민간 위탁을 한 3곳을 우리 재단이 함께 운영할 예정인 데다 신설할 도서관까지 모두 9곳이 된다. 20개 동으로 구성된 성북구에는 2개동마다 1곳씩 도서관이 있는 셈이다. 이런 도서관 기반 위에 영화관과 미디어센터, 미술관과 예술창작터, 구민회관과 여성회관, 작은 아트홀 등이 특화되어 있는 형국이다. 시설이 많은 만큼 다른 기초 지자체의 지역문화재단에 비해 직원도 많아 보인다. 현재 136명인데 내년 초엔 늘어나는 시설에 비례하여 150여명 이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다보니 구청에서 재단에 출연하는 예산의 90%가 인건비와 시설운영비에 들어간다. 재단 출범 첫해라 기존 시설 운영 외에 새로운 사업도 모색해야 하겠고 해서 부랴부랴 각종 공모를 신청해 약 9억원을 마련했고 재단의 사업비와 합쳐 일을 하고 있다. 지방재정 상태가 한층 어려워진 상황에서 내년이 된다고 당위론에 따라 희망이 절로 오지는 않을 것이며 매해 국시비 공모사업에 운명을 맡길 수도 없다. 하여 재단 출범 첫해를 쉬이 보내지 말고 성북지역과 우리 재단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활로를 찾아보자는 작심 아래 조직 내부와 직원들은 재단 출범 11개월째 줄곧 ‘변화의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1.
‘변화’의 첫째 화두는 시설 공급자 중심에서 과제 수요자 중심으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예산이 동일하거나 사정 따라 약간의 증감이 반복되는 조건이라면 정말 예산을 잘 써야 한다. 잘 쓰는 방법은 공급자 관점에서 시설 관리 중심으로 해오던 운영과 활동을 수요자의 욕구와 지역 공통의 과제 도출 관점으로 바꿀 때 비로소 보이는 것 같다. 지역에 이미 ‘있던 것’(자원)과 지역에서 이미 ‘하던 것’(주체) 관점으로 재단의 시설을 돌아보니 개별적 공급과 관리 위주의 시설은 ‘공유 공간’이 되고 ‘공동 작업장’이 되는 가치의 변화, 그 극심한 ‘몸살’을 피해갈 길이 없었다.
‘몸살’이 ‘극심한’ 까닭은 그동안 시설에서 주도해오던 사업을 그만 두거나 옆 시설과 합쳐서 하게 되거나 지역 단체에 성과를 돌리고 재단은 뒤로 빠져야 하는 등 의사 결정과 평가의 과정이 뒤바뀌기 때문이다. 직원과 단체 종사자와 예술가와 자원봉사자와 사용 주민의 역할극이 기존의 선명한 경계를 따르다가 마치 모두가 링 안의 무대 위에 올라온 상황으로 변한 셈이다. 이 상황은 서로에게 혼란스럽고 불편했다. 게다가 이 혼돈을 말끔하게 정리정돈을 해주는 누군가의 등장을 지체 내지 자제시키자 불만도 강해졌지만 무심한 듯 지켜보는 이 인내를 거치는 동안에 그리고 그 어느 순간부터는 다 같이 인정하는 새로운 질서가 작동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일례로 큰 리모델링 공사를 앞둔 영화관과 미디어센터의 운영 방식을 개선하는 간담회에 지역 주민과 단체를 초청한 적이 있었다. 재단이 준비한 초안을 설명하고 의견을 경청하던 간담회는 초반도 지나지 않아 지금 당장의 시설 운영에 대한 다양한 요청과 주문의 장으로 바뀌었다. 이러길 몇 차례 하면서 재단은 해당 시설의 상태와 예산을 모두 공개했고 어찌 하면 좋을지 하는 고민을 주민과 단체에 의뢰하는 모습으로 달라지고 있었다. 그러자 주민들과 단체들은 미디어센터의 노후한 장비 교체와 동네라디오나 팟 캐스트의 스튜디오 공간 설비가 필요하다고 합심을 하더니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을 신청하여 2억원을 받아왔다.
예상컨대 이 시설의 향후 운영은 전과 무척 달라져 있을 것 같다. 영화관 1관은 종전처럼 개봉 상업영화관으로 운영되지만, 2관은 어린이와 청소년 등 가족 전용관으로 탈바꿈해서 영화와 공연이 함께 하는 복합공간이 되고, 3관은 종전처럼 독립영화전용관으로 가되 마을극장의 역할이 대폭 강화될 예정이다. 미디어센터는 마을 주민과 단체들이 주도하는 공동체 미디어 사업의 공동 작업장이 되고 재단에선 청소년 미디어 교육과 활동에 주력하며 상호 협력하는 새로운 운영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설 직원은 ‘공유공간’과 ‘공동작업장’의 위임받은 운영자로서 그 미션과 비전을 조금은 달리 갖게 될 것 같다.
2.
‘변화’의 둘째 화두는 재단 직원들이 월 1만원 정기후원 1000명을 조직하는 일이었다. 자신이 배치된 시설에서 자신의 직급과 직무로만 말하면서 책임의 선을 쪼개어 가졌던 직원들이 성북문화재단 전체의 관점과 감각을 공히 앞세운다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다. 방법도 마땅하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예산의 90%가 인건비와 시설운영비에 들어가는 우리 재단의 현주소를 공유하면서 결국 이 돈이 지역 주민의 세금으로 나오는 것인데, 이 연결의 구체적인 실체감을 생생하게 공감하면서 시설 서비스를 넘어선 재단의 공익적 역할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정기후원 1000명 프로젝트를 선언했다. 처음엔 기대 반 우려 반의 선언에 불과했다.
그러나 몇 명의 직원이 먼저 발로 뛰었고 이어 십수명의 직원이 움직이더니 프로젝트 선언 이후 2개월이 지날 무렵 월 1만원을 내는 정기후원자가 500명을 넘어섰다. 이러자 구청에서는 성북문화재단의 가능성을 문화재단이자 동시에 지역재단의 관점에서 재설계하는 구체적 동기를 표현했다. 그 신호탄으로 구청이 주관하는 21억원의 장학기금을 재단에 위탁하기로 결정하였고, 지역의 민간이 운영하는 장학기금들도 재단에서 통합 운영하는 방향으로 조례 개정과 분위기 조성 등 적극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머잖아 1000명의 월 1만원 정기후원자가 모이면 그 뒤부터는 구청 직원들과 지역 관계기간 종사자들이 5000명의 월 1만원 정기후원자 가입 캠페인에 나설 것이다.
아마도 올해 안에는 가정 형편상 악기를 갖지 못한 ‘꿈의 오케스트라 성북’의 어린이 단원들에게 개인별 악기가 쥐어질 것이다. 이미 악기는 지급되어 사용 중이나 장차 이 아이들 각자가 자신의 악기를 갖고 성장해서 다시금 훗날의 어린이 단원에게 멘토가 되어주고 그 악기를 물려준다면 하는 소망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이 어린이 단원들에게는 일대일의 관계를 유지해나갈 동네 어른 멘토도 생길 것이다. 또한 현재는 구민회관 연습실에서 주 2회 공동 레슨을 하고 있지만 주말에는 이 어린이 단원들이 영화관에 가고 미술관에 가고 도서관에 가서 다양한 체험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성북의 주민들은 이 어린이 단원들의 오케스트라 합주와 그 달라진 표정을 선물처럼 받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일들이 다양한 목적 아래 벌어질 텐데 그 원동력은 월 1만원을 내는 이름을 가진 소액 정기후원자의 존재에서 나온다.
재단 직원들이 일대일로 지인과 시설 이용자들을 만나며 소액 정기후원자를 모집하는 과정은 우리 직원들에 게 실로 많은 경험을 주었다. 월 1만원 후원을 약정하는 결심은 우리 재단이 그에 따른 무슨 혜택이나 보상을 해서가 아니라, 정반대로 그분들 각자 생각하는 성북지역의 결핍과 모순과 왜곡에 대한 불만과 열망을 경청할 때 이루어졌다. 아울러 성북문화재단이 할 일에 대한 질책과 충고와 아이디어를 나누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이 경험이 재단 직원들에게 기존의 시설 공급자 중심 관성을 깨는 진심어린 자극을 주었다. 이것이 재단을 시설이 아닌 ‘공유공간’이자 ‘공동작업장’으로 다시 바라보게 하는 영감의 원천으로 남을 것 같다.
3.
이상의 짧은 체험담은 공공기관으로서 시설을 보유한 지역문화재단이 지역문화의 진흥이나 생활예술의 르네상스를 매개하는 ‘창조적 공유지’의 일부가 되기 위해 부러 탈이 나고 그러면서 조금씩 혹은 커다랗게 탈바꿈이 일어난 사례로서 자화자찬의 감정으로 편집하여 많이 미화된 이야기다. 아시다시피 지역에는 이보다 훨씬 ‘극심한 몸살’을 앓으면서도 오랜 시간 티내지 않고 그저 ‘있던 것’으로서 ‘하던 것’으로서 성숙하게 화답하는 내공의 소유자들이 적지 않다. 바라기는 우리 재단이 이분들과 통하여서 우리 지역에 ‘없는 것’까지 같이 찾아내고 같이 만들어가는 것을 본분으로 삼게 되는 일이다.
그럼 우리 재단의 ‘변화’ 그 셋째 화두도 개봉박두다. 외부에 열리고 어린 것에 열리고 서툰 것에 열려있는, 나아가 우리보다 더 좋고 잘 하고 뛰어난 것들을 초대하고 빌려오며 선뜻 자리를 내어주는 포용의 ‘창조적 공유’가 일궈나갈 일상이다. 아직은 멀었지만 공공기관으로서 성북문화재단이 갖는 잠재력은 한계이자 제약이라 여겨온 그 ‘오래된’ 시설을 ‘미래’로 상상하는 공유의 감각을 하나둘 일깨워온 지난 11개월 동안 이미 발휘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관건은 인내심이다. ‘몸살’을 앓는 하루하루를 견뎌나가는 평상심이다. 하긴 이게 제일 어렵다. 해서 또 머리 굴리는 대신에 일단 몸으로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 수고가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