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곁봄
- '누구의' 것 아닌 '누구나'의 공간을 꿈꾸며
- 고영직 _문학평론가
- 201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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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사는 함민복 시인은 뻘(갯벌) 예찬론자이다. 시인이 뻘을 예찬하는 이유는 뻘 고유의 ‘말랑말랑한 힘’을 무한 신뢰하기 때문이다. 어느 시에서 시인은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 (중략) /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라고 읊조린다. 시인이 전언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이라는 표현에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고 확언해도 좋으리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함부로’라는 부사(副詞)가 갖는 진정한 의미를 잊어버린 사회가 아닐까. 함부로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것들조차 돈으로 살 수 있고,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사유화’ 원리가 유례없이 작동하는 소유자사회가 아닐까. 우리는 이러한 소유자사회에서 나날의 삶과 노동에서 공유의 비극을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함부로’ 사유화해서는 안되는 것들마저 사유화하는 것을 용인한 나머지 경제의 사유화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의 사유화마저 허용한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런 사유화 현상은 우리들 욕망의 사유화와 상상력의 사유화를 빼놓고서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느 논자가 “이 시대의 잠재적 낙원의 문은 지옥 속에 있다”(레베카 솔닛)고 한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는 것도 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어떤 파열구가 지금 당장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파열이 아니라면 작은 균열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유토피아를 뜻하는 영어 표현 No-Where를 지금 여기(Now-here)의 의미로 전환할 수 있는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공간이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공간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협력 자체가 예술이 되는 삶-예술의 경지를 일상적으로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비빌 언덕’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그런 공간을 창조적 공유지라고 부르련다. 어느 논자가 “근대는 ‘마을을 버린 사람들’에서 시작해서 ‘마을을 만드는 사람들’로 끝이 날 것이다”(조한혜정)라고 한 말 또한 창조적 공유지로서 마을의 중요성을 강조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번 미끄러지면 재기 불능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미끄럼틀 사회를 넘어 ‘인기척’이 있는 마을(공동체) 아지트를 형성하고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공유(共有)된 사회 공간이 있어야 한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민중회관(casa del popolo)을 비롯한 다양한 저항 공간을 분석한 정치학자 마거릿 콘이 『래디컬 스페이스(Radical Space)』에서 “다양한 동맹체들을 하나로 접속시킨 것은 공유된 언어가 아니라 공유된 사회 공간이었다”고 한 말은 적절한 참조점이 되리라 믿는다. 창조적 공유지는 그런 공유된 사회 공간에서 돌봄, 소통, 학습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질 때 형성되고 강화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부천시 오정구 약대동오거리에 위치한 담쟁이문화원(원장 한효석) 또한 커뮤니티 아지트를 꿈꾸는 공유 공간(Sharing Space)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담쟁이문화원이 다른 곳들과 구별되는 점은 “함부로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한효석 원장의 공간운영 철학이 확고하다는 점이다. 무엇인가를 자체적으로 기획하여 공간 운영을 어떻게 하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갖고 있지 않다. 일종의 무위(無爲)의 공간이라고 해야 할까.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건물을 매입해 새로 단장하여 2012년 11월 오픈한 담쟁이문화원의 경우 현재 식당(1층), 북카페 겸 책놀이터(2층), 3층에는 문화원 사무실과 강당을 비롯해 일과사람, 의료생협(준),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부천교육연대 같은 4개 시민단체가 함께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46평 규모의 지하 소극장에는 교육극단 ‘틱톡’을 비롯해 4개 예술단체가 요일별로 공간을 나누어 사용한다. 옥상에서는 작은 (예술)캠프와 행사가 가능하다. 공간을 사용하겠다는 시민단체가 있다면 여건이 허락하는 한 공간을 대여한다. 공간 사용료는 없었으나, 최근 전기료 수준(1시간당 5천원)의 사용료는 받기로 정했다고 한다.
무위의 공간을 표방하는 담쟁이문화원의 하루하루는 다양한 행사와 교육으로 분주하다. 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3층 강당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한글교실과 ABC교실이 열린다. 자체 기획한 것이 아니다. 한글교실에 다니는 어느 할머니가 쓰고 그린 그림일기들을 보며 내 가슴이 더워졌다. “노래도 부르고 그림도 그린다. 난 오늘도 학교에 간다.” 시화로 꾸민 김순연 할머니의 시 「어머니 제비꽃」을 보며 우리는 누구나 한때 ‘문학 소년․소녀’였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평균 연령 79.2세’에 달하는 24명의 충북 옥천군 안내면 할머니들이 펴낸 『날 보고 시를 쓰라고』라는 시문집이 문득 떠오른다. 어린이와 청소년과 함께하는 강좌도 여럿이다. 청소년 백범(白凡)학교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다. 개원한 지 채 1년이 안되었지만, 약대동 일대 주민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떠들고, 꿈꾸는 일상의 네트워크 공간이 된 셈이다. 한효석 원장은 “현재로서는 어떤 것도 계획하지 않는 것이 계획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무위의 공간을 표방한다고 하여 담쟁이문화원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사업은 자체적으로 추진한다. 지난 봄 부천 내 각종 정파(政派)들을 망라하여 강사진을 짜고 수강생을 모집하여 추진하려 한 <여성정치학교>의 경우 수강생 미달로 끝내 무산되었으되 지역 정가에 미묘한 긴장감을 조성하며 담쟁이문화원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담쟁이문화원이 특히 역점을 두려는 것은 주민밀착형의 생활 강좌와 다양한 커뮤니티 사업이다. 노무, 경매, 세무, 역사특강을 아우르는 <우리가 알아야 할 상식> 강좌와 <협동조합> 강좌를 무료로 진행하는가 하면, <지역신문 협동조합을 만나다> 강좌를 진행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현재는 2014년 1월 창간을 목표로 스무 명 남짓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후속 모임을 맹렬히 진행하고 있다. 한효석 원장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신문을 찍었으면 좋겠다. 하소연하고 싶은 사람은 말할 공간이 되며, 중소 자영업자와 제조업자는 자기 상품을 소개할 수 있고, 공무원은 지역 여론을 파악하여 시정(市政)을 제대로 구현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담쟁이문화원이 주춧돌을 놓겠다”고 말한다.
한 원장이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지역신문을 고려하는 데에는 담쟁이문화원의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담쟁이문화원은 한 원장이 개인 사재(私財)를 전액 출연해 만든 공간이다. 부천고에서 국어 교사를 지낸 한 원장은 2001년 명예퇴직 이후 12년간 부천 여월동(안골)에서 보리밥집을 운영하며 자산을 모았다. 그리고 지금의 삼정동에 담쟁이문화원을 개소했다. 건물 1층에 안골텔레기식당이 위치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 원장은 “담쟁이문화원은 ‘누구의’ 소유(所有)가 아니라 ‘누구나’ 공유(共有)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건물주 한 사람의 선행(善行)에 의지하는 공간 운영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가능할까. 한 원장 또한 이 점을 모르지 않는다. 1층 안골텔레기식당의 영업 실적이 예전보다 재미를 못 보는 점이 신경 쓰이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든 일상의 네트워크든 간에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던가. 2~3년 뒤 문화원을 주민들이 ‘공동 소유’하는 형태로 바꾸려 하는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무엇 하나 가진 것 없는 주민들이 스스로 다스리는[自治] 공간을 갖는다는 점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사람들이 그런 자치 공간에서 나누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인정과 우정 그리고 사랑과 행복을 더불어 나누게 되는 것이다. 내부경제 혹은 공유경제의 활성화는 그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가적인 산물이다. 그곳에서는 오직 ‘서로 손-잡기’의 원리가 필요할 따름이다. 마거릿 대처 식의 “다른 대안은 없다”(TINAㆍThere Is No Alternative)는 말이 유포되는 사회에 맞서서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입을 모아 ‘대안은 여기 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활문화예술운동의 메카인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대표 임승관)가 임대 보증금 때문에 최근 재정적 곤란을 겪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 땅에서 주민들이 자치하는 공간을 스스로의 힘으로 유지하고 운영하는 것이 이토록 힘들다는 점을 말해주는 사례가 아니던가. 첫술에 당장 배부를 수는 없다. “공간 지킴이로도 나는 지금 행복하다”는 한 원장의 말에 나 또한 행복하다.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모이고, 떠들고, 서로 손을 잡고 춤추며, 함께 꿈꾸는 공유 공간이 되는 그날을 나는 ‘이미’ 보았다. 부천에는 인기척이 있는 마을 커뮤니티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담쟁이문화원이 있다. 원고 ‘쫑’하고 나니까 술 생각이 몹시 간절해진다. 텔레기(어죽) 한 그릇에 탁주 한 사발 마시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