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곁봄
- 자석같은 향기의 비밀
- 고영직 _문학평론가
-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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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철학자 수호믈린스키의 『아이들에게 온 마음을』(원제 To Children I give my Heart)이라는 책을 읽었다. 아이들과의 자연 수업에서 전인교육을 실현하고자 한 수호믈린스키의 교육철학과 교육방법론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기쁨을 느끼고, 지식을 아는 기쁨을 추구하며, 타자와 연대하고 나누는 것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며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아이들이 쓴 시(詩)를 보며 저절로 이 땅의 척박한 (예술)교육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 앞에서 센 척하며 무례한 태도를 드러내는 반자연의 글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 아이들이 쓴 자연의 글쓰기는 뛰어난 야생의 예술이라고 단언해도 좋다. 아이들의 시를 보며 미래의 레이첼 카슨과 알도 레오폴드의 출현을 예감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오독은 아니었으리라. 수호믈린스키는 아이들을 시인(예술가)으로 만드는 것은 자연 수업이라는 점을 확고한 교육철학과 교육방법론으로 입증해냈다. 건강 교육, 도덕 교육, 미적 교육, 지적 교육, 노동(직업) 교육, 마음(영적) 교육을 서로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통합하며 온전한 전인(全人)교육을 추구하려 한 수호믈린스키의 귀중한 교육 경험은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 더 많이 읽혀져야 마땅하다.
미적 경험이 이루어지는 장소와 교사의 능력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지나치지 않다. 환원주의자의 과학과 결정주의자의 경제학이 지배하는 우리 현실에서 특정의 장소(place)에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아이들과 함께 미적 경험을 온전히 실천하는 교사들의 존재는 귀하고 또 귀하다. 어느 시인이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 아이가 많이 배우는 데 관심을 두지 않고 / 더 많이 관심을 갖게 하는 법을 일러주리라”(다이아나 루먼스)라고 한 표현은 미적 교육의 효과를 빼놓고서는 생각하기가 어렵다.
이 점에서 2001년 문을 연 대안문화학교 안성달팽이학교(교장 이기원)는 우리의 주목에 값하는 예술교육 현장이다. 교명(校名)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달팽이학교는 디지털 문화의 상징인 골뱅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교육철학과 교육방법론을 마을에서 일상적으로 구현하려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이다. 개교 이후 지금껏 마을 예술학교 역할을 자임한 달팽이학교의 활동은 ‘장소가 있는’ 예술교육을 추구해온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장소를 그저 바라보는 것(looking)만이 아니라, 그곳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들을 만나고(seeing) 이해하는데 있어서 장소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자각한 것이다. 지속성의 경험이 살아 있는 서사(敍事)는 구체적인 장소성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은은한 시간의 향기가 더해질 때 발효되는 것이 아니던가.
학교를 시작할 때 함께한 아이들은 이제 이십대 중반 청년이 되었다.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한 몇몇 아이들은 수업 진행을 보조하고 자원봉사 역할을 자청하며 지금도 학교와 연을 맺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 시절 어느 한때를 행복하게 보낸 아이들은 그때 그 시절을 결코 못 잊는다”는 이기원 교장의 말에 수긍하게 된다. 이곳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학교로 재귀(再歸)하는 비율은 대략 30%쯤 된다고 한다. 아마도 ‘방과후 해방구’ 구실을 한 달팽이학교에서 만난 사람들과 어울려 연출한 불꽃놀이의 경험을 못 잊어서가 아닐까.
달팽이학교에서는 다양한 예술교육이 진행되었다. 아이들은 교육과정에서 내 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나-너의 관계의 아름다움을 연출했으며, 땅의 소리를 온몸으로 경청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경험했다. 초봄에 논바닥에 누워 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하면, 학교 인근 금광리의 산하를 이 잡듯이 누비고 다녔으며, 장거리 자전거 투어를 하는 등 아이들의 경험을 확장하는 예술교육이 진행되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성) 공부도 빼놓을 수 없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이기원 교장은 사진 수업 때에도 마을과 마을 사람과 마을의 자연에 대한 공부를 먼저 진행했다. 인문학과 생태학 그리고 예술교육 간에 통섭이 이루어지는 매개 교육을 진행한 것이다. 전시회도 열고, 사진집도 여러 권 펴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문화소외 지역 아이들과 함께한 <문화마을/문화지도 만들기> 프로젝트는 특히 애착이 가는 사업이다. 이기원 교장은 “아이들과 사진 작업을 할 때 사진 찍는 기술만을 가르치지 않았다. 사진은 마지막 공정이었다. 마을의 역사, 문화, 생활사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올해 홍익아파트 마을 벽화 작업에서도 아이들이 그리는 벽화와 마을성의 조화에 대해 더 많이 토론하고 공부하고 있다”고 말한다. 각 마을의 특성에 맞는 마을 벽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을(성)에 관한 공부는 아이들이 지역에 기반한 지식을 갖게 한다. 어느 아이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금광 호수길도 그렇고, 들풀과 돌멩이 하나도 사진을 하고 나서부터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다”고 의젓하게 말하는 것은 단적인 예가 된다. 미국 생태시인 게리 스나이더가 “자연의 다른 존재들도 그들의 문학을 갖는다”고 한 심층생태학의 웅혼한 의미를 아이들 스스로 간파한 셈이랄까. 우리는 “창조성은 그 근원을 야성(野性)에 의존하며, 야성은 자유를 부여합니다”라고 한 게리 스나이더의 말에 대해 더 깊이 음미하고 예술교육 현장에 접목해야 한다.
달팽이학교에서는 기능교육만을 고집하지 않으며, 교육 성과에도 지나치게 연연해하지 않는다. 달팽이학교의 고유한 특장(特長)은 이런 관점과 태도에서 나온다. 기능교육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아이들 스스로 보고(see), 판단하고(judge), 행동하며(act) 살아 있는 예술교육의 맥락을 느낄 줄 아는 교육예술의 경지를 추구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실제 2013년 경기문화재단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사업으로 금광면 홍익아파트에서 진행하는 마을 벽화 프로젝트에서도 이런 원칙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교육과정에서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교육성과에 대해 아이들에게 큰 부담을 지우려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도 고민은 남는다. 표준화된 계량적 성과지표를 제시한 뒤 현장에 요구하는 정책 사업자의 클리셰한 작풍 때문이다. 새로운 평가지표의 발굴과 계발 그리고 현장과의 활발한 대화와 소통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마을 속 학교를 자임하는 달팽이학교는 지역에서 학교 밖 학교의 역할 또한 톡톡히 하고 있다. 도시 아이들도 그렇지만, 농촌 지역 아이들의 경우 자신이 처한 문제적 상황들 앞에서 좌절하는 아이들이 더 많다. 자신에 대한 존경심도 낮다. 이기원 교장은 지난 십수년간 학교를 운영하며 아이들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래서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는 어른이 필요하다는 점을 누구보다 절실히 실감한다. 두원공고 아이들과 진행하는 마을 벽화 프로젝트에서도 아이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며 진로 상담을 하곤 한다. 상담이라고는 하지만, 되도록 입은 줄이고 귀를 키우려고 한다. 아이들의 멘토가 될 법한 지역 예술가들과 아이들을 매칭하는 역할도 자임한다. 아이들 부모님과도 자주 대화한다. 부모님과의 대화에서는 “아이들을 한 사람의 어른으로 대접하라”고 말한다.
최근 달팽이학교는 새로운 변화를 꾀했다. 지난해 금광면에서 보개면 양복리에 소재한 지금의 플로랜드로 이사한 것이다. 예전에 한경대학교 농대 실습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방과후에 ‘개길’ 공간이 사라진 아이들을 생각하면 못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래도 달팽이학교의 교육예술은 계속된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이기원 교장의 관계적 감수성은 남다르다. “당당하고 옹골찬 달팽이학교 아이들을 보면 펄펄 힘이 난다. 이 아이들 때문에 내가 존재하는 게 아닌가.” 이기원 교장의 이런 마음은 아이들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는 자기 공간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자기 공간을 준거집단이라고 한다. 준거집단이 있는 아이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쑥쑥 펼치게 되고 행복감도 느끼게 된다. 예술교육 해방구를 꿈꾸는 달팽이학교의 새로운 변신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점차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의 향기가 더해진다면, 자석 같은 향기를 내뿜을 줄 아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 탄생하지 않을까. 지금 달팽이학교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마을에서 숙성되고 발효되는 시간의 향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