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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곁봄
  • 지역이 마을로 변해가는 백 년의 시간
  • 강원재 _OO은대학연구소 1소장
  • 2013.07.01

 

 

 

 경기문화재단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사업 “Moving School : 깊고 심심한 동네읽기”는 지역사회의 유․무형 자원을 조사 탐색하면서 문화예술교육이 생동하는 장소로서의 지역이 갖는 가치를 발견하고 드러내고,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주민들과의 관계로부터 자발적 모임과 활동을 촉진 매개하는 생활문화공간의 창출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지역’이라고 부를 때는 왠지 사람이 빠져 있는 느낌이 든다. 그 이유는 공단지역, 산림지역, 청정지역, 군사지역, 우범지역, 아파트밀집지역, 상가지역, 재개발지역 등 사회행정 영역의 도구적 차원에서 분류되고 지명되는 개념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을’이라고 할 때는 좀 달라진다. 그곳에서는 전통과 지리적 특성,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마을의 주인들의 삶이 드러난다. 최근 마을공동체운동의 흐름들이 공통으로 지목하는 마을의 개념에 ‘공유’, ‘주민자치’, 그리고 ‘삶의질’이 포함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 지원사업은 ‘마을을 위한’ 혹은 ‘마을에 의한’ ‘마을에서의’ 문화예술교육사업’ 이라고 해야 더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주인이 없는 지역을 사람들의 삶의 관계가 있는 주인있는 마을로 변화시켜가는 문화예술교육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찾아내고 실행하는 것이 이번 사업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사)예술과텃밭의 <텃밭살롱-예술로고양학 시리즈1>은 이번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지원사업의 목적이나 추진방향에 가장 근접한 기획으로 심의과정에서 관심을 모은 프로젝트다. 물리적인 공간에 불과한 지역을 주민들과 함께 어슬렁거리며 관찰하고, 기억과 경험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개입하면서 커뮤니티를 촉진하고 주인이 있는 장소로서의 마을로 변화시켜간다는 전략을 가진 이 프로젝트는 3월부터 10월까지 매주 1~2회 정도 지역예술가와 시민단체활동가, 그리고 주민들이 만나면서 고양시의 덕양구 화정동과 행신동 및 그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탐방, 인터뷰, 강의를 진행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발견된 사람과 이야기를 출판을 통해 공유 확산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1990년대 지역재개발과 신도시건설이라는 정책으로 마을이 쓸려가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을 그 희생 위에 우리는 편리하고 안전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초록물고기>의 배경이 된 도시가 바로 이곳 고양 일산이다. 그런 만큼 옛날을 이야기하는 주민들은 남아있을 리 없고, 새로운 시절의 주인이 된 주민들이 생겨나기에는 시간이 없었던 곳 또한 바로 이곳이다. 또한 화정역이 위치한 덕양구는 4층까지로 고도제한개발주택지역과 초고층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상가지역이 서로 다른 왕국인양 분리 공존하는 지역으로서, 예술과텃밭의 텃밭살롱 프로젝트가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주인이 될 새로운 주민과 동네의 이야기를 형성하려고 시도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난 5월30일 저녁 7시쯤 지하철3호선 화정역 광장에는 이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예술과텃밭의 백현주 작가를 비롯해 아이쿱덕양햇살생협의 유미경 선생, 연극놀이교사, 최근 이 지역으로 이사한 주민, 청소년문제와 지역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그네란 별명의 김경환 목사로 구성된 5명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이 날은 김경환 목사가 제안한 요르크 슈타이너의 <두 섬 이야기>라는 모티브로부터 고양시 덕양구 화정역을 중심으로 나눠진 두 개의 섬, 즉 초고층상가밀집지역과 저층주택밀집지역 중 저층주택밀집지역을 돌면서 그곳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흘러가는 이야기들을 수집했다.

 

 김경환 목사는 10,000원이면 밥 한 끼 제대로 먹기 어렵다는 길 건너 고층상가지역과 달리 3,500원짜리 국수 먹고, 2,000원짜리 찐빵 사먹고, 2,000원짜리 사우나하고, 동네까페서 2,000원짜리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셔도 500원이 남는다는 이 동네는 낙후함이라는 결핍이 오히려 축복일 수도 있고, 그래서 이해득실을 셈하는 머리보다는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이 둥지를 트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지역주민들의 커뮤니티 문화공간의 역할을 자처하고 생겨난 까페 ‘하쿠나마타타’도 그중 하나인데, 지나는 길에 차나 한 잔 할까 둘러보니 주인장은 “까페만으로는 영업이 어려워 저녁에는 주점을 한다”며 “다음에 꼭 한 번 들리고, 페이스북 같은데 자주 좀 올려 달라”며 당부한다. 하지만 낙후함이라는 결핍은 안타깝게도 이렇게 마음 내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축복보다는 많은 경우 ‘더 큰 섬’으로 가기 위한 경쟁을 낳는다. 50m도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미장원이 4개나 몰려있고, 좁은 길 하나를 두고 마주 보는 채소 가게의 주인들은 잔뜩 물건을 가게 앞으로 진열해 두고 우리가 거리를 돌아보는 동안에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오랜 시간은 지역을 사람 사는 마을로 만들기도 하지만 저절로 이뤄지는 법은 없다. 그 시간동안 사람들은 그 곳에서 함께 살기 위해 유무형의 약속과 문화를 형성했을 것이고, 이는 그 세월만큼 살아온 자연물과 더불어 누구 것이라거나 누가 처분할 수 있다거나 할 수 없는 공유재산이 되어 있을 터였다. 누구도 맘대로 할 수 없는 공유재산이다보니, 그것의 처분이나 집행도 함께 의논했어야 했고, 그 의논의 방향은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위한 것이었을 터이니 그 과정은 다른 누가 대신할 수 있는 게 아닌 자치였고, 운영을 위한 리더십도 형성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감각에 호소하는 즐거움, 정화, 소통, 환상, 비판 등의 직관적 성격으로 더 나은 삶 혹은 지금과는 다른 삶에 기여할 수밖에 없는 문화예술은 그 특유의 ‘쓸데없음’ 혹은 ‘돈안됨’으로 인해 그 사회구성원들의 이해득실에서 비켜난 ‘무관심한’ 공유와 삶에 대한 상호영향이 생기도록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감각에 호소하면서도 그것이 구성원 간에 공유되고, 사회 구성원들의 전체적인 삶에 영향을 끼치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경험’은 문화예술을 통해서는 쉽게 일어나고, 이러한 경험들이 이야기가 되고 쌓이는 곳이 장소가 마을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끌어내고 촉진하는 문화예술은 그 자체로 내면으로부터 끌어내는 교육Eduke과 밖으로 자유롭게 실천하는 교육Praxis인 것이며, 마을은 문화예술이 교육적 경험으로 완성되는 장소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술과텃밭의 <텃밭살롱-예술로고양학 시리즈1>은 이제 막 시작된 프로젝트로서 편의적 개념으로 분류된 공간으로서의 지역이 주인이 있는 장소로서의 마을로 변해가는 100년쯤 걸릴 시간을 조금 앞당길 수 있는 프로젝트다. 그러는 동안 갈등하고 싸우고 부서지고 흩어져버릴지도 모를 삶과 마음을 문화예술적 수다모임에서 생겨나는 이야기와 관계로 조금은 다른 삶, 그 과정이 즐거움과 소통, 그리고 치유적이어서 덜 고통스럽도록 모아내고 경제적 이해득실 외에도 기억이나 재미 등과 같이 나눌게 있어서 공존할 이유가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그래서 우리가 ‘마을’, 그리고 ‘공동체’라고 이야기 할 때 기대하게 되는 ‘정’이나 ‘협동’, ‘자치’, 그리고 ‘공동의 기억’ 등의 ‘이웃성’을 아직 발견할 수는 없지만, 함께 지역의 이야기와 지역에서의 경험을 일상으로 쌓아가는 사람들이 각자 바쁜 삶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모일 이유가 있는 상징으로서의 ‘텃밭’을 유지해 간다면, 건강한 생태의 속도만큼 백년은 걸릴지 모를 시간동안 천천히 많은 것이 변해가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