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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D.I.Y(Don’t do it yourself) 사람과 장소를 돌아보다.
  • 김피쉬 _떙떙은 대학
  • 2014.09.19

 

 

#1. 장소, 시간, 사람을 연구하는 여러가지연구소

 

 

[세련된 여러가지연구소 간판. 옥상에는 텃밭이 있다]

 

 

 마른 장마가 끝나고 하늘에서 비가 투둑 툭 떨어지는 날이었다. 부천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 여러가지연구소로 향하는 길에 빗줄기가 거세졌다. 여러가지연구소는 부천의 아담한 집들이 골목골목 모여 있는 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러가지연구소가 그렇게 일상의 공간에 자리 한 것은 연구소가 추구하는 가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였다. 지역의 비어있는 틈새를 발견하고, 주민들의 삶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예술이 지역과 만나는 실험을 하는 것이 여러 가지연구소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그래서 기능과 전문성에 매몰되기보다는 주저 없이 쓸데없는 짓거리, 작은 행위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또 그런 행위들은 ‘장소성, 이야기, 관계’라는 주제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지역과 예술을 재발견하고 재생산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연구소’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도, 이 시대의 예술가들의 태도가 “연구자”여야 한다는 나름의 생각으로, 이에 맞는 삶의 태도를 연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한다.

 

 여러가지연구소에서는 매주 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는 지역 주민,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고, 지역 안에서 현명하고 의식 있는 소비 및 재활용을 선호하며, 재료 대신 사람에 투자한다. 그리고 함께 작업하면서 스스로의 삶, 디자인 세계를 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를 기반으로 한 자발성, 실패를 즐기는 실험, 지역을 통한 지구와의 교감, 서로간의 자원 공유를 추구하고 자신만의 디자인 세계로 나아갈 때 혼자가 아닌 함께하기를 바라는 의지를 담고 있는 이름이다. 에 포함된 세 가지 프로그램 <재채기 같은 드로잉 : 에-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오늘은 집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하여 장소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 진행된다고 하여 펜과 카메라를 챙겨 연구소를 찾았다. 

 

 갑작스러운 비에도 굴하지 않고 프로그램 시작 시간에 맞춰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였다. 연구소에서 준비한 나나스께 주먹밥과 감자샐러드를 함께 먹으며, 한 주간 어떻게 지냈는지 담소를 나눈다. 프로그램 시작하기도 전이었지만 지난 프로그램에 대한 회고와 미션으로 주어진 과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시작 시간이 되자 앉아서 지난 시간에 이어서 ROOM 즉 공간이라는 화두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그동안의 주제가 물리적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집과 나의 관계에 대한 내밀성과 친밀성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주제는 “집“이라는 공간을 확장시켜보고 스스로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그 내용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공간 지도를 그리는 시간을 가졌다.

 


 

#2. 나와 공간에 대한 조금 다른 상상

 

 집이 아닌 다른 7가지 공간이 어떻게 스스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또는 그 공간이 나에게 어떤 생각을 들게 하는지를 흰 종이 위에 자유롭게 드로잉 형식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매 회 차마다 모여서 드로잉을 해서 그런지 참여자 모두가 스스로를 “선”과 “색”으로 표현하는데 굉장히 스스럼없고 자연스러웠다. 모두가 굉장히 몰입해서인지 주어진 30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완성된 그림은 모두 각자의 이야기와 생각들 그리고 공간에 대한 느낌들이 담겨져 있었다.  

 

[안녕의 나무형상의 공간 지도] 

 

[다영의 드로잉, 홍대 주변이다]

       

 안녕은 자신의 ‘공간’들을 나무 형상으로 표현했다. 각 부위인 뿌리, 몸통, 줄기마다 공간들이 위치해 있었다. 나무 뿌리에는 특이하게도 욕조를 그렸는데 안정적이고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밖에도 몸통에는 일상에서 지나는 공간, 예를 들면 버스 정류소나 학교 연구실. 또 가지에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곳을 그려 넣었다. 다영은 자신들이 친구들과 어울리고 노는 공간을 주로 그림으로 표현했다. 홍대 근처에 있는 만화방이나 카페 등 관계 안에서 “어울림”이 일어나는 공간들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다영에게 각각의 공간이 주는 의미는, 그곳에서 누구와 만나고 호흡했는가에 있었다. 승민은 자주 가는 웹사이트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램이 자신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물리적 공간이 아닌, 사이버 공간 안에서도 자신만의 비밀 공간을 구축하고, 그곳을 정말 나의 장소로 느낀다는 이야기가 새로웠다. 

 

 이야기하는 내내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몰입해서 들으려하는 참가자들 모습에서 열의가 느껴졌다. 또, 라는 프로그램 안에서는 표현 자체에 대해 참가자들은 자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그림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시간 이후에는 직접 그림 속에 공간들이 “실재”하는 사진을 함께 보는 시간을 가졌다. 상상만으로 그리던 드로잉을, 각자가 살고 있는 실제 장소 사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참여자 사이에 더 강한 “공감대”를 만들어내었다.

 

 

[사이버 공간도 충분히 공간의 정체성을 지닐 수 있다]   

 

[사진과 그림을 함께 설명하는 다영]

 

 

#3. 문화예술플랫폼으로서의 여러가지연구소

 

 

[장소 경험과 로컬 정체성. 책 소개를 하는 승민]

 

 공간에 대한 나눔의 시간이 끝나고 여러가지연구소의 연구원이자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연구하는 승민이 장소에 관한 담론들을 인문학 그리고 사회학적으로 풀어낸 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 그녀가 소개한 이푸투안의 ‘공간과 장소’라는 책으로 공간감과 장소감에 대한 연구에서는 교과서 같은 책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프로그램 맥락에서 중요해 보이는 문장들을 책에서 발췌하여 함께 읽으며, 다음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프로그램을 마무리 지었다. 그녀가 읽은 문장을 여기서 간단히 소개하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소유와 관념은 중요하다. 그러나 다른 인간들은 가치의 특성과 의미의 근원으로 남아있다. 젊은 연인들은 서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사랑한다고 우리는 말한다. 그들은 사물과 장소의 애착으로부터 자유롭다. 즉 그들은 꼭 그래야만 한다면 집을 버리고 함께 방황 할 것이다. 나이든 부부는 장소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지만 사람들 서비스 그리고 서로에게 대해서 훨씬 더 애착을 가진다. 노인들은 배우자가 죽은 이후에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구비되어 있을 때도 오래 살고 싶지 아니 할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타인의 강인함 속에서 휴식과 타인의 사랑에서 안식을 말한다.”

 

 

 여러가지연구소가 말하는 “공간”은 물리적으로 한정되어 있는 곳이 아니라 추상적 또는 심리적인 형상까지 모두 포함한다. 참여자들을 의 회차를 밟아가는 동안 이를 자연스럽게 인식,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주체성과 예술성을 천천히 발현해 간다. 그들은 여러가지연구소 안에서 그동안 바쁘고 빠른 템포의 도시생활 속에서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것들의 흔적을 하나 둘 찾는다. 그리고 개인들의 예술성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서 “문화적 토양”을 쌓아 가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과정들이 누적된다면 여러가지연구소가 바라는 “함께”의 실천을 현실로 충분히 쌓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