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봄
- 골목길 따라 뒷동산까지 '예술의 옷을 입히다'
- 안성시 대안문화하교 _안성시 대안문화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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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녹음이 시작되던 6월의 따뜻한 어느날, 지역에서 오랫동안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실행해오신 <대안문화학교 달팽이>(이하 ‘달팽이 학교’)를 만나기 위해 안성으로 갔습니다. ‘달팽이 학교’는 2001년부터 지금까지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지역문화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셨고, 실제로 그러한 경험과 성과가 많다고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가는 동안 기대가 되었습니다.
‘달팽이 학교’가 위치 한 곳은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의 한적한 논과 밭 사이에 있는 건물이었습니다. 원래는 한경대에서 농대 실습장으로 활용하던 곳이었는데, 관련학과가 폐지되며 몇년간 사용을 하지 않던 건물을 올해부터 달팽이 학교에서 운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달팽이 학교가 위치한 이 곳에 약 13~4년 전에 3000세대의 대규모 임대아파트(홍익아파트)가 생기며 타지역의 젊은 세대가 이전을 해왔다고 해요. 주로 젊은 부부이거나 학생이라고 하는데, 원주민과의 주거 환경과 생활방식의 차이로 마을 간 소통이 점점 단절되고 있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껴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에는 홍익아파트를 중심으로 신기, 양협마을의 청소년과 어른이 함께 참여하여 주민들이 마을 공간을 읽고, 디자인하는 작업을 진행하신다고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서로 소통의 기회를 늘리고 지역 공간에 대한 감수성을 발견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지지봄봄에서 방문했던 날은 아이들이 벽화작업을 하는 날이었는데요, 특이하게도 벽이 아닌, 철판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기존 벽화작업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수정이 불가한 경우에는 마을의 흉물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철판에 그림을 그리고 마을 벽에 설치를 하는 식으로 대안을 찾으셨다고 합니다. 벽화를 수정하거나 철거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 기존 공공미술로서 벽화가 가진 문제를 어느정도 보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다보니 이제는 다른 마을에서도 벽화 요청이 들어올 정도로 수요가 늘었다고 해요.
벽화를 그릴때에도 무조건 예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 최대한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 제작하려고 하신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는 참여하는 아이들이 스스로 발견하고 상상하여 담아낸다고 하니 그 어디에도 없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벽화가 탄생하는 것이죠.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옹기그릇으로 유명한 양협마을은 옹기를 주제로, 신기마을은 전통문화를 주제로 하여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기원(달팽이 학교 교장)선생님께서는 벽화를 왜 그리는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등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이곳에서 교사의 역할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최대한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여 되도록 처음부터 다시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벽화를 그릴 수 있도록 하신다고 합니다. 이렇듯 오랫동안 지역 마을에서 아이들을 만나와서 그런지 참여하는 아이들이 가진 달팽이 학교에 대한 신뢰도 두터웠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맹주희(고3)양도 “일반 학교는 공부만을 강조하고 정해진 교육의 틀이 있어 그것을 따라야만 하지만, 달팽이 학교는 자기가 하고 싶은 활동도 하며 자연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며 달팽이 학교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만난 아이들과의 관계는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지속되어, 고민이나 진로에 대한 상담도 종종 하신다고 합니다. 특별한 상담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동등한 입장에서 비슷한 상처를 공유하는것 만으로도 아이들은 위안을 받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하네요. 이 대목에서 마을에서의 학교의 역할에 대해 잠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지식의 전달만이 아닌, 삶의 지혜를 나누고 든든한 정서적 버팀목이 되어주는 ‘어른’이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것과 그러한 어른과 했던 소통의 경험은 분명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겠지요.
지난 3월 부터 시작한 이 벽화작업은 6월 말에는 마을에 설치가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외에 마을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를 만드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고 해요. 이기원선생님께서는 달팽이 학교가 원래 있던 곳에서 올해 초에 이곳으로 이사해 이 전 공간보다 아이들이 편히 쉴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고 아쉬움을 털어놓으셨는데, 아마도 이번 프로젝트의 과정을 통해 차근차근 아이들과 마을 주민의 안락한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잡아 가시리라 생각이 드는 현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