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문화 재단
  •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이미지입니다.
  • 더봄
  • 지지봄봄포럼_1부 기조강연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삽시다(1)
  • 김정헌 _서울문화재단 이사장
  • 2015.02.09

 

강원재(사회자): 저는 오늘 사회를 맡은 OO은대학의 강원재라고 합니다. 저는 OO은대학 연구소에서 소장이고 춤을 맡고 있어요. 그런데 첫 번째 강연을 해 주실 김정헌 선생님이야말로 정말 춤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김정헌 선생님은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이시고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셨습니다. 그리고 화가이시기도 하고 공주대 교수로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오늘은 우리의 삶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왜 필요한가?’ 혹은 ‘예술교육이 우리 사회를 구원할지도 모른다'라는 취지로 강연해주실 것입니다. 김정헌 선생님 모시겠습니다.

 

김정헌(서울문화재단 이사장): 뭐 우리 강원재 선생이… 몇 명이 오시냐… 했더니 200명 정도 온다고 해서 (일동 웃음) 긴장을 잔뜩 하고 왔습니다. 200명씩이나 되는 분들 앞에서 이야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 했는데요. 문화예술교육이 사실은 그렇게 시원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 오신 분들은 상당히 관심이 있고 관계된 일들을 하고 있을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김정헌(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아까 사회자가 소개했듯이 공주사대 미술교육과에서 30년을 근무하고 한 4년 전에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그때 정년퇴임식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지려고 했는데, 제자들이 퇴임식을 하라고 해서 간단히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미술교육 여기서는 실패인 것 같다”고 제자들 앞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앞에 앉아 있는 제자들을 대상으로 ‘너희는 바로 실패작’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그 이야기를 해 놓고도 아차 싶었는데 그냥 뻔뻔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왜 내가 실패했는지.

 

그래서 오늘 사실은 미술교육을 중심으로 해서 실패에서 느꼈던 것들이 서너 번 써먹었던 이야기들입니다. 어쨌든 예술교육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발표한 내용과 30년 동안 예술교육을 하면서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한 건지에 관련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나중에라도 미술교육이란 것이 도대체 뭘까 관심 가지신 분들은 참고해 주시길 부탁드리고요. 주로 앞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내가 대학교에 있으면서도 화가로서 활동하겠다고 이것저것 다했던 거예요. 1970년대 초 학교를 나와 중고등학교 미술교사를 거쳐서 대학교까지 가게 되었는데요. 교직에 있으면서 화가로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작품 활동도 얌전하게 작업실에서 생각을 표현하는 작업이 아니고 약간 제가 운동권 기질이 있어서 미술 운동과 관련된 작품이 많습니다. 지금은 민중미술이라고 부르는 한 시대의 획을 그었던 미술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미술 활동은 후회가 별로 없는데, 미술교육에서는 성공했다고 할 수가 없어요. 

 

미술교육이 예술교육에서 중요한데 장르적으로 중요하다기보다 시각예술로서의 세상을 이해하고 보는 방법을 교육을 통해서 예술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줬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거죠.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하고 활동하다 보니깐 정작 중요한 미술교육 부분을 소홀히 했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지지봄봄 포럼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사는 교육, 그 가운데에서도 예술교육에 집중적으로 의논해 보자고 하고 있는데요. 

 

오늘 내가 할 이야기는 ‘예술교육은 왜 중요한가?’ 입니다. 가운데 ‘우리가 사는데’ 가 들어간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예술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면, 나도 예술교육과 미술교육 등 여러 가지로 생각했지만 ‘예술이란 게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도달합니다. 구체적인 실천을 하는 미술, 음악, 무용, 문학 등을 통틀어서 예술이라고 하는데요. 시각예술, 종합예술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총체적으로 예술이란 것은 무엇일까? 

 

사실 10년 전부터 공부를 할 겸 예술에 대해서 고민해 왔는데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으로 예술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미술대학 간다고 할 때 ‘너 나중에 깡통 찬다’라며 생각을 바꾸라고 집안 어른들이 다 그랬어요. 그만큼 미술이라고 하면 경제적인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 인식 자체가 상당히 사회적으로 변두리에 살아갈 것을 각오한 사람들을 예술가로 알았죠. 그런 것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10만 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인류학자들이 이야기하는데요. 

 

어떻게 시작된 것이냐. 여기 나오는 알타미라 예술벽화는 인류 최초의 예술로 발견된 것들인데요. 그것은 20만 년 전에 동굴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에요. 10만 년 전에 생겼다는 예술은 그럼 그 근거가 무엇이냐. 여기(발제)를 보면 인류에게는 그전 인류와 다르게 마음이라는 것이 생겼다는 거죠. ‘마음'. 그전 인류를 보통 네안데르타르인, 현생인류를 탄생시킨 인류의 선조는 크로마뇽인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크로마뇽인서부터 인류학자들도 말하는 게 다 달라요.

 

어쨌든 대체로 동의하는 것은 네안데르타르인부터 그 후손들은 명맥이 끊겼다는 것입니다. 거의 동물에 가깝도록, 정말 짐승하고 똑같이 했다는 것은 아니고 불도 쓸 수 있고, 석기를 만들 수 있었음에도 멸종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인류의 조상은 소위 동굴벽화를 그렸다는 그런 사람들은 크로마뇽인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크로마뇽인은 10만 년 전부터 활동했다는 거죠. 그때가 빙하기 막 끝날 때인데요. 왜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을까? 그 사람들의 유전인자가 현생 인류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데 그 사람들은 빙하기의 끝 무렵에 살았는데 엄청나게 추웠을 거예요. 그런데 네안데르타르인들은 동물의 가죽을 벗길 줄 알았는데 옷을 해 입을 줄 몰랐다고 하네요. 바느질을 못 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요즘 바느질하는 사람을 보면 옆에 가서 “크로마뇽인이 발견한 바느질을 당신이 하고 있군요”하게 돼요. 바느질, 그걸로 인류가 옷을 꿰매 입어서 가죽과 가죽으로 옷을 만들었기 때문에 크로마뇽인이 살아남았다는 거예요. 

 

그 대신에 네안데르탈인들은 동물의 뼈로 소리를 피리를 불 줄 알았다는데 결국에는 바늘 하나를 만들지 못해서 멸종했다는 건데요. 네안데르타르인을 왜 이야기하느냐면, 뇌의 조직이 동물하고 비슷했다는 것입니다. 현생의 인류처럼 뇌의 뉴런조직이라고 하는데 그게 크기만 했지 실용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먹이를 찾는 것, 위험에 대응하는 것 정도는 했지만 크로마뇽인한테 생겼다는 ‘마음’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뇌의 조직이 급속하게 요즘 컴퓨터처럼 되면서 뉴런조직이라는 게 생겼고 머리 형태는 작아졌지만, 그의 효능이 상당히 좋아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쪽에 있는 거 하고 비슷해’ 하면 ‘소리도 낼 수 있을 거야’ 이런 것들을 생각 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내가 가나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이라는 책에서 인용을 많이 했는데요. 거기 보면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고 해요. ‘마음’이라고 뭉뚱그려서 이야기하는데, 이 사람은 ‘망상'이라고 합니다. 이게 ’망상‘이라는 것,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 네안데르타르인은 나올 때부터 (덩치가) 컸고 양육기간이 짧았는데요. 왜 큰 동물들 보면 낳자마자 걸어 다니잖아요. 네안데르탈인들은 그런 식으로 대부분 몸집이 크게 낳아서 엄마가 가슴에 품고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게 뇌 조직이 발전하면서 생긴 게 엄마 품 안에서의 양육기간이 길어지면서 생긴다고 합니다. 예술을 잘 할 수 있도록 ’생각‘을 하게 하고 ’마음‘이 작동하는 건 애들을 엄마가 품고 키우면서 라는 거죠. 요즘도 영재교육 보면 다른 거 없어요. 애들 2~3개월 되었을 때 가슴에 품고 책을 읽어주고, 책 넘기는 소리를 들려주고, 중얼중얼 ’토끼야, 토끼야‘ 읽어주고, 애는 책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이빨로 깨물고 하잖아요. 촉감 등을 통해서 차이를 일으키고 생각을 넣는 거죠. 감성을 받아들인다는 거죠. 영재교육의 원리가 그것이라는 거죠. 가슴을 품고 애들을 키울 때 거기에서 생각이 자라났다고 보면 됩니다. 

 

아 이렇게 가다가 끝까지 못 가겠는데, 아이 참. 내가 크로마뇽인, 네안데르타르인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해 가지고 (웃음) 

 

그래서 나가자와 신이치라는 사람은요, 생각을 ‘망상’이라고 표현하는데 일본식 표현인데요. ‘망상’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미친 생각‘이라는 말이고요. 그래서 이 사람은 인류를 ‘미친 동물’이라고 까지 표현해요. 그러니까 생각이 막 흐트러져서 분열증이나 집착증을 갖게 되는 건 전부 생각이 흩어져서 생기는 거 아니겠어요. 예술 인류학자 이런 사람들은 망상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고요. 그게 상상력으로 발전된 것이고 그것을 끌어다 여러 가지 수단으로 표현하는 것을 예술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 아래 그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예술은 마음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특히 미술에서 ‘그린다’고 표현하는데요. 

 

그러므로 모든 예술은 마음속으로 ‘그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인류가 이 땅에 삶을 시작한 이래 모든 예술행위는 마음으로 불러낸, 즉 상상력으로 그려낸 가상의 세계를 어떤 수단(매체)을 통해 현실화하는 것이다. 

 

어떤 수단이라고 하면 몸이 될 수도 있고, 또 색을 칠하거나 그리면 미술이 되죠. 그래서 우리가 무엇인가 ‘그린다’고 할 때는 ‘그린다’는 용어에 집중을 하는데요. 그린다는 그리워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워 한다는 이야기가 그린다와 용어를 같이 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마음으로 무엇을 그린다고 할 때는 대부분 ‘이상적인 세상’ 떠올린다. 마음으로의 ‘그리움’, ‘무엇을 그리워한다’와 그림을 ‘그린다’의 어원이 같은 까닭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그린 이상적인 세상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마음으로 ‘그린다’는 더 좋은 세상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이상적인 세상을 그리는 것은 마음으로 그린다는 것은 이상적인 어떤 사람을 생각하고 불러내는 것입니다. 환대하는 것이고요. 그것이 예술이라는 것이죠. 이것을 언어를 매개로 이야기하면 시가 되고 서사적으로 풀면 문학이 되고 노래로 부르면 음악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무엇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눈앞에 보이지 않는 이상적인 세상을 환기하고 호출하는 행위죠. 그것이 바로 예술 행위라는 것이죠. 예술이란 결국 여러 가지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고 인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죠. 

 

지금 있는 자리에서도 저녁 자리에서 만났던 사람, 요즘 만나서 유쾌했던 불쾌했던 일들을 떠올릴 수도 있을 거예요. 강구야 선생은 춤을 추는 걸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이런 이상적인 세상을 불러내서 표현한 것이 바로 예술인데요. 유럽 최초로 그렸다는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 벽화는 수없이 많이 들었을 거예요. 동굴 벽 안에 상당히 많은 수의 들소가 그려져 있는데 이건 무엇이냐. 

 

이 벽화를 최초의 예술로 단정 짓는데, 그 당시 구석기인들의 먹이였던 들소가 가득 채워져 있는 이상적인 세계를 표현했다는 거죠. 물론 주술적으로 들소를 소유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지금 사람들도 표현하기 힘든 걸 사실적으로 그렸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어요. 그런데 어쨌든 일종의 구석기인들로서 초감각적인, 감성이 살아 있을 때 밖에서 보았던 것들이 눈앞에 영상처럼 지나갔으리라 인류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들소가 도약하고 뛰쳐나가고 기운이 생동하는 들소를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는 이야깁니다. 어쨌든 들소가 가득 차 있는 동굴 벽화는 구석기인들의 이상세계를 동굴 벽 안에다가 만들어낸 거죠. 

 

인류의 진화와 더불어 예술의 세계도 끊임없이 분화하고 진화해 왔다. 이런 변화 가운데서도 예술의 내용적 핵심은 늘 비유와 상징으로서 표현돼왔다. 예술에서의 표현은 소위 “~와 같이” 나타난다. 가상의 세계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라스코동굴벽화그림에서처럼 들소 떼들이 ‘많은 것 같이’, 또는 ‘힘차게 도약하듯이’, ‘많이 증식하여 풍요의 세계가 오듯이’ 표현하는 것이다. 예술은 이와 같이 은유와 상징, 제유와 환유, 패러디와 패스티쉬, 크로스오버와 알레고리, 의인화 등 온갖 비유들의 활동무대인 것이다.

 

예술의 핵심은 비유와 상징으로 해왔습니다. 비유와 상징 그런 것들이 중요한데, 예술에서는 OO와 같이 ~ OO처럼 이런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니까 들소들이 ‘많은 것처럼 보이게’ 또는 ‘힘차게 도약하듯이’ 많이 증식하여 ‘풍요의 세계가 오듯이’ 표현한 것이죠. 이것도 일종의 비유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무엇인가를 상징적으로 대체한 것은 아니지만, 직유법으로 되었다고 할 수 있죠. ‘~처럼’. 예술은 항상 이런 비유와 상징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꽃을 그렸다고 하면 식물 가운데 하나인 꽃만이 아닙니다. 꽃을 그린 사람의 비유와 상징이 들어갔다는 것이죠. 은유도 있고, 그리고 환유도 있고 제유도 있고, 활유도 있고 의인화도 있죠. 그런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예술은 ‘이것은 이거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은 호수요’나 ‘빼앗긴 들’이 조국이 되는 식인 거죠. 그것을 은유를 미술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메타포라고 하죠. 그런 것이 없이 표현되는 예술은, 그렇게 좋은 예술이라고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은유와 여러 가지 제유, 환유, 패러디 페스티쉬, 크로스오버, 알레고리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제일 그림 그릴 때 잘 써먹는 게 일종의 패러디 인용이나 차용인데요. 내가 남의 것을 도둑질하다시피, 남이 그렸던 것이나 한 말을 그림 속에 잘 써먹어요. 약간의 도둑질인데 그 원작자에게 잘못 걸리면 혼날 수도 있는 거예요. 

 

 

 

나는 풍자적으로 또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그럴 때 패러디가 정말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도시를 표현해야 하는데 도시를 어떻게 해야 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참 힘들잖아요. 빌딩을 그리면 도시가 됩니까? 도로를 그리면 도시가 됩니까? 그럴 때는 상징이나 비유법을 통해서 도시를 그려내는 방법이 있죠. 보들레르 같은 시인은 길거리에 보이지 않는 아주 지저분하고 더러운, 도시의 음습함을 드러내 도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시들을 많이 쓰지 않았어요? 
 
비유를 통해서 예술은 항상 세상을 드러낸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꼭 이상적인 세상이 아니더라도 세상을 드러내려는 것은 예술밖에 없지 않을까? 현실과 1:1로 대칭적으로 적용해서 살아남는 것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월세, 집값, 집 걱정 등의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