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봄
- [지지봄봄 12호 _ 방담회]문화예술교육과 생명 4
- 박형주 _지지봄봄 편집위원, 하자센터 기획부장
- 2014.12.13
박형주 : 이야기를 듣다보니 중요한 건 ‘노작이나 손, 몸’이라는 행위 자체보다는 그 행위로 촉발되는 생각의 전환인 거 같아요. 촉발은 뭔가에 집중했을 때 일어나는 거잖아요. 슬렁슬렁 했을 때는 고민이 안 깊죠. 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애착이 생기고 그 애착 속에서 ‘왜 안 되지?’ 또는 ‘이걸 어떻게 풀지?’ ‘누가 이 룰을 정했지?’ 이런 고민이 깊어지는 거죠. 지금 문화예술교육이 손을 쓰고 있냐, 몸을 쓰고 있냐는 질문에는 오히려 역으로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결핍시켰던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을 촉발시키고 있느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서 말하는 거점, 공간, 토대라는 것이 그러한 고민이나 생각을 촉발시킬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사이트, 거점이자 토대인 거죠. 토요문화학교도 형식적으로 따져보면 유휴 문화시설에서 프로그램을 돌리라는 지원사업인 거잖아요. 활이 이야기한 것처럼, 공간을 종합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비어 있는 시간에 집어넣는 거죠. ‘활성화’라는 것이 살아가는 활성화가 아니라 시간을 소비시키는 활성화라는 거죠. 그것에 대한 고민인 것 같아요.
단순히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을 촉발시키는 시․공간을 우리가 만들고 있느냐는 거죠. 교실보다 도시 숲, 숲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애착이 갈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고요. 두물머리도 하나의 거점이자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삶의 에너지를 다시 갖게 하는 건 애착이고, 이 애착은 돌봄 속에서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애착이 가면 허투루 할 수 없고 돌보게 되죠. 돌보는 게 물건일 수도 있고, 공간일 수도 있고, 점점 확장되어 무용의 삶으로까지 반영이 되면 삶의 의지를 건드리게 될 것이거든요. 문화예술교육이 지금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건가, 그런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박활민 : 문화예술교육에서 ‘집중’의 문제가 있잖아요. 사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외의 것에 관심 없다고 생각해요. 집중한다는 건 자기와 관련된 어떤 상황에 대해 집중을 하는 거예요. 점쟁이가 잘 되는 게 너는 이래라고 이야기해 주기 때문에 솔깃한 거잖아요. 그건 굉장히 오래된 인간의 특징이거든요. 결국은 자기와의 실존적 연결성이 문화예술교육 안에 있으면 집중이 나오는 거거든요. 그걸 하지 않고 관념적으로나 혹은 프로그램 해봅시다, 이러면 집중의 몰입도는 낮은 수준밖에 안 되는 거죠. 어떻게 집중을 찾아내고 연결시킬 건지를 질문하는 게 중요해요. 이 집중이 자기가 이 행위를 했을 때 쓸모, 실질적인 이익과 관련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그러려면 결국 이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집에 돌아가서도 생활 공간에서 쓸모가 있어야 되거든요. 그래야 계속 연결이 되면서 생활에서 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연결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생활 전체의 다양한 먹는 것, 쓰는 것, 만드는 것, 만나는 것, 걷는 것, 자는 것. 생활 안의 모든 카테고리를 문화예술교육이 종합적으로 연결시켜 사고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고영직(지지봄봄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고영직 : 미국의 어느 교도소에서 중범죄자들을 대상으로 밤에 교도소 앞마당에 텐트를 치고 별을 보게 한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전부 다 울더라는 거예요. 그 친구들의 고유한 경험을 살펴보니까, 10대 시절에 특히 자기 혼자 여행을 가든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가든 자연과의 결속감을 느껴본 경험이 전무하다는 거예요. 고등학생 애들한테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읽히면 “선생님, 저희는 별을 못 봐서 이해를 못해요” 그러는 애들이 수두룩하잖아요. 유년 시절, 10대 아이들, 청소년들이나 어린 아이들에게 자연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성인들한테는 생활의 연결성을 어떻게 되살릴까. 이 문제를 단순히 프로그램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교도소에서 중범죄자들이 한 것과 같은 일종의 마음의 불꽃놀이 같은 경험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경험은 자기가 자신에 대해서 완전 새롭게 생각하게 만들잖아요. 저는 그런 경험들이 그 사람에게 근본적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작년에 법무부와 함께한 세미나에서 제가 제안한 게 교도소 수용자들과 계란 프라이라도 만들어 먹는 요리 프로그램을 해보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뒤집개가 쇠붙이라 안 된다고 해요. 그럼, 나무주걱 쓰면 되지 않냐. 프라이를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대접하기 위해 만들어보자고 했는데 잘 안돼요.
박활민 : 교도소에 있는 분들이 우울한 게 단순히 자연과의 교감을 못해서 뿐만은 아닌 거 같아요. 사실 도시 생활도 다 우울하잖아요. 감정이 막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러잖아요. 그 우울감과 무기력이 저는 공급사회랑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지금은 굶어죽는 것이 아니고 무기력이나 정신불안 때문에 죽잖아요. 자살도 그런 경우죠. 교도소에 있는 분들도 그렇고, 이런 것들을 케어하는 방법 중 하나가 창의적인 생각을 스스로 하는 거예요. 창의적인 생각을 계속 스스로 하잖아요. 그러면 엄청난 에너지가 나오면서 배는 고플지언정 이 정신은 죽지 않아요. 이 점에서 단순히 자연과의 교감 이런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내 생활을 가지고 내 생활에 아이디어를 내고 이걸 만들어 나가고 이러면 되지 저러면 되지 그런 프로세스 자체를 문화예술교육 카테고리 안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안연정 : 그게 사실 상대적으로 보면 강력한 자아잖아요. 모든 교육 방식이나 사회적 시스템이 우리의 자아를 약화시켜왔다고 생각해요. 교도소에서도 보면 네 명 이상 앉으면 싸운다고 네 명 이상 앉을 수 없는 식탁을 써요. 바꿔서 보면 그들이 있는 환경 자체가 늘 폭력과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라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시스템을 통해 통제하려고만 하는 거죠. 이걸 바꿔야 한다는 거예요. 그들은 다시 사회로 나와야 하니까. 복잡한 이야기인 것 같기는 해요. 하지만 직면해야 하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문화예술교육 10년의 역사는 그 당시보다 훨씬 지금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징표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잖아요. 나를 돌보고, 그러면서 충족되어야만 다른 사람들이 보이고, 그 사람들과 같이 살 수 있다는 공심(公心)이 생긴다고 봐요. 더불어서 근대적으로 훈련되어 있는 시간과 공간의 다른 차원의 상을 경험하려면 저 역시 어려운 부분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놀 것인가도 중요하다고 봐요. 어떻게 쓸모없이 시간과 공간을 지금까지 훈련받은 것과 다른 경험으로 자꾸만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봐요.
박활민 : 쓸모없다는 표현 있잖아요. 그게 사실은 아주 단편적인 ‘쓸모’잖아요. 제가 아까 말한 alive 있잖아요. 어떻게 하면 살아나는가.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이 행동이 나를 살리는구나. 그러면 쓸모있는 거잖아요. 눈으로 증명할 길은 없지만, 자기는 아는 것이잖아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위가 나의 상태를 어떻게 만드는지. 이게 나를 다운시키는지, 아니면 굉장히 활성화시키는지. 이런 질문을 해보면 안연정 대표가 이야기하는 놀이가 활성화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거죠. 쓸모없는 건 없죠. 그런 점에서 보면 이게 돈은 아니지만 내게 이익이 된다, 돈벌이는 아니지만 내 삶에 이익이 된다, 굉장히 쓸모없어 보이지만 수다도 혼자 있던 사람에게는 굉장히 유용한 일이잖아요. 이런 생활의 인식체계를 전환해보면, 훨씬 더 구체적으로 남이 보기에는 쓸모없을지 모르지만 스스로에게는 굉장히 쓸모있다고 느끼는 행위들로 생활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박형주 : 아랑도 이야기했듯이 근대가 만들어낸 표준적 ‘쓸모있음/쓸모없음’이 있는 거잖아요. 누군가에게는 정말 쓸모없는 일인데 나한테 쓸모있는 일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삶을 재구성해나가는 거잖아요. 사회가 제시하는 쓸모있는 매뉴얼을 따라가다 보니까 나한테는 유익하지 않은 일을 계속 따라가야 하니까 호흡이 어려워지는 거죠. 자연이라는 한자도 ‘스스로 그러함[自然]’이라는 의미잖아요. 문화예술교육의 시작도 교육이 제 기능을 못할 때 이것을 문화적으로 접근해가야 한다는 문제제기에서 시작을 한 거잖아요. 그렇다면 10년의 문화예술교육이 과연 그들에게 스스로 그러함을 가질 수 있는 자극을 얼마만큼 주고 있느냐. 그 문제인 거 같아요. 이게 미디어냐, 공예냐, 숲이냐를 묻기 전에 이게 어떤 자극을 주기 위한 작업이냐는 걸 물어야 한다는 거죠.
박활민 : 문화예술교육의 문제는 결국에는 지금 삶의 위기에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있다는 거죠. 그러면 문화예술교육이 삶의 위기에 대답할 수 있어야 된다. 죽어가는 삶을 어떻게 살릴 건가. 살리는 느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결국에는 삶으로 전환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장르나 콘텐츠로만 남는 거 같아요.
박형주 : 수업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이 ‘재미있다’라는 표현을 하잖아요. 이 재미라는 걸 달리 표현해보면 흥미진진함이 생긴 거잖아요. 삶에 대한 흥미진진함이 생긴 건지, 그 시간을 흘려보내듯 낮은 수준의 재미로 오락을 하고 끝나버린 건지. 체험에서 머문 것이냐, 삶의 경험으로 넘어간 것이냐.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아이들이 너무 재밌어했어요’ 하고 답을 다하는데, 재미라는 것을 다시 해석해줘야 하는 거 같아요.
박활민 : 재미라는 것을 세분화해서 카테고리화해야 하는 거예요. 내 몸이 활성화되었는지, 감각이 즐거웠는지를. 예를 들면 산행을 해보면, 예전에 사람들이랑 번개 해서 산에 가고 그랬는데, 올라가기 전의 상태는 몸이 다운되어 있고 올라가기 싫은 거죠. 산에 왜 올라가야 하는지, 그런데 어떻게든 데려가요. 데려가서 어떻게 변했는지 몸 상태를 물어봐요. 어떻게 됐느냐 하면 굉장히 다른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이런 행위를 통해서 어디가 어떻게 활성화됐는지, 단순히 재미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디테일이 있어야 생활 안의 여러 행위들이 지금은 힘들지만 어디가 활성화됐는지 추측할 수 있는 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야기가 무르익는 동안 밖에서는 화덕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안연정 : 결국 매개자들이 좋은 질문을 많이 만들어야 될 거 같아요. ‘재미있다’라고 표현할 때 다시 ‘그거 말고 뭐 없어?’라기보다는, 매개자들이 평가지표를 새롭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오늘은 어떤 감각이 깨어났는지 물어볼 수 있고. 자각하는 순간이 다 개인마다 다르겠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은 질문을 통해 자각할 수도 있고, 대화를 통해 자각할 때도 있고, 내 안에서 충족되는 순간도 있고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자각하는 촉매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상상을 해보는 것. 이 질문이 저희에게도 유효하지 않은가.
박활민 : 그 자각의 핵심이 저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문화가 있는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확 달라지는 거거든요. 프로그램 차원이 아니라 사람들이 여기서 이런 행동을 하고 이렇게 살고 저렇게 하는 걸 보는 순간 확 달라지는 거거든요. 그런 점에 폭넓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안연정 : 지난달에 베를린에 출장을 갔는데, 그곳은 정말 도시로서의 매력이 느껴지는 거예요. 개찰구가 없는 지하철, 모든 곳에 다 동물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 점거 형태의 도시재생이 이루어지며 시민들이 뚝딱뚝딱 만들며 이루어진 텃밭, 공방, 제작소. 이런 공간이 생겨나는 현장. 짧게 봐서 대상화하는 건 있었겠지만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신뢰의 수준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생각. 여기서 생각하는 적정 수준이라는 게 안내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들의 자존과 존엄을 지켜줄 수 있다면 그게 얻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수준. 이런 게 저에게 큰 자각이나 매력이었어요.
[지지봄봄 12호 방담회 _ 문화예술교육과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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