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봄
- [지지봄봄 12호 _ 방담회]문화예술교육과 생명 1
- 박형주 _지지봄봄 편집위원, 하자센터 기획부장
- 201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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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담회를 위해 둘러앉은 사람들
박형주 : 지지봄봄의 이번 주제가 ‘문화예술교육과 생명’입니다. 최근에 생태적인 방식의 문화예술교육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요. 노작이나 손노동 같은 프로그램들이 특히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이런 현장들이 왜 점점 많아지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 현상을 단순히 트렌드로 설명할 수 없고, 이 안에는 뭔가 다른 시대 읽기가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장에 있는 분들과 함께 스스로 왜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방담회를 열고자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시대적 맥락에서 그런 흐름을 바라봐야 할지 읽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먼저 자기 소개를 겸해 하고 있는 작업들을 중심으로 설명을 해주시면 이야기의 물꼬가 트일 것 같아요.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먼저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은실 : 저는 경기도 시흥시에서 환경‧생태교육을 하는 이은실이라고 해요. 닉네임은 미운오리새끼라고 해서 미운새라고도 부르고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문화예술교육과 생명’이란 주제를 듣고 집에서 생각을 곰곰이 해봤어요. 저는 예술, 혹은 예술교육은 자연에서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아이들과 함께 하는 놀이 자체가 예술이라고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따로 예술을 지칭하지는 않아요. 그런 활동을 통해서 아이들이 자연을 느끼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해가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들이 다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제 직업이 가장 행복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동일 : 저는 양평교육희망네트워크라는 단체의 운영위원이고, 두물머리픽쳐스라는 독립영화제작사를 운영하고 있는 서동일이라고 합니다. 제가 양평에 들어온 지는 한 10년 됐어요. 그동안은 지역과 연계해서 뭘 해본 적이 없는데 4대강 사업이 발표되면서 지역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양평에 ‘두물머리’라는 유기농지가 있어요. 상수원 보호구역이라서 오래 전부터 친환경 농사를 지어왔던 곳이죠. 대한민국 유기농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정부에서 그곳의 농지를 수용해 공원과 자전거길로 조성한다는 4대강 사업계획을 발표했어요. 그러면서 농민들이 농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죠. 지역에 있다 보니 제가 그 싸움의 과정을 기록하게 됐고요. 그러면서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두물머리라고 하는 땅의 가치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을 하게 되었죠. 결국 3년4개월 동안 싸워서 전국 4대강 사업구역 중 유일하게 정부와 농민이 합의를 일궈낸 지역이 됐습니다. 그 내용을 <두물머리>라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었고요. 그걸 통해서 지역에 뿌리내리고 싶은 마음에 두물머리픽쳐스라는 영화사를 만들어 양수리에 사무실도 꾸렸어요. 올해는 지역에 토요다큐멘터영화학교(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지원사업)를 꾸려 초중학생 25~30명과 만나 진행해왔어요. 이번 토요일에 그 아이들과 영화제를 하면서 수업을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고영직 : 오늘 주제가 ‘문화예술교육과 생명/생태’입니다. 우리가 생명이나 생태를 이야기할 때 자연생태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자연생태 외에도 저마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마음생태학이 있잖아요. 그 마음생태가 요즘은 상당히 복잡하고 우울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연생태학에 머무르는 차원을 넘어 마음생태학을 다루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난 4월 이후(세월호 참사 이후)에 사회 자체가 병이 든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요. 그래서 생명과 생태의 문제를 조금 더 큰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마음생태학, 자연생태학, 사회생태학, 이 세 가지 생태학의 차원을 고려하는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런데 제가 많은 현장을 본 것은 아니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대체로 말 그대로의 자연생태학에 머물러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토론해보고 싶네요.
안연정 : 저는 안연정이라고 하고요. 제가 사회 나와서 처음으로 한 일이 문화예술교육이었어요. 2000년대 초반 그 과정을 통해 저는 ‘개인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내가 속한 커뮤니티가 지역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했죠. 제가 요즘 생각하는 생태는 연동체계로서 모든 것들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해요. ‘문화로놀이짱’의 시작은 홍대 앞에 아주 작은 시장을 만들어 도구와 재료를 공유하는 일을 하면서였어요. 2006년 당시에 임대료가 올라가면서 작업자들이 점점 홍대를 떠났죠. 그래서 지금은 소위 공유경제라고 이야기되는 큰 도구나 사용하고 남은 재료들을 서로 순환시키는 공유 공간을 만들었어요. 그러면 각자 공간을 사용하는 부담도 줄고, 작업자들의 이전도 줄지 않을까 했죠. 토요일마다 시장이 열리면 지역 주민들과 십대, 그리고 홍대 작업자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만나면서 여러 삶의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일시적인 활동이고 거점이다 보니까 안정적인 접속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그 당시에는 그냥 재밌는 프로젝트로 시작했는데, 점점 이게 사회적 시스템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2010년에 지금의 ‘문화로놀이짱’을 만들었죠. 재활용 재료들을 활용하는 제작소를 이 공간에서 차근차근 일궜죠.
다시 하라면 못할 거 같다고 여전히 말하지만, 좋았던 건 어떤 기반도 없는 곳에서 활동을 하다보니까 스스로 일궈나가야 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에게 ‘경험지식’이 됐다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사람 관계 안에서의 연동체계만이 아니라 주변의 환경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 거예요. 전문 지식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싶은 만큼 발견하게 되고, 또 발견하면 그걸 가지고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방식들로 계속 찾아나가다 보니 ‘이런 게 창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러면 우리가 경험한 이 토대를 어떻게 공유하고 확산할 수 있을까. 그게 자연스럽게 저희 일이 된 거죠. 그러다 보니 함께 있는 친구들도 단순하게 고용 관계라기보다는 실제로 이 거점 공간을 함께 운영하면서 인생의 도반(道伴)이 되었으면 하는 관계로 자연히 바뀌었어요. 이러한 마음 상태는 노동을 통해 가능했던 거 같아요. 노동을 통해 우리 현장을 일군다는 게 엄청 중요한 일이구나라는 것들을 계속 깨달아가면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왼쪽부터 이은실(환경보전교육센터), 박활민(목공작가), 서동일(양평교육희망네트워크)
박활민 : 저는 이름이 박활민인데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의 이름이었어요. 들어가면서 부모님이 할머니라고 놀림 당한다고 바꿨는데, 대학에 들어가면서 제 마음에 들어서 이 이름을 다시 쓰고 있어요. 제 이름을 보면 ‘활(活)’자가 있거든요. 생활(生活) 할 때도 쓰는 낳을 활, 생생할 활이죠. 원래 생활이 이래야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 사는 것은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 제가 어디 가면 늘 저를 소개할 때 ‘삶-디자이너’라고 말해요. 결국에는 우리의 상태를 만드는 건 우리의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생활방식을 건드려야 한다는 의미에서 ‘생활방식 모험가’라는 직책도 맡고 있고요. 2년 전까지는 ‘잔액부족 초기 족장’을 하기도 했어요. 다 잔액이 부족하시잖아요. (일동 웃음) 그래서 우리가 남남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같은 부족이다, 그걸 깨닫는 게 중요하다. 요즘은 노머니-라이프 이런 걸 얘기하는데. ‘노머니경제센터장’도 하고 있고요. 저는 돈 버는 일은 주로 쓰레기를 주워서 가구를 만들어서 돈을 벌거든요. 그래서 친구가 ‘넝마스터’라고 별명을 붙여줬어요. 제가 쓰레기를 주우면서 새롭게 깨달은 게 있어요. 이 사회가 쓰레기, 물질만 버리는 게 아니라 생각도 버려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 생각도 다 공짜니까 생각을 주워 응용하자, 그래서 ‘생각수집가’도 만들었고요. 최근 ‘다거점 생활방식’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했거든요. 이걸 하게 된 이유는 결국 우리의 사고체계, 인식의 체계가 임금노동의 구조 속에 있잖아요. 그 사람의 활동영역을 GPS로 그려보면 집과 회사의 트랙을 벗어나지 못하죠. 이게 우리 사고체계의 한계라는 거예요. 그래서 거점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해서 그런 전시를 했죠.
저는 원래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산업이 우리 삶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디자인을 때려쳐야 하나 하다가 디자인이 인류의 지혜라면 삶을 살리는 디자인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죠. 그래서 ‘삶-디자인’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어요. 결국에는 아까 활(活) 자처럼 그런 생각을 해보는 거죠. 삶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그럼 또 반대로 우리 삶을 죽이는 건 무엇인가. 그런 질문도 가능하죠. 그러면서 저한테 가장 큰 화두가 ‘alive’라는 개념이 됐거든요. 어떻게 살릴 건가. 생태라는 것도 결국 이거거든요. 이 ‘얼라이브(alive)’성을 생활에서 응용하고 가치 기준으로 삼을 때 다양한 삶 방식과 문화들이 가능한 것인데, 우리는 지금 이게 약화됐어요. 제 친구들이 회사 다니면서 하는 말이, 월급 받으면 생명수당을 받는 느낌이 난다는 거예요. 내 생명을 제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삶의 방식은 사실 이상한 거잖아요. 그런데 이게(임금노동) 보편화되어 있어서 우리는 아무도 여기에 의구심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런 식의 삶 방식은 내가 죽는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점점 추락할 수밖에 없는 거죠.
제가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보니 세상에 물건이 엄청 많아진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어요. 지금 2014년에 와서는 생활의 모든 것들이 다 공급되죠. 모든 게 공급돼요. 완벽하게. 지금 사람들은 삶은 당연히 공급되는 거라고 사고하죠. 그렇게 되면 결국에는 공급 단절에 대한 불안이 평생을 엄습하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도 이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아요. 저는 이 현상을 ‘공급사회’라고 불러요. 이게 점점 가속화되고 있죠. 세계적인 대기업들은 인간의 정신의 패턴까지도 공급하는 방향을 연구하고 있잖아요. 그 사람을 가장 쉽고도 완벽하게 파악하는 방법은 그 사람이 하루종일 인터넷으로 뭘 보는지 들여다보는 거거든요. 구글 글라스가 결국 그런 거죠. 기업이 우리를 완벽하게 연구해준다는 거죠. 삶의 방식, 생각하는 방식도 다 제시해주는 거죠. 이런 공급 방식이 무의식까지 깊게 스며들어서 문화예술교육 역시 들여다보면 공급하는 방식이라는 거예요. 문화예술교육도 계속 어떤 대상에게 무언가를 공급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그런 공급 방식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내고 창조해내는 ‘자가생산’ 내지는 ‘자급생산’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워낙 다 삶이 위험해져서 한국 사회에서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안전한 생애주기가 없다고 말할 정도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앞으로는 더 무엇이든 생활과 연관되어 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문화예술교육 역시 생활 자체를 재료를 하지 않으면 그저 ‘콘텐츠’로만 남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어떻게 생활을 재료로 해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언젠가부터 자연 생태 말고도 도시 자체도 생태라고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이제 도시를 다르게 봐야 해요. 단순히 도시는 안 좋고, 자연은 좋다고 생각하는 그런 패러다임이 아니라 점점 거대해지는 이 도시를 어떻게 다시 생태계로 바라볼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시 전체를 어떻게 우리의 서식지로 상상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결국 이게 생활하고 연결되려면 핵심은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공간이 없으면 구체성이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거예요. 계속 와서 워크숍 하고 가고 마는 거죠. 손작업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되잖아요. 또 개인의 영역이 아니라 공동체로서의 손작업 문화가 형성이 되려면 결국에는 그걸 할 수 있는 공간이 지역마다 거점으로 있는 게 앞으로 중요한 화두가 아닐까 생각해요.
[지지봄봄 12호 방담회 _ 문화예술교육과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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