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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TI 생각, 애지음, 생각하는 손, 그리고 삶의 교육
  • 안상수 _파주 타이포그라피 학교 PaTI교장(날개)
  • 2014.02.26

 

 

 

 

 

 

 

 

저는 디자인을 직업으로 하다가 작년에 파주에서 타이포그라피 학교 PaTI를 시작했습니다. 소위 교장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PaTI에서는 교장을 ‘날개’라고 부릅니다. 배우미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서 날개라고 지었죠.

 

저는 만 21년간 학교에 있었습니다. 한글을 전공했는데요. 한글을 공부하기 위해선 주역을 공부해야 합니다. 주역공부를 하면 한글의 비밀이 풀린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주역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주역 공부 하려면 중용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중용의 제일 첫 날 이 대목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늘로부터 명받은 것을 사람의 본성이라고 한다.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한다. 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고 한다.’

 

가르침이라는 것이 결국 사람의 본성을 일깨운다는 거죠. 동아시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PaTI는 파주에 세운 작은 학교입니다. 비인가고, 학위도 없습니다. 대학교 과정은 4년으로 ‘한배곳’이라 부르고, 대학원은 ‘더배곳’이라고 부릅니다. 배곳은 100여 년 전 주시경 선생님이 조선어 강습소를 일컬으셨던 말입니다. 대학교는 ‘큰 학교’니까 ‘한배곳’이라고 하죠.

 

PaTI는 세상을 갖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땅을 사거나 건물을 소유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또 경쟁을 하지 않고, 권위를 없게 하겠다는 것. 이것은 제 가 학교에 있으면서 느꼈던 것이기 때문에 지키려고 합니다.

 

어제 스위스에 다녀왔는데, PaTI를 어떻게 지루하지 않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사람, 생각하는 손, 세종’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적어보았습니다.

 

사람,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말에서 고민해본 키워드인데요. 저는 이 말 중 뒤에 ‘이화세계’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라고 하는 것은 변치 않는 근본적인 뜻, 진리라는 것이죠. 변치 않는 상식이 통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드는 것. 널리 이로운 뜻을 가지고 있는 이간을 만드는 것이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잖아요. 애초에 이런 이념을 가지고 건국된 나라는 없는 것 같은데,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을 이어받으려고 합니다.

 

생각하는 손, 지금 교육은 ‘머리’를 중요시하잖아요. 창의는 우리말로 하면 ‘애지음’이라고 합니다. ‘애’라는건 창자입니다. 즉 창의란 창자를 끊어내는 고통 속에서 나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출발점은 손입니다. 손의 경험과 느낌이 누적돼 창의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세종, 바로 한글정신입니다. 참 대단합니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창의적인 예가 없습니다. 디자인적으로 봐도 한글은 엄청나죠.

 

저는 요즘 세상이 머리를 중요시하고, 거기서 교육이 일그러진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머리보다는 손이 먼저, 가장 먼저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뒤에 가슴이 있고 머리가 있고, 그렇게 조화가 되어야 하죠. 지금 교육은 너무 개념적이고, 거품이 많이 끼어있습니다.

 

파주출판도시에서 학교를 시작했습니다. 150개 출판관련사가 모여 있고, 기발함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 곳 전체를 캠퍼스라고 생각합니다. 재산은 아무것도 없고, 현재 아시아센터 3층을 유지비만 내고 빌려서 쓰는 좋은 조건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 취지를 소유주 분이 잘 이해해 주시더라고요.

 

아시아센터 안에는 책방 등 여러 가지 시설이 많습니다. 현재 PaTI는 도서관으로 쓰고 있죠. 빈 공간들도 많은데, 이곳들을 저희는 네트워크 학교로 구상하고 있습니다. PaTI가 선봉에 서고, 건축학교도 준비돼 있고, 명필름에서는 영화학교를 착공했죠. 임동창 선생님이 완주에서 풍류학교를 개교할 예정이고, 아름지기 전통학교, 일러스트 학교, 사진학교도 준비돼 있습니다. 홍대 앞에서는 다지원이나 소운서원이나 인문을 가르치는 곳들과 함께 해서 학생들을 보낼 예정에 있죠. 이들과 옆으로의 연대를 통해 독립적인 학교 네트워크를 구성할 예정입니다.

 

다는 아니지만 학위를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 스위스 바셀학교와는 학위협약을 맺었습니다. 영국 왕립미술학교의 디자인학부와는 서로 동아시아 디자인연구소를 설치해서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몸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몸으로부터’라는 모토도 있습니다. 또 타이포그라피 학교라는 말은, 타이포그라피가 디자인의 가장 근본이 된다는 생각에서 나왔죠. 그래서 근본을 세우는 학교라는 의미에서 타이포그라피 학교라 칭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대중적인 학교라기보다는 작고 특정한 부분에 천착하는 학교인 셈이죠.

 

 

 

 

학생들은 학교에 들어오면 자신들이 지낼 책상을 제일 먼저 만듭니다. 이것은 노네임노샵의 김건태씨가 맡아 금천예술공장에서 진행합니다. 나중에 책상은 끝나고 아이들이 가져갑니다. 4년이 끝나면 가져가야 하죠. 매 학기 아이들이 자기가 필요한 것은 더 만들죠.

 

드로잉 수업부터 시작을 합니다. 아이들은 아크릴 물감이 아니라 안료를 사서 물감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죠. 이렇게 하면 돈도 훨씬 아끼고 근본적인 서바이벌 교육도 됩니다. 

 

동의학 수업도 합니다. PaTI의 제일 첫 수업이죠. 보통 인문학 교육은 철학, 교양국어, 대학영어 등을 먼저 시작하는데, 저희는 인문학의 출발점이 몸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동의학 수업을 먼저 하죠. 출중한 한의사 선생님을 모시고 동의보감을 발췌해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몸을 먼저 이해하게끔 하죠. 몸을 이해하게 되면 배우미들이 다르게 세계를 인식하게 됩니다.

 

저희는 파주에 PaTI 나무도 심습니다. 사람들이야 없어지지만 나무는 계속 큽니다.

 

저희는 여행도 중요시합니다. 바셀에서 바우하우스까지라는 여행 제목으로 여행을 다니기도 합니다.

 

학교를 ‘만들어가는’ 수업도 합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여기서 결정하기도 하죠. 배우미들은 다음 학기 신입생을 어떻게 뽑느냐를 가지고 의논하기도 합니다. 입학원서를 다 공개하고 의견을 문서로 받죠. 그러는 과정에서 배우미들이 생각했고, 교육자들이 보지 못했던 운영에 관한 이야기들이 반영되기도 합니다.

 

현재 PaTI는 한배곳 20명, 더배곳 20명의 학생이 있습니다. 3년 후에는 100명인 학교를 만들 계획이고 이것을 최고치로 잡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고구마 줄기처럼 옆으로 네트워크를 칠 계획입니다. 그리고 현재 한배곳 학생 중 대안학교 출신은 40% 정도입니다.

 

PaTI의 핵심은 ‘즐거운 학교’라는 것입니다. 교육학자 쉴러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무한한 이상을 가지고 있다가 혁명 이후 공포와 살육의 잔혹함을 보고 큰 실망을 했죠. 그리고 ‘이상적인 나라는 미의식으로 충만한 예술가들의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죠. 그런 예술가들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놀이, 충동’을 기본 출발점으로 삼아봅니다. 

 

[질문]

 

현재 사회시스템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안학교 현장에서는 사회와 아이들의 합류지점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라는 문제에 항상 봉착하는 것 같다. 세상이 변할 수 있다든 기대만으로 갈 것인지, 그 기대는 또 어느 정도 허용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된다.

 

안 > 예리한 질문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추라고 말합니다. 지금 교육은 다 ‘스타 만들기’ 교육입니다.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삼성전자 갈 수 있다? 다 합쳐봐야 3% 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대신에 대안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제 사업 1호가 커뮤니티 키친입니다. 문화 쪽의 협동조합으로 일터를 만드는 거죠. 독특하게 변화된 현장을 보여주고 제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 변화와 삶을 결부시키며, 학교에서 배웠던 디자인이라는 가치도 결부시켜서 나갈 수 있는 판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렇게 직업으로, 삶으로 가져갈 수 있게 에너지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