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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과 패널 종합단변 _질문과 패널 종합단변
  • 2014.02.26

 


 

[Floor 질문]


1. 정부 주도의 교육 정책들은 정책적 필요성에 의해 인위적으로 진행되는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아이들에게 소프트웨어 코딩을 가르치는 미래창조과학부의 프로그래밍 교육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문화예술교육도 정부가 정책적으로 끌고 가는 프레임인데, 일부 교육자들은 철학적 토대나 고민이 없는 체로 트렌드에 맞는 교육만 하고 있지는 않는지 궁금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이 있는가?

 

2. 인천의 ‘문화바람’은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시민의 영역과 전문적인 영역이 접촉되며 시너지가 형성된 사례로 소개된 것 같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문화예술교육이 도입된 지 10여년이 지났음에도 깊이가 떨어지고 철학도 빈곤해 질적 성장은 되지 않는 느낌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문화바람쪽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질적 성장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성숙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어떤 지향점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3.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에 대해서 저마다의 생각이 다른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그것이 예술을 가르치는 것인지, 혹은 대안적인 삶이나 생활예술교육인지 정의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현장에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또 이에 대한 생각 차이나 오해를 경험한 적은 없는지도 궁금하다.

 

4.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386세대의 가치관이 개입되는 경우 기존 공교육 체제에 대한 정치적인 반대 논리가 많이 개입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대안 교육을 해놓고도 교육이 끝나면 다시 검정고시를 보게 하고 좋은 대학을 보내는 식으로 아이들을 사회로 편입시키더라. 이렇게 보면 대안교육을 하는 입장에서 그 교육을 통해 사회가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 긍정적인 기대일수도 있지 않을까? 김경옥 선생님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

 

 

 

 

 

[패널 종합답변]


이원재 : 앞으로도 이런 토론이 많이 필요하다. 일견의 문제제기에 동의한다. 한편으로는 문화예술교육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큰 꿈’을 잃어버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례, 정책, 제도적인 측면을 떠나서 문화예술교육 전반적으로 ‘큰 꿈’이 실종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과학이나 테크놀로지 등을 문화예술의 부산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전부터 분야를 ‘통섭’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어왔다. 문화예술교육은 바로 이 부분, 영역을 뛰어넘는 횡단적인 부분에 맞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공동의 작업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최근 관심을 받고 있는 기술들의 경우도, 그것들이 어떻게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될 수 있는가 하는 고민 위에서 문화예술교육 판이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번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인 공세가 필요하고, 이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

 

임승관 : 예술가가 생활 예술인들과 만나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강습이 이뤄지고 지속가능하게 된다. 그렇게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다보면 처음에 매개는 악기였지만 더 큰 보상이 생기면서 목표가 변하게 된다. 그 사이사이 문화적인 소통이 생겨난다. 배려하고, 호혜에 입각하는 것, 존재감이 생기고 주인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아 매개자가 필요하다. 매개자는 코디네이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강사는 교육을 하고 가고, 남은 사람들을 위해 일상생활에 교육했던 것들이 녹아들 수 있도록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3자가 잘 소통할 수 있으면 문화예술교육의 깊이가 보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이 사람들이 함께 예산이 어떻게 쓰일지도 고민할 수 있게 된다면 보다 발전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양철모 : 전문영역과 시민영역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는데, 중요한 것은 그런 영역이 고정되지 않고 어떻게 유동적일 수 있게 하느냐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고민 안에서는 시민이 제도 안에서 어떤 것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함께 고민되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개념에 대한 시각의 차이에 대해 질문이 나왔는데, 시각의 차이는 이해관계에서 비롯된다기 보다는 끊임없이 개념을 만들고 좋은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질문하는 과정 속에서 생성된 것 같다. 그렇게 본다면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이다’라고 정의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질문을 모아서 우리가 생각하는 문화예술교육의 상을 그려내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다양한 정의들이 모여 문화예술교육을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

 

정경운 : 질문 두 가지에 대한 것을 묶어서 말씀드리고 싶다. ‘스팀’ 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과학영역과 예술영역이 만나는 프로그램이다. 즉 과학을 예술과 어떻게 결합시킬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수반했던 게 사실이다.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핵심개념처럼 작동하는데, 실체화 시켜서도 안 되겠지만 왜 예술을 이런 식으로 묶어가고 유일한 탈출구로 잡고 있는 걸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또 그 영역 안에서 두 개의 영역이 각각의 자기존재감을 가진 체로는 결합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삶의 양식, 구도 안에서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첫 출발은 문화예술교육이었지만 대안적 삶을 고민하면서 궁극적인 가치를 추구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경은 : 나는 몸을 통해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일을 하며 문화예술교율을 만난다. 이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기억하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이 깊이가 떨어지고 철학이 빈곤해진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현장에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단어는 ‘조울증’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저는 기쁨을 얘기하고 싶었다. 표면적인 즐거움으로는 만족이 불가능하다. 기가 뿜어져 나오듯 만족하는 것 ‘기쁨’. 기쁨을 통해 만족하면서 헛헛한 반성까지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앞으로도 이런 자리나 현장을 통해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영직 : 첫 번째 질문에서 나온 이야기는 과학 쪽에서도 많이 나온다. 행위자네트워크와 관계된 이야기인데, 그런데 그 말이 다 맞지는 않는 것 같다. 그 이야기와 문화예술교육의 이야기가 크게 어긋나는 것 같지 않다.
직장을 그만 두니 만나는 사람이 달라졌다. 100일 정도 책을 엄청 읽었다. 그러고 나서 세상을 들여다보며 그때의 시간이 굉장히 소중했던 시간이라고 느꼈다. 그때부터 만났던 사람, 형식이 달라지고 우정의 가치를 느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자주 구사하는 언어가 고독과 우정. 우리 사회에는 너무 고립되어 있는 사람이 많은데, ‘고독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어떤 조건에서도 부서지지 않는 고독력 말이다.

 

이는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개인으로 남겠다는 의미를 갖는데 우정이 보조해줄 수 있다. 우정의 가치는 연대이다. 우정의 가치는 시간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보충성의 원리이다.

 

보충성의 원리는 행정이나 정책을 결정할 때 최소단위. 가장 약한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우리나라 정책 현장에서 이것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삶에는 궤도를 이탈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뭔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경옥 :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드리자면, 대안교육은 교사나 부모. 이른바 386세대가 시작을 한 것이다. 이 분들은 2000년 정도에 막 학부모가 되신 분들이다. 공동육아로 아이를 키우다가 일반 학교를 보내야 하는데 도저히 안될 일이라는 생각으로 학교를 만든 것이다. 이 사람들은 학교 같지 않은 학교. 열차에서 내린 사람이 많았다. 이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주문을 걸었고, 실수하기도 했지만 세상에 일정한 변화를 초래했다. 그것은 기존의 모든 방식에 대한 Anti 였다.

 

교육자, 피교육자에 대한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면서 가장 많이 던졌던 질문이 무엇이었냐면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이니”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대안 교육 초창기에는 ‘원하는 것’에 대해 말을 하는 법을 몰랐다. 무기력 했던 것이다. 2005년 쯤 되니 원하는 것이 있는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대안교육은 아이들에 대해 어떤 자극이 필요할지 고민하며 계속 오고 있다.

 

길이 잘 안보일 때 대학이나 대기업을 가기도 하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이것은 어쩌면 배우는 자들의 몫이 아닐까 한다. 이것은 대안교육이 돌파구를 못 찾은 미숙함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장벽이 너무 단단한,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에서 오는 것 아닌가. 결국은 우리 사회가 나아져야 한다는 것이 아직 우리의 숙제로 남겨져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선순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