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엇이 성장을 위한 의례를 방해하는가
- 김경옥 : 교육적 의미가 있으려면 ‘시간성’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교감을 통해 무언가를 완성하고, 매듭을 지으면 좋은데, 짧은 시간 안에서 무언가 해치우게 하는 구조의 문화예술교육이 되다 보면, 마무리 의미를 갖는 의례조차도 교육적 역할은 무시되고 그저 이벤트에만 골몰하게 되는 것이니 일정한 시간성을 확보해 주는 약속을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아이들과 교사 입장에서도 그렇다. 평가에 대한 주문이나 마무리에 대한 제안을 할 때 그것도 중요하게 고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 입장에서도 한 달이나 한 학기 만났는데, 거기에서 높은 기대감 내지는 아이의 성장을 보여줘야 한다면 부담스러울 거고, 그게 아니어도 된다면 교사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데. 그래서 서로의 요구, 방청객의 요구도 적정한 수준에서 조정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방청객이 그냥 구경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기대를 좀 조정하고, 방청객의 매너도 좀 제안될 필요성이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 조인호 : ‘만족도 조사’만 안하면 될 것 같다. 아이들에게 들었는데, 설문 내용 중에 “이 교육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나서 진로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나요?”라는 질문이 있었다. 아이들이 이걸 보면서 그러더라. “뭐야, 우리 이거 하려고 이런 거야?”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지금까지 했던 수업이 만족도 조사 때문에 수포로 돌아간다는 느낌? 만족도 조사 때문에! 그런 것 안하고 발표회만으로도 충분하다.
- 김겸 : 만족도 조사를 하더라도 아이들이 그런 것에 크게 거부감을 안가지고 “좋았어요”라고 할 수 있는 순간들이 어떤 때에 생기냐면, 주로 한 선생님과의 인간적 만남에서 생기는 것 같다.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은 지역의 좋은 예술가와 선생님들을 만나며 그들의 삶을 통해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지역의 예술가들이 자원활동을 많이 하며 지역 예술가들이 아이들을 만나는 프로그램을 계속 하고 있지 않나. 그래서 나는 그런 정말 참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맡게 된다면 굉장히 많은 부분이 해소될 거라고 생각한다.
- 조인호 : 한국도 그랬다. 지역에서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교육을 만들어 진행하다가 갑자기 지원사업이 생기며 그런 사람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핵심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 아닌가.
- 나하나 : 동의한다. 이렇게 의례의 의미를 되짚게 되고,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필요성이 왜 생길까라고 생각을 해보면, 지원사업 때문에 이렇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년이라는 시간 혹은 몇 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지원을 하게 되고, 그것을 검증받기 위해 평가나 발표를 하고 만족도 조사를 한다. 교사 평가가 결국 그 교육의 전체 과정에 대한 평가를 결정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보니 지원 시스템 자체가 교사의 태도까지 결정하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점점 느는 것 같다.
- 김겸 : 나는 평가받는 ‘피평가자’로서 비교적 익숙한 편이다. 평가자들의 평가가 높은 때는 강사의 인간적인 면에 감화를 받았을 경우에는 평가가 어떤 문항이 나오더라도 전부 높았다. 어떻게 보면 평가 제도가 잘못된 문제가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 무엇인가 효과적으로 마음을 주고받고 탄탄하게 일어난다면 해소되는 문제 아닌가. 물론 평가 방법을 개선해 나가는 것은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 나하나 : 대부분의 현장에서 지원사업을 받아서 하는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교사도 그렇고, 교육을 기획하는 사람도 그렇고……. 지난번에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결과발표회 시간에 재단에 갔을 때, 교육을 진행하는 분들을 만나서 느낀 것이 그렇지 않은 분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다들 ‘지원사업을 따라다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교육을 기획할 때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교육이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가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지원사업의 지원 방향이나 시스템이 하나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 장혜윤 : 약간 정답 맞추고 싶은, 지원금을 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물음이 앞에 있는 경우에는 그런 물음이 생기더라.
- 김겸 : 현장에서 발품을 팔면서 유명한 인기 강사나 유명 대학 교수님이 아니라 실제로 여러 교육 현장에서 그런 것을 나누는 참선생님을 찾아내서 그런 분을 데려오면 일단은 많은 부분을 마음을 놓아도 된다.
- 조인호 : 그런데 예를 들어 지원사업을 한다고 할 때, 누군가 좋은 선생님을 픽업할 때 제안서를 받아야 하지 않나? 이렇게 좋은 교사를 찾아서 어떤 일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지만, 공공기관에서 그런 말을 하는 순간 갑과 을의 관계가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좋은 선생님이 지역에 있어서 그 분을 초대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쉬운 구조도 아니고,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 김경옥 : 맞다. 대부분 재단 같은 공공기관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해도 공공성이라는 것을 빌미로 심의를 하고, 갑과 을의 관계를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 강사나 교육자 입장에서는 이쪽에서 요구되는 틀거리에 만족할 수 있는 제안서를 만들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고민이 있다.
- 조인호 : 그래서 여기서는 오히려, 국공립 재단에서 이 구조를 바꾸는 일들을 해야 한다.
- 김경옥 : 공공성이나 공정성이라는 기준을 좀 더 선진국으로 나가려면 사람에게 중심을 두어야 하는데, 계속 어떤 다른 잣대를 두고 틀에 맞추려고 하는데, 그건 행정편의적인 것이다. 좋은 예술교육자를 스카웃하지 못하게 된다. 돈이 크면 클수록 더 그렇다.
- 조인호 : 그런 것이 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진짜 지원해야 할 곳에는 지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실제로 좋은 기획자나 예술교육자들은 대부분 문화예술교육계에서 점점 빠져나가려고 한다.
목 차
0. 프롤로그 [바로가기]
1. 12월은 통과의례의 달 [바로가기]
2. 의례에서 배우는 완결의 체험과 소통의 경험 [바로가기]
3. 무엇이 성장을 위한 의례를 방해하는가 [바로가기]
4. 새로운 의례의 언어는 가능한가 ― 기획자와 예술교사의 역할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