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경계 더듬어보기 / ‘학교’를 부를 때
이기언 : ‘문화예술교육’이라고 하는 많은 부분이 학교 밖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이현주 선생님이 학교 이야기를 해주셨으니 그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다. 민경은샘과 문화예술교육 방식으로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때의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다.
민경은 : 이현주 선생님과 함께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한 경험은 교사연수 워크숍 뿐이다. 학교사회와 교사에 변화를 꾀하는 워크숍을 기획하는데 매개자 역할을 해주셨다. 지금은 학교 안에서 직접 진행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작년에 이현주 선생님이 다리를 놓아주셔서 여러가지연구소가 구리에 있는 혁신학교인 00 초등학교에 600명 전교생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 우리마을>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한 학기 동안 정규 수업 시간 안에 들어갔었다. 학교와 지역을 연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현주 : 학교 안에서 교사들이 교육 과정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사 모임에서 연수를 열었다. 그래서 OO초와 OO중에서 한번씩 연수를 했다. 민경은 선생님이 작년에 문화예술교육을 한 학기 하신 것에 대해서는, 연수 모임에 참여했던 선생님 중에 한 분이 이분들과 같이 만드셨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모른다. 다만 민경은 선생님에게 몇 가지 소감을 들었고 그쪽 대표교사에게 한번 정도 이야기를 들었다.
이기언 : 대표 교사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던가?
이현주 : 제가 들은바로는 프로그램이 좋았지만 진행과정에서 삐걱거렸다는 것이었다. 그 배경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선생님들의 입장에서는 교육 과정 안에서 운영하고 싶어하는 부분이 있었다. 학교에는 수업과 연계되는 과정이 있고 창의체험, 진로, 동아리 활동 등 구분되어 있는 별개의 영역이 있다. 주로 문화예술교육을 하게 되면 방과후 활동을 포함하여 교과 외 영역에서 활동을 하게 된다. 보통은 교사는 교사끼리, 외부의 사람은 따로 운영하는 구조에서 움직인다. 그런데 00초에서는 특별한 것을 원했던 것 같다. 교육과정 안에 프로그램이 들어오고, 영역을 넘나드는 뭔가를 원했는데, 거기서 서로가 마음이 잘 맞지 않았고, 순서를 잡고 가야 하는데 양쪽 다 그런 경험이 없다 보니 서로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오해가 쌓이다 보니 감정적으로 안 좋아져서 보고서를 쓸 무렵에는 서로 많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오늘 주제인 경계의 부분, 그것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었다. 제가 이 방담회에 오기 전에 그 일을 알고 있는 다른 선생님께 의견을 물었는데 두 가지 아쉬움을 말씀하셨다. 첫번째는 교육과정 내부로 외부의 교육을 들어오게 하려면 사전 작업이 치밀했어야 했다. 00초에 있는 선생님과 외부의 선생님들이 충분히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교사연수를 체계적으로 했더라면 좋았겠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경계를 허무는 과정에서 선생님들의 교육 과정이 서로 공유가 되어야 했다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민경은 : 우리와 함께 작업하는 곳이 학교던 기관이던 프로그램으로 끝나는 것, 또는 프로그램만 이식되는 것에 그치는 것을 가장 우려하며 지속성을 고민한다. 경계를 이야기하면서 “시간”과 “서로의 차이”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겠다. 교사가 교육과정 안에서 직접 실행하기 위해서 서로 협력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 안에서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며 실패를 경험하고 창의적으로 그 차이를 조율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교사연수로 준비했는데, 준비과정에서 혁신부장님은 교사들의 동의를 얻어내는데 힘들어하셨고, 지원처에서는 교사연수과정을 대폭 줄였다. 기획단계에서 어렵사리 합의하고 만들어낸 중요한 목표가 행정으로 무너졌다. 협업은 이 때부터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 안에는 너무나 많은 목소리가 있었고 다양한 그룹들의 문화도 달랐다. 날 것의 목소리가 드러나는 과정의 학교는 그 자체로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외부 인력을 만나는 준비는 미흡한 상태였다. 역시, 학교 안에도 “서로의 차이”를 공유하고 방향을 잡아나가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프로젝트 전반, 중반, 후반마다 교사워크숍을 계획해 놓았었는데, 전반에 준비연수만 진행했다. 중반과 후반에 준비되었던 워크숍은 학년별 교육과정 회의안에 자리 잡았다. 서로에게 무리가 되는 구조로 진행되었다. 내가 학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서, 학교와 문화예술교육을 할 때 내가 매개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 학기 프로젝트를 경험 하고 나니 학교와 외부를 연결하는 매개자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가 스스로 외부인력과 또 다른 지평을 맞는 태도를 갖도록 하고, 예술가가 학교를 만나고 교육과정을 협업으로 만들어내는 태도를 갖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경계에 서서 서로를 탐구하고 흥미를 갖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현주 : 사실 우리나라의 공교육 시스템이 교사들을 뭉치게 만들어놓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찢어지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초등과정은 학년끼리 같은 과정을 운영하기 좋아서 학년끼리 단합이 되면 좋다. 그런데 관리자가 그런 것을 싫어해서 학년부장직을 없애버린 학교의 케이스도 있다. 즉, 교육을 위한 학교가 운영되는 시스템은 교육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교사들은 굉장히 다양한 방법을 택하고 있다. 학교에 가서 아침에는 정신을 차려야지 하고 들어가지만 일단 일과가 시작되면 정신 없이 돌아간다. 마치 ‘모던타임즈’같다. 정신을 차리면 퇴근시간이 되어 있다. 선생님들이 뭉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것은 나이스(neis) 가 한몫을 한다. 중등학교 교무실에는 교사 자리에 다 파티션을 쳐놨다. 다른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이런 구조가 교사를 단절시키고 어려운 이야기를 못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모든 것이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혁신학교는 그나마 나은 상황이다. 혁신학교의 목표가 교육의 본질을 찾는 것이다. 혼자서는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선생님이 모이게 된다. 그런 것을 달성하기 위해 모여서 연수를 받고 서로를 도우려고 애를 쓰고 있어서, 혁신학교는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경은 : 학교의 이야기를 듣는 공간, 학교도 외부의 이야기를 듣는 공간, 그 경계지대, 제 3의 공간이 필요하고, 서로 연결되는 과정을 만드는 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는 지역사회프로젝트활동 매개자 워크숍을 기획하고, 현재 진행 중에 있다. 매개자를 양성하는 워크숍이 아니라, 서로 만나서 수다를 나누고, 시간과 차이를 공유하며, 협업을 해보면서 실패를 실험하는 공유지의 워크숍이다. 부천 지역 내에 있는 학교 교사, 청소년지도사, 예술가, 활동가, 등 20명이 함께하고 있는데, 이현주선생님과 같은 학교 밖으로 나와 소통하고자 하는 교사를 만나게 되어, 작은 변화들을 느리게 모색해보고 있다.
이기언 : 이야기 들으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남혜선 선생님의 경우에는 청년학교라는 공간에서 청년을 만나고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남혜선 : 예전에 교사였던 동료가 있다. 한번도 학교에서의 경험을 이야기 해보지 못했다가 얼마 전에 본인이 경험했던 학교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처음 청년학교 처음에 만들 때 청년들이 나와 다른 사람, 다른 세대와 제대로 부딪히며 일하고 자기 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가 그런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를 세팅할 때에도 담임과 반을 중요하게 염두하여 세팅했다. 지금의 청년들이 대학에 오기 전까지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서 (나도 그렇고) 청년들은 나와 다른 사람, 다른 세대와 협력하는 경험이 없는 채로 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청년들이 프로젝트를 경험할 때 어려운 부분들은 이런데서 오는 것 같다. 같이 협업한 경험이 없다. 왜 이런 일들을 혼자하면 되는데 같이 해야 하는지에 대해 힘들어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 일단 지지고 볶는 과정을 겪고 나면 본인들이 느끼는 어떤 뿌듯함, 보람이 컸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을 힘들어한다. 선생님들 조차도 그랬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도 ‘나’라는 틀을 넘어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싸울 때도 있고, 협력할 때도 있는데 그런 과정을 낯설어하는 것 같다. 돌아보면 나도 그렇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김태균 : 국립현대미술관에도 전시팀도 있지만 교육팀이 있다. 교육팀에서 운영하는 사업 중에서 찾아가는 미술관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외지나 오지에 있는 초등학교에 찾아가서 프로그램을 하는데, 학교 공교육 안에서 이루어지는 미술교육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도 있다. 강사로 참여는 하지만 작가로 들어가 참여를 한다. 교사가 아니라는 생소함 때문에 우리에게 기대를 하게 되는데, 그 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것 이 좋은 것 같다. 너무 기존의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 보다는 작가가 교육자로 아이들 앞에 설 때의 신선함이 있는 것 같다.
이현주 : 교사사회가 다양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학교별로 다 다르다. 교사의 문화나 학교 운영방식의 차이가 학교마다 굉장히 크다.
강원재 : 그 안의 문화는 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학교라는 제도가 갖는 경직성들이 있다. 그래서 그 안에서 개인인 선생님이 뭔가를 해보려는 모임들, 이것이 소중한 모임이지만 경직성 안에서 늘 한계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있는 것 같다.
이현주 : 밀도와 온도가 너무 차이가 크다. 어떻게든 혁신을 해야 한다는 입장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입장이 공존한다. 한 학교에도 많은 입장차이가 있기 때문에 동시에 만족시키기는 굉장히 어렵다. 혁신을 한다는 사람들이 굉장히 경직되어 있기도 하다. 반드시 뭘 해야 한다는 명제가 들어가면 딱딱해지게 되었다. 혁신이라는 것이 반드시 이뤄야 할 고지가 되어버리면 경직되어 버린다. 그래서 퇴보하거나 멈춰져 있는 경우도 있다. 교사가 그것을 빨리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김태균 : 상명하복체계. 실제로 우리도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다. 성공실패여부를 떠나서 대안교육과의 유기적인 결합을 무리하게 길게 가지려고 하기보다는 시기적인 조율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현주 : 교사를 외부로 이끌어내는 것, 외부의 자원과 만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
목 차
0. 프롤로그 [바로가기]
1. 경계 들어서기 / 소개 [바로가기]
2. 경계 더듬어보기 / ‘학교’를 부를 때 [바로가기]
3. 경계가 꾸어오는 꿈들 / 배움, 경험, 협업, 공동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