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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2방담회] 4. 공유(共有)의 비극을 넘는 두 가지 길
  • 고영직 _문학평론가
  • 2013.08.26

 

 

 

 

 

 

4. 공유(共有)의 비극을 넘는 두 가지 길 ― ‘입금’이냐 ‘몸빵’이냐
 

 

-  고 : 경제학 용어 중 ‘공유의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여성 경제학자 엘리너 오스트롬이 쓴 『공유의 비극을 넘어서』라는 책은 “경제 지배구조(Economic governance) 분석을 통해 공공의 자산이 다수의 경제 주체들에 의해 어떻게 성공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 역작이다. 공유의 비극이란 예를 들어 공동으로 마을에서 관리할 수 있는 어장(漁場)이 있는데, 저마다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장 자체가 붕괴한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공유자원의 파괴에 대해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유토피아』에서 “양(羊)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한 말과도 통한다. 저마다 경계를 나누는 울타리를 치며 특정한 공간 자체를 사유화(私有化) 내지는 사사화(私事化)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소유자사회(Ownership Society)의 덕목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문화예술교육을 기반으로 한 교육의 장소들, 혹은 문화예술교육이 아니더라도 특정 지역에서 공유지를 만들어가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문화예술교육이 다분히 제도에 의해 순치되고 체제순응적인 측면이 많다는 점에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어떤 제도 ‘안’에서의 일도 필요하지만, 지금의 지원제도 ‘바깥’을 염탐하며 불가능한 꿈을 같이 꿀 수 있는 공간들이 더 많아져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이 점에서 시민-예술가 협력형 사업과 펀드(fund)를 고민하고 있는 서울의 성북문화재단 사례는 퍽 흥미 있다. 여전히 기초지자체 문화재단의 경우 기관장이 어떤 문화마인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지역 내 문화기관의 성격이 규정되는 경우가 많다. 성북문화재단의 경우 시민이 자발적으로 펀드를 조성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 액수는 아직 미미한 수준으로 알고 있지만, 전체 사업비 비중에서 어느 수준까지 모금이 달성된다면 시민들의 ‘자발적’ 문화 파급력은 상당할 것이라고 본다. 나는 자발성의 최대 목표는 ‘입금’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례들이 더 있을까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

 

 

-  월 : 역으로 생각해보면 “나는 어디에 입금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되겠다. 나는 두 군데 입금을 하고 있다. (웃음) 나의 경우 입금하는 것은 가치를 공유하고 연대하고 싶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내 몸이 가서 ‘몸빵’을 못해주는 부채감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아니더라도 후배․동료들이 잘 지탱해주면 좋겠다는 연대감 같은 것들을 아주 미미하게 소극적으로나마 표출하는 행위가 아닌가 생각된다. 담쟁이문화원에서도 고민하는 것인데, 특정인의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의 것이라는 것을 견고히 해야 할 때는 사실 입금만 하고 가보지도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실 의사결정이나 운영방식이 민주적인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신뢰감을 지역 주민들에게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 기대가 없다면 입금할 생각을 못하는 것 아니겠는가. (웃음)

 

 

-  최 : 이전에 마포 민중의집에서 활동을 하며 1년 단위 지원사업의 경우 어떤 ‘맥락’이나 ‘서사’를 못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역에서는 10년 정도 활동해야 이야기가 만들어지는데, 지원사업에서는 그것을 만들기 어려운 구조라고 보았다. 그래서 내 동료들이 선택한 것이 ‘자치’와 ‘자급’이다. 세끼 밥을 굶지 않으면 뭐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지역에 내려가서 농사를 지으며 먹을거리를 해결하며 학교도 만들며 공동체를 만드는 방향이 있었다. 이 점에서 담쟁이문화원의 경우 1층 털래기식당을 살리는 것이 최우선으로 필요하다. 장사를 잘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서빙하고 주방 일하시는 분이 핵심 멤버이다. 그런데 그분들은 그런 의식이 거의 없다. 매번 나를 보시고 물어보신다. “3층에서 뭐하냐?”고. (웃음) 물론 맛있는 거 먹고 힘내시라고 음식을 해주시고 그런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 또래의 백수들이 동네에 좀 있다. 한효석 선생님이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제자 몇 분이 동네에 산다. 저녁에 같이 1층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많다. 저녁에 밥 먹고 술 마시며 사이가 좋아졌다. 그렇게 알음알음해서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한 달에 120만원 월급 받아서 쓰는 걸 보면 밥 먹고 술 먹고 문화생활하는 것이 전부이다. 아주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해소가 될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조금씩 보이기도 한다. 지역에서 신문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그런 이야기들을 쌓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 하나하나를 보면 저마다 ‘맥락’이 있고, 자기 ‘이야기’들이 있지 않은가. 신문에서 그런 것을 기록하며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해볼 수 있는 장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장을 만들기 위해서 한 달에 1만 원 혹은 6천 원 내라고 했을 때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걸 한번 하고 싶다. 자립과 자급 그리고 약대동 일대 사람들과 어울리며 맥락과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은 것이 지금의 내 꿈이다.

 

 

-  고 : 최현철 사무국장이 품고 있는 큰 꿈을 말씀해주신 것 같다. 사람들이 모여서 시간을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과정 자체가 우리 삶 자체가 예술이 되고 문화가 되는 역동적인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논의에서 무슨 획기적인 대안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자기가 발을 딛고 있는 ‘현장들’에서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또 무엇이 있겠는가. 

 

 

-  월 : 이것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수원 지동에 오래되어 낡은 슈퍼마켓을 하나 얻었다. 상호가 ‘현대슈퍼’다. 그 옆에는 ‘서울목욕탕’이 있다. 수원 지동이 갖는 근대화의 지향은 ‘서울’과 ‘현대’였나보다. 상호가 현대슈퍼, 서울목욕탕인 걸 보니……. (일동 웃음) 그 동네에 내 친구 천원진 작가가 동네에서 목공실을 운영하며 마을 작업을 하며 한 사람의 ‘주민(住民)’으로 살고 있다. 그 덕에 내가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현대슈퍼를 얻었다. 그 옆에는 이웃문화협동조합(이문협)라는 단체가 있다.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이문협은 30여 명의 조합원이 오가며 자체적으로 교육도 하고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 동네 사는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연결고리는 돈독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천원진 작가는 그 동네에서 아무것도 안한다. 그냥 ‘동네주민’ 천원진이다. 하지만 앞집 아주머니랑 음식을 나눠먹고 동네를 정리 정돈하는 공공미술 작업을 한다. 수원 지동의 가장 큰 문제는 못 배운 사람이 많고, 노인들이 많아서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매일 할머니들과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며 ‘쓰레기와의 사랑과 전쟁’을 하며 동네를 매일 쓸고 동네에서 인테리어 작업하는 아저씨와 무언가 만들면서 산다. 그러면서 동네에서 밥을 얻어먹고 다니며 이제는 ‘동네청년’이 다 되었다. ‘무엇이 창조적 공유지인가?’를 생각해볼 때, 무언가 대의명분을 갖고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지역을 위해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천원진 작가가 삶 속에서 자기가 생각하는 예술을 실현하며 동네주민으로 사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그 옆에서 ‘현대슈퍼 주인’으로 살려고 들어가 있는데, 이런 의문이 생긴다. 뭐냐? 담쟁이문화원도 음식점이 잘 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점은 굉장히 중요하다. 바로 건강한 수익모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천원진 작가가 수원 지동에서 하고 있는 일은 이문협이 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천 작가가 동네에서 무슨 교육을 하고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러니까 (예술)교육이라는 것이 결국 삶의 상호작용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겠구나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서로의 의식을 공유하고 침범하고 영향을 주는 그런 삶의 상호작용 말이다. 물론 그 안에는 갈등도 있겠지만, 그 갈등의 지점까지도 그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  고 : 아, 울컥했다. (웃음) 삶으로서의 예술, 일상으로서의 예술을 웅변해 주신 것 같다. 그런 예술가로 사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간주하겠다. 옆에서 지켜보고 만약 그렇게 살지 않으시면 혼내야겠다. (웃음)

 

 

-  월 : 내가 맨날 하는 이야기가 있다. 예술가는 ‘배반의 장미’가 되어야 한다고! (일동 웃음)

 

 

-  고 : 목 선생님도 마무리 말씀 부탁드린다.

 

 

-  목 : 우리는 천천히 가더라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가는 쪽을 택하려고 한다. 아이들 덕분에 부모들도 공간에 대한 관심을 갖고 계신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일 정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작가들도 지역을 이해하고, 지역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 서로의 고민을 조금씩 나누며 교류하고 있다. 예술교육 수업을 통해 서로가 더 좋은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  최 : 나는 ‘지역활동가’로 불리는데, 문화예술 하면 좀 다르게 느끼곤 했다. 담쟁이문화원에서 일하면서 ‘문화원’이라는 이름이 있으니 이런 고민을 하곤 한다. ‘문화가 어떤 힘을 줄 수 있을까?’ 지역활동가로 동네에서 활동하다보니 내 스스로 가끔씩 자괴감이 들 때도 있고, 비루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삶이 재미없고 항상 조직에 매몰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좀 날카로와져서 사람들과 부딪히려고 하고……. 지역에서 문화예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나는 사실 기대감이 있다. 그래서 지하 소극장에서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질 수 있는 힘을 기대했다. 그런 판을 더 열고 싶다. 좀 재미있게 그런 것을 지역에서 보고 싶다. 그런데 그분들과 만나면 그분들도 나 같은 활동가 못지않게 자책하고 힘들어하는 걸 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안 좋다.

 

 

-  월 : 부천 지역에 긍정적인 에너지 넘치는 젊은 단체가 있는데 다음에 손잡고 한번 찾아가야겠다. (웃음)

 

 

-  최 : 문화예술이 동네에 그런 느낌을 줬으면 좋겠다.

 

 

-  고 : 누군가가 공유지를 말할 때 ‘정적(靜寂)’조차도 공유지라고 주장한 것을 보았다. 마이크라는 물건이 침묵을 파괴하는 물건일 뿐만 아니라, 마이크 또한 어떤 한 사람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오늘 창의적 공유지에 관한 논의가 쉬운 토픽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화예술교육뿐만 아니라 일상의 문화를 공유하는 그런 공간이 더 많아지고, 그런 생각들과 사례들도 더 많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 삶의 안과 밖에서, 예술교육이 이루어지는 교실 안과 밖에서, 지역의 안과 밖에서, 제도의 안과 밖에 놓여 있는 유․무형의 ‘담장’들을 더 많이 허물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공광규 시인의 시 「담장을 허물다」를 감상하며 오늘 방담을 마쳤으면 한다. “공시가격 구백만 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 나는 큰 고을의 영주가 되었다”라는 마지막 시행은 공유지(共有地)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리라 믿는다. 모두 고생하셨다. <끝>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살던 백 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둥치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느티나무 그늘 수십평과 까치집 세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소리가 들어오고  
 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 위 마른 귀지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루 낮에는 노루가
 이틀 저녁은 연이어 멧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러갔다
 겨울에는 토끼가 먹이를 구하러 내려와 밤콩 같은 똥을 싸고 갈 것이다
 풍년초꽃이 하얗게 덮은 언덕의 과수원과 연못도 들어왔는데
 연못에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미루나무 수십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금강으로 흘러가는 냇물과
 냇물이 좌우로 거느린 논 수십만마지기와
 들판을 가로지르는 외산면 무량사로 가는 국도와
 국도를 기어다니는 하루 수백대의 자동차가 들어왔다
 사방 푸른빛이 흘러내리는 월산과 성태산까지 나의 소유가 되었다
 마루에 올라서면 보령 땅에서 솟아오른 오서산 봉우리가 가물가물 보이는데
 나중에 보령의 영주와 막걸리 마시며 소유권을 다투어볼 참이다
 오서산을 내놓기 싫으면 딸이라도 내놓으라고 협박할 생각이다
 그것도 안 들어주면 하늘에 울타리를 쳐서
 보령 쪽으로 흘러가는 구름과 해와 달과 별과 은하수를 멈추게 할 것이다
 공시가격 구백만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나는 큰 고을의 영주가 되었다

 

 

 

_ 공광규 시 「담장을 허물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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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요문화학교와 문화예술교육 ― “누구와 교육할 것인가?” [바로가기]
2. 성찰적 삶을 위한 ‘교육예술’ ― 동심천사주의를 넘자 [바로가기]
3. 공유(共有)하는 공간은 어떻게 가능한가 ― 부천 담쟁이문화원의 경우 [바로가기]
4. 공유(共有)의 비극을 넘는 두 가지 길 ― ‘입금’이냐 ‘몸빵’이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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