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넘봄
- 대안적 생태공동체의 문화예술교육 해외사례 독일
- 백기영 _경기문화재단 문예지원팀 수석 학예사
- 2014.12.11
1979년 베를린의 우니베르줌영화사(Universum Film Aktien Gesellschaft, UFA)의 촬영소를 개조해서 공동체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파 파브릭(UFA Fabrik)’은 우리나라에서 생태적이며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공동체 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많은 환경운동가들이나 마을 만들기를 꿈꾸는 시민활동가 공무원들이 매년 이곳을 다녀간다고 한다.(전 세계에서 연간 20-30만 명이 이곳을 다녀간다.) 그러나 이곳의 유명세는 단순히 대안적인 생태 공동체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생태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예술 활동에서도 드러난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안적인 공동체가 그러하듯이 이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유토피아적인 이상 철학을 지지하는 인문학자들이나 생태적인 교육 프로그램들 때문에 찾는 이들도 있어서 이곳은 더욱 붐빈다.
<우파파브릭 전경>
사실 이들이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도심 속의 오아시스’로서 서양의 근대 문명과 맞서고 있는 것은 68년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해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기념하는 25주년이 되는 해인데, 우파 파브릭이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베를린 장벽이 동서 베를린을 갈라놓고 있었다. 우니베르줌영화사(Universum Film Aktien Gesellschaft, UFA)의 촬영소는 이 베를린 장벽의 설치로 인해서 문을 닫고 30년간을 방치되었었다. 이 공간을 개조해서 지금의 ‘우파 파브릭’으로 만든 것은 서베를린에 거주하면서 징집을 피해서 온 예술가들이었다. 이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희망했고 그것은 삶과 노동이 분리되지 않고 지속적인 생태적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들이 이와 같은 세상을 위해서 선택한 삶은 시대착오적이고 반문명적이며 근대 이전의 공동체의 모습을 복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철저한 공동의 철학 없이 정부나 지자체가 주도해서 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파 파브릭’ 공동체가 지금까지 지속해 오는 데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참조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17개의 원의식>
이들이 지극히 시대착오적이고 사소한 일들을 위해서 얼마나 스스로의 원칙에서부터 위배되지 않는 삶을 사는지를 보면, 우리는 그저 놀랄 뿐이다. 삶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노력이 뒤 따르고 이를 지속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들이 이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안에서 발견된다. 대표적으로 우파 파브릭이 생태마을 공동체로 불리는 데에는 이들의 거주공간이 태양열 및 지력을 활용한 대체에너지, 천연 재료를 활용한 건축, 자연 발효 화장실, 태양열 목욕탕, 수초를 이용한 폐수 정화 시스템, 쓰레기 재활용, 빗물을 활용한 식수 시스템, 옥상정원 등을 도입해서 운영하는 생활문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 생태마을 공동체는 정부와 시의 에너지, 식수, 폐수 시스템에서 독립하여 생활할 수 있다. 오히려 태양열이나 지열을 이용한 에너지를 시 정부에 되팔기도 한다고 하니 실질적인 에너지 자립과 생활하수의 정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생태마을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이용해서 사는 삶을 수십 년 전부터 고민했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고 있다. ‘살아 내는 것으로서의 대안’을 선택한 것이다. 특히, 공동체의 철학을 이어갈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은 지속가능한 생태적 삶의 대안을 만들어 가는 데에 필수적이다. 이들은 “우파의 두 번째 삶”(Das Zweite Leben der UFA)이라고 새로운 공동체적 삶을 명명했다.
“내가 말하는 마을은 새로운 시대를 상상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서로 돌보면서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곳은 평화로운 곳이 아니라 제대로 좌충우돌하는 곳입니다.”라고 말씀하셨던 조한혜정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 공동체가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데에는 서로 다른 생각을 조율하고 지역사회와도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이들이 운영하는 공동체자립센터(NUSZ)에서는 이웃들을 대상으로 문화뿐만 아니라 사회, 건강, 가정문제에 대해 지원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가족 지원 서비스, 탁아소와 학교, 상담과 갈등중재 등을 진행하며, 지역 커뮤니티와 다른 지역들을 위한 정기적인 마켓과 축제를 진행하기도 한다. 더불어 만드는 문화와 축제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공동체 의식을 강화시키고 자신들의 철학에 걸맞은 문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농장>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이들의 유토피아적인 철학은 단순히 생태적인 삶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들과 맞닿아 있다. 우파 파브릭 내에 있는 공동체자립센터(NUSZ)에서는 유아와 청소년, 노령 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들에게 동양의 무예를 배우거나 요가 같은 스포츠, 명상, 성악, 미술, 요리 등 다양한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전문예술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이해하고 수행하기 위한 생활문화 중심의 프로그램이다. 이런 생활문화 기반의 활동들이 있는가 하면 전문적인 예술가들이 서로 문화를 교류하는 활동도 있다. 대표적으로 국제문화센터(IKC)는 문화와 문화교류를 지원한다. 그리고 국제교류 및 지역교류를 바탕으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함께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 축제 등을 개발한다. 우파 파브릭의 교육 이념을 잘 알 수 있는 자유학교(die Freie Schule)에서는 어린이 농장(Kinderbauernhof)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삶을 배우고 자율적으로 실천한다. 어린이 농장에는 말, 돼지, 오리, 토끼 등 총 40여 종의 가축들을 사육하고 있다. 가축들을 돌보며 더불어 사는 것은 단순히 농장 차원을 벗어나서 삶의 구체적인 실천이다. 어린이 농장에서는 1년에 두 번 300~400여명 인근 지역의 어린이가 참석하는 가족 페스티벌과 200~300여 명이 참석하는 연등축제 행사를 진행한다. 해마다 할로위이나 독일 전통 명절에 행하는 페스티벌 행사에서 우파 파브릭이 지역사회의 문화적 중심이 되는 것이다.
생활문화를 기반으로 지역사회의 축제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문화적 활동을 하고 있는 우파 파브릭에서 빼놓은 수 없는 것은 생태적 삶을 위한 기술학교 교육이다. 생태건축 전문과정과 크노벨 도르프 학교(Knobeldorff Schule)에서는 다년간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동안 500명이 넘는 청년들이 벽돌공, 목수, 미장공, 난방설비, 냉방기술, 구조기술, 전기기술 등을 습득하고 졸업하였다. 이 학교에서는 그동안 우파 파브릭 공동체가 고민해 왔던 생태적 거주의 문제를 교육하고 여러 곳에서 자신의 형편에 맞게 발전시키게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파 파브릭은 2010년 한 해 동안 ‘도시속의 볏짚’(Stroh in der Stadt)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행사에는 볏짚과 진흙을 활용한 벽돌에 관한 워크숍과 이와 같은 재료를 활용한 생태건축 심포지엄이 진행됐다. 이 프로그램은 매우 구체적이며 전문적이고 학제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초청되어 발제를 진행할 뿐 아니라, 생태적 건축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업체들도 참가하고 있다. 볏짚을 활용한 건축 기술의 혁신을 유도하고 있는 이 심포지엄에는 시멘트 콘크리트 블록이 아니라 보다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재료를 활용한 건축을 위한 우파 파브릭의 고민이 녹아 있다.
<볏집 공 워크숍>
우파 파브릭은 30년간의 시간을 통해서 형성된 생활문화공동체다.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삶은 도시화하고 있는 지금의 추세에 역행해 산업화 이전의 전통적인 삶으로 되돌리려는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 유토피아적인 예술가 공동체는 우리에게 ‘지금의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문명의 토대가 지속가능한 것인지? 이것이 지속될 때, 우리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질문하게 한다. 이들이 제안하는 ‘두 번째 삶’으로서의 새로운 대안은 누구에게나 대안일 수 는 없다. 하지만, 문화예술 교육이 교양 수준에서 피교육자들의 정서적 안정과 만족을 달래는 것에만 머물러 있는 현실에서 우파 파브릭의 보다 본질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교육은 한 작은 마을의 교육 실험을 넘어서 인류 전체의 미래를 고민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