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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움은 어떻게 일어나나?
  • 김경옥 _공간 민들레 대표
  • 2014.09.25

 

 

  우리나라 교육을 책임진다는 교육부는 이전에는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교육과 과학이 억지춘향식 연분을 맺고, 과학을 앞세울까 교육을 앞세울까 고민하다 별 뜻 없이 교육과학기술부라는 어정쩡한 이름을 달았던 적도 있고, 지금은 교육부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인적자원개발’이라는 그 위대한 소명을 잊은 적은 없어 보인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인적자원이란 말이 처음 쓰인 게 1963년이라고 한다. 2차대전에서 패하고 미국의 그늘 아래 있다 점차 경제력을 회복하던 무렵이다. 그야말로 인적자원이 필요하던 경제계는 ‘인적능력개발의 과제와 대책’이란 보고서를 내고 교육계를 압박했다. 이를 받은 문부성은 학습지도요령이라는 걸 발표했다. 교과서가 두꺼워졌고, 수학은 난이도를 한층 높였다. 그렇게 자란 사람들이 소니 워크맨과 도요타 자동차를 만든 셈이다. 

 

 하지만 점점 인적자원개발교육이 심화되면서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80년대 초부터 끊이지 않던 이지메와 학교폭력은 아이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였다. 자살도 이어졌다. 사람들은 문제를 느끼기 시작했고, 더 이상 아이들을 인적자원으로만 보지 말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때 등장한 게  ‘유도리(여유 있는) 교육’이다. 교과서가 얇아지고 총합학습이라는 통합적 체험학습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유도리도 통합도 경험해보지 못한 교사들은 그저 아이들을 박물관으로 미술관으로 끌고 다니기만 했다. 

 

 90년대 들어 다시 반격이 들어왔다. 느슨하게 놔뒀더니 아이들 학력(경쟁력)이 엉망이 되었다고. OECD 국가 학력 테스트에서 일본의 순위가 한참 뒤처졌다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일본도 우리도 학력 운운하면서 1위 핀란드 예를 드는 거다. 그러면서 내놓는 대책은 북유럽과 아시아의 거리만큼이나 동떨어진 정책이다. 일본의 교과서는 다시 두꺼워졌고, 시험이 강조됐다. 시간표는 빡빡해졌고 아이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 순례로 바빠졌다. 

 

 최근 일본에서는 다시 ‘이게 아닌가벼’ 하는 분위기다. 그냥 화가 나서 아버지를 야구방망이로 때려죽이는 중3 학생이 나오고, 세칭 일류고와 일류대를 나온 모범생이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걸 보면서 다시 교육을 돌아보고 있다고. 2008년 4월 문부성은 다시 학습지도요령을 발표했다. 학교마다 납득할 만한 사정이 있으면 시간표를 좀 느슨하게 짜도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본이나 대한민국이나 경쟁력 운운하는 이들이 내심 바라는 건 국가경쟁력도 아닌 듯하다. 일제고사, 국제중학교, 교원평가 같은 게 경쟁력을 키울 거라고 믿는 바보들이 아닐 테니 말이다. 일관된 신념처럼 보이는 ‘경쟁력 키우기’의 본래 목적은 ‘잘 난 사람 잘 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사는’ 이 틀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엇길로 가는 세상이어도 어디나 제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인적자원이니 경쟁력이니, 야단법석 속에서 진짜 교육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일본에도 곳곳에 있다. ‘키노쿠니어린이마을’이라는 학교를 만들고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도 그런 이들이다. 

 

 

17년째 키노쿠니학교에서 지속되고 있는 프로젝트 학습

 

 키노쿠니학교는 자유교육을 실천하는 학교다. 우리는 아이의 감성, 지성, 사회성이 두루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한다.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사는 게 기쁜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많은 아이들이 불안, 긴장, 죄의식, 자기증오 속에서 살아간다. 자기 존중감이 약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눈치 보느라 마음이 항상 어수선하다. 시험, 순위 매기기 같은 학교교육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다. 

 

 또 교육 하면 흔히 기성의 지식을 암기하는 게 전부인 듯하다. 아예 암기과목으로 정해진 사회는 물론이고 수학도 공식을 외워 문제를 푸는 식이다. 자기 스스로 지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거의 없다. 암기는 잘하지만 스스로 생각하지는 못한다. 잘 못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생각하는 일에 불안마저 느낀다. 암기중심 교육으로는 지성, 즉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태도나 힘을 기르기 힘들다. 

 

 사회성은 어떤가. 학교에서 사회성 교육이라 하면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 “싸우지 마라”가 전부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감정을 억누르고 그저 사이좋은 척 한다. 진짜로 함께 뭔가를 해내면서 배우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느낄 기회가 거의 없다. 실제 생활이나 구체적인 활동 속에서 서로의 생각이나 욕구가 부딪쳐서 조정하고, 거기에서 지혜를 얻을 기회도 없다. 이런 속에서 제대로 된 사회성이 길러지긴 힘들다. 

 

 키노쿠니에서는 감성이 자유롭고,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공동생활에서 민주적으로 행동할 줄 아는 아이들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을 실천하려 한다. 그들은 이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누구나 성장하고 싶어 하고, 어른들은 그야말로 곁에서 살짝 살짝 지렛대 역할을 하면 된다. 감성, 지성, 사회성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한 인간 안에서 뒤엉켜‘나’라는 존재를 구성한다. 그야말로 교과목으로 나눠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서로 얽혀 있는 이것을 종합적으로 배우고 익히는 학습방식으로 생각해낸 것이 키노쿠니의 프로젝트 학습이다. 말하자면 아이들이 배움의 중심이 되는 그런 교육방식이다.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이 어떻게 배움의 힘을 키우게 되나? 

 

 길이가 25미터쯤 되는 미끄럼틀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키노쿠니 학교는 오사카에서도 지방선 기차

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 닿는 하시모토라는 역에서 다시 산 속으로 30 여분을 차로 달려가야 나오는 그야말로 산 속 작은 학교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공간을 스스로 꾸미고 가꾸는 데 익숙하다. 미끄럼틀 프로젝트는 그 활동의 일환이었다. 

 

 산위에 있는 기숙사에서 학교로 오는 길에 비탈이 있다. 아이들은 곧잘 그곳에서 미끄럼을 타면서 학교로 오곤 한다. 어느 날 전체회의에서 비탈이 너무 가팔라 위험하니 미끄럼을 타지 말자는 의견이 나왔다. 물론 아이가 낸 의견이었다고 한다. 갑론을박하다가 위험하다는 대의명분이 이겨 결론은 미끄럼 금지로 모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어른인 호리 선생님이 손을 번쩍 들었다고. “위험하지만 않다면 미끄럼을 타고 싶은 사람?” 거의 전원이 그렇다고 했다. 그럼 좋은 방법이 없을까, 다시 긴 토론이 이어졌다. 결론은 그곳에다 미끄럼틀을 만들기로 정해졌다. 그리고 이어 미끄럼틀을 누가 만들지 회의했다.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면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키노쿠니 공무점에 맡기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당첨, 공무점이 미끄럼틀을 만든다! 

 

 공무점은 키노쿠니의 여러 프로젝트 반 중에 하나다. 목공작업, 집짓기 같은 걸 주로 한다. 공무점에서는 기꺼이 이 제안을 받기로 하고, 드디어 미끄럼틀을 만들기 시작했다. 근데 사실 아이들 힘만으로는 상당히 힘든 작업이었다. 경험 없는 아이들도 많아서 수없이 회의를 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거의 반 년이 걸려서 미끄럼틀을 완성했다.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이름을 붙이고 완공식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바로 프로젝트 수업이다. 

 

 흙이나 나무를 다룰 때의 느낌, 완성하고 난 뒤 우리가 큰일을 함께 해냈구나 하는 성취감, 나무 길이나 두께를 정확하게 재고 계산하는 과정이 모두 공부다. 체험학습은 몸이나 손을 쓰는 활동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머리를 쓰는 작업이다.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아주 지적인 작업이다. 돈 계산, 각도, 나눗셈 같은 걸 모르면 작은 장난감 하나도 제대로 만들 수 없다. 4미터짜리 각목을 몇 개로 나누는 게 좋을지 궁리하는 과정이 분수와 나눗셈을 배우는 기회다. 

 

 삶과 직결되는 의식주와 관련된 프로젝트 주제를 잡을 때 아이들이 진짜로 좋아한다. 세계평화나 인권 같은 것도 중요한 주제이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뺏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또 프로젝트는 진짜 일이어야 한다. 집을 만들더라도 진짜로 들어가 지낼 수 있는 집을 만들라는 거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지만 힘들수록 아이들의 성취감과 기쁨은 더 커진다. 작업 과정에서 해야만 하는 나눗셈, 뺄셈, 곱셈은 그저 교과서에만 있는 공식이 아니다. 진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고, 실제 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공부가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프로젝트 각 과정에서 적절한 지식과 정보를 가져와, 이것을 배우고 아는 일이 살아가는 데 정말 필요하고 고마운 것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프로젝트 속에서 어른은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흔히들 키노쿠니 같은 자유로운 학교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아이들을 내버려 두는 거구나 하고 오해하기 싶다. 하지만 여기선 어느때보다 어른의 역할이 중요하다. 어른의 섬세한 지지와 간섭이 뒤따라야 한다. 키노쿠니에서는 미끄럼틀을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초등학생들과 피타고라스에 대한 수학적 원리를 가르키기도 하는데,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함께 미끄럼틀을 만든 교사가 이 공정에서 피타고라스 정리가 연결되겠구나 하는 자각이 있어서 가능하다. 그것을 놓치는 둔감한 교사라면 아이의 성장을 도와주기 힘들다. 어른이 체험학습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파악하고, 여러 가지 자료로 준비한 프로젝트는 어떤 학습과도 연결이 가능하다. 

 

 교사도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고나 할까. 가령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해보자. 아이들에게 방 배정을 할 때 다음 두 가지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방법일까? ‘1호실은 누구누구, 2호실은 누구누구 하는 것’과 ‘누구누구는 1호실, 누구누구는 2호실 하는 것’. 앞의 방식으로 하면 아이들은 “나는 몇 호실이지?” 한다. 이름을 먼저 밝히는 방식으로 하면 “나는 누구랑 같은 방을 쓰는 거지?” 하고 되묻는다.

 

 여기엔 분명히 차이가 있다. 키노쿠니 어른들은 서로서로 어떤 방법이 교육적으로 더 나은지, 자주 묻고 답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런 질문과 대화를 통해 교사들은 같은 내용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그 결과가 정말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이런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부터 교육철학에 이르기까지 키노쿠니 교사들은 항상 공부하고 배운다. 키노쿠니에서는 아이들도 어른도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다. 성장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키노쿠니에서는 교사들이 연수를 가거나 책을 사는 데 일반학교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돈을 쓴다. 교사의 성장을 돕는 비결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시간, 두 번째는 돈이다. 사치를 부리기 위한 돈이나 시간이 아니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드는 시간과 돈이다. 세 번째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자유다. 일본의 일반학교 교사들은 정반대다.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고, 책 한 권 사볼 여유도 없다고 한다. 게다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한 자유가 없다. 키노쿠니는 이 세 가지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키노쿠니 사람들은 20년 가까이 키노쿠니에서 아이들과 배우고 익히면서 한 가지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고 한다. 아이들의 힘을 믿고 의지하며 배워가니,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유년 시절 자기를 긍정하면서 자란 사람은 뭐든 할 수 있다. 또 누구도 해치지 않고 세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위에서 진짜 배움이 일어난다.